언스플래쉬
2009년 8월 16일, 제12회 세계육상대회 100미터 달리기 시합의 출발선에서 선수들이 긴장한 채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날을 위해 선수들은 몇 년간 피땀을 흘려가면서 연습했고, 각 지역별 예선을 통과해 올라온 선수들의 실력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보다도 적다. 총성이 울리고 순위가 갈렸다. 한 선수가 경이적인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우사인 볼트였다. 9.58초라는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영역일 것으로 여긴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난 이후에도 그의 압도적 우승의 기록은 이어졌지만, 그가 당일 세운 기록을 이후에 깨지는 못했다. 그날 그의 전성기였던 것일까?
아니다, 그날은 그의 뒤에서 앞으로 적당히 순풍이 불고 있었던 것이다. 조사를 해보니 남녀 100미터, 110미터 허들, 멀리뛰기, 3단뛰기 세계 신기록은 8가지 중 7개가 순풍, 한 개는 바람이 없는 상태였다. 역풍이 불 때는 없었다. 모두가 같은 환경에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주 잘하는 선수들이 아주 적은 실력 차이를 가를 때, 또 그 사람의 개인의 실력의 베스트를 낼 때 이와 같은 아주 적은 환경의 차이가 금과 은을, 영원히 남을 기록과 평범한 잘한 기록을 가른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가 우승을 하거나 기록을 세우고 나면,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했으며, 얼마나 그가 재능이 뛰어난 선수길래 저렇게 잘했을까.”라고 여기고, 그의 훈련법, 집안 환경, 어릴 때의 재능을 보려고 한다. 물론 선수 자신도 그렇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경향을 보면 그 한끗 차이를 가른 것은 바람의 방향이었다. 그날의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통제하기 위해 세계육상연맹은 초속 2미터 이상의 순풍이 불면 세계기록이라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우연 혹은 행운의 힘은 육상 경기 말고도 찾을 수 있다. 최근 <골목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데, 원래부터 잘하고 성실하던 식당보다는 이상하게도 자기 고집이 있거나, 실수가 많은 그런 식당이 더 화제가 되는 것 같다. 나 또한 저러면 안되지라고 막 욕을 하면서 보고, 요즘은 백종원 씨의 정신건강을 염려하기까지 하니 몰입도가 상당하다. 자연스럽게 실제 저 가게가 어딘지 궁금해진다.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고, 진짜 많은 사람들이 찾은 후기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비록 방송에서 욕은 먹었지만 어찌되었건 주변의 다른 식당들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는 지명도를 얻은 것은 분명하다.
서울시에만 12만 개의 식당이 있다고 한다. 1천만 명 시민이라고 하면 80명에 한 개꼴이다. 이들 중에는 미쉘린 별을 받을 식당, 수십년 동안 자리잡은 노포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초보 식당도 많다. 이들 중 극히 일부가 방송에 3-4주간 나왔다는 것은 실력일까, 행운일까? 만에 하나 이들 중 일부가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그곳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해도,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너무 많은 변수가 관여하기 때문에 그 후의 일은 통제하기가 어렵다.
어찌되었건 내 느낌에 이건 행운의 영역이 큰 일인데, 욕을 엄청 먹으면서 <골목식당>에 나오고, 그후에 꽤 성공을 하게 된 식당 주인은 (특히 미숙함과 고집으로 혹평을 받았던 곳일수록 더욱), 자신이 이런 고난을 겪고 꾹 참고 버텼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라고, 자신의 실력 덕분이라고 여길 확률이 매우 높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의 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실패하면 환경 탓, 잘되면 능력 덕분이라고 여기는 것이 사회심리학에서 반복해서 밝혀낸 사실이니 말이다.
이런 실태에 반론을 제기하는 책을 한 권 찾았다. 로버트 K 프랭크의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다. 저자는 코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그는 자기 자신이 교수가 된 과정을 밝히면서 우연한 한 두 개의 선택이 지금까지의 길로 이어지게 했다고 고백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어릴 때 야구선수로 나름 인정을 받았는데, 중간에 그만두게 되었고 그게 그 당시에는 너무나 큰 상심의 원인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만일 야구를 했으면 자기 재능 정도였으면 프로야구선수가 되기도 어렵고, 된다해도 아마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20대 후반 은퇴했을 것이라 진단을 했다. 반면 그는 20대 후반 같은 나이에 경제학 박사를 받고 강의를 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야구를 계속 하겠다고 고집을 했다면?
