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을 하며 자주 들었던 말은 “네가 좋아서 하는 일에 왜 자꾸 돈 얘기를 하냐.”였다. 내가 지금까지 해 왔고 앞으로도 할 일들은 돈을 벌어 먹고살게 하는 내 ‘직업’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어떨 때는 창작 활동보다 증명 활동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것 같다. 유·무형의 창작물을 만들고 파는 것이 내 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예술가, 작가, 아티스트, 이야기 제조업자 등의 이름을 하나씩 실험해 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자기소개를 할 때 ‘자영업자’ 혹은 ‘제조업자’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랑 작가의 에세이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작가 이랑 편>
오늘 모신 분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분입니다. 영화, 음악, 웹드라마, 그림, 글 등 많은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분이죠. 작가, 페미니스트, 선생님, 준이치 엄마, 예술 노동자, 자영업자... 이 분을 수식하는 말들이 참 많은데요. 사실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랑’. 이랑 작가님 모셨습니다.
김하나 : 책 프로필의 첫 마디가 “한 가지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어요. 지난 번 책에도 그렇게 시작을 했었고요.
이랑 : 맞습니다.
김하나 : 여전히 그런 말을 많이 들으시나요?
이랑 : 너무 많이 듣죠.
김하나 :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으시나요?
이랑 : 사실 저도 한 가지만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서 글을 쓰는 거죠.
김하나 : 제가 작가님의 책을 연이어 읽으면서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건 한 가지인데 그걸 해야 되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하시는데 ‘그닥... 돈을 많이 벌고 싶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웃음).
이랑 : 그 이야기는 <영혼의 노숙자(영노자)>의 셀럽맷 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거든요(웃음). ‘하는 이야기 들어 보면 결국 돈 못 벌 만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김하나 : <영노자>에서 ‘미가동’ 상태이신 것에 대해서 들었는데요. 미가동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하고 지나갈까요?
이랑 : 아까 이야기해주신 수식어 중에 한 가지 빠진 게 있잖아요. ‘금융예술인’. 제가 올해 3월부터 보험을 열심히 공부해서 5월에 자격증을 땄습니다.
김하나 : 보험설계사 자격증인 거죠?
이랑 : 네, 맞습니다.
김하나 : 대단해요. 게다가 점수도 아주 좋았다고요.
이랑 : 회사 내 1등이었죠. 제가 시험을 패스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보험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공부를 한 거라서, 알아야 되는 내용을 다 이해가 될 때까지 공부했기 때문에.
김하나 : 그래서 성적은 좋게 들어갔지만...
이랑 : 막상 회사에서는 실적만 우선하는 주위라서, 제 목표와 조금 상반되는 회사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저를 ‘미가동’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실적이 없는 상태를 미가동이라고 부르던데, 제가 그 단어를 35년 인생에서 처음 들었어요.
김하나 : 사람한테는 잘 안 쓰는 표현이죠.
이랑 : 그러니까요. 저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화가 나서 ‘제가 무슨 보험 파는 로봇입니까’ 하면서... 그냥 보험을 많이 팔려고 일을 시작한 건 아니니까요. 알고 싶어서 시작을 한 거니까 미가동 돼서 잘려도 할 말은 없지만, 미가동이라고 하는 게 너무 짜증이 나더라고요.
김하나 : 그리고 <영노자>에서 분통을 터트리며 그런 말을 하셨죠. ‘내 인생은 열일곱부터 지금까지 풀가동인데, 미가동이라니...’
이랑 : 맞아요(웃음).
김하나 :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라는 책을 보면, 표지에 돈이 막 날리고 있고 손에 통장을 들고 있고 돼지 저금통도 있고 이런 책을 냈지만, 읽다 보면 ‘돈을 잘 벌게 되지는 않겠다, 허당이다’라는 생각이 들고(웃음). 지금 보험사 안에서도 미묘하게 돈을 못 버는 자리를 만들어서 차지하고 계신 것 같은데(웃음).
이랑 : 미가동이지만 자르기는 애매한, 불편한 사람이 되고 있죠(웃음).
김하나 : 그것 자체가 되게 퍼포먼스 같네요.
이랑 : 그러니까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되게 운동권인 것 같아요. 뭐든지 항상 운동을 하게 되더라고요.
김하나 : 지난 책과 이번 책 사이의 변화 같은 걸 생각해 본다면, 어떤 게 있었을까요? 4년 정도가 지난 건데.
이랑 : 매일매일 저를 보고 있으니까, 크게 뭐가 달라졌는지는 남이 더 잘 아는 것 같아요(웃음).
김하나 : 그러면 제가 약간 추측을 해보자면, 방에 엄청 큰 거울이 있다고 하셨었어요. 마치 학교 로비 같은 데 있는 ‘축 발전’이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거울이고, 그 거울로 자신을 열심히 본다고 하셨는데...
이랑 : 오, 기억력이 되게 좋으시네요.
김하나 : 많이 써왔습니다(웃음). 그런데 지난 책에는 ‘거울에 비친 나’를 이런 저런 각도로 열심히 봤다고 한다면, 이번 책에는 ‘나 외적인 것들’이 그 거울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예전 책에 비해서 이번 책은 나뿐만 아니라, 나 바깥을 계속 보고 있는 나까지 보는 느낌?
