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 추락해야 비로소 얻게 되는 것(들)
<디바>는 ‘추락’의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최고의 위치에 있던 선수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후폭풍에 집중한다.
글ㆍ사진 허남웅(영화평론가)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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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바>의 한 장면


‘디바 diva’는 무대 위의 여자 가수를 말한다. 영화 <디바>의 무대는 다이빙대다. 다이빙대 위에 선 선수는 이영(신민아)과 수진(이유영)이다. 이 중 최고의 찬사를 받는 다이빙계의 디바는 단 한 명. 독보적인 실력을 뽐내 세계적인 선수로 명성을 날리는 이영이다. 이영이 최고로 군림하는 동안 수진은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지 못해 고전 중이다. 아예 다이빙대에서 뛰지를 못하는 수준이다. 트라우마가 있어서다. 

중학교 시절만 해도 최고는 수진이었다. 이영은 수진의 실력에 감탄하며 친구를 롤모델 삼아 디바의 꿈을 키웠다. 수진의 우승이 당연해 보였던 결승전 당일, 수진의 엄마가 병상에서 숨졌고 이영은 마지막 시기를 준비하는 수진에게 소식을 알렸다. 마음이 흔들린 수진은 점프 중 다이빙대에 머리를 부딪치며 우승은커녕 이를 계기로 다이빙에 두려움을 느껴 선수 생활을 망쳤다. 

다이빙은 우아하게 ‘추락’하여 수면에 적은 물보라를 일으킨 선수가 높은 점수를 받는 종목이다. <디바>는 ‘추락’의 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최고의 위치에 있던 선수가 어떻게 몰락하는지 후폭풍에 집중한다. 계기는 이영과 수진이 동승한 자동차의 추락 사고다. 물에 빠진 차에서 빠져나온 이영과 다르게 수진은 실종 상태다. 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이 희미한 이영은 하나하나 짚어가는 중 수진이 엄마의 죽음 소식을 굳이 시합 전에 알린 이영에게 앙심을 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충격에 빠진다. 

이영과 수진의 관계가 절친에서 원수로 역전하는 과정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이영의 기억력이 온전하지 못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이 현실인지, 환각인지, 경계를 구분하기 힘든 이 영화의 편집이 의도하는 감정 상태는 혼돈이다. 이 혼돈은 이영을 디바의 위치에서 추락하게 한 여러 원인이 작용한 결과다. 그에 맞춰 영화는 이영과 수진이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는 영화 초반 다이빙 대 위에 선 선수가 마지막 숨 고르기를 하듯 컷의 길이를 비교적 길게 가져가다가 사고의 여파로 둘 사이가 무너지는 순간부터 컷을 잘게 쪼개 빠르게 추락하듯 구성을 가져간다. 

혼란한 컷의 편집 동안 날개 없이 추락하는 이영의 기억에 틈입하는 수진을 향한 감정은 명과 암이 교차하듯 복합적이다. 친구를 위해 알린 소식을 곡해하여 앙심을 품은 것에 대한 배신감이, 친구라는 이유로 앙갚음을 벼르는 마음을 오랫동안 숨긴 것에 대한 연민이, 자기 실력의 부족을 남의 탓으로 돌린 것에 대한 경멸이, 올림픽을 앞두고 연습에 몰두해야 하는데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정으로 집중력을 발휘하기 힘들어 최고의 위치를 뺏길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이영의 표정에 회색빛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다. 



그래서 <디바>가 배우에게 온전히 기대는 스펙터클은 표정이다. 이영을 연기한 신민아는 그동안 놀란 토끼 눈의 귀여움과 웃으면 파문이 이는 연못 같은 보조개의 청량함으로 아름다운 피사체의 매력을 어필해왔다. 대상이 아니라 감정으로서 이 영화의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포착하는 신민아의 표정은 감정의 검은 우물이 깊게 파고든 눈빛과 깨진 유리에 비친 일그러짐의 심정이 입체파의 이미지로 콜라주 되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무대를 장악하는 ‘디바’는 바로 신민아다. 

내려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것, <디바>가 추락의 콘셉트로 말하는 바는 성숙의 일면이다. 이영은 끝내 다이빙의 디바 자리를 내려놓고 텅 빈 경기장의 다이빙 대 위에 다시 선다. 더는 추락할 길 없는 바닥에서의 새 출발의 의미라기보다 자신을 괴롭혔던 수진을 향한 이해와 미안함이다. 수진의 위치가 되고 나니 비로소 이영은 알 것 같다. 새롭게 보이는 것이 생겼다. 지금껏 이영이 싸운 대상은 수진의 유령이면서 곧 자신이기도 했다. (뛰어난 신민아의 연기는 곧 이유영을 향한 찬사이기도 하다!) 이영이 옆을 돌아보니 수진이 있다. 드디어 둘은 서로 복수할 상대가 아니라 다시 친구로 나란히 서게 됐다. 추락하면서 튀었던 혼돈의 물보라가 드디어 잠잠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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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