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불안, 우울, 의심, 분노 등 다양한 정신과적 증상을 안고 산다. 증상이 약하거나 짧게 나타나 단순한 감정기복이려니 넘어갔을 수도 있고, 증상이 심하지만 해결방법을 찾지 못해 주변에 숨기면서 견디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마음속 쓰레기통에 여과되거나 정화되지 못한 마음의 쓰레기가 가득 차 있다면, 건드리기 두렵고 싫더라도 혼자 힘으로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든 확실히 청소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벌레가 꼬이고 냄새가 나서 나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다.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든 삶을 견뎌내다가, 명확한 해답이란 존재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지쳐 있다가, 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마음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침내 이 책을 펼친 독자들이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에는 나만의 길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릴게요.
2019년부터 <헬로, 정신과>라는 만화를 정신의학신문에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번에 『마음을 치료합니다, 정신과』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 정신과 전문의 N2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가명으로 책을 낼 정도로 자신감이 부족하고 소심하며 부끄럼이 많은 편입니다. 게다가 책에 나오는 증상들 중 상당수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 역시도 사소한 것에 쉽게 불안해하고 우울감을 느끼는 등 마음이 정말 약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 10년차로서 진료를 거듭하면 할수록,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공감할 때는 제 약점이 오히려 큰 강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며 게임도 좋아합니다. 당연히 만화도 좋아하고요.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딸과 함께 만화카페에 가서 만화책을 볼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코 잘 그리진 못해도 자연스럽게 만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만화를 그릴 때 제가 좋아하는 인디음악이나 영화, 게임에서 주로 소재를 얻다 보니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비유를 들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공부 안 하고 맨날 음악, 영화, 게임 같은 것에 빠져 있다고 어머님께 잔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또 도움이 되더라고요.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신 계기가 있나요?
그럴듯하거나 거창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물 흘러가듯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사가 되었고 그중에서도 정신과 전문의까지 되었네요. 어렸을 적 꿈은 로봇이나 우주선을 만드는 과학자였는데, 수능을 망치는 바람에 원하던 학교에 가지 못했습니다. 수능을 치르기 3개월 전부터 편두통이 너무 심했었거든요. 시험이 끝난 후 부동시(짝눈)로 인해 편두통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꾸준히 받고 나니 그렇게나 힘들었던 편두통 증상이 좋아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사라는 역할이 참 보람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의대로 진로를 변경하기로 결심했죠. 의대 내에서는 제가 워낙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말을 하기보다는 주로 들어주는 편이었는데, 동기들은 제가 상담을 잘해준다고 생각했는지 네가 정신과로 가는 게 좋겠다며 권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정신과 의사가 되어 지금까지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으신가요?
만화 <헬로, 정신과>를 그리기 시작할 무렵, 제3화에 “첫 환자는 마치 첫사랑처럼 잊을 수가 없다”는 내용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환자가 있는데, 바로 정신과 전공의 1년차 때 인연을 맺은 저의 첫 환자였습니다. 그 환자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이유는 청각장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첫 환자를 곧 만나게 될 거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전에 나름대로 온갖 현란한 면담 기술들을 잔뜩 준비해 갔는데 막상 환자를 만나고 보니 어찌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결국 보디랭귀지를 하거나 쪽지로 글을 적어서 주고받는 등 뜻하지 않은 펜팔(?)을 통해 다른 환자들보다 더 오랜 시간 면담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쪽지가 쌓이면 쌓일수록 환자와 점점 더 친해져서 어느새 서로 정이 많이 들어버렸습니다. 훗날 증상이 많이 좋아져서 퇴원하게 되었을 때 환자가 눈물을 글썽일 정도였으니 아직까지도 잊지 못할 환자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 내신 책은 어떤 책이고, 어떤 사람들을 위해 쓰신 책인지 궁금해요.
이번 책은 아이패드에 혼자 그림을 끄적거리다가 시작되었습니다. 봉직의 6년차가 되자 다소 지쳤는지 무작정 쉬고 싶어서 일을 그만두고 7개월간 백수 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가족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게 4컷 만화를 설렁설렁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리면 그릴수록 예전 환자들이나 진료 경험이 새록새록 생각나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습니다. 만화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그중 몇 개를 간단히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생각보다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경험했던 정신과에 대해 만화라는 형식으로 좀 더 쉽게 전달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 운이 좋게 정신의학신문에서 요청을 해주셔서 지속적으로 만화를 싣게 되었고, 그게 네이버 포스트까지 연결되면서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애초에 이 책은 학술적인 내용이나 고도의 지적인 정보들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정신과와 관련된 기본적인 내용들을 쉽게 설명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를 낯설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반면에 정신과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아, 저자가 이 부분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거나 비유를 들었구나!’라는 재미를 느끼도록 최대한 애를 썼습니다. 물론 실제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매우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나요?
