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와 워싱턴DC 변호사로 국제 업무를 주로 담당하던 이철재 저자가 처음 쓴 책은 클래식 음악에 관한 책이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공부해 음악 장학금으로 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클래식 공연 기획 일에 종사했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 를 썼다. 그때만 해도 그는 늘 버킷 리스트의 1번으로 올라 있던 ‘책을 출간하기’를 이뤘다는 것이 기쁠 뿐이었는데, 그 뒤로 두 권의 책을 더 출간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회는 계속 찾아와 2018년 『보통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영어책』 이라는 영어 이야기책을 펴냈고, 올해는 자신이 삼십년 가까이 살고 있는 뉴욕주의 이곳저곳을 둘러본 여행 에세이 『뉴욕 오디세이』 를 펴냈다. 기차 타고 혹은 운전하거나 걸어서 뉴욕의 업스테이트와 다운스테이트를 오가며 뉴욕의 사계절과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 나선 기록이다. 화려한 도시와 시골의 소박한 자연, 쓸쓸한 간이역과 바쁜 일상이 공존하는 뉴욕의 진짜 매력을, 고향 이타카를 찾아가는 율리시스의 여정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그를 만나 ‘이철재 작가님’이라고 부르면 책을 세 권이나 출간한 사람답지 않게 얼굴부터 붉히며 손사래를 친다. 그냥 ‘이철재 씨’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왜 작가라는 말에 얼굴까지 붉히며 겸연쩍어 하시나요?
『뉴욕 오디세이』 가 나오자 미국 친구 한 명이 저보고 “너 이제 작가구나”라고 해서 아니라고 했더니 “책을 세권이나 출간했는데 네가 작가가 아니면 뭐니?”라고 했습니다. 말문이 막히긴 하더군요. 그래서 “오케이 그럼 작가(Author)는 아니고 그냥 글 쓰는 사람(Writer)”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영어에서 Author나 Writer나 별 차이 없이 쓰는 말인데 제가 굳이 구별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또 “그 둘의 차이가 뭔데?” 하더군요. 또 말문이 막혔죠. “음, 나처럼 책을 세 권 출간하면 Writer는 되는 거고, Author는 헤밍웨이, 톨스토이, 토니 모리슨 같은 사람?” 하고 궁색한 대답을 했습니다. 어려서 습작은 많이 했지만 그걸 누구에게 보여준 적도 없고 심한 비평이나 거절로 낙담해 본 적도 없고, 어느 날 하늘이 내린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회가 찾아와 글을 쓰게 된 아주 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저를 작가라고 칭할 용기도 염치도 없는 거죠.
하늘이 내린 행운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한 가지 사건은 아니에요. 한국에서 로펌에 다닐 때 국내 유명 출판사 주간님이 저에게 미국에서 나온 신간의 어드밴스 카피를 주면서 읽고 어떤 내용인지 요약하고 출판 계약을 하는 것이 좋겠는지 독자의 입장에서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워낙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아직 출간도 되지 않은 어드밴스 카피를 읽는다는 즐거움에 열심히 읽고, 정성껏 서평을 써서 보내드렸어요. 결국 여러 사정으로 출판은 하지 않았지만 그걸 계기로 몇 권의 책을 더 리뷰해 드렸습니다. 그분이 나중에 독립을 해서 자신의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저에게 글을 써보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아마 그때 저의 독후감을 읽고 ‘글 꽤 쓴다. 가르쳐서 쓸 만하겠다’ 생각한 것이 아닌지 추측합니다.
조지 볼트의 사랑 이야기로 잘 알려진 볼트 캐슬. 천섬에 있는 건물 중 가장 호화로운 별장이다.
『뉴욕 오디세이』 는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습니까? 뉴욕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두 번째 책인 『보통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영어책』 이 나온 후 월간 <톱클래스>의 ‘덕후 시리즈’에 제 이야기가 나간 적이 있어요. 그때 저를 인터뷰했던 편집장님이 후에 <톱클래스>에서 제공하는 콘텐츠 플랫폼 ‘토프’에 글을 써보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주제는 저보고 정하라고 했는데 제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뉴욕주에 대해 쓰겠다고 했습니다. 편집장님이 흥미를 갖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책에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17개의 에세이를 더해 총 19편의 글이 들어갔습니다. ‘토프’에 나갈 때 너무 길어서 잘라낸 이야기들을 다시 이어 넣고, 거기에 새로 5개의 에세이를 더 써서 책을 완성한 거죠.
