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고 또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살아보고 싶은 삶의 모습은 다양한데, 그 방법이나 계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삶을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렇게 여러 이유를 대면서 한해 두해 살다보면 이게 결국 살아지는 대로 산다는 것 아닐까. 살고 싶은 삶과 조금 멀어지면서.
이런 삶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그 계기도 거창하지 않다. 개인적으론 조금 머뭇거렸으나 어렵지는 않은 일, 취미 활동을 시작하면서 삶이 변했다. Small Hobby Good Life, 작은 취미가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한 것이다. 『바다의 파도에 몸을 실어, 서핑! : 허우적거릴지언정 잘 살아 갑니다』 를 쓴 김민주 작가에게 작은 취미는 바로 서핑이었다. 그는 3n년차 서울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에서 서핑하며, 일하며 살고 있다.
제주에서의 일도 하고, 서핑도 하며 사는 삶은 어떠신가요?
평범하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해요. 몇 주 전에는 고등학교 때 동아리 선배가 우연히 제가 일하는 호텔에 투숙객으로 와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서로 긴가민가하다가 선배가 먼저 제 명찰을 보고 ‘혹시 ㅇㅇ고등학교…’라고 말문을 여는 순간 둘 다 확신했죠. 그날 퇴근하고 술 한 잔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십몇 년 만에 처음 만난 건데, 할 말이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너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성수기가 다가오면서 문의 전화도 많고 손님도 많아서 일할 때 신경 쓸 것이 많아지고 있어요. 객실 문을 열어둔 틈에 들어온 지네에 물린 손님이 있었어요. 다행히 살짝 물려서 몸에 이상은 없긴 했지만, 손님이 짜증 한 번 내지 않으셔서 놀랐어요. 개미에게만 물려도 화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상도 찌푸리지 않으시더라고요. 오히려 감사했죠. 여행 와서 지네에 물렸을 때 짜증내는 사람과 짜증내지 않는 사람, 이 반응의 차이는 왜 생겨나는 걸까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요. 제주가 저에게는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설렘 가득한 여행의 순간이니 최대한 그 사람들의 마음에서 대화하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오전조일 때는 오후 4시에 퇴근해서 저녁에 요가를 가고요, 오후조일 때는 오전에 파도가 있으면 아침에 서핑을 하고 출근하곤 해요. 물론 저녁에도 파도가 있으면 바다로 갑니다. 요즘은 해가 길어져서 서핑 할 수 있는 시간도 길어졌거든요. 얼마 전에는 제주국제서핑대회가 있었는데, 스태프로 참여했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서울에서도 일하면서 여러 행사의 스태프로 뛰어봤지만 바다를 앞에 두고, 모래사장에서 행사를 치른다는 건 또 다른 매력과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일단 모래사장은 걸어 다니는 것조차 너무 힘이 드니까요. 하지만 바다와 파도와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모습에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서핑대회이기 때문에 바다를 더럽히는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려고 주최 측과 참가자 모두가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기도 했고요.
이제 서핑을 하신지 몇 년 정도 되셨나요? 작가님께서 처음 서핑을 시작하셨을 때와 지금, 서핑과 관련해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서핑을 처음 배운 건 2017년 5월이었으니까 2년이 조금 넘었네요. 꾸준히 하기 시작한 건 1년 정도 되었습니다. 제주에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예요. 처음 배울 때는 아무것도 몰라서 사람이 많은 건지 분위기가 어떤지 제대로 파악을 못 했던 것 같아요.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잖아요. 이제는 조금 더 알게 되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은 느껴져요. 작년 여름과 비교해봤을 때 확실히 더 붐비는 것 같아요. 작년에도 중문 바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제 서핑 할 만한 사람은 다 했겠다’는 농담을 나누기도 했었는데 올해 되니까 더 많아졌어요. 새로 배우러 오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고요. 강습 받는 어린 아이들도 많아졌어요. 어릴 때부터 서핑을 할 수 있다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서핑에 대한 문턱이 예전에 비해 낮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바다에 놀러가서 누구나 한번쯤 해 볼 수 있는 것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서핑 관련 방송, 영화, 책도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작년 여름에도 서핑을 주제로 한 예능이나 다큐가 여럿 있어서 이제 정말 정점을 찍은 건가 싶었는데 올해에도 여전히 많아서 단순히 반짝 붐은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바다에 놀러가서 누구나 한번쯤 해 볼 수 있게 되면서, 한 번 해 본 사람은 많은데 그중에서 계속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졌어요. 서핑에 대한 문턱은 낮아졌지만, 여전히 서핑 한 번 하는 데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꾸준히 하고 싶은 마음은 먹고 있으나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팁을 주신다면요?