가장 힘들다기보다는, 정신과 의사로서 항상 아쉬웠던 부분이 있습니다. 제 친구 중에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진료를 마치고 거리를 걷다 환자나 보호자를 마주치면 대부분 인사도 하고 반겨주며 참 화기애애하고 좋은 분위기더라고요. 하지만 정신과 의사인 저와 마주치면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이 대부분 당황하거나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처음에는 섭섭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개선되어 병원 문턱은 조금 낮아졌지만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안다는 건 여전히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래서 행여나 화기애매(?)한 분위기가 될까 봐 저는 절대로 먼저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용기 있게 말을 걸어주시고 그 자리에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시는 분이 있는데 그때는 저도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편이죠. 앞으로 부디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많이 개선되어 저도 저희 병원에 오시는 분들과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최근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을 주변에서, 특히 젊은 층에서 더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정신과적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시는 이유보다는 제 진료경험에 비추어 생각해본 다른 이유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세상이 점점 빠르고 복잡해지다 보니 지금의 젊은이들은 예전 세대보다 훨씬 더 적응이 힘겹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저희 세대 때만 해도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들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만 해서는 어림도 없거든요. 그런데 제도도 바뀌고 챙겨야 할 요소도 많아지면서 아주 잠시만 시기를 놓쳐버리면 사람마다 격차가 많이 벌어지게 되더라고요. 결국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중에는 따라가기 불가능할 정도로 격차가 커져 이내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옛날에 성공의 필수 공식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기성세대들은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니 갈등이 생기고 압박도 심해지는 것 같아요. 내 안에서 해야 할 것들은 많고, 밖에서는 힘든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 소위 내우외환의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둘째는, 예전과 달리 현재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정을 아무 때나 마음대로 드러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한계를 넘을 정도로 참아서 병이 더 심해지도록 방치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최근 정신과를 방문하는 환자 비율만 보아도 젊은이들이 예전보다 훨씬 자주 오고 또 대부분 심해지기 전에 미리 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치료 반응이 좋고 빨리 회복되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꽤 드신 분들이 뒤늦게 정신과를 찾아오신 경우 그동안 너무 오래 참아와서 그런지 치료가 좀 더딘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젊은이들은 어쩌면 기성세대보다 더 용기 있고 스스로에게 솔직하며, 지혜롭게 해결하려고 증상을 쉽게 털어놓습니다. 그러니 겉으로는 환자 수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이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정신과를 선택할 때 처음부터 명확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신과 전문의가 되고 본격적으로 그 길을 걸으면서 뒤늦게 계기들을 하나씩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발견들이 결국 제 삶의 방향을 좀 더 명확하게 해주었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미리 알고 어릴 때부터 그 길로 확실하게 나아가기도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사실 뭘 해야 좋을지 잘 몰라서 방황하는 경우가 더 많잖아요? 저도 뒤늦게 ‘아, 내가 이런 것을 하려고 이 길로 오게 된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많은 조언자들이 일단 뭔가를 시작해보는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앞으로 뭘 해야 좋을지 정말 고민이 된다면 사실 그 사람은 뭘 해도 괜찮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51 대 49처럼 어떤 쪽을 선택한다 해도 별다른 차이는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뭘 선택하느냐보다는 선택한 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제 책 속에 연애나 결혼 파트에도 나오지만,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보다는 누구를 만나든 그 관계를 어떻게 맞춰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내가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일단 현재 가능한 것들을 뭐든 시작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때로는 그 안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를 통해 내 선택에 대한 계기들을 하나씩 발견하다 보면 향후 삶의 방향이 점점 더 명확해지는 소중한 경험을 하리라 믿습니다.
*N2 정신과 전문의. 정신의학 석사과정을 수료한 뒤 정신과 전문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3년, 봉직의로 6년을 보내고 개원의가 된 지 2년이 되었다. 현재 경주에서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신의학신문에 연재한 만화 [헬로, 정신과]가 네이버 건강 판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의과대학 재학 중 N2라는 이름으로 만든 시험 족보가 오랫동안 동기와 후배 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데서 보람을 느꼈다. 지금 다시 N2로서 만드는 이 책도 독자들의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시험을 위한 족보가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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