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은 틀려먹었다
중세 애호가들이 ‘현명한 책’이라고 부를 만한 책이다. 하지만 나는 노터봄의 글에 담긴 지혜가 노련한 여행보다는 문학적 경험에서 우러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글ㆍ사진 알베르토 망구엘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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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소에서 돌아다니기: 세스 노터봄의 여행기

 

“그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슈베르트가 인용한 괴테를 세스 노터봄이 인용함


세스 노터봄의 이 책  『유목민의 호텔』  의 제목은 틀려먹었다. 세스 노터봄이 유목민이라는 암시를 조금이라도 담고 있다면 말이다. 유목민은 절대로 한곳에 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오히려 노터봄은 천 개의 장소에 한꺼번에 존재한다. 사실 노터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 편재성이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게 없는 듯한 전능함까지 합쳐서 노터봄이 모세의 신과 공유하는 자질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터봄은 여행작가라기보다는 여행 경험이 많은 작가에 가깝다.

 

로버트 루이 스티븐슨은 여행의 목적은 어디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여행 그 자체를 위해서 여행한다”고 그는 말했다. “대망의 용건은 움직임이다.”  『유목민 호텔』  을 읽지 않은 태가 역력하다. 이 근사한 ‘여행기’ 선집(이 부정확한 꼬리표를 피할 길이 없다)을 읽다 보면, 움직임 그 자체가 작가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확실해진다. 사실상, 『유목민 호텔』 은 움직임의 불가능에 관한 제노의 역설이 참이라는 경험적 증명이다. 그리스의 철학자가 한 유명한 말대로, A에서 Z까지 가려면 우리는 중간 지점인 L에 다다라야 하고, 그보다 먼저 중간지점 D에 다다라야 하고, 그렇게 계속 수렴된다. 노터봄의 주장은 제노보다 더 기운 빠진다. 노터봄의 지도법에 따르면 A에서 B로 가려면 먼저 접근불가의 장소처럼 보이는 Z를 발견해야 하고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C 도시의 쾌락이나 우리가 언젠가 방문할 수도(방문하지 않을 수도) 있는 W 마을의 약속을 찾아야 하고, 아니면 아예 전부 놓치고 다른, 아예 다른 장소에 도착할 수도 있다. (실제로 노터봄은 후자의 상황을 겪었다. 스페인령 사하라에 가려다가 감비아 오지에 도착했던 것이다.) 노터봄의 지도에는 길이 없다. 지점들이 있을 뿐이다. 그의 확대경을 통해서 보면, 무수한 작은 건물, 아주 작은 거주자들, 눈부시게 정교하고 작은 현현顯現처럼 감춰진 것을 드러나게 해주는 특정 사건들이 나타난다. 노터봄은 모든 독자를 릴리풋의 걸리버 대리로 만든다.

 

노터봄은 위대한 선조 이븐 알 아라비Ibn al-Arabi의 인용구로 책을 시작한다. 12세기에 존재를 바로 움직임으로 규정했던 장본인이다. “존재에는 부동성immobility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고귀한 여행가는 이렇게 썼다. “존재가 움직일 수 없다면 그 원천인 무無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정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도, 또 피안의 세계에서도.” 환상적인 언어적 반전을 통해, 이븐 알 아라비는 시간을 통과하는 우리의 무한한 움직임과 공간을 통과하는 실용적 움직임을 혼동한다. 평생 한 방안에 유폐되어 있다 해도, 인간은 흘러가는 해시계에 쓰인 글귀대로 한 시간 한 시간 흘러갈 때마다 상처를 입으며 기나긴 세월을 통과해 최후의 시각이 우리 죽음을 선포할 때까지 여행하는 형벌을 받은 죄수다. 그러나 이 지상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는 것은, 가만히 정지해 있는 순간들의 연속에 불과하다. 우리의 지리는 우리가 두 발로 밟고 서는 찰나에만 존재한다. 오, 이 버클리적인 공간의 관점을 노터봄의 글에 완고히 적용하라. 노터봄 자신이 첫 번째 글에 포함한 시의 말미에서 말하듯, “길은 멀리 있다A way is away.” 유추하자면, 장소는 멀리 있지 않고, 여기 있다는 말이다.

