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법
해가 기울고 어둠이 깔리면 변두리 골목 풍경은 낮 시간과 사뭇 달라진다. 퇴근하는 직장인들, 오랜만에 저녁 한끼 소박한 외식을 하러 나온 가족, 장사를 시작하는 가게 주인들과 하루의 피곤을 생맥주 한 잔으로 달래려는 이들이 있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적당한 소음, 골목을 내려보는 가로등 불빛, 가게의 간판과 조명이 어우러지면 여름 한낮의 열기와는 다른 은근한 생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예년과 달리 골목에 어스름한 주말 저녁의 생기가 사그라든지도 한참이 되었다. 그럼에도 화니 프라자 1층 호프집 구석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오랜만에 밝았다.
“이렇게라도 모일 수 있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대신 부동산 홍영자 씨의 말에 최강수학학원 이대호 원장이 손을 꼽아가며 셈을 한 뒤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여섯 달하고 이 주 만입니다. 뭔 시간이 이리 빠른지, 눈 깜짝하니 휙 하고 지나가네요.”
“그나저나 한 원장님 아니었으면 이번 달 번영회 모임도 그냥 건너뛰었을 것 같은데, 원장님 덕에 얼굴이라도 보니 좋네요.”
누리태권도장 임명진 관장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돌기원 한세돌 원장을 향했다. 이대호 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세돌 원장의 등을 토닥였다. 그가 두꺼운 뿔테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제가 더 감사하지요.”
“그런데 한 원장님은 이제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임명진 관장이 걱정스런 눈길로 한세돌 씨를 바라보았다.
“아주 초기였다잖아요. 대장암이라 해도 수술도 안하고 내시경으로 깔끔하게 떼어 버렸다는데. 내시경으로 완치가 되는 경우가 열 명 중 한 명도 안 된다니 한 원장님은 운이 엄청 좋은 셈이죠. 그렇지요, 선생님?”
이대호 원장이 옆에 앉은 반딧불의원 이수현 의사에게 질문을 던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가 미소를 띠었다.
“네, 괜찮으실 겁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더 조심하셔야 해요.”
“당연하죠. 사실 그동안 이 선생님이 그렇게 끊어라 끊어라 잔소리를 하셨지만 못 끊고 있던 담배도 이번에 딱 끊었잖습니까. 제가 암이란 이야기를 듣고 이상하게 우리 이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 말씀대로 일찍 끊었으면 암도 안 생겼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들더라구요.”
한세돌 원장이 잠시 말을 끊고 그들이 앉은 자리로 다가오던 사람에게 시선을 던졌다.
“마침 또 끊어야 할 분이 오시네. 최 사장도 얼른 담배 끊어. 나 같은 일 안 생기려면.”
최영호 씨가 자리에 앉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매장에서 일을 마치고 바로 오는 길이라서인지 보라색 편의점 조끼를 입은 채였다.
“가게에 정리할 게 있어서 좀 늦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 중이셨어요?”
“암을 떨쳐버리고 새 사람이 된 한 원장님의 체험 수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하루에 두 갑씩 피우시던 담배도 끊었으니 이번 기회에 더 건강해지면 되죠. 운동도 시작하고. 임 관장님 태권 도장을 다니는 것도 좋겠네.”
이대호 원장의 제안에 임명진 관장이 박자를 맞췄다.
“원장님 등록하시면 제가 특별 할인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개인 지도는 물론이고요. 애들만 주로 가르치다 보니 몸이 근질근질 한데, 책임지고 땀 좀 빼게 해드리겠습니다.”
익살스런 말투에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생맥주 잔 마주치는 소리가 몇 차례 이어졌다. 유리잔에 맥주 대신 물을 채운 한세돌 씨도 함께 잔을 마주쳤다.
“사람들이 오래 살아서 그런지 한두 집 건너면 암환자야. 옛날엔 암이라는 게 치료한다고 낫는 병이 아니었지. 걸렸다 하면 그냥 황천길 가는 줄 알았는데. 요즘이야 어디 그런가.”
홍영자 씨의 말에 이대호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 기술이 좋아진 탓도 있겠죠. 저희 아버지도 대장암으로 고생하시다 일찍 돌아가셨는데, 지금 발견하고 치료했다면 살아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암 환자가 이백만 명인데 이제는 암에 걸려도 열 명 중 일곱 명은 오 년 이상을 산다고 하더라구요.”
“이 원장은 누가 수학 선생 아니랄까 봐 항상 숫자를 들먹인단 말이야. 그나저나 나도 이번에 내시경으로 암을 도려낼 수 있는 걸 처음 알았네. 감사할 따름이야. 일찍 발견하지 못했으면 꼼짝없이 큰 수술을 하고 그 독하다는 항암 치료도 받아야 했을 거라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요.”
한세돌 원장이 혀를 차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번엔 다른 이들도 곧바로 말을 잇지 않고 맥주잔을 홀짝였다. 남은 맥주를 쭉 들이킨 홍영자 씨가 잔을 테이블 위에 소리 나게 놓은 뒤 잠깐의 침묵을 깼다.
