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천운영 “음식에 진심인 편입니다”
음식을 해서 누군가한테 먹이는 것과 내가 소설을 써서 읽히는 것이 비슷하다고 느껴요. 소설이라는 게, 내가 먹어보고 눈으로 본 것들이 내 몸을 거쳐서 나가는 ‘무엇’이잖아요. 음식을 하는 것도, 세상에 있는 재료들이 내 손을 거쳐서 먹여주는 거니까 같다고 여겨져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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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예찬』의 저자 브리야 사바랭은 말했다.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그의 말을 소설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인물이 무엇을 먹었는지 살펴보면, 작가가 왜 그 음식들을 호명했는지 생각해보면, 어떤 이야기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방식의 ‘읽기’가 얼마나 흥미롭고 유의미한지, 책 『돈키호테의 식탁』은 잘 보여준다. 소설가 천운영은 『돈키호테』 속의 음식을 따라 감미로운 모험을 떠났다. 400년 전 돈키호테가 먹었던 음식을 찾아 나서며 돈키호테, 산초,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이야기 속으로 깊게 빠져들었다. 그럴수록 소설 『돈키호테』, 스페인, 스페인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게 됐다. 『돈키호테의 식탁』에 담긴 그 순간과 경험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새로운 방식으로 읽는 『돈키호테』’와 만나게 한다. 

2001년 첫 소설집 『바늘』을 시작으로 소설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엄마도 아시다시피』,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생강』 등을 발표한 천운영 소설가는 새로운 여성 미학의 선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3년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스페인에 머물며 『돈키호테』에 매료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스페인 가정식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을 운영했다. 『돈키호테의 식탁』은 등단 21년 만에 처음 선보이는 산문집으로, 소설집 『엄마도 아시다시피』 이후 7년여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음식에 진심인 편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7년 만이에요. 마지막 책이 『엄마도 아시다시피』라는 단편집이었는데요. 그 책을 내고 2년 동안 남극에 두 번 다녀왔고, 스페인에 2년 머물렀고, 그리고 식당을 2년 운영했고, 그 뒤로 또 2년이 지났으니 7~8년 됐죠. 그 사이에 소설을 안 쓰는 대신 굉장히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딴짓을 조금 하다 왔어요(웃음).

딴짓을 하시면서 즐거우셨나요? 조금 초조하지는 않으셨어요?

음... 약간의 초조함이 없었던 건 아닌데 ‘내가 지금 체질을 바꾸고 있구나, 그게 조금 오래 걸리는구나’ 이런 느낌이었어요. 체질과 근육을 바꾸는 것 같은. 처음 남극에 갔을 때는 다큐라는 다른 장르를 하는 맛이 있었고, 스페인에서는 물론 『돈키호테』에 빠져 지냈어요. 거기에서도 배운 게 굉장히 많았어요. 식당을 운영한 것도 체질 변화에 큰 도움을 줬고요. 처음에는 ‘아, 내가 잊히나? 내가 소설가로 살지 않는 게 정말 잘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다가, 오히려 초조함이 사라진 것 같아요. ‘나는 끊임없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도 있고요.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되셨어요?

방식이 달라지고... 제가 등단하고 나서 소설만 열심히 쓰고 다른 건 한 게 없었거든요. 소설만 쓰고 살았어요. 그래서 ‘내가 너무 문학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나?’ 그런 생각들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던 차에 하게 된 외유는 생각과 시각을 달라지게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 시간 동안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문학을 바라보게 되셨을 것 같아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순수 문학의 권위에 저 스스로도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아, 소설은 너무 멋진 거야’ 혹은 ‘소설은 되게 훌륭해야 해’ 이런 압박감에서 자유로워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문학적’이라는 권위에서는 벗어난 것 같아요. 저한테는 참 다행이에요. 그래서 쓰는 것도 되게 자유로워졌어요. ‘이것이 문학적인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고민 없이 편안하게 썼어요. 스스로 질문이 약간 바뀐 것 같아요. ‘이것이 세상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 결국은 같은 질문인데, 느낌으로 표현하자면, 갑옷 같은 걸 입고 있다가 벗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갑옷을 입으면 기사가 돼야 되잖아요. 늘 돈키호테 같다가 산초처럼 돼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돈키호테의 식탁』은 오래 전부터 생각하셨던 책이죠? 동명의 식당을 운영하실 때 이미 출간 계획이 있으셨다고요. 

