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지 않은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내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주어진 상황에만 만족하는 세계에서 한 발짝 나와보면 이제까지와 다른 풍경이 보인다. 자신의 감정을 대충 처리해버리지 않을 때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너무 쉽게 만족하거나 빨리 체념하는 습관 때문에 잘못 내린 선택이 없었는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할 때 더 나은 모습이 되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사랑을, 인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한 번이라도 알게 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정문정 작가의 책 『더 좋은 곳으로 가자』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정문정 작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아시아 전역의 독자들에게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귀띔해주신 분입니다. 자꾸만 금 밟고 선 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요령’을 알려주셨죠. 이번에는 한 발 더 나아가 ‘무례한 세상 속에서 나를 키우는 요령’에 대해 쓰셨습니다. 신작 『더 좋은 곳으로 가자』로 돌아오신 정문정 작가님입니다.
김하나 : 첫 번째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너무 잘됐지 않습니까?
정문정 : ...네. (웃음)
김하나 : 아시아 6개국에서 출간이 됐잖아요. 지금 코로나 시대가 아니면 각 지역 돌면서 인증샷도 찍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안타깝습니다.
정문정 : 네, 뭐... 운이 좋아가지고 잘됐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좋은 반응들이 아시아 각국에서부터 오고 있나요?
정문정 : 좋은 반응들이라기보다는, 저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조금 반응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데서는 아무래도 우리랑 많이 상황이 다르니까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너무 나간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예상했어요. 그런데 온라인으로 만나보면 많이 공감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김하나 : 그것은 어떤 사실을 반증하느냐면 ‘무례한 사람은 어디나 있다’라는 것이죠. ‘무례한 사람에게 화내거나 울지 않고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 대한 책이었는데요.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 반응을 바탕으로 두 번째 책을 쓸 때는 살짝 부담감에서는 조금 벗어난 채 글을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워낙 전작이 잘 됐고 그걸로 인해가지고 입지도 많이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첫 번째 책과 두 번째 책과 사이에 작가님 개인적으로도 큰 변화 작은 변화들이 아주 많이 있었잖아요. 두 책을 쓰실 때 작가님의 어떤 차이점이라든가 글을 쓸 때 느낌 태도 등등의 차이는 어떤 게 있었을까요?
정문정 : 사실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같은 경우에는 제가 회사를 다닐 때 썼던 책이죠.
저는 항상 어떤 글을 쓸 때 제가 고민하는 주제와 그리고 그 전과 지금의 제 모습이 격차가 조금 많이 날 때, 그래서 그 격차 사이에서 제가 어떤 것들을 새롭게 발견했을 때 거기에서 글감을 찾아내는 편인데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같은 경우는 제가 팀장이 됐기 때문에 썼던 글이에요. 오히려 제가 팀원으로만 계속 있었다면 쓰지 않았을 거예요. 팀장으로 제가 무례한 사람이 되어 가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무례한 사람이라는 게 굉장히 극소수의 원래부터 이상했던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나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이 되고야 말겠네’라고 느끼면서 그 격차를 보면서 썼던 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면 덜 무례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라는 것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었고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정말 싫어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팀장임에도 불구하고 또는 내가 어떤 리더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덜 망가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했던 것이고요.
김하나 : 저는 막연히 생각할 때 팀장이 되시기 전에 쓰시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대처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부분부터가 조금 의외였네요. 무례한 사람이 내가 되어 갈 수도 있고 어떤 장면에서는 ‘내가 이미 무례한 사람이 된 거 아닐까?’라는 어떤 위기감 때문에 쓰셨다는 말씀인 거죠?
정문정 : 네. 저는 어떤 글감을 제가 제 안에서 길어 올릴 때 제가 지금 너무 현재자적 위치에 있으면 쓰지 않아요. 왜냐하면 거기에서는 제가 볼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고, 또는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미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제가 갑질을 정말 많이 당했어요, 제가 너무 힘들었습니다’라는 관점에만 제가 있을 때는 오히려 쓰지 않고 그때는 오히려 그 글을 많이 쓰지 않았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같은 경우에는 제가 팀장이 된 후에 거의 썼던 글이에요.
김하나 : 그렇군요. 그러면 『더 좋은 곳으로 가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정문정 : 일단은 돈을 번 뒤에 썼고요. (웃음)
김하나 : 아, 이제 조금 편안해졌다, 삶의 여러 가지 것들이 억울함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는 마음적 효과가 있었다. (웃음)
정문정 : (웃음) 일단은 소위 말하는 베스트로 작가가 된 다음에 썼고 어떤 안정을 가진 다음에 쓴 책이죠.
김하나 : 그 전에는 매일 매일의 회사 생활에 대해서 계속 대처해 나가야 되는 것이고 그랬는데 조금 달라진 거네요.
