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 놓고 죽었다』 는 2015년 대한민국 전자출판대상 작가부문 대상을 수상한 임선경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이다. 다섯 살짜리 어린 딸을 남겨 두고 죽은 엄마가 주인공이라 죽음이라는 주제가 작품 전체를 싸고 있지만, 결코 무겁거나 슬픈 이야기만은 아니다. 귀신이 주인공인 밝고 따뜻하고 가끔은 웃긴 이야기이다. 1970년대라는 시대를 소설의 시작점으로 삼아 매우 자연스럽게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며 대놓고 귀신 이야기를 쓴 작가에게 궁금한 게 많아졌다.
임선경 작가는 1970년 대전에서 태어나 자랐고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95년부터 TV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청소년 드라마의 전형으로 인정받는 KBS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와 MBC의 『나』를 썼고 휴먼다큐멘터리 『이것이 인생이다』와 이혼법정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집필했다. 여성과 여성주의, 환경, 교육 문제에 눈과 귀를 열고 있으며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책 제목이 ‘나는 마음 놓고 죽었다’인데 예사롭지 않습니다. 전작 『빽넘버』 에서도 죽음을 보는 남자가 주인공이었는데 특별히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인가요?
제가 주변 친척 분들에게 책을 드렸더니 제목을 보고는 ‘아유, 정말 나도 이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제가 꿈꾸는 죽음이자 삶이고, 같은 마음인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남겨진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 더 걱정할 게 없다는 건 그만큼 믿음과 희망이 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 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여건이 뭘까 따지기 시작하면 사실은 한도 끝도 없어요. 마음은 자기 것이기 때문에 놓는 것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 놓아야 하거든요. 마음을 놓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에요.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제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늘 죽음을 생각하는 우울한 사람은 아니고요. 하지만 죽음이란 것을 완전히 잊고 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죽음을 얼마나 가깝게 여기느냐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죽음을 잊지 않을수록 삶이 훨씬 더 소중하고 아깝고 의미 있고 재미있지 않겠어요?
제가 ‘노인들이 꽃놀이, 단풍놀이를 가는 건 내년에도 이 꽃을, 이 단풍을 또 보리라는 확신이 없어서’ 라고 쓴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거든요. ‘내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 꽃을 보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 꽃 한 송이도 더 열심히 보고 향기 맡고 느끼게 되겠죠.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기회 될 때 즐기고 느끼고 뭐든 해보려고 하고요. 죽음을 의식하는 건 ‘더 행복하게 더 잘 살기 위해서’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죽음을 다루지만 그렇다고 슬픈 이야기는 아닙니다. 밝고 따뜻하고 또 가끔은 웃긴 이야기이에요.
배경이 70년대 후반인데요. 특별히 그 시대를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는지요?
이 소설의 출발이 바로 시대적 배경이었어요. 작품마다 출발이 있거든요. 떠오르는 어떤 한 장면이 소설의 출발일수도 있고 내가 그리고 싶은 어떤 사람이 출발일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 소설은 시대가 출발이었어요. 1970년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찾았죠.
저는 19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소설에 등장하는 연이와 동년배라고 볼 수 있죠. 제가 기억하는 70년대는 지금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와 느낌이 있었어요. 제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굉장히 심심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종일 텔레비전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장난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책도 귀할 때라 정말 할 일이 없었거든요. 학교만 잠깐 갔다 오면 하루가 무척 길었어요. 심심하니까 엄청나게 많은 공상, 상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의 이웃들이나 그들의 작은 에피소드들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 때가 좋았다’고 미화할 생각은 없어요. 어른들에게는 무척 힘든 시대였을 테니까요. 굳이 좋은 시대 나쁜 시대를 구별하고 싶진 않지만, 개인에게는 다시 돌아보고 싶은, 꼼꼼히 되짚어보고 싶은 시대가 있게 마련이죠. 이른 바 ‘동네’ 가 있었던 시대, 낮에는 어느 집이고 대문이 열려 있던 그 때를 소환해보고 싶었고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그냥 따듯한 눈으로 바라봐주고 싶었어요.