제가 식당을 하게 되기까지 자극을 준 이야기들인 거죠. 『돈키호테』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 다 들어 있어요. ‘소설 『돈키호테』에 나온 음식을 찾아가야지’ 해서 스페인을 헤매게 된 것이 이 책 때문인 거예요. 그러다가 식당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고요(웃음). 처음에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말라가에 있을 때, 그때 갖고 간 책이 『돈키호테』였어요. ‘스페인 하면 『돈키호테』 아니야? 내가 안 읽어봤으니 읽어봐야지’ 하고 가지고 간 거예요. 아시다시피 『돈키호테』는 두꺼운 책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읽다 보니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중간 중간 음식 이야기가 나오는데 먹어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음식들을 찾아다니다가, 작정하고 몇 개월은 음식과 세르반테스 문학 기행을 다니고... 그러다 보니 책이 나오기까지 6년이 걸렸어요. 

소설에 나오는 음식을 찾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말라가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려고 동네 아주머님들하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돈키호테』를 읽었고, 그러다가 소설에 나오는 음식을 찾아다녔어요.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다음에는 원서와 번역본을 놓고 음식이 나온 부분만 찾아서 리스트를 만들었어요. 음식 이름만 뽑아내는 데 1년이 걸렸어요. 그리고 비슷한 음식을 찾기 위해서 구글에서 식당 검색해서 메뉴판을 확인하고 찾아가서 먹어봤어요. 그렇게 1년 동안 한 거예요. 제가 식당을 운영하는 동안에는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일부를 <경향신문>, <한국일보>에 연재했고요. 그 칼럼을 쓸 때 항상 ‘돈키호테의 음식’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렇게 자료 조사 2년, 스페인 떠돌아다닌 거 2년, 식당 하면서 연재한 2년... 6년 만에 나온 책이에요. 

정말 열정적이셨네요! 워낙 ‘음식에 진심인 편’이셔서 그랬을까요(웃음).

네, 음식에 진심이죠(웃음). 맛있겠다고 생각되는 건 먹어봐야 되는 스타일이라 (소설 속 음식이) 너무 먹어보고 싶었어요. 스페인도 너무 좋았고, 그렇게 만나는 새로운 음식도 너무 좋았고, 돈키호테도 너무 좋았어요. 실은 돈키호테보다 산초가 더 좋았죠. 너무 멋있는 사람이에요. 

돈키호테보다 산초를 더 좋아하시는 게 책에서도 느껴져요(웃음). 

산초가 훨씬 더 좋아요(웃음). 미식가이고, 매력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돈키호테』를 그냥 모험의 대명사, 엉뚱한 짓 하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는 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와 함께 근대문학, 현대문학을 만든 양대 산맥이거든요. 이후의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두 작가의 작품에서 벗어난 것이 없다고 단언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모든 인물 유형들이 다 들어 있어요. 정말 위대한 소설인데, 요즘 사람들은 『돈키호테』를 모르잖아요. 그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소설 『돈키호테』도 알리고 싶고, 내 사랑 산초도 알리고 싶고(웃음), 그런 욕심이 있었죠. 이 책이 그냥 음식 산문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세르반테스와 ‘유럽 맛집 지도’

작가님이 보시기에 돈키호테와 산초는 어떤 인물인가요?

돈키호테는 모든 여자들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제가 생겨요(웃음). 말로만 ‘둘시네아만 사랑해’라고 하고, 머릿속으로는 ‘저 여자가 또 나한테 빠졌군’ 이러면서 ‘그러지 마시오’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조금 우울한 스타일이죠. 햄릿에 더 가까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기사의 삶이란 무엇인가, 이런 진중한 고민들을 하는 사람이에요. 산초는 재담가, 입담가, 그리고 촌철살인의 대명사죠. 책에도 산초의 어록은 따로 모아놨는데, 어록들 중에 반도 안 될 거예요. 음식에 관련된 말들만 뽑았어요. 산초는 말도 정말 잘하고, 또 와인 맛을 기가 막히게 잘 아는 소믈리에죠. 냄새만 맡아도 “이 포도주 시우다드 데 레알산 아닌가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순정파예요. 훌륭한 총독이기도 했고요. 두뇌가 명석해서, 상상하는 일에 있어서는 돈키호테랑 대결했을 때 훨씬 더 뛰어나요. 소설가가 됐으면 지금 대박났을 거예요(웃음). 

