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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북크루에서 만드는 에세이 구독 서비스 <책장 위 고양이>에서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에세이를 격주 월요일, <채널예스>에서 소개합니다. <책장 위 고양이>는 7명의 작가들이 돌아가며 1편의 에세이를 매일 배달하는 구독 서비스입니다. https://www.bookcrew.net/shelley
다만, 꿈을 꾸었다.
“글 씁니다.”
“어머! 작가예요?”
“아직은 아니에요.”
“아….”
주로 이런 식이었다. 뭐 하는 사람인지 묻지나 말든가. 대놓고 말문 막히지나 말든가. 아…,로 끝나는 대답은 언제나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십 대에는 그나마 반응이 괜찮았다. 백 퍼센트 허망하게 느껴지는 꿈일지라도 그럴만한 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열심히 해봐, 까지는 들어본 것 같다. 삼십 대가 되어도 꿈을 놓지 못하는 나를 사람들은 한심하게 보기 시작했다. 소설가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는 둥, 지금까지 안 됐으면 안 되는 거라는 둥, 기타 둥둥둥. 내가 발끈할 수 없었던 이유는, 비참하게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심지어 생업도 놓은 채 사타구니에 욕창이 생기도록 글만 썼던 삼십 대 후반에는 나 자신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들은 단 한 번도 내가 무슨 글을 쓰는지 묻지 않았다. 당연히 내 글을 읽어보지도 않았다. 출근하지 않는 날엔 밥도 먹지 않고 방에만 처박혀 있는 나를 엄마는 가끔 걱정했고, 걱정하는 엄마의 문장은 언제나 시크했다. 니 속엔 돌뗑이가 들어차 있냐! 나와서 밥 먹으라는 뜻이었다. 나가면 밥만 먹일 게 아니었다. 내 꿈과 열정을 비하하는 단어들도 쌀밥 위에 곁들여 먹일 게 분명했으므로, 가족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혼자 밥을 먹곤 했다. 그렇게 나는 안팎으로 한숨만 부르는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가수가 꿈이었다면 목이 쉴 때까지 노래라도 불렀을 텐데, 요리사가 꿈이었다면 맛있는 냄새라도 풍겼을 텐데, 개그우먼이 꿈이었다면 사람들을 웃겨주었을 텐데, 내가 내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건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야 하는 일이었고, 나는 분명 최선을 다했다.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내 꿈을 지지해 주었다면 얼마나 든든했을까. 사람이 그쯤 독하게 앉아있으면 도대체 뭘 쓰는지 궁금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쓴 글을 읽어라도 보고 무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 미래가 마치 정해져 있는 것처럼 내 꿈을 무시해버렸고 나는 그런 취급을 받을수록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포기해 버리면 무시당했던 말들과 서러웠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상처로만 남을 터였다. 생업을 놓고 본격적으로 글만 쓰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집에만 있는 나를 궁금해했고 나는 나를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백수예요.”
“아…”
이러나저러나 사람들은 내 대답에 말문이 막혔지만, 나는 그런 반응에 익숙해져 갔다. 무시, 비아냥, 동정, 비난 등을 견디는 힘은 글에서 나왔다. 꿈이 글이고 글이 꿈이었으니 참 다행이었다.
비로소, 정말이지 비로소, 등단이라는 빌어먹을 관문을 통과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이 했던 말을 까맣게 잊은 채 태도를 바꾸었다. 첫 출간을 하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는 십 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의 톡이 날아들었다. 한때 내 삶을 비난했던 그들의 톡을 나는 가볍게 읽씹했고 뭔가 희열을 느꼈다. 그 뒤로 조금씩 복수를 하고 있다. 나를 무시했던 자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켜 죽이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복수를 다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열심히 소설을 쓴다. 지금처럼 등단한 무명작가로 얼마나 오래 머물지 모르겠지만, 괜찮다. 나는 언제나 계단 두 개씩은 오르지 못했으니까.
