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올리비아 로젠탈 작가의 글을 읽기 전에 그가 먼저 내 글을 읽었다. 올리비아 로젠탈이 등단한 지 20년이 넘었고 그동안 10여 권의 책을 내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프랑스의 유명 작가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 사실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나는 그를 파리 8대학에 몇 년 전에 개설된 문예창작과에서 처음 만났고 1년 동안 그가 진행하는 글쓰기 아틀리에에 참가했다. 즉 그는 나의 글쓰기 선생님이었던 셈이다. 이 아틀리에는 이삼 주에 한 번씩 만나 학생들이 각각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논평을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나는 이 시간 동안 그에게 무척이나 반하고 말았는데 그는 학생들이 쓰는 글의 주제가 무엇이 되었든, 어떤 문체를 가졌든, 혹은 어떻게 내용이 전개되든에 상관없이 항상 흥미로운 의견을 내놓았다. 그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서 학생들의 것보다 더 반짝거렸고, 글을 읽는 방식이 매우 예리하고 정곡을 찌르는 데다가 창의적이기까지 해서, 나는 아틀리에가 끝나고 나면 항상 영감과 자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글을 잘 이해하고 잘 읽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떤 글을 쓸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얼핏 들으면 아웃도어 스포츠의 안내서 제목 같은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그의 책이다. 책은 크게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각 장마다 배경과 시기가 다른 데다 작가가 인터뷰한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이 교차하여 있어서, 전통적인 스토리텔링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많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쉽게 손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말이다.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수록 강렬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것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다섯 장에 걸쳐 ‘비연대기’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감히 재구성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화자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죽었다. 자살이었다. 화자의 부모는 언니의 시신을 확인하러 가면서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화자를 혼자 집에 남겨두었다. 화자에게는 언니의 죽음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이후, 화자는 성인이 되어 파리에 있는 대학을 가기 위해 집을 나온다. 파리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지만, 이 친구들은 화자가 무엇인가 숨기고 있고, 이 불평등한 소통을 지속하기엔 불가능하다며 화자를 떠난다. 책의 마지막 장 <귀환>에서 화자는 그녀가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그때야 죽음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죽음으로부터의 <도주>를 꿈꿨던 화자는 결국 죽음 앞으로 다시 들어와 그것을 바라봄으로써 죽은 이로부터, 그 상실로부터, 그리고 그것이 남겼던 죄책감과 분노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진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이렇게 자명한 이치가 또 있을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죽음이라는 소재는 아직도 낯설고, 금기시되거나 혹은 항상 비슷한 방식으로 묘사된다. 많은 문학 작품 속에서 죽음은 끝의 동의어다. 얼마나 많은 작품이 죽음으로 끝을 맺던가. 얼마나 많은 작품에서 등장인물을 사라지게 하고 싶을 때 죽음을 선택하는가? 얼마나 많은 죽음이 비극적이고 슬픈 것으로만 그려지는가 ?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삶과 죽음 사이에는 극명한 선이 그어져 있을까? 그리고 세상에는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것만이 가능할까? 그리고 죽음은 정말 비극적이고 슬프기만 한 것일까 ?
올리비아 로젠탈은 임사체험, 즉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죽음을 마주하는 이러한 일반적인 방향에 의문을 던진다. 책에서 익명 혹은 가명으로 등장하는 임사체험 체험자 중 몇몇은 살아있는 자들이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조금은 충격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들이 체험한 죽음이 사실은 매우 아늑하고, 기분이 좋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의료진의 개입으로 다시 살아났을 때 그들은 오히려 이 경험이 중단되었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났고, 방해받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에 더해 마지막 장에서는 죽음이 자연적인 과정이고, 시신은 자연 속에 거주하는 동물 및 미생물들에게 필요한 식량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는,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자연의 입장에서의 죽음에 관해 설명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이러한 다양한 시선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은 올리비아 로젠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은 그의 경험이 빚어낸 죽음과 애도에 대한 가이드다. 그에게 쓴다는 행위는 단지 문학적인 행위가 아니라, 삶을, 죽음이 깃든 그의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다. 간결하고 시적인 문장으로 쓰인 이 모험기에서 올리비아 로젠탈은 슬프고 무섭지만, 동시에 용감하고 진실한 생존기를 들려준다.
나는 2019년 여름 베를린에서 이 책을 번역했다. 창밖으로는 여름 햇살이 눈 부셨는데, 내가 일하고 있던 방은 어쩐지 서늘했다. 밤에는 자주 꿈을 꿨다. 누군가가 계속 돌아오는 꿈. 그 누군가에게 나는 미안하다고 말할 때도 있었고, 화를 낼 때도 있었고, 그저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은 결코 쉽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시선은 집요하고 가끔은 너무 거리를 두는 나머지 충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용기를 보았다. 어둠 속에 있지만 더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용기. 어둠 속에서도 눈을 뜨고 바라보려고 하는 용기. 마음이 깜깜해진 사람들에게 이 책에 그려진 아름다움과 용기가 씨앗만한 불씨를 지펴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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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올리비아 로젠탈 저/한국화 역 | 알마
다섯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된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동시의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는데, 마치 한 조각씩 세심히 맞춰나가야 하는 미스터리하고 위협적인 퍼즐과 같다.
한국화(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