정문정 : 네. 매일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된 거죠. 그게 저에게는 너무 큰 어떤 정서적인 충격이 있었어요.
김하나 : 퇴사를 하신 건 언제쯤이죠?
정문정 : 2018년 가을에 퇴사를 했어요.
김하나 : 2018년 가을에 퇴사를 하셨고 이 책이 2021년에 나온 거죠?
정문정 : 네, 이 글을 2020년에 대부분 썼죠. 이전 책 같은 경우에는 제가 팀장이 되고 나서 ‘팀원일 때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것에 대해서 주로 썼다면 『더 좋은 곳으로 가자』는 내가 어쨌든 더 이상 너무 돈에 전전긍긍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그리고 조금 더 가해자의 입장이 더 될 수밖에 없고 더 갑질을 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제가 엄마가 된 다음에 ‘내가 정말 이 아이가 상처주기가 너무 쉽겠네’라는 생각들을 계속하면서 보이는 세상들이 있었습니다. 그 세상에 대해서 썼어요.
김하나 : 우리가 아까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 <측면돌파>라는 이름이 참 마음에 드신다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죠?
정문정 : 제 인생 자체가 측면 돌파인 것 같다고 말했죠.
김하나 : 그런데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님이야말로 정말 정면 돌파해 온 인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부터 여쭤볼게요. 작가님은 대학을 경상도에서 나오셨어요. 학교 졸업 후에 갑자기 50만 원과 트렁크 하나를 들고 신촌의 고시원으로 로켓이 날아가듯이 날아와 버렸습니다. 어떤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었잖아요? 도대체 무슨 용기였습니까?
정문정 : 일단은 인턴에 합격해서 왔고요.
김하나 : 50만 원을 들고 오셔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셨다는 거군요. 그런데 처음 도착하셔가지고는, 내가 경상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가 서울로 왔을 때는, 터전이 닦여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 오는 거잖아요. 이제 적응을 해 나가야 될 텐데, 그때 내가 갖고 있는 열등감 같은 게 어떤 때는 그 상황이 바뀜으로 인해서 더 대비돼서 폭발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시기가 있지 않았나요?
정문정 : 저는 그 전에 궁금한 게, 하나의 작가님은 처음에 서울에 왔을 때 어떤 게 가장 충격이었어요?
김하나 : 저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공감을 되게 많이 한 게, 제가 너무 쭈글한 거예요.
정문정 : 아, 쭈그리였다. (웃음)
김하나 : 적응도 못하겠고, 다른 사람들은 너무 세련되고 여유로워 보이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위축돼 있고 종종 거리고 가난하고...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눈치를 진짜 많이 보면서 지내게 됐던 것 같아요.
정문정 : 맞아요. 저는 처음에 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잡지는 가장 최신의 것, 가장 새로운 것이 언제나 시작되는 곳인데 저 같은 쭈그리는 기획 회의에서 나오는 것들의 절반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김하나 : 다른 사람들이 ‘이 정도는 다 알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하는 것도 나는 모르겠고, 무슨 마음인지 알아요.
정문정 : 네. 상상마당이 어쩌고 이런 말들을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죠. 그래서 회의를 하고 나올 때 항상 이만큼씩 적어서 나중에 꼭 검색을 했죠. 상상마당이 어떻고 가로수길에 뭐가 있고, 어떤 브랜드들도 하나도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바보가 된 것 같은... (웃음)
김하나 : 진짜 더더욱 그랬겠어요. 갑자기 잡지사로 왔을 때.
정문정 : 네. 그리고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끝발이 살지 않는 거죠. 그래서 참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한참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따라잡아봤자, 물론 열심히 따라잡기도 했지만, 소위 말하는 최신의 문화 같은 것들을 많이 경험하려고 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 ‘이걸로 내가 승부를 볼 수는 없겠다’ 이런 고민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아까 ‘측면 돌파가 제 인생의 모토 같은 거였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항상 그런 게 있어요. ‘이게 나한테 유리할까?’를 생각해 봤을 때 유리하지 않으면 항상 방향을 조금 트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서울 것들이 서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들은 제가 아무리 해도 따라잡을 수 없으니 (웃음), 오히려 조금 더 넓은 방향에서 20대 아이들의 어떤 고민 이런 것들, 꼭 서울 아이들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 또는 지방 아이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어디나 쭈그리들이 있다, 쭈그리들이 내 말을 들어줄 것이다.
정문정 : 네, 쭈그리들을 타겟으로 했죠. 잡지라는 건 굉장히 재밌는 플랫폼인 게, 보통 상위 5%~10% 정도를 타겟으로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언제나 새로운 것들, 가격은 미정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저는 오히려 대중적인 고민들을 다루기 시작했어요. 연애나 젊은 세대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들, 내가 무언가를 할 때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느끼는 경험들, 아니면 뭔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을 많이 다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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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