산초에 비하면 돈키호테에 대한 평가는 조금 야박하신 것 같은데요(웃음).

그렇죠(웃음). 야박한 이유가 있어요. 마지막에 모험을 다 하고 돌아왔을 때, 어쩔 수 없었겠지만, 자신이 미치광이 기사로 살다가 이제 제정신이 돌아와서 그냥 시골 양반으로 돌아와 죽는다고 하거든요. 자신의 일생을, 그 아름다운 모험을 완전히 부정하고 죽는 거죠. 여기에는 작가의 의도가 있는데, 검열이 있을 당시여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소설 『돈키호테』에서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이유도,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한테 핍박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이 출간되지 못할 수도 있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조금 안타깝기도 해요. 그러나 돈키호테는 사랑에 관련해서는 최고의 로맨티시스트죠. 가장 아름다웠던 문장이 있잖아요. “실제로 고귀하다고 상상하고 믿는 것.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세르반테스에 대해서는 “오 세르반테스여! 어쩜 이리 복잡한 서술 구조를 가진 소설을 400년 전에 쓰셨단 말입니까!”라고 하셨어요. 

서사 구조가 너무 놀라워요. 옛날 소설에서는 작가가 마치 신이 말하듯이 쓰는데 『돈키호테』는 감춰진 작가, 화자가 있잖아요. ‘사실은 이게 아랍의 작가가 쓴 역사서이고, 내가 그 책을 번역가한테 맡겨서 번역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로 만들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그렇게 1부가 끝이 나고 2부에서는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걸어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보는 상태가 됐어’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요. 진짜 천재예요. 지금도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만들려면 힘이 들 텐데, 400년 전이잖아요. 세르반테스의 훌륭함에 대해서는 두말 할 필요가 없죠. 이 책을 쓰면서 저의 욕심이 있었다면 ‘『돈키호테』라는 좋은 작품에 음식으로 조금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맛을 가진 이야기라는 것이 더 잘 와 닿았으면 좋겠다’라는 거였어요. 그러기를 바라죠. 

이런 문장도 있죠. “세르반테스는 분명 음식에 관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 분명하죠. 『돈키호테』에서 키테리아와 카마초의 결혼식 장면만 보더라도 두세 페이지에 걸쳐서 음식 이야기를 해요. 과장도 심하죠. 느릅나무를 통째로 잘라 꼬챙이를 만들었고, 송아지 배 속에 어린 새끼돼지 열두 마리를 넣었고, 치즈가 벽돌처럼 쌓여 있었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한가요(웃음)? 

그러니까요(웃음).

그리고 처음에 돈키호테라는 사람을 표현할 때, 돈키호테가 되기 전에 이 시골 양반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주일치 식단을 자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세르반테스는 음식에 관심도 많고, 그걸로 이 사람을 표현해야겠다는 목적이 분명히 있었던 거죠. 산초가 바라토리아라는 섬의 총독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봐도, 주치의가 이 음식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음식은 저래서 안 된다고 하다가 결국 시원찮은 음식을 주거든요. 그때 ‘산초가 정말 맛있게 먹었다’라고 하면 될 걸 “밀라노의 자고새나 로마의 꿩, 소렌토의 송아지고기, 모론의 메추리 고기, 라바호스의 거위 요리가 나온 것보다도 더 맛있게” 먹었다고 썼어요. 세르반테스는 유럽의 맛집 지도를 알고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완전히 미식가이고, 음식에 관심이 정말 정말 많은 사람이었어요. 

‘키테리아와 카마초의 결혼식’에 대해 쓰신 꼭지에서 ‘오빠의 결혼식과 홍어’의 기억을 떠올리셨는데요. 음식으로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예를 들면, 저는 딸기 향 쮸쮸바 냄새가 나면 ‘아, 여름이구나’ 하거든요. 그런데 어떤 날에는, 너무 더워서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옆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머릿속에서 쮸쮸바 향이 나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러면 한여름에 먹는 쮸쮸바의 시원한 느낌이 살짝 돌아요. 음식이 그런 연상 작용을 강력하게 해주죠. 첫사랑의 기억도 그렇잖아요. 같이 먹었던 음식과 같이 갔던 장소가 기억나잖아요. 음악도 ‘그때 흐르던 음악인데’ 하고요. 음식도 비슷한 것 같아요. 흐른다, 풍긴다 등등이 되게 미세한 단어인 것 같은데 음식으로 더 강력하게 다가오기도 하죠.

