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이 시들하다면 ‘먹책’은 어떠한가? MZ 에디터 6인이 벌인 소규모 ‘먹책’ 추천 챌린지.
김수연(민음사)
1990년생. 맛집과 먹는 일에 진심인 직업 만족도 200% 실용서 편집자. 『파스타 마스터 클래스』, 『미완성식탁 마카롱 수업』, 『아메리칸 청크 쿠키』, 『그 조리법, 90%의 영양소를 버리고 있어요』 등을 만들었다. 지금은 세미콜론에서 트렌디한 책으로 독자의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선물하고자 행복한 피땀눈물 중이다.
허윤선 지음│세미콜론
뭐든 약간 미쳐야 인생이 재밌어진다. 띵 시리즈는 그래서 재미있다. 광인들의 지독한 사랑 한 페이지를 맛보는 기분이란. 그 광기는 『훠궈: 내가 사랑하는 빨강』에서 정점을 찍는다. 침투력이 얼마나 좋은지! 책에서 시킨 대로 일사불란하게 소스를 만들고 채소를 넣는 나를 발견한다. 새벽 4시 45분에 마감으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훠궈집으로 차를 돌리는 장면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하이라이트. 노동으로 절여진 정신과 육체를 깨우는 최애 음식을 먹으며 ‘아, 이래서 내가 이 미친 세상에서 살아가는 거’라고 가슴을 치는 당신에게 부디 이 진심뿐인 훠궈 세레나데가 닿기를.
김소정(위즈덤하우스)
1986년생. 춤, 술, 그림을 좋아하는 북 에디터. 끼와 흥을 억누르며 『아이를 위한 하루 한 줄 인문학』, 『아이 마음을 읽는 단어』, 『초등 1학년 필수 어휘 100개의 기적』, 『고양이에게는 하루 1시간 놀이가 필요해』 등을 열심히 만들어왔다. 분야 불문, ‘떡상하는 무언가’를 기획하고 싶다.
조영권 지음│이윤희 그림│린틴틴
표지에서 내 눈이 오래 머무른 곳은 ‘피아노 조율사의 경양식집 탐방기’라는 부제. 예전부터 ‘조율’이라는 단어는 참 발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왔는데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경양식’까지 더해지다니. 몸도 마음도 헛헛했던 어느 3월의 주말, 웅크린 채 옆으로 누워 킬킬거리며 단숨에 다 읽었다(생각해보니 이날도 배민으로 돈가스 시켜 먹었다). 가게 풍경, 맛과 플레이팅까지 묘사한 한 줄 한 줄을 읽어나가며 활자가 그리는 먹방에 빠져들었다. 아, 얼마 전 친구가 일산의 한 경양식 돈가스집을 알려줬었는데. 바쁜 일 마무리하면 퇴근길에 꼭 그곳에 가서 내 영혼과 위장을 조율하고 싶다. ‘응팔’의 정봉이가 함박스테이크에 총각김치 겹쳐 썰어 먹듯, 돈가스 한 점에 깍두기 올려서. 경양식 돈가스에 맵지 않은 오이고추를 곁들여도 기가 막히다.
전해인(웅진지식하우스)
1986년생.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 『오늘도 약을 먹었습니다』, 『더 라스트 걸』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기획·편집했다. 둥지를 옮겨서 일한 지 한 달 반 됐다. 작가, 독자, 나무 앞에서 덜 부끄러운 책을 만들고 싶다.
이밥차 요리연구소 지음│그리고책
서른이 훌쩍 넘도록 내 손으로 요리 한 번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요리에 취미가 없었고, 부모님과 계속 함께 살아서 요리할 기회도 별로 없고… 다 핑계다. 몸이 독립하기 전에 내 먹거리는 내가 챙기며 정신적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온라인 서점에서 요리책을 찾았다. 부끄럽지만 이 책을 보고 난생처음 따라 한 요리가 김치볶음밥이다. 밥숟가락 계량이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어서 좋았다. 고추장(1), 참기름(0.5) 식으로 표기되어서 직관적인 확인이 가능했다. 그 뒤로도 책을 뒤적이며 몇 가지 요리를 했고, 친절한 레시피 덕분인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만들어 냈지만 아직도 서툴다. 누구에게나 초보는 있는 법이니까. 늘 덜 서툰 삶을 꿈꾼다. 일이나, 요리나.
