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거울 속엔 열세 살 소년 대신에 웬 노인이 떡하니 있었다.
“누 누구예요?”
혹시 화장실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가 싶어 고개를 휙 돌렸다. 물론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해찬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순간 멍해져 버렸다.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벌벌 떨렸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중략)
방으로 들어간 해찬이는 다시 한번 거울을 들여다봤다. 이번에 보니 이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깊게 팬 이마의 주름살, 군데군데 보이는 검버섯. 눈가와 두 볼은 불룩 처져 있고, 머리카락은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책 속에서
『늙은 아이들』의 도입부입니다. 독특한 소재만큼 전개 역시 독특합니다. 갑자기 늙어 버린 아이들은 사회에서 갑자기 사라집니다. 정부에서 온 사람들은 아이들을 태우고 어딘가로 향합니다. 『늙은 아이들』은 아이들이 늙어 버린 그 후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늙은 아이들』의 임지형 작가님께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동화 『늙은 아이들』은 아이들이 갑자기 늙어 버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쓰시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독자들에게도 다시 한번 이야기해 주세요.
우린 흔히 ‘결핍’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 결핍이야말로 우리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주고 부족한 부분을 성장시키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해요. 특히 생각이 없던 사람도 결핍이 있으면 결핍을 채우기 위한 끊임없이 생각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여러 면에서 ‘결핍’이 결핍되어 있어요. (물론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결핍을 어른들이 알아서 다 해결해 주니 아이들 스스로가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자기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거예요. 일상이 무기력해지는 건 말할 필요도 없죠. 그걸 보면서 노인들의 모습이 연상됐어요. 노인들이라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할 일이 없어서 꿈도 희망도 없이 지내는 노인들의 모습과 겹치면서 『늙은 아이들』을 쓸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늙게 된 후 사회에서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늙은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 사회적인 반응들을 설정하게 된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인간의 늙음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만, 우리는 자연스러운 노화현상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 자라기도 전에 아이들이 늙어 버린다면, 그것은 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늙음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인간에게 정말 자연스럽게 다가올 늙음을 가장 당혹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갑자기 늙어 버린 자신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모님들 역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릅니다. 정치인은 일단 상황을 감추고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여 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격리소로 보내져서 사회에서 감추어집니다.
실제로 우리가 많은 민감한 문제들에 저런 식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기후와 환경 문제,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문제, 노동자들의 권리 등 정말 많은 문제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감추어져 있으니까요. 회피하고 은폐하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이 책에도 나오지만 요즘 아이들은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그리고 스마트폰이 이끄는 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다운 일상이란 뭘까요? 그리고 그러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어른들의 역할은 뭘까요?
저는 아이들의 최고 권리가 노는 것이라 생각해요. 아이들은 놀면서 세상을 배우고 인간관계를 터득하며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요즘 아이들은 최고의 권리를 못 누리고 살죠.
아이들 대상으로 강연을 갈 때 그런 말을 자주 합니다. 진짜 놀이는 창조이고, 성장이라고요. 아이들이 잘 자라나게 하려면 어른들이 아이들 노는 시간을 확보해 줘야 해요. 미래를 위해서 현재는 희생해도 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야 미래에 누릴 행복도 제대로 누릴 거라 생각해요. 현재 행복이 뭔지 모르는 아이가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 과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어떨 때 행복해하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더 많이 누릴 수 있게 배려해 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요?
만약에 작가님이 하루아침에 할머니가 되신다면 어떠실 것 같은지 여쭤보겠습니다. 그 이야기로 소설을 쓴다면 어떤 내용의 소설이 될까요?
이 질문을 받고 살짝 당황했는데요. 사실 제가 갑자기 늙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해 봤거든요. 아무래도 지금도 나이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더 늙는다는 걸 따로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나 봐요.
만약에 제가 갑자기 할머니가 된다면, 일단 많이 절망하고 낙담해서 한동안은 멘붕 상태로 보낼 것 같기는 해요. 그리고 그 후에는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깨닫는 삶의 지혜를 찾고, 잔잔하게 남은 시간을 살아내는 그런 거 절대 안 할 것 같아요. 제 성격과 안 맞아요.
아마, 소설로 쓴다면,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가 되어 버린 동화 작가가, ‘늙음 따위 내다 버려!’라고 말하며, 다시 젊어지는 방법이 있는지 다양한 방법을 찾으려 돌아다닐 것 같아요. 그런 방법이 없다면, 젊게 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라도 찾아서 할 거고요. 시종일관 시끌벅적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 소개에 보면 부캐는 체대 언니라고 되어 있어요. 『늙은 아이들』에 보면 생체 나이를 측정하는 게 나오는데 작가님은 생체 나이가 젊으실 것 같아요. 운동을 취미로 갖게 된 까닭이 궁금합니다.