오래 전부터 뉴욕주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주변에 뉴욕을 다녀온 사람도 많고, 동경하는 사람도 많지만 ‘뉴욕’ 하면 떠오르는 것이 대부분 맨해튼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맨해튼은 뉴욕시의 다섯 개 자치구 중 하나이고, 뉴욕시는 뉴욕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많더군요. 이 기회에 뉴욕시와 뉴욕시 밖의 풍경들을 하나씩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업스테이트 뉴욕의 와인 농장 등 목가적인,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는 풍경을 많이 보여주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일정을 길게 잡아 한곳에 머물며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휴가를 꿈꾸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분들에게 좋은 안내서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뉴욕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특히 앨곤퀸 호텔의 원탁의 기사라든가, 오스위고의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던 작은 영웅들, 세계 오페라의 판도를 바꾼 소도시 오페라 축제,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으로 유명한 조지 볼트의 사랑 이야기 등 현지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뉴욕의 뒷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뉴욕 시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몇 년 살았고, 업스테이트 뉴욕에는 몇 십 년째 살고 있지만 사실 저는 자유의 여신상을 한 번도 가까이 가서 본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식당, 나이아가라 폭포, 자유의 여신상 등의 장소보다는 제가 책에 소개한 주변의 이야기들이 더 친근합니다. 모두 저의 30년 삶이 묻어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늘 다니던 곳들이고, 처음 가보는 곳도 늘 지나다니며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곳입니다. 뉴욕에 대해 책을 쓰겠다고 했을 때부터 머릿속에 ‘여기 가고 이런 이야기 하면 되겠다’ 하는 그림이 그려지더군요. 디테일한 부분들은 도서관, 박물관 등에 가서 자료를 찾아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이 맞는지 재차 확인하고 그곳 직원들에게 묻기도 하면서 조사해서 썼습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더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주 많습니다. 시트콤이라는 장르의 원조 격인 <왈가닥 루시>의 스타 루실 볼의 고향 제임스타운과 유리 산업의 본고장 코닝은 원고가 넘쳐서 쓰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자전거 타고 이리 운하를 따라 뉴욕주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횡단하는 것도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칠일 동안 자전거 타고 가며 훑으면 뭔가 글이 나오지 않을까요? 살아서 동쪽 끝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말이죠.
제목을 『뉴욕 오디세이』 라고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방인들의 도시 뉴욕에서 이방인 속의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저자의 심경을 대변한 건지요?
뉴욕에 오래 살다 보니 뉴욕에서 제가 이방인이란 느낌은 이제 그다지 없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고향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점점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책에도 소개한 탁카낙 폭포의 사진을 찍으러 이타카시로 운전을 하고 가면서 문득 내가 글을 쓰는 이 여정이 오디세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율리시스는 트로이가 멸망하고 십년간 떠돌다 겨우 고향 이타카로 돌아갑니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신문이 율리시스가 십 년간 떠돌던 여정을 지도에 표시해서 실은 적이 있습니다. 트로이에서 바로 눈앞에 고향을 두고 온 세계를 떠돌며 죽은 사람의 혼령도 만나고, 사이렌의 유혹으로 죽을 고비도 넘기고, 한곳에 머물러 정착하고 살 유혹도 생기지만, 십 년간 그의 가슴속에 떠나지 않았던 것은 고향 이타카였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일년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제 한국보다 뉴욕이 더 편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을 가도 결국 그곳에서, 잊었던 나의 어린 시절, 나의 가족, 나의 고향 이야기가 되살아 나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율리시스처럼 저도 삼십 년간 뉴욕에 살면서도 내 고향 서울, 내 가족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맨해튼의 유서 깊은 호텔 앨곤퀸의 ‘원탁의 기사들’. 이 호텔에는 유기 고양이 햄릿 7세가 손님을 맞는다.
일정을 길게 잡아 뉴욕에 가서 살아보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었으면 한다고 하셨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언제 뉴욕 여행을 가장 권하시겠습니까?
