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영 “함께 작당하며 즐겁게 나이 드는 법”
6인의 저자는 배우로서 저는 연출가로서 어떻게 연극에 스며들었는지 또 어떻게 서로서로 물들였는지 다채롭게 담아냈습니다. 5060 동년배 이웃들, 머지않아 중년에 들어설 이웃들에게 ‘함께 작당하며 늙어가기’를 제안하는 책입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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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나이 55세, 연출 안은영을 중심으로 7명의 중년이 연극을 하겠다고 뭉쳤다. 쉰 넘어 연극판에 뛰어든 그들은 ‘참별난극단 B2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4년 차 아마추어 연극배우들이다. 그들이 연극 ‘강 여사의 선택’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동고동락한 이야기가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라는 책에 담겼다. 첫 번째 이야기는 7인의 자기소개다. 두 번째 이야기는 그들이 처음 연극판에 뛰어들 결심을 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쓴 글들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처음으로 ‘강 여사의 선택’에서 배역을 받고 연기를 알아가던 순간을, 네 번째 이야기는 연극을 하다가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을, 다섯 번째 이야기는 연극 무대에 서서 관객과 호흡하던 황홀한 순간을 담았다. 마지막 장은 나이 들어가는 일에 대한 7인 7색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록엔 본문에 미처 쓰지 못한 자유로운 수다를 풀었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중년을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을까. 쉰을 앞두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 중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작가님의 소개와 공동저자분들을 대표하여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보건교사 안은영 말고 그냥 안은영입니다. 좀 심심한가요? 하하하! 그럼 이건 어떤가요? 유혹하는 사람 안은영. 네, 저는 마음껏 표현하고 살자며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오랜 세월 돌봄을 받지 못해 굳어버린 심장들이 많거든요. 그걸 막 흔들어서 균열, 틈새가 생기게 합니다. 그들 안에 잠자던 끼와 재능, 욕망이 되살아나고 표현되도록 도와주고 싶거든요. 하지만 여기엔 늘 ‘무모하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네요. ‘우리가 그런 걸 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돼!’라는 반응과 함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꿈을 현실로 바꿔내는 능력 덕분에 참 좋은 삶의 예술가들과 동고동락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의기투합해서 ‘표현하는인생연구소협동조합’을 만들고 대표로 일합니다. 또 ‘참별난극단B2S’도 만들어서 대본도 쓰고 연출가로도 활동 중입니다. 작년 중순부터는 초단편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쉰다섯의 나이에 참 여러 가지를 하고 있죠?   

2015년에는 시집 한 권을 펴냈는데, 당시 원고 집필 중에 저는 강한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이 불씨가 되어 ‘치유적 글쓰기’ 강의를 시작했고, 2019년 봄부터는 우리 여섯 저자분들을 대상으로 ‘소그룹배움터’를 열었었습니다. 작년 가을까지 이어온 그 과정은 공저 출간을 목표로 아주 뜨거웠습니다. 여섯 분 모두 낙오자 없이 완주했는데, 이는 시민연극 교실 수강생에서 출발해 창작극 「강 여사의 선택」 공연 끝까지 함께 달렸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공통의 역사를 각자 개성과 시선대로 풀어낸 이야기가 바로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입니다. 6인의 저자는 배우로서 저는 연출가로서 어떻게 연극에 스며들었는지 또 어떻게 서로서로 물들였는지 다채롭게 담아냈습니다. 5060 동년배 이웃들, 머지않아 중년에 들어설 이웃들에게 ‘함께 작당하며 늙어가기’를 제안하는 책입니다. 

책을 쓰신 분들 모두 늦깎이 배우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작가님께서 늦은 나이에 연극을 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궁금하시죠? 저도 좀 궁금합니다. 살다가 문득문득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합니다. ‘그때 내가 그런 선택을 했다니, 참말로 신기하구먼!’ 하면서요. 