 


음식, 과학, 소설의 공통점

『돈키호테』 속의 음식을 찾아 여행하시면서, 소설뿐 아니라 스페인도 더 알게 되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냥 여행을 하는 거랑은 정말 다르죠. 인생을 사는 데에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잖아요. ‘네가 뭘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알려줄게’라는 유명한 말처럼, 먹으면서 스페인을 배웠죠. 그것보다 더 재밌었던 건, 새롭게 만난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요리를 가르쳐줄 때였어요. 『돈키호테』를 빌미로 요리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배웠거든요. 보통은 여행 다니면서 그렇게 하지 않잖아요. ‘할머니, 어떤 음식 해주세요, 가르쳐주세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도 좋았어요. 그렇게 찾아서 맛보고 알게 되면서 소화를 시킨 느낌이에요. 피부에 와 닿은 걸로 느낀 게 아니라 소화시킨 느낌.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이, 소설을 쓰고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세요?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음식을 해서 누군가한테 먹이는 것과 내가 소설을 써서 읽히는 것이 비슷하다고 느껴요. 소설이라는 게, 내가 먹어보고 눈으로 본 것들이 내 몸을 거쳐서 나가는 ‘무엇’이잖아요. 음식을 하는 것도, 세상에 있는 재료들을 내 손을 거쳐서 먹여주는 거니까 같다고 여겨져요. 똑같은 재료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음식을 만들잖아요. 음식의 성향도 달라지고. 그런 점도 소설과 닮은 것 같아요. 

『돈키호테의 식탁』과 함께 또 다른 산문집(『쓰고 달콤한 직업』)이 나왔습니다. 등단 21년 만에 처음으로 산문집을 출간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제가 7년 동안 책이 안 나오기도 했고, 그동안 몸도 체질도 바뀌었고, 그 상태에서 여태까지는 소설만 쓰다가 산문을 내는 거라 첫 책을 냈을 때만큼 설레요. 그러니까, 첫 책 낸 사람 같아요. ‘어떻게 읽힐까’ 하는 느낌으로 설레고, 좋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요. 가장 지배적인 기분은 이제 막 등단한 새내기 작가 같은 느낌이라는 거예요. 첫 책 『바늘』이 나왔을 때는, 두렵기는 했지만, 훨씬 더 용감하고 훨씬 더 아무것도 몰랐거든요(웃음). 그때 제가 서른 살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소설은 잘 빚은 이야기들을 내는 것 같다면, 산문은 저의 날 것을 다 보여주는 느낌이 있어요. 어떤 의미로는 그래서 자신감이 붙었어요. 소설에서는 내 이야기인데도 아닌 척 하는 게 있는데, 이번 산문집은 그렇게 안 했죠. 그래서 마음에 들기도 하고,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많이 설레네요. 

두 권의 산문집을 보시고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내가 보기에도 체질 개선이 됐구나’ 싶으셨어요?

체질 개선이 되기도 했고... 그보다는 이런 거예요. 편안해졌어요. 만들어진 문장이 전혀 없고 그냥 흘러나온 문장인데, 그러기 위해서 노력을 했어요. ‘쌓고 쌓아서 그대로 우러나오는 문장을 체로 거르듯 걸러서 내자’, ‘고민하지 말고 쌓을 때까지 기다리자’ 하고요. 그게 6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칼럼으로 연재할 때도 뭘 써야겠다거나 멋지게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나한테서 나오는 문장이 바로 내 문장이야, 내 몸의 문장이야’라는 걸 믿고 아주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썼어요. 처음에 이야기했던, 소설이라는 것 때문에 긴장했던 어떤 것이 없어졌다는 의미에서는 훨씬 더 좋죠. 이 산문집은 훨씬 더 편하지만, 내 문장이지만, 꽉 채운 문장이 아니라 꽉 차서 흘러나온 문장들인 거죠. 

