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제 작가가 더 이상 ‘힐링’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로 처음 독자와 만난다.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가 상품으로 쏟아지는 이 시대에 ‘힐링’은 때로는 어서 괜찮아지라는 무언의 다그침처럼 느껴진다. 김민제는 그렇게 깨끗이 표백된 세계에 대고 어떤 긍정적인 다짐으로도 수그러들지 않는 내면의 잡음을 또렷하게 들려준다. 희망과 성장으로 귀결되지 않는 마음의 명암을 직시하는 저자의 태도는 독자에게 색다른 위안을 준다.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오늘따라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꿈과 열정이 자신을 파괴해간다고 느낀다면, 무엇보다 그저 우울해도 괜찮은 시간이 필요하다면 『죽고 싶다는 말은 간절히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를 권한다.
첫 책 『죽고 싶다는 말은 간절히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를 내셨어요. 작가로서 독자와 처음 만나는 책인 만큼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출간 소감이 어떤가요?
아직은 실감이 잘 나지 않는 것 같아요. 주위에서는 장난으로 ‘김 작가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여전히 어색해요. 처음 글을 쓸 때는 정말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을 적었을 뿐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셨어요. 제 글을 좋아하고 기다려주시는 고마운 분들 덕에 출간까지 할 수 있던 것 같아요. 책을 내고 싶다는 욕심은 늘 있었지만 실행하기까지 과정이 좀 복잡한 건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어느 날 한 분께서 죽고 싶었던 순간 제 글을 보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는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셨어요. 그 순간 나의 글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렸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고, 그 덕에 실천으로 옮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작가님이 책을 홍보하면서 하신 말씀 중 “낭떠러지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여러분들을 저는 밀어버릴 것입니다. 떨어지고 나면 평지 위에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어요. 이 책을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많은 자기계발서의 핵심 키워드가 ‘긍정’인 것 같아요. 그런 책들을 읽고 있으면 힘들어도 힘을 내야 할 것 같고,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만 해야 할 것 같고, 행복이라는 것을 꼭 바라고 추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재미있지도 특별하지도 않잖아요. 특별해져야만 하고 뭔가 이뤄야만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사방에서 주는데,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더 초라해지고 불행해지는 악순환을 막고 싶었어요. 죽고 싶어도 괜찮고, 죽도록 우울해도 괜찮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억지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나대로 내 감정을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 순간 전보다는 조금 더 초연한 태도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길 바라는 마음인 거죠.
『죽고 싶다는 말은 간절히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라는 제목이 무척 인상적이에요. 지금 번아웃을 겪거나 우울한 사람들에게 많아 가닿을 것 같은 제목인데요. 작가님은 그런 시기를 어떻게 지나오셨나요?
정말 힘들고 우울했을 때의 저는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제 손해이고 그런 감정은 무조건 부정적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밝은 척을 하며 이겨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럴수록 껍데기만 행복해 보이는 저만 남게 되었고, 속은 점점 더 타들어 가며 공허해졌어요. 결국은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나조차 나를 속이는 더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죠. 힘들고 우울할 때는 억지로 행복해지려고 자기 자신을 착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SNS 활동을 열심히 하시잖아요. 사진으로는 화려하고 왁자지껄한 일상을 주로 담아내시는데 글은 어둡고 침잠한 내면을 많이 다루더라고요. 이런 ‘간격’이 작가님의 내면에 어떤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이런 명대사가 나와요.
“나는 항상 독립적인 여자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 내 인생을 남자한테 맡기고 싶진 않아. 하지만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내게 중요해. 그런 걸 경멸해 왔지만 모든 행동은 결국 더 사랑받기 위한 것 아닐까?”
저는 ‘간격’이라기보다는 ‘양면’이라고 살짝 표현을 바꿔 이야기해볼게요. 이 대사처럼 그저 저의 ‘양면’이 있는 것 같아요. 겉으로는 ‘나는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원하고 있으니까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고 싶은 게 아닐까… 말이 조금 어렵죠?
책의 전면에 내세운 키워드가 ‘우울함’ ‘분노’와 같은 정서라면 숨은 키워드는 ‘재치’와 ‘당당함’인 것 같아요. 디테일을 살펴보면 의외로 그 무거움을 해소해주는 당차고 위트 있는 글이 곳곳에 있거든요. SNS에서도 유쾌하고 당당한 김민제의 캐릭터를 사랑하는 팬들이 많고요. 이런 재치와 당당함이 작가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재치와 당당함은 사실 ‘편견 깨기’나 ‘쿨함’ 같은 것보단 오히려 ‘인간미’인 것 같아요.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봤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불편한 진실들 같은 걸 저는 눈치 보지 않고 얘기하는 거죠. 하지만 전달할 때 그 누구에게도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정말 많이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치 있는 화법을 구사하게 되는 거고요. 이렇게 심혈을 기울이고 주의해도 간혹 의도치 않게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그건 제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죠.
본문의 내용 중에 “‘최선을 다한다’의 기준은 주위 사람들이 나한테 감동했을 때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감동했을 때를 말합니다.”라는 문장이 있죠.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들은 남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자신을 감동시키는 일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작가님이 자신에게 감동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스스로 한계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더 이상은 못 하겠다, 더 이상 하면 내가 죽을 것 같다…. 그런데 저는 그 순간들을 이겨냈을 때 정말 감동받는 것 같아요. 너무 피곤하다거나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다른 일들로 유독 집중이 안 된다거나 하는,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고 어쩌면 포기한다 해도 남들도 이해해줄 것 같은 상황들이 오는데 저는 개의치 않고 어떻게든 이끌어 나간 것 같아요. 오죽하면 주위에서 너 죽는 거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로 약간 엄격하게 스스로를 몰아세웠어요. 결과적으론 건강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은 얼추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모든 과정을 즐기면서 성공한다는 건 솔직히 너무 모순이거든요. 저는 그냥 조금 아프고 힘들더라도 제 목표를 위해 달렸는데, 확실히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아프고 힘들었던 게 뿌듯할 때도 있더라고요. 변태 같나요?(웃음)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저는 제 책을 읽을 때마다 아직도 그때의 무거운 공기와, 그때의 죽은 듯한 침묵과, 그때의 위태로웠던 눈빛과 그때의 모든 것이 느껴집니다. 신기하죠, 노래와 냄새와 글은 다시 마주할 때 당시의 향수를 머금은 듯 똑같이 재현된다는 사실이요.
사실 출간 작업을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제 글에 등장하는, 그 글들을 쓰게 만든 사람들이었어요. 고해성사처럼 적어 내려간 저의 글이 상대방에게는 일방적인 감정적 통보가 되지 않을까 싶어 미안했거든요. 죄책감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나름 한때는 사랑했는데 너무 공개적으로 내모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듯, 그저 제 글이 저와 닮은 여러분들을 위해 대신 앓아 주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쓰게 됐고 끝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저는 유서를 쓰는 마음으로 저를 돌아보며 글을 써 내려갔고, 제가 죽지 않았기에 그 글들은 유서가 아닌 일기가 됐고, 그 일기가 들켜버리며 책이 되었습니다. 너무 소중하고 너무 의미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김민제 더 사랑받기 위해 제가 아닌 말과 행동을 하지 않고 덜 미움받기 위해 제가 아닌 행동과 말을 하지 않다 보니 모든 모습이 온전히 저라서 더 당당할 수 있고 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행복을 바라는 이상적인 꿈을 갖고 살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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