애초에 신데렐라가 될 팔자는 아니었다. 그나마 잘하는 과목이 국어인 만큼 주제 파악은 잘하고 살았기에 나는 난쟁이부터 시작해야 했다. 난쟁이1은 작은 백일장에서 입선했고, 난쟁이2는 지역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난쟁이5는 우수상을 받았고, 난쟁이7은 금상을 받았다. 상금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고 모두 등단과는 거리가 먼 대회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 상들이 자랑스럽다. 단번에 신데렐라가 되어 문단을 놀라게 하지는 못했지만 쉬지 않고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작가가 되었다. 아주아주 천천히.
백상예술대상 축하공연을 보면서 목이 쉬도록 울었던 기억이 난다. ‘꿈을 꾼다’라는 노래를 한 소절씩 부르면서 무대 위로 배우들이 한 명씩 등장한다. 한 사람이 나올 때마다 화면에는 그들을 소개하는 자막이 나왔다. 손님3 역, 스텝1 역, 피자 배달원 역, 정신병원 간호사2 역…. 그 작은 역할이 그들에겐 얼마나 소중했을지 나는 알겠고, 그들이 딛고 선 자리가 얼마나 좁고 흔들리는지도 너무 알겠어서, 나는 내내 울었다. 쉽사리 멈추지 않을 그들과 나의 꿈은 절대 가난하지 않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한 걸음씩 꿈을 꾼다.
출간 준비로 밤을 새운 다음 날, 쓰레빠를 끌고 단골 편의점에 갔더니 여자 점주가 물었다.
“실례지만 무슨 일 하세요?”
반가운 질문이었고,
“소설가입니다.”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
아…, 가 아니라 아!
“이제 와 말인데, 지금까지 술집 여자인 줄 알았어요.”
나는 아주 배포 큰 사람처럼 껄껄 웃어주었다. 아! 라고 해준 보답으로.
<이은정 작가의 말>
장편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장편 소설의 좋은 점은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등장시킬 수 있다는 거예요. 한방에 복수할 수 있다는 얘기죠. 물론 편의점도 나오고 점주도 나옵니다. 점주는 여자고요! 죽이기는 그렇고 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번 주제 <언젠가, 작가>를 쓰면서 오랜만에 울었습니다. 글 쓰면서 우는 게 오랜만이네요. 내친김에 백상예술대상 축하공연을 다시 찾아보고 또 울었습니다. 때론 지나가는 당신의 한 마디로 누군가 꿈을 꿀 수도 있고, 꾸던 꿈을 버릴 수도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걷는 그 길을 응원합니다.
<독자들 반응 - 북크루 게시판에 올라온 글>
해와오늘
은정 작가님의 글이 마음을 울리네요. 아~~이 한 음절의 말속에 담긴 의미를 수도없이 읽어야만 했던 작가님을 그 마음을 생각하게 하네요~이제는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되었겠죠. 복수를 위해 소설을 쓴다고 하니 응원하는 마음이 솟네요~달콤한 통쾌한 복수!!!아! 감탄스럽군요.
빨간구두
따라 울었습니다. 소설가 (술집 여자 아니고 :) 이은정 님을 응원합니다. 통쾌한 복수 쭉 즐겨주세요.
감기목살
첫 주 <언젠가 고양이>에서도 이은정 작가님의 글이 유독 마음에 와닿았는데, (그 문체가, 그 서타일이) 이번주 언젠가 작가에서도 (아직 남은 작가님들이 있지만) 이은정 작가님의 글이 깊게 와닿습니다. 마치 웹툰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리는 바를 향해 힘겹게 한 틈이라도 비집고, 나아가고 싶은 제 마음이 비쳐서 였을까요. 귀하고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우렁각시
이은정 작가님의 글에는 언제나 문장들이 살아 숨쉬는 것 같아 좋습니다. 소설을 준비하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할 소심한 복수마저 사랑스러운 은정 작가님을 응원합니다.
시안
모처럼 많이 울었어요.그저 같이 울었어요. 핸드폰 케이스에 캘리그라피로 써 넣은 문구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이 있는 자리 그곳이 나의 빛나는 계절'. 저는 이걸로 버텨요. 이은정 작가님 랑사!
이은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