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원 칼럼] ‘죽여 마땅한’은 성립 가능한가? (Feat. PULP – This is hardcore)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우연한 계기로 남녀가 공항에서 만나 살인을 모의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글ㆍ사진 윤덕원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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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가끔은 내용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 없이 제목에 이끌려 책을 고르게 된다. 최근에 전자책으로 독서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그렇게 되었다. 목록에서 볼 수 없거나 상대적으로 작게 드러나는 표지 디자인, 판형, 재질이나 색 등을 제외하고 나면 제목과 저자 정도만 남는데, 평소에 관심이 있는 저자의 책이나 유명 저자의 책이 아니라면 디지털 기기로 책을 고를 때 제목이 관여하는 정도는 앞으로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이미 플랫폼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웹소설 제목은 그래서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자신을 설명하기도 한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나의 눈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만렙 검사에서 회귀했더니 네크로멘서라구요?> 같은 웹소설의 제목을 보면 이 이야기가 원래 검사였던 주인공이 무엇인가 사연이 있어 전생을 했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직업/종족으로 되돌아와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경우 이야기를 짐작케 하는 요소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을 선호하는 편이다. 생경하고 강렬한 단어로 만들어진 제목이나 완결된 문장으로 된 제목보다는 ‘OO 한 XX’ 의 형태를 좋아하는데, 수식어와 명사가 만났을 때 생기는 특유의 긴장감이 있기 때문이다. 피터 스완슨의 스릴러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경우도 그랬다. ‘죽여 마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죽여 마땅한’ 이라는 형용사가 애초에 성립 가능한 말일까? 이 이야기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할까? 이상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죽여 마땅할 사람이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에게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사적 복수와 정의 구현에 대한 (조금 비틀린 구석이 있지만 온전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닌) 욕구가 있지 않겠는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우연한 계기로 남녀가 공항에서 만나 살인을 모의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아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업가 테드와 사실 사람을 몇 번이나 죽여 본 적이 있는 사서 릴리는 테드의 아내인 미란다를 죽이기로 공모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는데... 이야기는 두 사람의 시점을 오가며 긴장감 넘치게 진행되고, 이후에는 미란다의 시점 그리고 릴리를 쫓는 형사 킴블의 시점까지 더해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묘한 여운이 남는데, 아마도 릴리의 말에 공감해서 그와 심리적으로 공모하게 된 독자와 그렇지 않은 독자는 생각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릴리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난 살인이 사람들말처럼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썩은 사과 몇 개를 신의 의도보다 미리 추려낸다고 해서 달라질게 뭔가요?” 아쉽게도 책에서 이 질문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그는 살인 후에 흔적을 감추기보다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많은 시간을 썼을 것이고, 이 소설의 장르는 스릴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처음에 제목을 보고 기대했던 질문의 답은 얻지 못했지만, 한편의 소설을 읽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절반은 성공한 것 같다.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흡입력 있게 이끌어 나가는 이 책에 어울리는 노래로 추천하고 싶은 곡은 밴드 PULP 의 ‘This is hardcore’ 다. 음악만으로도 한편의 스릴러/느와르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곡이지만,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기를 추천한다. 불 꺼진 방에서, 밖에 천둥이 치고 있다면 더욱 잘 어울릴 것이다. 



[예스리커버] 죽여 마땅한 사람들
[예스리커버]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저 | 노진선 역
푸른숲
Pulp - This Is Hard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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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

뮤지션. 인디계의 국민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1대 리더. 브로콜리너마저의 모든 곡과 가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