소설 속에 인물들이 여럿 나오는데 그 중 작가의 페르소나가 있겠죠? 소설의 등장인물에게 작가가 가지는 애정은 형용할 수 없겠지만, 특별히 더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
아무래도 ‘연이’ 에 감정이입을 많이 했죠. 연이는 좀 되바라졌죠. 좋게 보면 야무진 거고. 연이의 대사를 쓸 때는 늘 슬며시 웃음이 났어요. 연이는 남들 보기에는 힘든 상황에 처했지만 본인은 크게 개의치 않고 별로 힘겨워하지도 않는데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저의 이상형이 그렇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인물은 근점이예요. 짧게 나오는 인물이지만 그 장면(저녁 먹다 말고 엄마 아빠가 피난 짐 싸는)을 상상하면 눈물이 나요.
희철이도 눈앞에 있다면 꼭 안아주고 싶은 아이예요. 그 애가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평생 갖고 가야 할 마음의 짐이 너무 가여워요. 누군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많이 쓰다듬어 주면 좋겠어요. 희철이 부모님이 해주면 좋겠지만 그 분들도 다 상처가 깊은데 그렇게 해줄까 싶기도 하고. 소설 뒷부분에서 희철이 아버지가 “이제 희철이 보고 살랍니다”라고 말했으니 믿어보긴 해야겠죠. 그러고 보니 모든 아이들이 마음에 남네요. 저도 그 시대에는 아이였으니까 더 그런지도 몰라요.
작가님은 그동안 방송드라마부터 동화,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들을 써오셨는데요, 비소설 교양서도 여러 권 내셨고요. 다양한 분야에서 글쓰기를 하시는데 소설을 쓰는 것과 다른 글을 쓰는데 차이가 있나요?
분야는 다르지만 작가로서 크게 다른 점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쩌다 기회가 닿아서 하게 된 일도 있고 여러 해 동안 계속 도전했던 일도 있고요. 하고 싶지만 아직 제 능력이 안 되는 글쓰기 영역도 또 있죠.
저는 프리랜서이고 누군가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글을 발표할 기회를 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예요. 글을 쓰는 일은 혼자서 하는 일이지만 그게 책이 되거나 영상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은 또 다른 일이거든요. 글도 잘 써야 하지만 또 운도 따라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글쓰기가 더 재미있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당연히 장단점이 있죠. 영상 대본을 쓰는 일은 제약도 많고 간섭도 많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른 제작진에게 굉장한 도움을 받는 일이고요, 소설을 쓰는 일은 정말 지난하고 끝을 보기까지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지만 그만큼의 성취감이 있죠.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건 자신과의 치열한 대결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작품이 잘 안 풀릴 때 어떻게 이겨내세요?
저는 그냥 버텨요.. 뭐든 그냥 번쩍 떠오른 적은 없고 엄청 오랜 시간 앉아서 뭉개고 몸을 비비 꼬면서 관자놀이를 문질러야 겨우 뭐가 나와요. 주로 카페에서 작업을 하는데 뭔가 생각할 때는 창밖을 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어요. 정 집중이 안 되면 밖에 나가 동네를 걸어다니기도 하고요. 어떤 이야기든 쉽게 술술 풀려나갔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작가의 재능이라는 건 뭘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늘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니까요. 재능이 없는데 안 될 일에 너무 애를 쓰는 건 아닌가? 어떨 땐 글쓰기가 적성에 안 맞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해요. 작품을 시작은 했는데 힘만 들고 안 풀리고 그냥 때려치우고 싶은 고비가 계속 있어요. 매번 그래요. 그래도 믿는 거예요. 하다보면, 가다보면 어딘가 닿는 데가 있을거다. 끝이 날거다,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믿어요. 좀 무턱대고 낙관하는 능력. 그게 재능 아닐까요? 소설을 쓰다보면 '네까짓 게 무슨 소설을 써!' 라는 내면의 외침이 백번도 더 들리거든요. 그걸 못 들은 척 하는 게 능력이고 재능이죠. 상상력이나 구조를 짜는 논리력, 표현력도 있어야겠죠. 하지만 자기를 믿고 끝까지 가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유리가면> 이라는 만화에도 그런 말이 나와요. “마야, 재능이란 자신을 믿는 것이란다”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신가요? 또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소설이 있다면요?
