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내가 전화를 하거든
그러니 강로사 작가님, 비오는 날, 제가 혹시 전화를 하거든 꼭 받아주시겠어요?
글ㆍ사진 조영주(소설가)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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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 201호의 비밀』의 작가 강로사는 개, 고슴도치, 햄스터 들과 함께 산다. 사진은 작가와 함께 사는 햄스터다.

 

 

2018년 4월, 대림동의 어느 건물에서 약 120마리의 햄스터가 발견됐다. 철거를 3일 앞두고 건물을 살펴보기 위해 이곳을 들렀던 건물주는 서랍장부터 시작해 박스, 세숫대야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살고 있는 햄스터를 목격하고 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아, 햄스터가 유기됐구나. 건물주는 이런 햄스터를 죽게 만들고 싶지 않아 SNS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작은 기적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햄스터 구조를 응원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속속 찾아와 건물을 청소하고 햄스터들에게 적당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는 한편, 전국 각지에서 선물이 도착했다. 그 덕에 햄스터들은 모두 구조될 수 있었다. (대림동 유기햄스터 트위터 공식 계정에서 자세한 경과를 확인할 수 있다: https://twitter.com/daerim_ham )

 

문제의 사건을 재구성한 동화가 출간됐다. 책의 제목은  『우당탕 201호의 비밀』  . 햄스터, 고슴도치, 개와 동거 중인 작가 강로사의 작품이다. 이 책에는 위기에 빠진 햄스터를 구조한 과정이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말들로 적혀 있다. 나 역시 단번에 읽었다. 읽고 나자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작년 언젠가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 날, 내가 한 동물을 만난 날도 비가 왔다. 집으로 가는 골목 어드메, 나보다 앞서 걸어가는 객이 있으니 흰 개였다. 흰 개는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몸을 더럽히다가 마침 보이는 빌라 입구로 다가갔다. 그대로 빌라 입구에 털썩 주저앉아 비를 그었다. 그때부터 내 고민이 시작되었다. 지금 이 개에게 우산을 줘야 할까, 혹은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할까. 개가 하필 빌라 입구에 앉았기에 시작된 고민이었다. 그건 저 개는 빌라에 사는 누군가가 풀어 키우는 개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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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 201호의 비밀』의 작가 강로사는 개, 고슴도치, 햄스터 들과 함께 산다. 사진은 작가와 함께 사는 햄스터다.

 

 

나는 남양주의 읍내 아파트에 산다. 내가 사는 읍은 워낙 좁아 걸어서 3분에서 5분이면 각종 관공서가 모두 나온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논과 비닐하우스다. 이중엔 거주형 비닐하우스도 많다.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개가 산다. 이 개들은 대부분 운신이 자유롭다. 언젠가는 차도를 따라 달리는 백구를 목격한 적도 있었다. 물론, 이 백구 역시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개였다. 이 날 만난 흰 개 역시 그런 개들 중 한 마리일 가능성이 있었다. 너무 멀리까지 산책을 왔다가 비가 와서 돌아가는 길을 잠시 잃었을 수도. 그래서 나는 망설였다. 내 고민을 눈치 챈 듯 흰 개는 나와 눈을 잠깐 마주치는가 하더니 그대로 엎드린 후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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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 201호의 비밀』의 작가 강로사는 개, 고슴도치, 햄스터 들과 함께 산다. 사진은 작가와 함께 사는 햄스터다.

 

 

결국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다가가지 못했다. 내 갈 길을 갔다.

 

이후,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했었다. 내 선택이 정말 옳았을까. 나는 잘못된 판단을 한 게 아니었을까. 이 책을 보자니 그 때의 일이 떠올라 잠시 괴로웠다. 역시 그 때 나는 손을 뻗어야 했다고 한참 자책하다가 심호흡을 깊게 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내가 도움을 청한 이는 눈앞의 동화였다. 몇 번이고 책 안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았다. 이번에도 그런 행운이 따를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또 운이 좋았다. 책은 어김없었다.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주인공 우린의 마음에 해답이 있었다.

 

‘어쩌면 곳곳에 숨어 있지 않을까? 나처럼 동물을, 햄스터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이.’ (98쪽)

 

나는 어떻게든 혼자 결론을 내리려고 했지만 책의 주인공 우린은 나와 달랐다. 홍보 일을 하는 엄마에게 솔직하게 사정을 털어놓고 햄스터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우린의 생각처럼 동물을 사랑하는, 햄스터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구출을 돕는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겠다고. 그래서 나는 상상한다. 비오는 날, 다시 개와 만난 나를, 일단 도움을 요청하는 나를, 가장 먼저 이 동화를 쓴 강로사 작가를 떠올린 나를.

 

그러니 강로사 작가님, 비오는 날, 제가 혹시 전화를 하거든 꼭 받아주시겠어요?


 

 

우당탕 201호의 비밀강로사 글/지우 그림 | 아르볼
크기나 가격에 관계없이 모든 동물이 생명을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햄스터를 주인공으로 세웠습니다. 햄스터 가족 중에서도 특히 작고 연약한 ‘막내’가 우린이를 만나 새 삶을 찾는 과정은 놀라움과 감동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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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 201호의 비밀 #강로사 작가 #전화 #햄스터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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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518

2019.08.27

햄스터를 한번에 그렇게 버릴 수 있을까요 여러 사람이 버린 건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서 다행이네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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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