1999년 5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저는 멕시코에서 살았습니다. 약 12년 정도의 교민 생활을 마치고 고국의 품에 돌아왔을 때, 제 몸은 많이 부서져 있었죠. 죽음 직전까지 간 교통사고로 인해 얼굴 아래로 몸의 왼쪽이 부러지고 터지고... 척추 쪽에 장애가 생겼는데 통증 없이는 앉아있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 생활까지 합쳐 14년여 정도 외국 생활로 우리 사회가 인정하는 공적 경력이 단절되었고요. 날마다 몸은 아프지요, 마음마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난생처음 자신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사람 만나기가 싫어지더군요. 저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으니까요. 게다가 갑상샘암 판정을 받고 수술도 받았습니다. 설상가상 남편이 실직되고 가난한 우리 부부는 시부모님네 아파트 끝 방으로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신변비관이란 걸 하게 되더군요. ‘이건 내가 원했던 삶이 아냐, 이런 중년을 꿈꾼 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죽고 싶어졌지요.  

그러던 2017년의 2월의 어느 날, ‘혹시라도 내 상태에서 가능한 돈벌이가 있을까?’ 인터넷 검색을 하는데 번쩍! ‘서울시50플러스재단 중부캠퍼스’ 창이 떴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봄학기. 연극 교실”이란 홍보문이 보였지요. 심장이 쿵쿵! 당장 뭐 먹고 살지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연극이라뇨? 말도 안 되는 얘기였죠.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드는 순간, 시장통 아이들을 모아서 ‘의좋은 형제’ 콩트를 연습시키던 열 살 은영이가 떠올랐습니다. 이어서 파노라마가 펼쳐졌지요. 인생길 곳곳에서 연극이나 공연물을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연출하며 환하게 웃는 은영이가 보였습니다. ‘그래, 그거 할 때 정말 행복했지! 나, 사람들하고 그거 하고 싶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거 한 번만 해보고 죽자! 오늘은 말고, Not today!’ 이성적으로는 납득이 안 되는 선택이었지만 저는 그 길로 연극 교실 수강 신청을 했습니다. 평생 해왔는데 제법 해내고 즐겁기까지 한 그 일을 나이 오십 먹고서 다시 찾아 나선 것입니다. 네, 저뿐만 아니라 우리 6인의 저자들도 그리 말들 합니다, 운명적이었다고요. ‘연극’이란 단어가 참 강한 자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출발 이야기도 궁금해하시면 좋겠네요. 그 이야기들은 책을 통해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연극 배우라는 게 사람들에게 눈 앞에서 바로 보여지는 직업이잖아요. 연극 하실 때 가장 힘드셨던 점은요?

6인의 저자들처럼 관객들 눈앞에 서지는 않습니다만, 제게도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었겠죠? 네, 「강 여사의 선택」을 선택한 이들이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무대 위로 그들을 이끌고 가다 보니 주저앉고픈 순간들이 생기더군요. 앞서 언급했듯이 제 몸이 연습 일정을 소화하기엔 상당히 부실했던 점, 또 경제적 형편이 열악해서 때론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맞나?’ 고민했던 순간도 떠오릅니다. 물론 흘러가는 생각에 불과했네요. 당장 열여덟 명이나 되는 출연진, 그것도 나의 말을 순순히 들어줄 리 없는 50˙60세대 어른들이 제 디렉션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가장 힘들었던 점은 따로 있습니다. 네, 역할 변화에서 온 혼란이 아닐까 싶네요. 제가 배우 분들을 만난 첫 자리가 ‘안 반장’이었어요. 수강생 대표로 활동했거든요. 커뮤니티로 활동할 때도 대표였고요. 2019년에 ‘50 공연집단 달콤2막’으로 확장되면서 비로소 대표직을 내려놓고 연출가로만 결합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배우들과 정서적으로 너무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던 겁니다. 작품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사람’을 먼저 보더라고요. 그들의 속사정과 욕망을 잘 아니까, 자꾸만 배우들이 행복해하는 쪽으로 배려해주는 겁니다. 모두 공연에만 올인하길 바라는 내 욕망과 취미와 친목 정도로만 연극 활동을 바라는 이들의 욕망이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고요. 그런 갈등이 ‘달콤 2막’과 발전적 이별을 가져왔고 그 덕분에 ‘참별난극단 B2S’도 생겨났습니다. 되돌아보니 역시, 고마움으로 기억되는 순간들이네요. 

책은 '강 여사의 선택'이라는 연극을 하셨던 나날들을 엮었다고 하셨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하나만 알려주세요!