저는 운동을 한 지는 조금 오래됐어요. 걷기 운동은 십 년이 넘었는데요. 요즘 들어 푹 빠져 있는 건 달리기입니다. 달리기를 하게 된 계기는 바로 2년 전에 하게 된 수술 때문입니다. 수술 날짜를 정해 놓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걷기를 오래해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땐 사실 1분 달리는 것도 힘들었어요. 누군가 런데이 앱을 알려 줘서 그걸 깔고 연습을 했어요. 그 앱은 1분 달리기부터 시작해 1분 30초 단위로 점차 늘려 가는 거였어요. 최종 목표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거고요. 총 8주 프로그램이었지만 수술 날짜가 다가오고 있어서 매일 달렸죠.
30분을 쉬지 않고 뛸 정도로 체력을 만들어 놓고 수술을 했더니 회복이 정말 빨랐어요. 물론 회복 기간에도 매일 같이 두 시간씩 걷기는 했어요. 그렇게 꾸준히 운동을 했더니 그 해에 책이 8권이 나오고 강연은 50회 이상, 외국도 두 번이나 갔다 왔는데 몸살 한 번 안 났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바로 운동이 됐습니다. 그만큼 성취감과 자신감을 줬어요.
올해도 여러 권의 책을 내셨는데요. 올해 내신 책들을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올해 총 6권의 책이 나올 예정인데 5권이 나왔습니다. 일정이 어긋나 8월부터 한 권씩 나오기 시작했어요. 『가짜 뉴스 방어 클럽』, 『요술 화장품』, 『나랑 딱 맞는 친구 찾아요』, 『늙은 아이들』, 『방과 후 슈퍼 초능력 클럽』이 올해 나온 책들입니다.
『가짜 뉴스 방어 클럽』은 어른들도 많이 속고 있는 가짜뉴스를 어릴 때부터 알아 둬야 할 것 같아 썼습니다. 『요술 화장품』은 많이 어린데도 화장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썼습니다. 워낙에 청소년들의 화장이 보편화됐지만 한 번 정도는 ‘화장하는’ 아이들이 화장에 대해 생각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썼어요. 『나랑 딱 맞는 친구 찾아요』는 현실 친구와 랜선 친구 사이에서 진정한 우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방과 후 슈퍼 초능력 클럽』은 전작 『방과 후 초능력 클럽』의 2탄입니다. 이 책은 제 책 중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책인데요. 강연을 가면 아이들이 2권은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곤 했어요. 어떤 아이는 10권까지 써 달라고 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독자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더 써야겠다 싶어 썼습니다. 이 책은 『늙은 아이들』 다음으로 나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독자들의 반응이 꽤 궁금합니다.
코로나로 우리 모두는 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실 때 코로나 시대를 보낸 작가님의 한 해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보면 대재앙에 가까운 이런 상황을 보는 작가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올해 읽은 책 중에 『페스트』가 있어요. 그 책을 보면 랑베르가 그런 말을 해요. 페스트의 특징은 ‘다시 시작’이다. 잠잠해질 만하면 다시 시작이고, 또다시 시작이라 그렇게 표현을 했는데, 저는 다른 의미로 ‘코로나’란 전염병을 표현할까 해요. 잠깐, 일상이 멈췄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요.
코로나가 시작된 상반기엔 원래 강연을 쉬게 되는 기간이고 제겐 글 쓰는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자발적 격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격리를 당하게 되자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마치 공부하려고 막 책상에 앉았는데 엄마가 공부 안 하니? 하는 것처럼 집 안에 갇혀 글 쓰는 일이 전에 없이 답답하고 막막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그간에 봐도 못 본 체했던 사회적인 적폐, 그리고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무엇보다 바이러스 하나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걸 보고 ‘현재’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됐어요. 그래서 『페스트』에서 말한 ‘다시 시작’이라는 말이 두렵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차게 다가왔어요. 앞으로 그 이전의 삶을 살 수 없다 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요. 거기에 ‘문학’의 힘이 굉장히 크다는 것도 깨달았죠. 문학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보니 코로나 인해 많은 것들을 잃었어도 잃은 것 같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나쁜 게 꼭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깨달음도 얻은 한 해였어요.
*임지형 본캐는 동화 작가, 부캐는 체대 언니예요. 달리기를 거의 매일 하고 가끔 산에 오르며 줄넘기를 한 번에 천 개 넘게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스쿼트를 천 개까지 해 본 것과 마라톤 대회 하프까지 완주한 건 자랑거리예요. 앞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뛸 생각이고, 듀애슬론과 트라이애슬론까지 도전하는 게 꿈이랍니다. 거기에 제 동화로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가장 큰 꿈입니다. 지금까지 지은 책으론 『우리 반 욕 킬러』, 『방과 후 초능력 클럽』, 『가짜 뉴스 방어 클럽』, 『바나나 가족』, 『유튜브 스타 금은동』, 『슈퍼 히어로 우리 아빠』, 『슈퍼 히어로 학교』, 『진짜 거짓말』, 『아쉬람에 사는 아이』 등 다수의 책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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