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서울 너무 멀어. 나 경기도로 귀촌했잖아.”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친구들은 문장의 모순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경기도가 귀촌이면 나는 이미 귀촌했냐?”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친구의 지적이다. 물론 나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20년 넘게 알고 지내다보니 이 정도 빈정거림이야 자장가 수준이다. 오히려 나는 친구의 독설에 왜 이게 귀촌이 될 수밖에 없는가 이유를 구체적으로 들어주기까지 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 사는 걸 꿈꿨다. 옛날에 유행했던 노랫말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를 동경했다기 보다는 『빨간머리 앤』 에서 본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동경했다는 편이 옳았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욕망은 커져만 갔다. 특히 작년, 초유의 미세먼지 사태와 밑도 끝도 없는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나니 말 그대로 서울을 탈출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책을 보자면 함부로 귀촌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추앙받는 마루야마 겐지는 신랄한 내용의 에세이로 더 유명하다. 『소설가의 각오』 는 말 그대로 “어금니 꽉 깨물고 글 써라”는 내용이고,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는 쉽게 살려고 하는 마음 자세를 버리고 자기 자신답게 살라고 독자를 일깨운다. 이런 마루야마 겐지의 책 중에는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함부로 품지 말라고 경계하는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도 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도시생활을 접고 여생을 시골에서 살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잘 압니다. (6쪽)
협박조의 문장을 보자마자 뜨끔했다. 나는 딱 저런 기분으로 귀촌을 궁리했으니까.
얄팍한 마음가짐으로 생각한 귀촌의 조건은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운전을 못하니까 교통이 좋았으면 좋겠다. 단독주택에 살아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시골에 가도 아파트에 살고 싶다. 도서관과 마트가 가깝고, 개와 산책을 할 만한 흙길이 있었으면, 그리고 그 풍경에 소똥 냄새가 섞인다면 금상첨화일 듯하다. 이런 어설픈 귀촌 욕망이 현실로 펼쳐진 것은 어디까지나 동생 덕이었다.
작년 초, 동생은 이사를 가자고 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실천에 옮겼다. 포털 사이트의 부동산 정보를 자세히 훑은 후 올케와 함께 답사에 나섰다. 구리와 남양주 일대를 휘휘 둘러보다가 훗날 이사할 이 동네, 사릉에 들렀다. 경춘선을 비롯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어야 할 것은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화개장터 같은 동네에 동생은 만족했다. 돌아와 이사를 권했다. 과연 어떨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와 달리 엄마는 제안을 반겼다. “그 동네, 너(동생) 태어난 동네다.”라고 덧붙이며.
엄마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이사를 자주 다녔단다. 어린이대공원 근처에 살았다던가 어딘가 서울 근교에서 산 적도 있다지만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의 대부분은 안산이 차지한다. 그런데 엄마 말에 따르면 동생이 “여기 괜찮아.”하고 느낀 동네가 종종 이야기한 ‘어딘가 서울 근교’라는 것이었다.
이런 우연이 일어나다니, 흥미가 돋았다. 온 가족 드라이브나 할 겸 일단 가봤다. 차를 타고 한 바퀴 천천히 동네를 도는 사이, 엄마는 낯익은 풍경을 찾아냈다. 동생이 태어날 무렵에 있었던 교회가 여전했다. 겉모습은 조금 바뀌었지만 과거를 추억하기엔 충분했다.
서울에 살다 보면 참 쉽게 모든 게 변한다. 개발이 계속된다. 비닐하우스, 근처의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 살 곳에 허덕이다 결국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도 잦다. 나는 이런 퍽퍽함이 싫었다. 이를 악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삶을 바랐다. 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왔을 교회를 보자니 기대가 생겼다. 이곳엔 그런 삶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없이 희망에 가까운 기대 말이다.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우리 가족 모두, 경기도로 귀촌하기로.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ne518
2018.12.17
희선
북버드
2018.12.13
Elly
2018.12.12
변하지 않는 것/곳 에 대한 기대. 이제는 그런 기대를 하기가 무서운 세상인데. 잘 찾으셨는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