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넷 화가의 그림에세이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참사에 대한 온몸의 증언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음악의 깊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음악의 언어』를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김두엽 할머니는 올해 아흔넷이세요. 그리고 12년 차 화가입니다. 여든셋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고요. 이미 10여 회에 전시회도 하셨어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신 계기가 있었는데, 2019년에 <인간극장>에 아드님과 같이 출연을 하셨어요. 아드님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시고 생계를 위해서 택배 일을 병행하고 계신데요. 두 분의 삶이 전파를 타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했어요. 그러면서 유명해졌고, 할머니에게 전시회 요청도 많이 왔고, 할머님과 아드님의 그림 작품도 많이 판매가 됐다고 합니다.
이 책은 할머니께서 처음 쓰신 그림에세이고요. 지금까지 할머님께서 그리신 그림이 300여 점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 중에 110여 점이 실려 있습니다. 할머님께서 그림을 그리면서 사시는 일상, 그리고 지난날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이 분은 1928년에 오사카에서 태어나신 한국인이고, 광복 후 1946년에 온 가족이 다시 한국으로 왔어요. 일본에 계셨을 때는 한국인이 다니는 학교가 없었던 걸로 기억을 하신대요. 그래서 일흔이 넘어서 뒤늦게 한글을 배우셨는데 ‘글자를 배우고 제일 좋은 점은 내 그림 밑에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어서다’라는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제목의 글씨체도 할머님이 손수 쓰신 필체예요.
처음에는 종이 위에 연필로 사과를 하나 그리셨대요. 그냥 무료하고 적적해서 종이가 눈에 띄기에 사과를 한 알 그린 거예요. 그런데 아드님이 폭풍 칭찬을 해주신 거죠. ‘엄마 그림 되게 잘 그렸다, 내가 엄마 닮아서 화가 됐나 보다’ 이런 말을 들으니까 조금 신이 나신 거예요. 그래서 그 뒤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님의 그림을 보면 색이 청량하고 원색 특유의 쨍한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다양한 색을 쓰시는데 너무나 조화로워요. 이 부분이 굉장히 놀라운 점이고요. 기교, 꾸밈이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단순함이 주는 기분 좋음이 있어요. 순수함도 느껴지고 뭔가 따스함도 느껴지고요. 나태주 시인의 추천사에 “그림 속에 어린아이 한 사람 살고 있네요”라는 문장이 있는데, 할머님의 그림을 참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호박의 선택
산만언니 저 | 푸른숲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게 1995년 6월이었죠. 저자 분이 당시에 재수생이었어요. 친구가 삼풍백화점에서 한 달 동안 일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서, 지하 1층에서 고객들의 짐을 대신 맡아주는 데스크 같은 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요.
저자의 기억으로 사고 당일 날 백화점은 굉장히 찜통 같았대요. 당시 사건 기록을 되짚어 가다 보면, 이상 신호가 소리로 나오고 있어서 에어컨을 켜면 그 소리가 더욱 커지니까 에어컨을 껐다고 해요. 그리고 출근을 하니까 ‘식당가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어긋나서 아예 운행이 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들리는 거예요. 당시에는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폭발음이 들리고 엄청나게 큰 바람이 자기를 덮친 거죠. 건물이 무너지면서 공기가 약간 압축되는 현상이 있었나 봐요.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태풍에 맞은 것처럼 쓸리는 사고가 있었고요.
어떻게든 나가야 되니까 정신없이 출구를 찾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밀리고 밀치고 거의 정신이 없는 상태였는데, 한참 후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저자가 나중에 생각해 봤을 때 이 경험이 세월호를 이해하는 데 조금 힌트가 됐던 게, 그 당시 ‘아이들이 왜 이렇게 큰 사고가 났는데 앞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이런 게 미스터리 중에 하나였잖아요. 그런데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에 자신도 스무 살이었고 그때 보기에도 어른들이 저렇게 밀치고 자기 먼저 가는 모습이 이해가 안 됐던 거죠. 그게 약간 세월호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2018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한창 세월호 관련해서 사람들이 막 왈가왈부하고 있을 때였어요. 어떤 사람이 ‘너희가 삼풍은 이렇게 기억 하냐, 근데 왜 4월만 되면 세월호로 난리를 치냐’는 식으로 글을 올린 거예요. 이걸 보고 저자가 <딴지일보>에 ‘세월호가 지겹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합니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그것을 계기로 계속해서 관련 글을 연재하게 됐는데요. 연재 경험이 자기한테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줬고, 비슷한 경험을 한 혹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더라도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고를 겪은 사람들한테 조금이라도 좀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글을 썼다고 합니다.
톨콩(김하나)의 선택
송은혜 저 | 시간의흐름
사람이 인생에서 마주치는 여러 국면들 그리고 어떤 사건들로 인해서 마음 안에 맺히는 것이 참 큰 작용을 하잖아요. 저에게는 최근의 큰 사건이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사건이었는데요. 요즘은 제가 머리가 너무 멍하고 어떤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것도 읽을 수 있는 책이 있고 도저히 안 읽히는 책들이 좀 많아져서 ‘아주 좁아져 있는 상태로구나, 내 안에 있는 여러 에너지가 차오를 때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저에게 『음악의 언어』는 참 담담하게 제 안에서 뭔가를 채워 올려주는 경험을 주었습니다. 송은혜 저자님은 <책읽아웃> 애청자이십니다. 만약에 저자님이 한국에 계셨다면 저는 <측면돌파>에 초청해 달라고 떼를 썼을 것 같아요.
저자 소개는 이렇게 돼 있네요. “한국과 미국, 프랑스에서 오르간, 하프시코드, 음악학, 피아노, 반주를 공부했고 지금은 프랑스 렌느 음악대학과 렌느 시립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채널 예스>에 ‘일요일의 음악실’ 칼럼을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 이 책이 갖고 있는 조용함과 깊이와 속도감 같은 것이, 저는 이분이 프랑스에 계시기 때문에 이런 속도감과 고요함에 가닿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서울은 리듬감과 속도감이 정말 세계에서 드물 정도로 빠른 나라이기 때문에, 물론 서울에서도 이런 글을 써내시는 저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힘든 일일 거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책의 목차를 보면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악흥의 한때’, ‘연주자의 해석 노트’, ‘흐르는 시간에서 음표를 건져 올리는 법’, ‘음악일기’ 이렇게 네 파트로 되어 있는데요. 음악을 하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음악에서 피어오른 단상들이 있고요. 탄탄한 음악 지식과, 음악을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게 하는 요소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오랫동안 자신의 삶과 몸을 통해서 흐르던 시간을 언어로 잘 낚아채어서 정리한 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떤 글들은 그렇죠. 자체로 음악 같고, 리듬감과 멜로디가 절로 느껴지고. 그런 식의 음악적인 글이 있다면, 이 책은 어떤 식이냐면, 음악의 어떤 깊은 마음을 묵상 속에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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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