이미 2년을 훌쩍 넘긴 과거의 공연인데도 우리에게 남은 기억들은 선명합니다. 「강 여사의 선택」은 2018년 한 해 동안 네 번의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유료 관객은 아니었지만, 배우님들과 제게 관객과의 대면은 매번 긴장과 흥분을 유발하는 사건이었지요. 그런데 두 번째 무대만큼은 달랐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특수 상황에서 공연을 시작했거든요. 

그해에 저희 팀은 지자체 산하의 어느 공연 공간을 안정적으로 대관해서 연습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그곳에서 열리는 지역주민 행사에 「강 여사의 선택」을 올려야 했습니다. 그리 내키진 않았지만, 이것저것 헤아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기왕 생긴 무대니까 신명 나게 놀아보자’는 맘이 생겨서 우린 더 열심을 냈습니다. 리허설도 마치고 이제 공연 직전. 아니 이럴 수가? 객석이 휑하네요. 낯모르는 중년의 남녀가 두리번거리며 착석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지요. 이게 뭔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마을 행사가 이미 연기되었다는 겁니다. 그걸 공연 직전에서야 알려줬다고? 행사 주최 측에 너무나 화가 났지만 정신줄을 붙잡았습니다. 객석엔 무려 여섯 명의 관객이 앉아 있고 무대가 막 열려야 할 타임이었습니다. 저는 당황해하는 배우들을 독려했고 오프닝 음악을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극이 흘러가면서 배우 중 일부가 ‘난 진짜 연기 자체가 좋아. 관객이 몇 명이든 상관없어.’라고 선언하는 듯했습니다. 어떤 이는 온전히 캐릭터만으로 보이기도 했고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혹은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리만치 제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잘해보려고 아등바등 애를 쓴다거나 과하게 몰입해서 예민해진다거나 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무대 위 배우들과 하나가 된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그날의 90분이 제 뇌리에 가장 진하게 새겨진 에피소드입니다. 어쩌면 우리 배우님들도 그날을 특별하게 기억하지 않을까요?



난생처음 무대 위에 올랐던 그때의 감정은 어떠셨나요? 그리고 다른 배우분들과 꿈으로 엮어 쓴 책이 나왔을 때의 감정은 어떠셨나요?

난생처음 무대 연출을 한 건 아니지만, 오로지 연극 자체가 목적인 연출은 처음이 맞네요. 그 이전까지는 제가 늘 특별한 행사나 목적을 위해 대본을 쓰고 연출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강 여사의 선택」 초연 때의 제 감정은... 공연 후 뒤풀이에 가서야 드러났습니다. 그전까지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거든요. 그냥 있어도 허리가 아픈데 음향과 영상 스텝일까지 감당했으니 당연히 몸에 무리가 되었죠. 무슨 일이 있어도 공연 끝까지 버텨야겠기에 매 순간 기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공연장이 연주홀의 성격이 강해서 조명이나 음향기기 사용하기도 좀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들을 통제하는 동시에, 난생처음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을 살피느라 온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3막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커튼콜도 지나가자 그제야 느낌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배우님들과 맥주잔을 부딪치는 순간, 눈물샘이 터졌거든요. 무사히, 정말 무사히 공연을 마쳐서 참 감사했고요. 연출 전공자도 아닌 사람을 믿고 따라와 준 배우들이 고마웠고요. 대본을 쓸 때 꿈꿨던 무대에는 못 미치는 공연을 연출해서 나 자신에게 미안했고요. 그런데도 놀랍도록 멋지게 캐릭터를 표현해낸 배우들에게 고마웠고요. ‘내 발로 들어선 이 길인데 힘들다고 엄살 부려서 쓰겠냐’며 자신을 동여매던 시간에 고마웠고요. 그 모든 감정의 온도는 ‘so hot’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말... 좋았죠. 기막히게 좋았죠. 그날은 출판사SISO의 대표님이 저희 책의 예약판매 사이트 링크 톡을 보내주신 날이었어요. 그것을 본 순간, ‘약속을 지켰다!’ 탄성이 새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우리 저자분들과의 ‘치유적 글쓰기’ 첫 시간에 제가 그랬습니다, ‘난 여러분들을 작가로 데뷔시킬 것이다. 나이 7080이 넘어서도 여전히 글 쓰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다’고요. 그때 제 말을 몇 분이나 진지하게 들었을지. 하하하! 그 약속이 허언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한 순간이니 얼마나 울컥했겠습니까? 