인수(유유)
1994년생. 유유의 막내 편집자. 터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이런저런 책들을 준비하는 중. 하나부터 열까지 골몰해야 하는, 책을 만드는 이 지난한 과정이 퍽 근사하다고 생각하며 기껍게 일하고 있다.
박누리 지음│맛있는책방
왜 하필 나는 고수를 제일 안 먹고 안 좋아하는 이 나라에 태어났나, 나는 잘못 태어났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의 고수』를 만나고, 나는 조금 덜 외로워졌다. 나만 맛있는 게 아니었다! 고수 앞에서 잔뜩 일그러진 사람들의 표정을 마주하고, 쭈뼛거리며 “고수 조금만 더 주실 수 있을까요?” 읍소하던 날은 이제 안녕이다. 내가 그러했듯 이 책을 따라 다양한 메뉴에 고수를 얹으며 세상의 모든 고수 러버들이 풍성하고 행복한 고수 라이프를 꾸려갈 수 있길, 그리하여 고수가 온 동네 마트 야채 코너에서 상추와 깻잎 옆에 당당히 자리하는 그날이 오길 기도한다.
윤지윤(웅진지식하우스)
1990년대생, 3년 차 에디터. 마감하고 마시는 소주의 맛, 보도자료를 쓰면서 마시는 맥주의 맛을 위해 매번 힘든 마감을 이겨낸다. ‘책장위고양이’ 시리즈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작업했고, 최근에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 공부의 기술』을 참 열심히 만들었다. 동시대 독자들에게 색다른 웃음과 경험, 그리고 새로운 고민을 전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
김혼비 지음│제철소
아무튼, 술이 당기는 날이 있다. 뜨끈한 순댓국에 소주 한 병이, 시원한 생맥주와 먹는 뻥튀기가 생각나는 그런 날이. 그럴 때 나는 『아무튼, 술』을 펼친다. 김혼비 작가가 책 속에 펼쳐놓은 술상에는 좋은 술과 사람은 물론, 술에 어린 추억이 있다. 퇴근길 술자리가 어려운 요즘, 술이 당길 때면 이 책을 슬쩍 펼쳐본다. 언젠가 나의 소중한 술친구들과 튀긴 라면땅에 시원한 생맥을 들이켤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책으로 술을 마신다. 각자의 술병이 내는 ‘꼴꼴꼴꼴’ 소리를 듣는 그날까지, 부디 모두 건강하시기를!
김해인(문학동네)
태초에 제9의 예술, 만화가 있었으니… 재밌으면 그저 장땡이었다. 문학동네에서 『정년이』, 『극락왕생』, 『남남』 등 만화를 기획, 편집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슬픈 얼굴로 버스 창가에 앉아 돈가스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출판만화의 부흥을 도모하고 있으나 떠오르는 건 러다이트 운동뿐이다.
오카야 이즈미 지음│애니북스
‘처음’, ‘오랜만’이라는 말보다 ‘모처럼’이라는 말엔 더욱 힘을 준 느낌이 있다. 벼르고 별러서 준비한, 인간의 작정한 마음가짐이랄까. 그런데 이 부사를 여기에 붙여도 되려나. ‘모처럼’ 죽는 건데, 무엇을 먹겠습니까? 15인의 문예가와 최후의 식사에 대해 묻고 답한 이 책에는 가지각색의 메뉴와 이유가 나온다. 이를테면 보통 때는 시도하지 못했던 고칼로리 음식을 마구 먹고 죽겠다는 아사이 료. 평소 관리와 절제로 살던 사람일수록 ‘모처럼’의 죽음 앞에서 내려놓을 건 내려놓고 싶은 모양이다. 우리를 천천히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최후의 만찬을 고민해보자. 그래서,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건데…?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