저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스토리가 나중에 어떻게 될까?’ 궁금한 것도 재미고 등장인물에 완전히 이입하는 것도 재미인데 제가 생각하는 ‘재미’라는 건 읽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끌어내는 것이에요. 기쁘고 즐거운 것도 감정이고 슬프고 화나고 지독하게 아픈 것도 다 감정이죠.
저는 인생의 콘텐츠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의 최후까지 남는 기억, 추억은 모두 감정과 관련 있는 것이거든요. 감정이야말로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스포츠만 봐도요, 사람들은 왜 공을 구멍에 넣는 일에 그렇게 열광할까요? 대체 그게 사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스포츠 산업에 그 많은 돈과 에너지를 들이는 이유는 그게 감정 산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쟁에서나 느낄만한 폭발적인 감정을 제한된 룰 안에서 안전한 공간에서 느끼려 하는 거죠. 문화 예술을 즐기는 것도 그렇고 여행을 가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해요. 폭발적인 희열, 충만한 행복감 같은 커다란 감정 뿐 아니라 미세하게 떨리는 감정들도 놓치지 않고 충분히 느끼는 것.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갖는 것이 밀도 있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잊고 있던 또는 가라앉아 있던 감정을 끌어내줄 수 있는 소설이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요. 오랫동안 쓰다 밀쳐두다 하는 소설이 있는데 제목은 『체중감량애사』 고요, 장르물을 좋아해서 뱀파이어가 나오는 판타지 소설도 구상 중이에요.
작가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또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될까요?
‘작가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일까, 이야기를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일까?’ 라는 질문을 받은 적 있어요. 저는 이야기가 많은 사람은 아니에요. 무척 평범한 환경에서 특별할 것 없이 자랐거든요. 제가 아는 작가들 중에는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도 많고 신화니 고전이니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을 다 아는 것 같은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그렇지도 않거든요
저는 제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다 재미있어요. 소설, 드라마, 영화를 볼 때 굉장히 엄격하게 비평하고 웬만한 건 다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저는 웬만하면 다 재미있던데요? 사우나에서 아주머니들이 누구 욕하는 이야기도 재미있고 일상에서 작은 사건이 생겨도 그 사건의 추이와 내막이 다 흥미진진해요. 인간사 세상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게 작가가 아닐까요?
*임선경
1970년 대전에서 태어나 자랐고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95년부터 TV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청소년 드라마의 전형으로 인정받는 KBS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와 MBC의 『나』를 썼고 휴먼다큐멘터리 『이것이 인생이다』와 이혼법정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집필했다. 여성과 여성주의, 환경, 교육 문제에 눈과 귀를 열고 있으며 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에서 아홉 살, 여섯 살 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녀는 유난히 입이 짧고 병치레가 잦은 아들 둘을 위해 안전한 먹거리와 생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공식품 덜 먹기, 세제 덜 쓰기, 장바구니 들고 다니기 등 가깝게는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 크게 보아서는 지구환경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현재 이웃과 세상에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헉헉대며 글을 쓰고 애면글면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저서로 『징그럽게 안 먹는 우리 아이 밥 먹이기』와 『아내가 임신했다』, 『연애과외』, 『몸살림 먹을거리』,『빽넘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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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 놓고 죽었다임선경 저 | 뮤진트리
매우 촘촘하게 엮어낸 우리들의 오래된 이야기, 보통 사람들이 들려주는 저마다의 사연에서 이 소설이 누구에게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