 

이런 장소의 꾸준함이 노터봄의 여행에 색조를 더한다. 예를 들어, 언제나 그곳에 있는 장소의 가장 웅장한 사례인 베니스는 처음 손을 뻗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곳을 알고 있다는 첫 인상을 주고, (노터봄의 말대로) 다시 찾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처음으로 베니스에 다가가고 싶다”는 날카로운 욕망을 일깨운다. 물론 이는 문학적 소망이다. 사랑하는 책의 펼친 적 없는 책장을 다시 한 번 처음으로 펼쳐 열고 싶다는 독자의 갈망이다. 실제로 노터봄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문학적 여행가다. 양말과 치약보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그의 짐을 더 많이 차지한다. 노터봄 자신처럼 기억 속의 책들과 사랑하는 작가들을 한 꾸러미 짊어지고 길을 떠났던 작가들이다.

 

『유목민 호텔』  은 중세 애호가들이 ‘현명한 책’이라고 부를 만한 책이다. 하지만 나는 노터봄의 글에 담긴 지혜가 노련한 여행보다는 문학적 경험에서 우러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오직 베니스만을 묘사하기 위한 ‘최상급의 복수형’(폴 모랑의 ‘베니스들’로는 충분치 않다는 말)을 요구한다든가, “즉시 떠나거나 아니면 일 년 더 머물든가 둘 중 하나라야만 하는 장소들이 있다. 그 사이로 어중간하게 머물면 변변찮은 글만 나온다”는 걸 안다든가, 그간 묵은 호텔의 객실 번호를 모두 더한 숫자에 자신의 운명과 성격에 대한 “암호화된 메시지가 담겨”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것. 풀을 “바보스러운 초록”이라고 부르고, 언어를 말하지 못하면 “아주 어린 아이, 개, 아니면 외국인이 된다. 이 셋은 남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까”라는 걸 알고, 만토바를 떠났다가 발길을 돌려 순전히 더 잘 보기 위해 맨발로 다시 그 도시에 입성할 만큼 강한 미학적 확신을 지녔다는 것―이 모두는 문학이 세계를 비추는 참된 거울이라고 믿는 사람의 몸짓이다. 세계에서 도피하고 등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두사와 대적하는 페르세우스처럼 그 힘에 압도되어 돌로 변하지 않기 위해서. 참된 여행자라면 누구나 세계의 현실이 세계의 현실을 보지 못하도록 미혹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최고의 여행서가 그렇듯이, 『유목민 호텔』   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노터봄이 다녀온 장소들이 내가 발견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늙고 생물의 위로를 너무 좋아하기에 방문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곳들이라 기뻤다. 감비아는 내가 가보지도 못할 장소 목록에 분명히 올라 있지만, 이제 노터봄 덕분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감비아에서 노터봄 덕분에 나는 누추한 호텔의 작은 침상에서 티불루스를 읽었고 히비스커스와 프랑지판이 즐비한 “가마처럼 뜨거운 거리”를 즐겼으며 (나는 15도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질색하는 사람이다.) 적도의 바다에서 헤엄을 쳤고 (왜 노터봄은 낯설고 위험한 물고기를 겁내지 않는가 자문하면서), “회색에 얼룩투성이인” 시트를 깔고 선실에서 잠을 잤으며, “누가 길디긴 손톱을 씹어 뜯는” 것처럼 아삭거리는 “어린아이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 소리에 잠을 깼고, 감비아에 있는 내 존재를 정당화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합리적 이유도 없이 감비아 대통령을 인터뷰하러 가서 퀴퀴한 관료주의적 건물 복도에서 기다렸다. 무엇보다, 나는 (노터봄의 묘사대로) “아프리카식 핀터” 부조리극에 배우로 고용되어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 악몽 같은 경험을 했다.

 

몇 년 전 노터봄이 아란 섬에 대해 쓴 글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세심하게 옮겨 적은 몇 마디로 끝을 맺는다. “우리 자신이야말로 하나밖에 없는 의미의 원천입니다. 적어도 우주의 이 작은 해변에서는 그렇지요. 우리가 굳이 돌멩이 하나하나에서, 모래알 하나하나에서 찾아내려 고집하는 비문碑文들은 우리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광대하고 너무 다성多聲적이고 현실과 공존하려는 기획으로 내쳐 달리다 뿔뿔이 흩어져버린 작품을 쓰고 있어서, 그 흩어진 구절들과 마주치더라도 우리 것인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유목민 호텔』 의 독자에게는, 아득한 곳 수많은 모래알과 돌멩이들의 오른쪽 구석에 이제 낙관이 찍혀 있다. 세스 노터봄이라는 낙관이.


 

 

유목민 호텔세스 노터봄 저/금경숙 역 | 뮤진트리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체험한 경험들은 작품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까지 발표한 아홉 권의 소설과 여러 권의 여행서에 다양한 주제로 담겨 있다. 떠돌이 인생은, 아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한 어떤 사람이 아닌지 가르쳐준 성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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