소름 돋을 정도의 설렘도 맛보는 중입니다. 우리 책이 몇 권이나 팔릴지 전혀 모르지만, 독자의 손에 들려있을 우리 책이 상상되어 가슴이 뛰었습니다. 독자와 우리 책이 만나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하하하! 

그런데 가슴이 좀 쓰라리기도 했습니다. 아니, 많이요. 여섯 분의 원고를 살펴보고 이런저런 제안을 넣고 다시 또 살펴주고... 지난한 과정이었죠. 그 시간 속에서 괜스레 가슴에 상처가 난 모양입니다. 그 여정이 쉬울 거라곤 1도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새삼스레 이제 와서...? 이제라도 내 마음 내가 알아주고 쓰라린 속을 들여다 봐주니 좋네요. 내가 내 마음 알아줘야 그게 진짜 위로겠죠?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연극공연의 시장이 많이 침체되어 있습니다. 혹시 지금 작가님께서 코로나 이후 계획하시는 연극이 있으신가요?

암요, 계획이 있고 말고요.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우리 극단은 이미 유료 관객 앞에서 공연을 올렸을 겁니다. 작년 12월 중순에 대학로 소극장에서 창작극 「말괄량이가 길들이기」 1회 공연을 올리긴 했습니다. 아, 셰익스피어님의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영 마음에 안 들어서요, 우리 시대 신중년들의 여성관과 결혼관을 제 시선으로 담아낸 희극입니다….만, 모의 공연에 그치고 말았지요. 저희가 아직 상주 공간이 없어서 연습 장소를 대관해서 쓰는데 코로나 치하에선 안 되네요. 때가 되어 연습이 재개되면 「말괄량이가 길들이기」를 세상에 내놓으려 합니다. 물론 우리 6인의 저자들 모두 참여하는 작품입니다. 제 눈엔 이분들이 참 매력적이거든요. 보통의 중년 여성들인데 반짝반짝 빛나요. 그 빛을 세상에 비치게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소품 하나를 따로 계획 중입니다. 바로 나혜석 님의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나, 혜석」 시대를 앞서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뚫고 나가서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의 말과 글, 그림, 삶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주는 인물이지요. 그분을 아주 멋지게 무대에서 살려내고 싶어서요. 출연진 3~4명의 소품으로 대본을 쓰려고 하고요. 아직 꿈꾸는 단계에 있지만 머지않아 현실로 바꿔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를 읽으실 독자분들 그리고 도전하는 중년 독자분들께 응원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5060 중년이시든, 곧 중년으로 살아야 할 3040이시든 혹은 중년층의 자녀 세대이든, 우선 저희 책을 집어서 펼쳐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요즘처럼 팍팍한 시대에 ‘종이책’을 사서 읽는 당신이 참 귀하게 느껴져서요. 다만 저희의 필력이 너무 부족해서 하고픈 이야기를 제대로 전해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할 따름입니다.  

한국 사회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는 차세대는 바로 ‘신중년’들이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을 통해 그런 신중년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도전의 불씨가 되어주고,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만남과 접촉이 꽁꽁 묶여버린 시대에 행여 혼자만의 외로움과 인생무상의 헛헛함으로 눈물짓는 이웃네들 계신다면, 이 책이 작은 위로와 힘을 전해드릴 수 있길 꿈꿔봅니다. 저희의 허그를 받아주세요

저희 7인의 저자가 참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브라보, 세컨 스테이지!’ 당신의 인생 2막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다음 무대를 응원합니다. 



*안은영

숨길 수 없는 예술가 기질이 있는 건지 대단히 예민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기다려주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다. 특히, 누군가의 눈이 밝아지고 삶이 달라지는 순간, 황홀해 한다. 10여 년 전의 교통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재활 중에 첫 책 『참 쉬운 시 1 - 무명본색』을 펴냈다. 무모하게 도전하고 꿈을 현실화하는 재주 덕분인지, 54세에 치유적 글쓰기 강사, 표현력UP훈련 강사, 연극연출가, 극작가, 초단편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2020년엔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자로 출연했다.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우리는 중년의 삶이 재밌습니다
김영희,마기원,안은영,윤현정,정호정,최상옥,최정주 공저
SI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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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