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토요일 저녁,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라이너 쿤체의 시와 삶, 그리고 사랑 이야기가 있는 밤’ 행사가 열렸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 출간을 기념해 봄날의책 출판사가 마련한 시간으로 전영애 교수가 ‘라이너 쿤체의 시를 번역하게 된 계기, 인간 라이너 쿤체에 관한 이야기 등을 나눴다.
라이너 쿤체의 시집 『나와 마주하는 시간』 은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시리즈로 전영애 서울대학교 독문과 명예교수, 박세인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 대학교 문학과 방문 조교수가 번역했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쿤체(Reiner Kunze)’는 동독 정보부가 작성한 자료 3,500쪽을 정리한 『파일명 '서정시'』 의 주인공이자, 횔덜린 상, 트라클 상, 게오르크 뷔히너 상 등을 수상한 시인. 『나와 마주하는 시간』 은 독일에서 출간 당시, 초판 5천 부가 며칠 만에 판매됐고 2달 만에 3쇄를 찍었다. 86세 노시인 라이너 쿤체는 독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라이너 쿤체의 2018년 신작 시집 『나와 마주하는 시간 die stunde mit dir selbst 』 은 특유의 간결한 시구에 삶의 깊이와 성찰의 무게가 더해져 한층 깊고 절절해진 시 43편을 담고 있다. 전영애 교수는 옮긴이의 말 ‘시간의 돌길 위에서’를 통해, 라이너 쿤체 시인을 “키 작은 풀 하나도 그렇게 주의 깊게 따뜻하게 들여다보며, 세상의 모든 생명과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그렇기에 그것에 반하는 인간의 불의와 폭력에는 저항하는, 섬세하고 따뜻하고 깊은 눈길을 가진 올곧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 은 라이너 쿤체가 한국시 12편이 담긴 『보리수의 밤』(2006년)을 내놓은 지 12년 만에, 85세를 맞아 내놓은 신간이다. 독일어로 직역하면 ‘네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 전영애 교수는 이 시집이 출간되자마자 곧바로 옮겼다. 독일에서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시집으로 사랑 받았다.
전영애 교수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라이너 쿤체. 그는 한국어 번역본을 위해 시 「뒤처진 새」를 보내 왔다. 이 시는 독일 피셔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에는 들어 있지 않다.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 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이날 전영애 교수는 라이너 쿤체의 시를 낭독하며, 짧은 시평을 전했다. 전 교수는 “한 단어도 쉽게 쓰여지지 않은 시들이다. 언제나 그의 시는 올곧은 생각을 담고, 말을 아끼고 아껴 다듬고 다듬어 완성된 시”라며, “정좌하고 앉아 옮겼다. 어쩌면 라이너 쿤체의 마지막 시집일지도 몰라 무거운 마음으로 시를 옮기고 힘 모아 다듬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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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주하는 시간라이너 쿤체 저/전영애, 박세인 공역 | 봄날의책
라이너 쿤체 시인은 더없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증언하며, 모든 생명 있는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대변하는 우리 시대의 시인, 시인 외에 달리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