일단 재미를 붙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운동해야 하니까’라는 의무감이나 막연한 생각만으로는 사실 뭐든지 꾸준히 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다가 서핑은 파도도 있어야 하고 장비값도 내야하고 바다까지 가야하니, 진입 장벽이 만만치 않죠. 큰 재미를 느껴야 각종 진입 장벽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물론 서핑이 가진 매력은 이런 것들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들만큼 어마어마해요. 그래서 저는 일단 재미를 붙여야 ‘다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미가 없는데 굳이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일단 재미를 맛보면, 이걸 계속 느끼기 위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부터 찾아서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서핑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면 서핑의 다양한 매력을 느껴보는 것부터 권하고 싶어요.
책에 보면 함께 서핑 하는 친구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서핑이 좀 특이한 활동 같아요. 분명 바다에 들어가서 혼자 보드에 올라서 파도를 타는, 혼자 하는 운동인데, 혼자 가기는 뻘줌하기도 하고요, 혼자 하는 운동인데 작가님처럼 친구들이 많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서핑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서핑 하러 가면 어떤 분위기인지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혼자 가서 강습을 받았어요. 함께 강습을 받았던 분들과 친구까지 되진 못했지만 묘한 동질감을 느꼈어요. 어차피 모두 다 강사님을 엄마처럼 따르는 ‘걸음마 못하는 아기’ 같은 상태라는 동질감(‘나만 못하는 게 아니다’), 오늘 제대로 걷거나 뛰는 것까지는 절대 마스터할 수 없고 한 발자국이라도 떼 볼 수 있다면 다행이기 때문에 누가 더 잘하나 경쟁하기 보단 서로 응원해주게 되고요.
처음 가보는 바다에 혼자 서핑 하러 가면 새로운 학교에 전학 간 것처럼 낯설죠. 새 학교의 분위기는 어떤지, 아이들 사이에 어떤 룰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처음 가는 바다에서는 조심스러워져요. 하지만 자주 가다 보면 얼굴을 트게 되는 바다친구(바다에 가면 만나는 사람들)들이 생기고, 그중에 뭍으로 나와서도 관계가 이어지면서 친구가 되기도 하고요. 바다에서는 대부분 서로 피해주지 않으려고 하는 분위기고, 수다를 떨다가도 파도를 보는 것에 더 집중하곤 해요. 행복하자고 하는 서핑인데 서로 부딪혀서 다치게 되면 안 되잖아요. 친구들과 함께 타면 좋은 파도가 오거나 재밌게 탔을 때 같이 기뻐해주면서 혼자일 때보다는 더 많이 웃게 돼서 좋아요.
취미 권하는 사회예요. 원데이클래스, 취미 어플 등이 많아지고 있는데, 취미에 접근하는 방법은 손쉬워졌지만, 금방 다른 것으로 흥미를 옮기는 등 꾸준히 하는 것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하나의 취미를 꾸준히 하고 계시는 것인데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을 알고 싶어요.