일년 살며 다 겪어보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을 하고 싶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많이 힘들겠지요? 그래도 요즘은 직장 다니다 일년 정도 어학연수 오는 분들도 더러 계시더군요. 비교적 작은 동네의 학교로 찾아가 어학연수를 하면서 사계절을 다 겪어보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별로 없는 작은 동네에서 일년 살면 영어도 더 빨리 늘 겁니다. 한 달 정도 계신다면 제 책을 읽고 제일 끌리는 계절에 오면 되지 않을까요? 책을 만들다 보니 편집자 등 몇몇이 저의 글을 읽었는데 어느 계절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것이 제각각 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가을에 허드슨 밸리에 가서 단풍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고, 어떤 분은 겨울에 눈 쌓인 광경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각자 마음에 드는 계절에 찾아와서 한 곳에 오래 머물며 갔던 식당에 다시 가고 그러다 바텐더와 친구가 되고, 식당을 찾는 단골손님들과 인사하는 사이가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 일상에 복귀한 뒤에 ‘나도 뉴욕 사는 사람처럼 살아 봤다’라는 추억이 생길 겁니다. 단 업스테이트 뉴욕에 한 달 정도 체류하는 분들은 한겨울에 와서 한 달 살다 가는 건 좀 벅차지 않을까 합니다. 일년 정도 살며 사계절을 다 경험해 본다면 모르겠지만요. 눈이 보통 상상하는 것과 다른 수준으로 내립니다. 많이 춥기도 하고요.
에필로그를 보니 글을 처음 쓸 때부터 구체적인 구상을 가지고 순서대로 써 나간 것 같던데요.
구상은 글쓰기 전에 이미 구체적으로 했습니다. 책에 썼다시피 ‘시간의 얽힌 타래를 뉴욕의 사계절에 풀어내자’는 것이었죠. 어디어디를 둘러보겠다는 리스트도 미리 대충 만들고 시작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겨울에 눈이 크게 내렸을 때인데 계절 변하는 대로 따라가며 썼으니까 순서대로 썼다고 할 수 있죠. 제가 사는 센트럴 뉴욕은 겨울에 언제 폭설이 내릴지 몰라서 미리 계획을 세워 여행을 가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겨울 동안 내 주변의 이야기, 가령 제가 자주 가는 웨그만즈 슈퍼마켓 이야기 등을 쓰고 봄이 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으로 순서를 짰습니다.
단풍 기차를 타고 떠난 애디론댁 산맥의 가을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남았으면 좋겠는지요?
한 번 읽고 중고시장에 내다 파는 책이 아니라 책꽂이에 오래 간직하고 싶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문득 책을 들춰 허드슨 밸리의 토마스 콜의 집을 방문한 이야기를 읽고 책꽂이에 꽂아 놓고, 또 한참 지나 다시 꺼내 맨해튼 이야기 읽고 다시 꽂아놓고 생각날 때마다 손 가는 대로 다시 찾아 읽는 책, 누가 주변에서 뉴욕 여행 간다고 하면 “이 책 한 번 읽고 가”라고 할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저기 실용 생활영어 표현들을 많이 적어 놓았으니까 소장하고 계시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겁니다. 즐겁게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 이철재
미국 변호사. 서울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도미하여 텍사스주 샘 휴스턴 주립대학교(Sam Houston State University)와 뉴욕 포담 대학교(Fordham University)에서 각각 사회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시라큐스 대학교(Syracuse University) 법대에서 법학박사(JD) 학위를 취득해 뉴욕주와 워싱턴DC 변호사가 되었다. 유창한 영어 실력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음악 기획 일에 종사하며 세계적 연주자들의 공연을 국내에 유치했고, 현재는 뉴욕주와 국내를 오가며 변호사로서 주로 국제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2012년에는 틈틈이 쓴 클래식 음악 에세이『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를 출간했고, 2018년 영어권 문화와 역사로 익히는 이야기 영어 공부법 『보통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영어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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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오디세이이철재 저 | 이랑
뉴욕에 30년째 살고 있는 저자가 기차 타고 혹은 운전하거나 걸어서 뉴욕의 업스테이트와 다운스테이트를 오가며 뉴욕의 사계절과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 나선 기록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뉴욕의 역사와 길 이름, 음식의 유래, 아름다운 자연과 소박한 일상이 펼쳐진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chkim345
2020.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