성공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성공이 우연이 아닌 재능과 실력의 요인이 훨씬 많이 작용했다고 해석하고, 자신의 행운을 잘 못 느낀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그런 인식이 타인의 아픔과 결핍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하고, 공공복지에 대한 저항, 모럴 해저드와 같은 반감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사회경제적 환경과 같이 자기 주변이 모두 비슷하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고 사는 환경적 요소도 큰 작용을 한다. 앨런 크루거는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소득사이의 상관 관계가 0.5로 매우 높은데, 이는 부모와 자식의 키의 상관관게와 거의 같은 수준일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는 그걸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그 안에서 자녀의 노력 변수를 더 중요하게 볼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같은 환경안에서 결국 소득수준의 평균보다 못한 동류의 부모-자식사이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자신의 노력의 전체를 보는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골목식당>의 예도 그렇듯이 초기에 같은 시기에 같은 수준의 경험을 갖고 식당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초기의 작고 사소하다고 할만한 차이가 최종 결과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로 증폭된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 저자는 미국에서 세금 신고를 할 때 회계사를 항상 고용했는데, 사용하기 쉬운 세금계산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일부 회계사집단이 거의 모든 고객을 독식하게 되었고, 이후 고만고만한 소프트웨어들의 경쟁 속에서 몇 군데의 선호도가 높았던 터보택스라는 프로그램이 시장을 완전 장악하는 일이 결국 벌어졌다. 1등과 2등 사이의 차이는 진짜 미미하지만, 보상하는 차이는 상상할 수 없이 크다.
네트워크 사회가 되면서 롱테일 법칙이 등장했다. 과거와 달리 아마존과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가 방대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판매를 하니 공간의 제한이 없어져서 수많은 제품을 검색해서 판매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업자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버트 프랭크는 반론을 펼친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이지만,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애니타 앨버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음원중 상위 0.00001%의 매출이 전보다 훨씬 커졌다. 2007년 7%에서 2011년에는 15%로 증가했다. 비록 남이 잘 안 듣는 음악을 찾아서 듣기에 쉬워졌지만, 그럴수록 상위권 독식도 강해져서, 상위권 극소수가 가져가는 보상은 이전에 비해서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때 초기에 상위권에 오르게 되는 것은 압도적 실력차가 아니라, 처음 일부 소수의 긍정적 피드백과 응원이라는 것이 연구에서 밝혀졌다. 누군가 아주 우연하게 “이 음악 좋은데”라고 추천하고, 별을 주는 행위가 종국에 비교할 수 없는 보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나의 오랜 고생과 노력, 실력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라고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담고 있다. 경제학자인 저자는 소득세를 개정하는 것으로 고소득층의 탐욕을 억제하고, 더 걷어들인 세금을 공공영역에 투자해서 평등을 강화하자고 말한다. 고소득층의 지금의 부가 행운의 영역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일정 부분 거둬서 운이 없었을 뿐이 다수에게 배분하는 것이 사회의 안정을 위해 타당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반론이 있을 것이다. 실제 책에서도 가감없이 저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소개하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할가는 앞으로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 국가마다 제각각 가진 문제가 다를 것이니 방법도 달라야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인간본성의 일면을 봤으면 한다.
내가 잘한 것은 내 재능이나 노력, 실력의 결과물이라고만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 그 경향은 성공의 과실을 100% 내 것으로 여기게 되는데, 문제는 현대 사회는 승자의 독식이 과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 1%의 재능과 노력의 차이라면 1%, 많아야 2%의 결과의 차이가 정당할 텐데 1000%의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이다. 1000%의 재능과 노력의 차이가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우리는 운과 초기의 사소한 환경 변수에 대해서 감사하고, 이를 세상과 함께 나누려는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세상을 함께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연민, 공감, 연대의 토대가 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