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한 달 살기』는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그 대답을 찾아 나섰던 독서의 기록이다. 우리는 흔히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삶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일까? 단지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만이 능사였다면 책 읽기가 이토록 막막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에서 한 달 살기』의 저자이자 현재 프랑스에 거주 중인 하지희 작가는 이런 통념을 순순히 따르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고 그게 내게 무엇을 남기는지 지켜보겠다'라는 그녀다운 생각으로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을 느리고 깊게 읽자, 책이 나에게 새롭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마치 든든한 동료나 친구를 얻는 기분을 느끼며 이어 나간 책과의 대화는 어느새 작가에게 고스란히 스며들어 삶 그 자체가 되었다.
책에서 한 달 살기. 한번 듣기만 해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입니다. 간단한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책에서 한 달 살기'는 곧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여러 번 읽으면서 그 문장들을 천천히 몸에 새기기'라고 풀어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은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정해 읽고 또 읽으면, 너덜너덜해진 책만큼이나 읽은 사람도 달라진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주는 1년간의 기록입니다.
해외에서, 그것도 미니밴에서 살게 되면서 강제로 “책 다이어트”를 하셔야 했는데요. 어렵게 택한 한 권 한 권이어서 더더욱 책을 열심히, 어쩌면 저자만큼이나 내밀하게 읽게 된 건 아닐까 싶어요. 그런 과정이 작가님을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한 달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한 책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책이 정말 제 곁을 지켜 주고 있는 것 같아요. 매일 최소한 한 문장이라도 저에게 깊이 와 닿는 문장이 있고, 그럼 그게 제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 혹은 결정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에요. 처음 이런 형태의 읽기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는 제게 한 달 내내 '일단 뭐든 해 보라'고 말해 준 책, 고정된 형태의 노동에서 이탈해 내 몸에 맞는 새로운 노동 방식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제게 ‘모든 노동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해 준 책, 환경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지만 의욕만 앞선 제게 ‘변화하고 소통하는 삶’ 을 알려 준 책. 이 책들이 제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면서 곁에 있었기 때문에 전 이 한 달 살기를 계속 이어 갈 수 있었고, 새로운 노동을 시작할 수 있었고, 남편과 새로운 삶을 꾸리며 생긴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정말 지난 1년은 이 책들이 만들어준 고마운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이 나에게 무엇을 남길까’ 고민하면서도 ‘한 달 살기’ 를 끈기 있게 이어 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 솔직함이 오히려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는 독자분들도 계셨고요. 책 읽기에서도 삶에서도 미지의 것을 계속 시도하고 지속하는 작가님만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책의 본문에도 잠깐 나오지만, 저는 '심심한 시간'을 즐기는데요. 이때 계속 상상을 합니다. ‘이걸 하면 어떻게 될까?’, ‘이 과정을 거치면 난 어떤 모습일까?’ 이렇게요. 몽상하면서 시뮬레이션 하는 게 일상인 거죠.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구체적인 부분까지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하고 저를 밀어붙이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시도했던 일들이, 비록 드라마틱한 결과는 아닐지라도 꼭 무엇 하나는 남겨 주었어요. 생각의 전환이라든가, 새로운 인연이라든가, 사소한 발견이라든가, 반드시 변화는 일어나요.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일단은 시도하고 지속해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책을 읽다 보면 프랑스에서는 “요즘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예요?”,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는 게 유별난 일이 아니라는 내용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요즘 작가님이 빠져 있는 작가나 책은 무엇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은유 작가님의 『다가오는 말들』을 한 달, 아니 두 달째 거의 살다시피 읽고 있어요. 이 책에서 살다 못해 아예 눌러앉고 싶어집니다. 프랑스어로 된 책 중에서는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고요. 아침엔 은유 작가님의 말들과 함께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요, 저녁엔 다니엘 페나크 작가님의 말들과 함께 제 몸의 하루를 떠올려 보는 게 일상이 되었네요.
『책에서 한 달 살기』는 '이렇게 읽으면 이러저러해서 좋으니 따라 해라' 하는 식의 자기계발서의 어법이 아니라, 천천히 깊게 읽기를 시도하는 작가님의 체험이 담겼다는 게 차별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자분들이 특히 어떤 것을 느끼기 바라면서 이런 글을 써 오셨나요?
책에서 한 달 살기의 진정한 기쁨은 정말 해 봐야 알 수 있어요. 저도 해 보기 전까지 이 읽기가 제게 이렇게까지 많은 감정과 변화를 가져다 줄지 전혀 몰랐어요. 여행도 그냥 “너무 좋았어” 하는 후기를 듣는 것과 직접 가서 한 달을 살아 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잖아요. 낯선 여행지가 내 삶 한가운데에 쑥 들어온 느낌, 한 권의 책이 내 삶의 일부가 되는 느낌을 정말 직접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동안 썼던 일종의 ‘책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펼쳐서 제가 얼마나 이 책들과 사랑에 빠졌는지 읽는 분들이 곧바로 느낄 수 있게, 그래서 “아, 이런 사랑이라면 나도 하고 싶다”며 안달이 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독서 그리고 글쓰기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작가님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듣고 싶어요.
책에선 다들 정돈된 언어를 쓰잖아요. 그게 좋았어요. 모든 책이 저와 잘 맞았던 건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을 다듬고 여러 번 살펴서 내어놓은 글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엄청난 만족감을 주더군요. 글을 쓸 때도 내뱉은 말을 다시 살피고 고민해서 정돈된 언어로 바꿔 놓으면 제가 조금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얻을 수 있죠. 이렇게 정돈된 언어에 익숙해지다 보면 모든 시선이 조금씩 정돈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 시선의 끝엔 무조건적인 혐오도, 확고한 불신도, 출구 없는 절망도 없어요. 그저 나와는 다른 사람, 고민해야 할 문제, 숨은 해결 방법만 있을 뿐이에요.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얻게 될 거라고 감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나를 다듬어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래서 매일 정돈된 언어에 빚을 지며 사는 요즘이 만족스럽고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다독하지 않아도, 깊이 천천히 읽어도 충분히 독서의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을 내셨는데요. 책 읽기라고 하면 늘 부담과 죄책감을 떠올리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책은 부담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책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어요. 내 곁에 좋은 사람 하나, 좋은 책 하나만 있어도 삶은 분명 달라져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하지희 대한민국 거제에서 프랑스 오베르뉴까지 11번이 넘는 이사를 거치고도 부족해 매일 이사하는 집에 살게 된 사람. 90년대 한국의 공교육을 받았음에도 왼손잡이를 고수한 고집으로 프랑스로 요리 유학을 떠난 사람.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에서 며칠이고 지낼 수 있고, 대로변 주차장에서도 편히 잘 수 있는 사람. 브런치_ @jeehee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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