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6월 우수상 - 그놈의 ‘로렉스(Lorax)’가 뭐길래
우리 집 두 꼬마를 재우기 위해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베드 타임 스토리' 시간이다.
글ㆍ사진 김은정(나도, 에세이스트)
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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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부모들이 하루 중 간절히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면, 아이가 잠드는 시간일 것이다. 아이들을 재울 때쯤이면, 엄마들은 거의 녹초가 된다. 아이들을 얼른 재워야 비로소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기운을 내본다. 

우리 집 두 꼬마를 재우기 위해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베드 타임 스토리 (Bedtime Story)' 시간이다. 부모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잠이 드는 아름다운 시간이지만, 실상은 잠을 자기 싫은 꼬마들의 마지막 보루와 같은 시간이다. '엄마 책 3권 읽어줘' 하면서 큰 애가 책을 3권 골라온다. 둘째도 질세라 '난 2권 읽어줘'하고 쌓아놓는다. 읽어야 할 책이 5권이 돼버렸다. 

일단, 양쪽 팔에 한 명씩 눕히고, 비스듬히 누워 한 장씩 넘기며 동화 구연하듯 읽어준다. 피곤하기도 하고 아직 아이가 어리다는 핑계로, 글자를 하나씩 읽어주기보다는, 쓱 그림만 보고 내가 스토리를 지어서 읽는다. 예를 들어, 아이가 집안을 어지럽혀놓고 옆에 엄마가 화난 모습으로 있는 그림이 있다면, "아이고! 방을 난리 쳐놨네? 벽에 물감으로 낙서도 해놨네! 무슨 색으로 낙서해놨을까요?" 하면서, 책 내용과 상관없이 내 맘대로 스토리를 지어낸다. 아이들은 '레인보우를 그려놨어!' '매직으로 그리면 안 돼' 하면서 호응해준다.

그렇게 세 번째 책 후반부를 읽어줄 때쯤이면, 아이들은 천사처럼 곤히 잠든다. 그러면, 나는 살금살금 팔베개를 빼고 이불을 쏙 빠져나온다. 그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게 어느 정도 통했다. 작년까지는. 

올해 5살이 된 큰 애가 스토리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도전이 시작됐다. 한 번은 <닥터 수스, Dr. Seuss> 시리즈 중 <로렉스> 책을 가져와서 읽어 달라고 했다. 아빠가 어제 읽어줬다고 나보고 다시 읽어 달랜다. 처음 보는 책이라 로렉스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영어책이다 보니 대충 그림 설명하면서 때우려고 했다. 나의 목표는 얼른 재우는 것이다. 

책 제목이 <나는 로렉스다, I am the Lorax> 다. '로렉스'라는 애가 주인공인 책인가 싶었다. 첫 장에 남자 꼬마애가 등장하길래 가리키면서 "여기 로렉스가 숲에 놀러 왔어요" 하고 시작했다. 그러자 5살 꼬마가 볼멘소리로 "얘 로렉스 아니야" 하는 것이다. 아! 그래? 하고 후다닥 다음 장을 넘겼다. 

다음 페이지 그림을 보니, 숲 속 성에서 녹색 괴물들이 뭔가 만들고 있다. 성이 어둡게 그려진 것으로 봐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게 분명하다. 아! 로렉스가 괴물 이름인가? 싶어서 "여기 성에 로렉스 괴물이 살고 있었어요" 했더니 꼬마가 소리 지른다. "아냐! 아냐! 로렉스는 나쁜 애가 아냐" 어라?! 이게 아닌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아! 로렉스가 곧 놀러 오기로 했어요" 했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갑자기 화를 낸다. "엄마 책 이상해! 엄마 책 로렉스 아니야!"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결국, 아빠가 다시 <로렉스> 책을 '진실하게' 읽어주는 것으로 그날 '베드타임 스토리' 시간을 무사히 마쳤다. 

아니! 도대체 <로렉스>가 누구야? 표지를 보니, 두더지처럼 생긴 애가 로렉스 같은데, 대체 언제 등장하는지;; 주인공이면 처음부터 나와야 할 거 아닌가! 한참 넘겨보니, 중간에서야 짠하고 등장했다. 책 내용은 환경친화적인 내용으로 자연보호를 호소하는 이야기였고, 로렉스는 숲을 지키는 수호천사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3D 영화로도 만들어져 크게 흥행한 유명한 작품이었다. 

큰일이다. 이제 나의 책 읽기 꼼수가 통하지 않으니... 어쩌면, 지금까지의 꼼수가 통한 게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계속 읽어달라는 것을 보면 말이다. 돌이켜보면, <로렉스> 리딩에서 '로렉스'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나의 실수가 깨달음을 준 것 같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대충 시간을 때우려했던 잠자리 독서시간이, 우리 꼬마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였는지 말이다. 엄마의 이야기 하나, 묘사 하나하나 경청하는 아이들에게 새삼 미안해진다. 

그리고, 이번 <로렉스> 실수를 통해서 삶에 꼼수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지혜를 다시 한번 깨우쳐본다. 이제 어쩌랴. '진짜로' 책을 읽어주는 수밖에. 책 읽어주는 엄마는 오늘도 힘들다. 


김은정 넘치는 긍정의 에너지와 풍성한 호기심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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