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 것이었던가 내 것은 있긴 했나 나는 존재할까.” 보이그룹 에이티즈(ATEEZ)의 리더 홍중은 린킨파크(Linkin Park)의 ‘Numb’의 편곡에 참여하면서 인스트루먼트 안에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간 랩을 만들어 넣었다. 원곡에 비해 “되바라”진 느낌으로 편곡된 이 영상이 게재된 뒤, 린킨파크는 공식 SNS 계정을 통해 홍중의 콘텐츠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리고 린킨파크의 멤버 마이크 시노다는 “홍중의 커버 영상을 봤다. 멋졌다”고 말했다.
원곡자의 칭찬, 그것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린킨파크라는 음악가에게 칭찬을 들은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칭찬은 사실 홍중이 그동안 작업실에서 홀로, 그리고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고뇌하면서 만들어낸 여러 결과물들에 대한 작은 보상에 지나지 않는다. 린킨파크의 ‘좋아요’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곡이 편곡되고 홍중의 입을 통해 불리는 퍼포먼스의 과정이 모두 담긴 ‘Arranged by 김홍중, Oliv, Peperoni / Chorus by 김홍중, Leez’라는 크레디트다. 에이티즈의 스케줄이 끝난 뒤에도 숙소가 아닌 작업실로 향하는 날이 더 많다는 그의 일상이 음악가로서의 홍중을 더욱 발전시키고, 그 발전의 결과는 오롯이 홍중 자신의 것이 된다.
자신이 속한 에이티즈의 묵직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해치지 않으면서 그 안에 숨어있던 스스로를 드러내는 홍중의 모습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아이돌들이 작사, 작곡, 편곡, 나아가 프로듀싱까지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홍중처럼 자신이 어떤 음악을 사랑하고,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영감을 얻는지, 왜 이 음악가의 곡을 커버하는 것인지 정도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Numb’와 같이 유명한 곡을 편곡하면서도 전혀 다른 곡을 듣고 있는 듯한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보다 다채로운 결로 한 곡 안에서 여러 개의 얼굴을 표현해낼 줄 아는 청년, 곧 도래할 미래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더 기대되는 청년. 홍중의 현재는 그렇다. 베이버스 스튜디오와 함께 한 ‘깊은 밤, ATEEZ 홍중과 함께 듣는 지하 작업실 플레이리스트 {MY X SET}’에서 존 메이어(John Mayer)부터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샤이니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 내내 홍중은 자신이 그린 음악의 스펙트럼 안에서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해 운동화 한 켤레를 리폼한다. 마침내 자신이 완성한 작품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으며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 누운 홍중은 여유롭게 주변을 관조하는 듯 보이지만, 온갖 재료들로 난장이 된 세트 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에이티즈의 리더로서, 음악가 홍중으로서의 그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짐작해보게 만드는 이 장면은 눈을 뜨고도 꿈을 꾸는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닮았다.
“드디어 마침표 내 멋대로.” 아직 마침표를 찍기에는 너무 많은 재능을 지니고 있기에 그가 쓴 이 가사에 박수를 치기는 이르다. 다만 스스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나가는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사실, 마침표보다는 언제까지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쉼표가 어울리는 음악가이기를 바라지만.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