서핑 할 때의 제 모습이 좋아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건 기본이고, 서핑을 할 때의 제가 스스로 마음에 들기 때문이랄까요. 살다 보면 나에게 만족하게 되는 일보다는 자책하게 되는 일이 많았는데, 서핑 할 때만큼은 내가 특별히 뭔가를 잘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따뜻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힘든 일이 있더라도 서핑을 하고 나면 힘이 많이 생겨요.
그리고 오늘 바다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 서핑에 질릴 틈을 안 주는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운전해서 가기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안 가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귀찮음을 이기고 갔을 때 너무 큰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걸 느끼고 나서 ‘가서 후회하더라도 안 가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가서 재밌게 못 탔더라도 간만큼 무언가는 얻을 수 있거든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이번 책에서 ‘서핑은 100단계가 있는데 2단계 정도에 있다’라고 하셨어요. 단계마다 맛볼 수 있는 매력도 다를 것 같아요. 그간 작가님은 몇 단계 올라간 것 같나요?
2단계라고 답했던 때가 1년 전이니 지금은 아마 3단계? 더 못 타게 되지 않았다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가끔 ‘내가 열심히 한만큼 조금 늘었나?’ 싶을 때는 예전이라면 못 잡았을 파도를 잡았을 때, 넘어지지 않고 좀 더 오래 탔을 때, 어설프지만 턴을 했을 때, 큰 파도에 말려도 의연하게 잘 탈출했을 때 등등……. 매순간 새로우니 매순간 매력적인 것 같아요.
서핑에도 많은 기술들이 있는데 기술들을 하나씩 착실하게 연습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기술을 하나하나씩 익혀 가면 단계가 올라갔다고 느낄 수 있겠죠? 그런데 서핑이란 게 어떤 기술을 한 번 성공했다고 해도 다음번 파도는 이번 파도와 다르기 때문에 또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라, 레벨업이 정말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레벨이 올라갔다고 느끼는 경우는 자주 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레벨업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냥 서핑 하는 순간을 즐기려고 해요. 못해도 재밌어요. 다른 서퍼들 구경하는 것도, 바다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매력을 찾으려면 끝도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지금까지는 기회만 생기면 발리에 가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주에서보다 더 재밌게 서핑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최근에 부모님이 제주도를 방문하셨는데 너무 반가웠어요. 제가 제주도로 이사 온 후 처음 오신 거였거든요. 그러고 나니 오래 관계 맺어 온 사람과 장소가 주는 편안함에서 너무 멀어지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서핑도 제 삶에서 매우 소중하지만, 서핑 말고도 제게는 많은 것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주도쯤에서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러 가기가 너무 힘들지 않은 곳에서요. 물론 새로운 곳에서 또 소중한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그곳에서도 삶은 이어지겠지만 지금 제게 제주도는 너무 새롭기만 하지도 너무 권태롭지도 않은 장소인 것 같아요. 물론 겨울이 되면 여름 나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 분명해요. 아마 발리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일단은 지금 살고 있는 제주가 점점 더 좋아지는 중입니다. 글쓰기, 서핑, 요가를 꾸준히 하면서 제주 생활을 즐기려고요.
* 김민주
타인의 삶에 중심을 두고 살았다. 그 중심을 자신에게 옮겨 오기 위해 충격 요법으로 시작한 서핑이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태어나고 자라고 벗어나 본 적 없는 서울을 떠나 제주에서 서핑하며 살고 있다. 늘 그랬듯 인생은 계획대로, 의지대로 흐르지 않겠지만, 고비나 변화를 맞이할 때마다 너무 많이 허우적거리거나 휘청거리지 않을 방법들을 몸에 익히고 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지금 서핑하는 삶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면서 미래를 단단하게 만드는 삶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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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파도에 몸을 실어, 서핑!김민주 저 | 팜파스
어떤 이유 때문이든, ‘나의 취미는 이것’이라고 당당해지고 싶은 소망이 늘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다면, Small Hobby Good Life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떠세요?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