이랑 : 아, 맞습니다(웃음)! 저에 대한 인식을 이렇게 정리돼서 들으니까 되게 시원하네요(웃음). 역시, 뭔가 사거나 듣거나 했을 때 시원해야 돈을 지불하고 싶더라고요. 저는 그 시원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김하나 : 아, 시원함을 주고 싶은 사람(웃음).
이랑 : 나는 너희에게 시원함을 주고 싶어(웃음). 그런데 앨범 작업을 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거든요. 1집에서는 계속 제 이야기를 하다가 2집부터는 사회 안에 있는 나로서 이야기를 하고, 그 이후로는 내가 사회 안에서 어디로 움직이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역시 움직이면 누구를 만나게 되잖아요. 그 전에는 거울로 저만 봤다면 이제는 제가 만나는 사람이나 그런 것들을 같이 보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말씀을 들으니까 이미지로 정리가 되네요.
김하나 : 이 책이, 많은 분들이 지켜봤던 장면으로 시작하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전무후무한 사건! 한국대중음악상을 홈쇼핑이랄까, 경매화 해버린 트로피 판매 사건이었죠. 저는 그날 밤에 클립 영상을 보고 ‘정말 천재다’라고 생각했어요. 이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나온 건가요?
이랑 : 아이디어가 한 군데에서 나온 건 아니고 여러 가지, 분노에서도 나왔고 개그 욕심에서도 나왔고 홈쇼핑에서도 나왔는데(웃음).
김하나 : ‘메탈릭한 장식 오브제’라고 하셨던가요(웃음).
이랑 : 제가 홈쇼핑을 진짜 좋아해요. 홈쇼핑 보는 걸 너무나 좋아해요. 왜 좋아하냐 하면, 진짜 뜬금없어서 좋아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온에어가 되고 카메라가 줌인이 되면 앉아계신 호스트 분이 ‘그러니까요’ 이렇게 시작을 하는 거예요(웃음). 너무 깜짝 놀라는 그 화법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웃음). 그리고 홈쇼핑에는 여러 가지 컬러(의 제품)가 나오잖아요. 신발만 해도 블랙, 화이트, 레드, 브라운이 있으면 ‘블랙, 블랙이죠’, ‘화이트, 무조건 있어야 됩니다’, ‘브라운, 하나쯤은 있어야죠’, ‘강렬한 레드, 무조건 가져가셔야 됩니다’ 하면서(일동 폭소), 더 이상 설명할 게 없어도 많은 것들을 설명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다 받아 적었어요(웃음).
김하나 : ‘그러니까요’부터(웃음). 그런데 제가 드렸던 질문은 트로피 판매 사건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느냐(웃음)...
이랑 : 트로피를 팔 때, 당연히 제가 운동을 하는 사람이니까 지금 예술가의 현실과 제가 실제로 얼마를 벌었는지를 정확히 말씀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또 재미있게 전달해드리기 위해서 상패를 홈쇼핑 버전으로 해보려고 했었죠.
김하나 : 그 당시 이랑 님의 월세 50만원을 시작가로 해서 팔고 내려오는 걸로 됐었죠.
이랑 : 네, 맞아요.
김하나 : 그 트로피 이야기가 첫 번째이고,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인터뷰 비용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보험설계사로 취업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앞부분에 이어지고 있어요. 결국 프리랜서 창작자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되게 오래 하신 건데, 그건 17세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열일곱 살에 출가를 하며 그때부터 일을 해왔다고 하시잖아요.
이랑 : 저는 어디 돈이 나올 구멍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돈이 필요한 사람이고요.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고 있었죠. 그런데 일을 하니까 술을 주거나(웃음) 그런 경우가 생기고, 만 원이라도 받을 줄 알았는데 만 원이 아니고 맥주가 오는 경우를 경험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지?’라고 처음에는 당황을 많이 했었어요. 그리고 돈 달라는 이야기도 못 했고요.
김하나 : 지금은 잘 하시나요?
이랑 : 지금은 너무 잘 하죠(웃음).
김하나 : 이 책의 제목 대안이 뭐였었죠?
이랑 : 아, 원래 제가 이 책의 제목으로 밀었던... 알고 계세요?
김하나 : <영노자>에서 말씀하셨어요.
이랑 : 아, 그렇구나(웃음). ‘넌 왜 돈 얘기만 하냐’였는데, 그 말을 제가 돈을 달라고 말해야 할 분들한테 듣는 경우보다 저랑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한테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예술가인데 그렇게 돈, 돈, 거리면 부끄럽다’, ‘창피하다’, ‘너 예술가 같지 않다, 너랑 같이 못 하겠다’ 그런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에.
김하나 : 예술가도 이슬만 먹고 사는 게 아니고 밥도 먹어야 되고, 몸 뻗고 잘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되고...
이랑 : 이슬을 먹어본 적도 없어요(일동 폭소).
김하나 : 여기에서 또 ‘이슬을 먹어봤는가’ 하는 문제로(웃음)...
이랑 : 이슬, 도대체 뭐예요? 먹어본 적도 없고.
김하나 : 동료 아티스트의 경우에도, 그도 아마 이슬을 안 먹어봤을 텐데(웃음), 그런데도 ‘너는 왜 돈 이야기만 하느냐’라고 하면서 마치 예술의 가치가 먹고사는 것의 가치와는 동떨어진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 경우들이 있었던 거군요.
이랑 : 네, 많이 있었고 지금도 많이 있죠.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