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 1년 차에 반려식물을 처음 들였다. 노란 수분크림 공병에 흙과 함께 담긴 새끼손가락 크기의 다육이였다. 모 화장품 회사의 '공병 재활용 캠페인'에서 받은 아이였다. '이 작은 게, 이 작은 병 안에서 큰다구?' 신기해하며 자취방 베란다에 두었다. 2주쯤 지난 후 다육이는 작은 가지에 잎을 틔우고 있었다.
그 무렵 사수 과장님은 장기 출장 중이었다. 남아 있던 6개월 차이 선배가 대리 사수가 되었고, 선배와 나는 항상 붙어 다녔다. 거의 모든 일은 선배가 처리했다. 어깨너머로 일하는 방식을 배웠다. 처음엔 배우기만 하는 게 당연하게 느껴졌지만 한 달 가까이 지나자 점점 불안했다. 선배와 몇 달 차이도 안 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이 같았다.
다육이는 두 달 만에 손가락 두 마디만큼 키가 컸다. 자주 물을 주지 못했는데도 그랬다. 다육이가 크는 동안에도 나는 맡은 일이 없었다. 불안하다고 말하면 선배는 대답했다. "ㅇㅇ 씨. 나중 되면 어차피 일 많아질 거예요. 그리고 입사 얼마 차이도 안 나는데 제가 일을 주는 게 좀 그래요..." 선배의 말은 내 불안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왠지 선배가 나에게 일을 나누어 주기 싫어하는 것만 같았다.
다육이가 더 크기에는 화장품 공병 안의 흙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고, 새 화분에 옮겨주기로 했다. 워낙 공병이 작아 분갈이는 수월했다. 분갈이하면서 선인장용 흙을 다섯 배 정도는 더 넣어준 것 같았다. 마음을 가득 담아 꾹꾹 다져주며 물도 듬뿍 주었다. 다육이가 잘 자라왔던 것보다 더 쑥쑥 크길 바랐다.
분갈이 후 며칠이 지났다. 문득 들여다본 다육이 잎의 끝부분이 갈색으로 변했다. '화분을 바꾸면 원래 잎 색이 변하나?'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 뒤, 그 잎 전체가 갈색이 되었고 표면은 말라갔다. 뭔가 이상해서 물을 한 번 더 가득 주었다. 다육이는 잎을 하나둘씩 더 떨어뜨렸다. 부랴부랴 검색을 했다. 분갈이를 했을 땐 흙을 누르거나 물을 많이 줘서는 안 된다는 정보를 찾았다. 다육이가 빨리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잘못된 방식으로 힘을 바짝 준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서도 항상 힘을 주고 있었다. 그냥 뭐라도 해야 한다며, 자꾸 뒤처지는 기분이라며 전전긍긍했다. 담당자가 되어 맡은 일을 멋들어지게 성공시키고 싶었다. 선배에게 일이 몰리는 게 부러웠고, 나와 선배가 역할이 바뀌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땐 그 마음이 최선이었다.
다육이는 며칠 못가 옆으로 고꾸라졌다. 분갈이를 괜히 했어, 하고 속으로 후회했다. 고꾸라진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는 그저 다육이의 마지막을 관찰했다. 다육이의 초록색 줄기가 말라가다 못해 나뭇가지처럼 딱딱해졌고 이내 흙 속에 파묻혔다. 다육이 화분에 다른 작은 식물을 심을 수도 있겠다는 미련과 함께, 화분을 그대로 두었다.
입사 6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예전처럼 불안하지도, 긴장 상태로 있지도 않다. 욕심도 자연스레 덜어졌다. 옆자리의 신입사원 후배는 가끔 말한다. "대리님. 제가 맡은 과제가 없어서 너무 불안해요. 저도 대리님처럼 혼자 과제 맡아서 하고 싶어요." 자연스레 나오는 나의 대답은 과거의 내가 들었던, 위로는 전혀 되지 않았던 6개월 차이 선배의 대답과 비슷하다. 일이 곧 많아질 거라고, 걱정 말고 배우라고. 신입사원들의 마음과 선배들의 마음은 보편적인가 보다.
다육이 화분은 몇 년이 흐른 지금도 흙만 담긴 상태 그대로다. 왠지 못 버리겠어서 자취방 이사를 할 때도 고이 들고 왔다. 그 화분을 보면 가끔 내 사원 1년 차 때가 떠오른다. 힘을 좀 빼도 좋았을, 하지만 힘이 가득 들어간 게 최선이었을 그때가 말이다.
장로사 뒤죽박죽인 마음을 글쓰기로 정리하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바로가기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장로사(나도,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