『돈키호테의 식탁』과 『쓰고 달콤한 직업』의 결이 사뭇 다른 것 같아요. 두 책을 같이 읽으면 작가님의 세계를 더 촘촘하게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정말로 그래요. 『돈키호테의 식탁』은 소설 『돈키호테』를 음식으로, 그리고 돈키호테와 산초에 대한 저의 사랑으로 읽으면서 경험한 음식, 스페인, 추억에 대한 것들이 다 합쳐진 결이라고 할 수 있고요. 『쓰고 달콤한 직업』은 식당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식당을 하면서 느낀 것들, 자영업자로서 힘들었던 것, 그런 제 삶의 기록이 더 많이 나와 있어요. 훨씬 더 현실의 저와 생활과 사람들, 음식과 삶의 이야기가 많은 거죠. 그런데 그 이야기만 읽으면 ‘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된 거지?’ 궁금하실 수 있어요. 그럴 때 『돈키호테의 식탁』을 읽으시면 ‘아, 이런 경험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돈키호테의 식탁』에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되게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 점에서 두 책의 이야기가 합쳐지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아요. 

작가님의 소설은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요?

식당을 그만두고 2년 동안 장편 연재를 했어요. ‘폐업일기’라고 문학동네 계간지에 연재했는데, 책으로 묶지는 못했고 고민을 했죠. 지금 많은 식당들이 폐업을 하고 난리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폐업에 이르는 과정을 여러 각도의 이야기로 썼는데,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넘치지 못하는데 억지로 퍼서 쓰고 있구나’ 싶어서 묵혀두고 있어요. 다음 책은 그동안 틈틈이 썼던 단편들과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 후보에 올랐던 소설(「아버지가 되어주오」)을 묶어서 10월쯤에 내려고 해요. 원래 목표는 ‘세르반테스 문학기행’까지 해서 올해 12월까지 4권을 내는 거였는데, 11월에 남극으로 떠나는 일정이 잡혀서 조금 미뤄질 것 같아요. 일단 올해 단편집이 나오고, 내년에 ‘세르반테스 문학기행’과 장편이 나올 것 같고, 이제 시동 걸기 시작했으니 더 많이 쓸 것 같아요(웃음). 

현재 진화생물학 연구를 하고 계시잖아요. 남극에도 연구차 가시는 거고요. 생물학 연구는 소설 쓰기와 완전히 다른 일 같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제가 깨달은 바로는 과학 하는 과정과 소설 쓰는 과정이 같아요. (과학은) 동물과 환경을 관찰하고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거지? 왜 이런 유전적 특징을 갖게 된 거지?’라는 질문을 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해서 어떤 결과를 얻는 거거든요. 소설은 ‘저 사람은 왜 저래? 저 관계는 왜 저래?’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요. ‘사람이 이래서 그런가 봐, 세상이 이래서 그런가 봐’ 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하고, 그런 장면을 글로 써서 어떤 결론을 내리는 거예요. 이 과정이 소설 쓰기와 과학 하는 방법이 같아요. 특히 동물 행동학은 그렇거든요. 과정이 너무 재밌어요. 거기에 ‘과학적’이라는 말이 붙는 건데, 지금은 그 방법론에 빠져 있어요. 그리고 소설은 책상에서 쓰는데 연구자는 필드에 나가잖아요. 필드에서 자연, 동물하고 교감하는 순간이 너무너무 짜릿하다는 걸 배웠어요. 7년 전부터 언젠가는 필드에서 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천생 소설가예요

식당 운영하실 때 인터뷰하신 기사를 봤어요. 너무 문장이 쓰고 싶어서 괴로울 정도라고, 깊은 그리움을 나타내셨는데요. 다시 쓰기 시작하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다시 식당하고 싶더라고요(웃음). 몇 달 쉬면서 몸을 추스르고 나니까 식당 운영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스페인에 가서 김밥 장사를 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요(웃음). 그런데 천생 소설가예요. 소설을, 이야기들을 쓰고 싶어요. 제가 30대라면 빨리 성공하고 싶고, 사람들한테 팔리고 싶고, 이런 마음이 있을 텐데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를 더 정확히 찾아내고 표현하자’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금 더 느긋해졌어요. 나이가 드니까 예전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60세까지는 머리가 선명할 것 같아요. 앞으로 10년은 열심히 써야죠.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2권을 마무리하고 한 달 뒤엔가 죽었거든요. 죽는 순간까지 썼다는 이야기죠. 그게 소설가한테는 가장 큰 목표, 꿈이 아닐까요? 죽는 날까지 소설을 쓸 수 있는 것.

