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사진이 더 이상 날 흥분시키지 않아
어느 날, 폴 매카트니 경과 미국 어느 공연장 무대 뒤에서 전날 찍은 공연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평생 잊지 못할 한마디가 폴 경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글ㆍ사진 MJ KIM
201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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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경과의 인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폴 경과의 첫 촬영은 그의 고향인 리버풀 공연이었습니다. 그때는 평생 한 번밖에 없을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정신없이 무대와 스타디움 곳곳을 날아다니다시피 하며 한 컷이라도 더 찍기 위해 온몸을 내던졌습니다. 리허설 중 폴 경이 직접 연주하는 를 처음 들었을 땐 정말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찌릿한 전율과 흥분에 휩싸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열심히 뛴 열정이 통했는지, 리버풀에서 끝날 줄 알았던 폴 경과의 인연은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의 독립기념 공연으로 이어졌고, 2009년의 ‘굿 이브닝 유럽’ 투어에 이어 2010년 미국 투어에서도 포토그래퍼로 발탁되며 그와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평생 꿈도 꿔본 적 없었던 폴 매카트니 경의 투어 포토그래퍼가 된 것입니다. 그의 투어 팀에 합류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저는 공연 전 준비로 긴장감이 흐르는 백스테이지, 환상적인 공연이 펼쳐지는 화려한 무대 위, 새로운 음반을 만드는 활기찬 녹음실 등에서 살아 있는 전설의 일거수일투족을 한 프레임, 또 한 프레임 담아 나갔습니다.


하지만 언감생심 꿈도 꿔본 적 없던 일이어서였을까요? 투어를 거듭하는 동안 ‘내가 꿈꿔왔던 사진가의 일은 무엇이었지? 이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라는, 정말 복에 겨워 복을 걷어차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참 신기한 동물인 것 같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세상을 다 얻은 듯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흥분하고 감사했던 그 모든 긍정적인 감정들이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려가듯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과 질투가 나의 세상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최고의 아티스트와 최고의 작업을 하면서도 남의 떡에만 눈길을 빼앗기며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하던 어느 날, 폴 경과 미국 어느 공연장 무대 뒤 그의 방에 앉아 전날 찍은 공연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평생 잊지 못할 한마디가 폴 경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MJ, 너의 사진들이 더 이상 나를 흥분시키지 않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한번 생각해보겠니?”


그 순간 아주 굵은 식은땀 한 줄기가 나의 뒷목을 타고 흘러내리며,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현장을 딱 들켜버린 어린아이처럼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나를 믿고 맡겨준 폴 경을 배신했다는 좌절감, 내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것을 동경하며 내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그리고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날아갈 수 있다는 공포감까지. 제 눈꺼풀에 씌워졌던 흰 비늘이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사루만의 사악한 마법으로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불쌍한 로한 제국의 테오덴 왕처럼 벗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이때를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납니다. 그리고 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폴 경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회사로 치면 폴 경은 기업의 회장이고 전 홍보부 직원인 셈이죠. 제 사진이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굳이 저와 면담할 필요도 없이 매니저에게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사진가를 찾아보세요”라고 지시하면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사진가들 수천 명의 포트폴리오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삶을 향한, 일을 향한 제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만족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했던 일이 내 눈앞에서 사라질 뻔한 경험을 하고 나자,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사진은 다시 조금씩 발전하기 시작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 콘서트를 즐기러 오는 관객들을 대하는 매너도 좋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매일의 삶과 일에 대한 감사와 즐거움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폴 경과 함께한 시간이 11년째를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MJ KIM 저 | 북스톤
‘출발선부터 달라야 한다’며 고스펙을 강요하는 시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한발 한발 꾸준히 나아가 마침내 꿈을 찾은 MJ KIM의 이야기는 인생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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