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한바탕 눈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뿌연 날이다. 창문 넘어 보이는 회색의 아파트들은 텅 빈 건물들처럼 보인다. 빛나는 창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모두 어딘가로 떠났다. 어떤 때는 마음의 허상이 실상을 대체하기도 한다. 마음의 집이 소란스러우면 문을 걸어 잠그는 ‘주거인’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오늘만 해도 그렇다. 별 탈 없이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가 돌연 연락을 잠시 끊겠노라고 전해왔다. 마음이 잠잠해질 때까지. 당분간은 자신의 문을 두드리지 말아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나는 잠시 그를 등졌다. 누군들 한때 마음의 창에 커튼을 쳐놓고 살아보지 않았을까.
며칠 전에는 십수 년을 어울려 지냈던 친구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와 나는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만나 함께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었다. 나의 비밀이나 숨겨진 감정을 시시콜콜 고백할 수는 없으나 나의 취향이나 그날의 감정적 동요에 관해서는 조곤조곤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였다. 그에게 나 역시 마찬가지였을 테다. 우리 우정의 모습은 오랜 세월 변모하지 않았으므로 그게 나와 그가 누릴 수 있는 최적의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깊은 우정이 있다면 얕은 우정도 있다. 우정의 활력은 깊이에서 오는 게 아니다. 그렇기에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는 모든 종류의 비극에는 늘 같은 길이와 크기의 슬픔이 흰 커튼처럼 드리운다.
‘두드리세요, 두드리지 마세요.’
그는 나와 친구들에게 암 발병 소식을 전한 지 2년여 만에 모든 연락을 중단했다. 후에 알고 보니 그의 병색은 그때부터 더 짙어졌다고 했다. 그는 저 자신을 행방불명으로 만든 후에 부단히도 살아나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그랬기를 바란다. 질병을 이기고 살아남으려는 자의 몸부림은 누구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때 그이는 가족과 친구와 연락하지 않은 채 병든 몸을 질질 끌고 혼자서 통원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침몰해가는 몸의 참혹을 누구에게도 전시하고 싶지 않았던 그의 심정을 미련하다거나 어리석다고 할 수 있을까. 커튼이 드리워진 그의 마음의 집에도 분명 빛나는 색색의 전구가 매달려 있었으리라.
2018년 11월 5일 15시 06분. 그의 사망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그의 누이로부터 연락을 받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정신이 잠깐 돌아온 그가 보고 싶은 친구들의 연락처를 공책에 적어 주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어리석게도 그가 썼다는 글씨가 보고 싶었다. 삐뚤삐뚤하게 적혔을 그 이름들을.
나는 생전에 그를 그의 이름으로 불러본 적이 없다. 그와 나는 한 온라인 동호회에서 만났으며 그곳에선 그도 나도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나도 서로의 본명을 알고 있었으나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애칭으로 불렀다. 우리는 본명의 우정이 아니라 애칭의 우정을 쌓았다. 때로는 닉네임이 실명보다 더 실제의 존재에 가닿아 있기도 하다.
유달리 덩치가 좋던 그가 마지막에는 미라처럼 변해 앉지도 서지도 못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육신의 무게가 가벼울수록 영혼의 무게는 무거워진다는 건 듣기엔 그럴듯해도 참으로 고통스러운 말이다. 그 고통에서 탈출하여 평온하게 빛나는 두 눈을 걸어 잠갔을 몸의 주거인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두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은 죽음의 영역으로 저 자신을 슬며시 옮긴 사람이리라. 우리는 꿈속에서 소리친다.
‘두드리지 마세요, 두드리세요.’
오늘처럼 첫눈을 기다려보기도 처음이다. 사이토 마리코의 ‘눈보라’ 속 소녀들이 그러했듯 단 하나의 눈송이만을 바라보고 싶다. 끝내 지상에 닿아 사라지는 그것을 응시하고 싶다. 응시란 멈춤의 말이고, 침묵의 이음동의어다. 흰빛을 보고 싶다. 눈이 사라지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인간의 생애에 관한 이 진실한 문장을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쓰게 된 걸까.
그날, 영정사진 속 친구의 얼굴에는 흰빛이, 뿌연 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이미지가 녹아 흩날리며 생기는 기체에 휩싸여 있는 듯 보였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사라진 듯 사라지지 않는. 그렇게 이미지는 여기와 저기를 접속한다.
수업이 심심하게 느껴지는 겨울날 오후에는 옆자리 애랑 내기하며 놀았다. 그것은 이런 식으로 하는 내기이다. 먼저 창문 밖에서 풀풀 나는 눈송이 속에서 각자가 눈송이를 하나씩 뽑는다. 건너편 교실 저 창문 언저리에서 운명적으로 뽑힌 그 눈송이 하나만을 눈으로 줄곧 따라간다. 먼저 눈송이가 땅에 착지해 버린 쪽이 지는 것이다. (…) 거짓말해도 절대로 들킬 수 없는데 서로 속일 생각 하나 없이 선생님 야단맞을 때까지 열중했다. 놓치지 않도록. 딴 눈송이들과 헷갈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키고 따라가야 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사이토 마리코 지음, 『단 하나의 눈송이』 의 「눈보라」 부분
먼지가 순순히 내려앉은 시집을 다시 꺼내 읽으며 나는 잠시 내 곁에서 사라진 친구와 영원히 떠나간 친구를 불러 세워 보았다. 두 사람은 같은 듯 다른 사람이고 다른 듯 같은 사람이다. 마음속 전구의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둘은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있었다.
‘두드리지 마세요, 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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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눈송이사이토 마리코 저 | 봄날의책
시의 보편성, 시집이 담아낸 개성 넘치는 세계, 시어가 얼마나 생동한가보다, 일본 시인이 ‘한국어’로 쓴 시집이라는 지점이 어쩔 수 없이 흥미로운 화제가 될 만하다.
김현(시인)
dpdms0115
2018.12.07
시골아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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