계속 새로운 길을 가시는 것 같아요. 식당 운영도 그렇고, 진화생물학 연구도 그렇고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건 모험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용기가 필요하죠. 무모하죠. 그래도 비겁한 것보다는 낫다고, 돈키호테가 말하잖아요. “모험에 도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모자란 것보다는 지나친 편이 낫다고. 소심하고 겁쟁이 기사라는 말보다는 겁도 없고 무모한 기사라는 말이 훨씬 듣기 좋지 않냐고.” 돈키호테는 참 멋진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이 결코 우왕좌왕하는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전혀 다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모험이 아니라 시도와 모색은 용기 있게 끊임없이 하자고 생각해요. 제가 겁이 많은데 이제는 겁이 안 나요. 자영업자도 해봤잖아요(웃음). 영화 <극한직업>에도 그런 말이 나오잖아요. 자영업자들은 목숨 걸고 한다고(웃음). 자영업자까지 거쳤으니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웃음). 그런 생각을 해요. 

작가님이 다방면으로 시도, 모색하시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소설, 글로 꿰어진다고 생각하세요?

맞아요. 그냥 저는 소설가예요. 식당을 해도 여전히 몸은 소설가여서 글 쓰고 싶어 미치겠고, 이야기 생각하고, 사람들 관찰하는 거죠. 소설을 안 쓰고 있었지만 소설가가 아닌 삶을 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남극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게 다 궁극의 소설을 향한 모험 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어떤 권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없고 ‘요즘 사람들이 이런 소설을 쓰니 나도 이렇게 써봐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없어요. ‘내가 소화한 이 세상의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세상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해요. 그렇게 중심을 잡게 만드는 것이 소설이기도 하고요. 저의 목표는 눈치 안 보고 끝까지 소설 쓰는 것,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에요. 

소설가로서의 목표를 말씀해주셨는데요. 처음 등단하셨을 때는 어떠셨어요? 30대의 신인이었을 때 가졌던 목표는 지금과 달랐나요? 

그때는 소설가가 되고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지만, 내가 왜 소설을 쓰고 싶은지 몰랐던 것 같아요. 처음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진짜 소설을 쓰고 싶나? 딱 10년만 해보자, 그때도 쓰고 싶은 게 맞다고 생각되면 그 뒤로 10년 더 하고 그때 안 되면 그만두자’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 서울예대 문창과를 갔고, 소설 쓰겠다고 했을 때부터 등단하기까지 5~6년이 걸렸죠. 등단하고서는 열심히 쓰면서 ‘내가 정말 소설을 쓰고 싶은 거야?’라는 질문 자체를 안 했어요. 그냥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된 거죠. 그런데 최근 5~6년 동안 소설을 안 쓰고 쉬면서 ‘내가 정말 소설을 쓰고 싶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것이 소설이었구나, 나한테 소설이란 ‘무엇’이구나, 내 마지막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등등으로 삶의 목표가 조금 더 명확해졌어요.  

그 과정에 『돈키호테의 식탁』가 영향을 미치기도 했나요?

『돈키호테』 덕분이에요. 세르반테스 덕분이고. 이 책에 담긴 건 돈키호테의 식탁이면서, 산초의 식탁이면서, 결국은 세르반테스의 식탁인데요. 세르반테스가 차려놓은 돈키호테의 식탁이 사람들한테 모험과 용기 같은 걸 줬으면 좋겠어요. 그걸 거쳐서 자신을 잃지 않는 삶,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삶을 배웠으면 좋겠고요. 




*천운영

천운영은 1994년 한양대학교 신방과를 졸업했으며 1997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현재 고려대 국문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지난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늘」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1년 제 9회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같은 해 등단작을 표제로 한 소설집 『바늘』을 출간했다. 2004년 소설집 『명랑』을 출간했고, 지난해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를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문단의 전면을 장식하며 등장했던 일군의 여성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작품 세계와 작가관을 선보여 새로운 여성 미학의 선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신동엽창작상, 2004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돈키호테의 식탁
돈키호테의 식탁
천운영 저
arte(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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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