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노동, 여성에 대한 확고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금의 여성 청년이 처한 현실을 단정하고 산뜻하게 그려낼 줄 아는 신인 작가 조우리의 첫 소설집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이 출간되었다. “담담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 놀라울 정도로 매끄러운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한 단편소설 「개 다섯 마리의 밤」을 포함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쓰인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은 한 명의 신예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뭉클한 독서 경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변화가 사회의 모서리에 위치한 여성 인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여성 현실에 밀착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반가운 젊은 작가의 탄생을 우리에게 알려온다.
책 표지의 느낌이 굉장히 재미있고 독특합니다. 작품 제목이 ‘ghosts’인데 두 명의 여자 중 한 명은 신발을 신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발이 보이지 않아요. 처음 표지를 보셨을 때 느낌이 어떤지 궁금해요.
권서영 작가님의 작품들을 좋아해서 SNS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었는데,
이번 소설집에는 ‘일하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지요. 빵집, 물류회사, 박물관, 백화점 등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기도 하고 직업에 대한 묘사가 무척 생생하게 다가왔어요. 혹시 따로 취재를 한 경우도 있을까요?
일하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특히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더 시선이 가요. 그들이 겪는 사건들은 ‘삶’과 ‘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에서 소설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물물교환」과 「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의 ‘여자’와 ‘엄마(명숙)’가 일용직노동자로서 겪는 일들은 저희 엄마에게서 들은 이야기에서 빌려왔고, 「블랙 제로」는 동생의 친구가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밥도 잘 못 먹고 다리가 매일 퉁퉁 붓는다는 말을 듣고 떠올렸어요. 「미션」의 ‘미경’과 ‘수아’의 직업에 관련된 디테일들은 업계에 종사하는 친구들에게 물었고요. 스무 살 이후로 줄곧 여러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을 했던 제 경험도 많이 녹아 있어요.
앞의 질문과 이어지는 것이기도 한데요, 소설 속 인물들은 위태로운 노동환경에 처해 있지요. 그런 만큼 언제든 그 밖으로 튕겨 나올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럼에도 소설의 전체적인 톤이 그리 절망적이지 않아요. 정세랑 작가님이 이번 소설집에 대해 ‘숨쉬기가 편안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내면서도 쉽게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한발 더 밀고 나가는 힘이 느껴지는데,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소설이 끝나는 지점이 진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었죠. 이야기로서 완결되는 어떤 미학을 위해서라면 써내야만 하는 끝도 있다고요. 그런데 그렇게 쓰는 게 스스로를 괴롭게 했어요. 잔인한 마지막 장면 속에 인물을 내버려두고 나만 빠져나오는 느낌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살다가 화나는 일, 슬픈 일, 비참한 일을 겪더라도 삶이 계속 흘러가는 것처럼 소설 속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끝났다고 하더라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럴 거라고 믿는 게 제가 소설을 쓰면서 갖는 희망이에요.
소설집 맨 처음에 실린 「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에는 이주여성 천금자가 등장하는데요, 그 캐릭터가 독특합니다. 우리가 흔히 이주여성을 생각할 때 관습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들이 천금자라는 인물을 보면서 부서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요, 천금자라는 인물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앞서 살짝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의 ‘엄마(명숙)’의 이야기는 저희 엄마가 중국 출신의 친구에게서 얻어온 젠빙을 함께 뜯어 먹다가 시작되었어요. 엄마 친구에 대해 이것저것 묻다가 엄마의 답변이 계속 예상을 벗어나는 걸 보고 제가 편견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건 엄마의 성격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엄마의 목소리로 엄마 친구들 얘기를 듣다보면 관습적인 이미지들이나 전형적인 사고들이 깨지는 걸 자주 느껴요. 저희 엄마는 제 소설 보면 “그렇게 심각한 얘기 아닌데 왜 이렇게 쓰냐. 사기꾼이냐”고 하실 때도 있어요. 엄마는 너무 심각하게 빠져들지 말라고 하거든요. 뭐든지 ‘알고 보면 그렇게까지는 아니다’라는 식인데, 소설을 쓰다보면 그런 관점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비장하게만 생각하진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 같은 것이요. 천금자라는 인물도 ‘이주여성’이라는 단어에 빠져서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직접 끝을 내본 사람이 다시 새로운 선택을 한다’는 상황에 대해 더 생각했어요.
「미션」이라는 소설에는 상사에게 폭력적인 대우를 받던 인물이 그 상사의 비리를 고발하려고 결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인물에게 그녀의 친구는 “네 얘기는 하지 마. 너를 지켜야지”라고 말하는데요, 만약 작가님이라면 그 인물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어렵네요. 어떤 말을 감히, 차마,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일단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고 해야겠죠. 그리고 “네가 생각했던 대로 풀리지 않아서 힘들어지면 꼭 이야기해줘”라고 할 것 같아요. “내가 필요하면 꼭 연락해”라고.
등단작인 「개 다섯 마리의 밤」에 이런 문장이 나오지요.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은 아주 추운 밤이면 키우는 개를 살아 있는 담요로 삼아 곁에 두었다고 해요. 개가 다섯 마리나 있어야 버틸 수 있는 밤은 얼마나 추웠을까요. 그래도 다섯 마리의 개들과 함께 지낸 밤은 얼마나 따뜻했을까요.” 작가님에게 있어 ‘몹시 추운 밤’을 견디게 하는 ‘개 다섯 마리’와 같은 존재는 무엇일까요?
작가로서 ‘몹시 추운 밤’을 견디게 해주었던 온기는 누군가 내 소설을 ‘읽는다’는 믿음이었어요. 누군가는 읽는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읽는다. 그게 나 자신뿐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최근에는 동료들이 같이 ‘쓰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함께, 쓰고 있다는 사실이 서로를 지킬 거라고 믿어요.
첫 경장편소설인 『라스트 러브』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콘서트를 앞둔 걸 그룹의 이야기를 ‘팬픽’ 형식과 함께 풀어내셨고, 이번 소설집을 통해서는 ‘사랑하고 일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양한 직업을 배경으로 그려내셨는 데요,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어떤지 듣고 싶습니다.
요즘 자기 소개를 할 일이 있으면 이렇게 말하곤 해요. “내가 읽고 싶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고요. 지금까지 쓴 ‘무대 위를 선택한 여성들의 이야기’,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사랑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 모두 제가 읽고 싶었던 소설들이었어요. 앞으로도 제가 읽고 싶은 소설을 쓰려고 해요.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에요. 이렇게 긴 이야기를 쓰는 건 처음이라 두렵고 설렙니다. 언제나 소설을 쓰기 전엔 두렵고 설레는데, 그 마음이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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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