“한 원장님은 로또라도 사야 할 것 같아. 암에 걸리고도 몇 달 되지도 않아 이렇게 멀쩡하니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그나저나 다들 건강 검진은 꼭꼭 받아야 돼. 한 원장도 건강검진 받고 발견한 거잖아.”
“당연히 받아야죠. 저는 매년 받습니다. 그런데도 얼마 전 기사를 보니 보험 공단의 암 검진을 겨우 오십 퍼센트 정도만 받는다고 하네요.”
이대호 원장이 안경을 고쳐 쓰고 정색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접시 위에 놓인 노가리를 잘게 찢던 최영호 씨가 말했다.
“저는 귀찮기도 하고 막상 건강 검진을 받으려 생각하면 겁이 나서 그동안엔 소홀했는데, 한 원장님 소식 듣고 불안해져서 며칠 전에 예약했어요. 이번 기회에 할 수 있는 검사는 모조리 해보려고요. 지나면서 보니 멀지 않은 종합병원에 새로 MRI 기계가 들어왔다고 플래카드가 붙어있던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찍어보면 좋지 않을까요?”
“여기저기 자세히 볼수록 좋겠지. 비용이 많이 드는 거만 빼면. 그렇지 않아요 이 선생님?”
“꼭 그렇진 않아요. 건강검진은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
이수현 씨의 대답에 질문을 한 홍영자 씨를 포함해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때 바닷가에 있는 외갓집에 놀러 가면 할아버지가 가끔 배를 태워 주셨습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데 바다에서 건져 올린 그물을 펼치면 물고기들이 막 쏟아지는 거에요. 어린 제 눈엔 신기할 따름이었죠. 하지만 매번 수확이 좋진 않았어요. 어느 날인가, 평소보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다며 아쉬워하시는 할아버지께 물어봤습니다. 앞바다를 다 덮을 수 있게 그물코가 작은 촘촘한 그물을 아주 넓게 치면 물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역시, 의사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똑똑했네요.”
이대호 원장의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눈짓을 보냈지만 이수현 씨는 특별한 대꾸 없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물코가 너무 작은 그물을 쓰면 큰 물고기 외에 너무 작거나 팔 수 없는 것들도 함께 그물에 들어와 오히려 골라내는 데 애를 먹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바닥을 훑는 싹쓸이 그물도 있잖아요. 언젠가 TV에서 봤는데, 물고기도 많지만 쓰레기 같은 것들도 엄청 많더라고요.”
“저인망 그물이라고 하죠. 건강 검진 목적으로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달라는 환자를 종종 만나는데, 검사를 많이 하는 건 그런 싹슬이 그물을 치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물을 올려보면 진짜 잡아내야 할 이상 소견과 별 의미 없는 소견들이 잔뜩 섞여있는 거죠. 그걸 골라내려면 또 다른 검사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시간도 걸리고 항상 쉽진 않습니다.”
“맞아요. 제 형님이 폐 사진을 찍고 뭐가 보인다고 해서 조직검사까지 했거든요. 며칠 입원도 하고 검사 뒤에 출혈도 심해 고생했어요. 결국 암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는데, 그동안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다고 하더라구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최영호 씨가 이야기를 하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던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괴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네, 검사를 많이 할수록 그런 일을 겪을 확률이 높아지는 거죠. 그러니 꼭 필요한 검사만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근데 나라에서 해주는 건강 검진은 어째 좀 못미덥지 않아요? 무료라 정확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당장 대장암도 내시경 대신 대변 검사만 하잖아요.”
임명진 씨의 말에 이대호 씨가 안경을 고쳐 쓰고 헛기침을 하며 딴죽을 걸었다.
“무료는 아니죠. 우리가 내는 건강보험료가 다 그 비용이고, 통계를 보면 1년에 병원 한 번 안 가도 매달 평균 십 만원씩은 내고 있는걸요. 그리고 대변 검사도 다 근거가 있다고 합디다.”
“이 원장님은 역시 잘 알고 계시네요. 대변에서 혈흔을 찾아내는 검사인데, 대장 내시경보다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안 받는 것보단 훨씬 낫습니다. 검사가 쉽고 부담이 적기도 하구요. 물론 여건이 되는 경우엔 내시경을 받으시면 됩니다.”
“말씀들을 들으니 슬슬 겁이 나네요. 저 같은 젊은 사람도 받아야 합니까? 대장내시경 받기 전에 설사약을 먹고 밤새 고생을 한다던데.”
벌써부터 배가 사르르 아픈 듯한 표정을 짓는 임명진 관장에게 사람들은 앞다투어 자신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홍영자 씨는 대장 내시경 전날 밤새 화장실을 열 번쯤 들락날락 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던 경험을 조곤조곤 이야기했고, 비위가 약한 한세돌 씨는 역한 맛이 나는 약과 물 몇 리터를 마시고 구토를 하느라 검사도 하기 전에 탈진이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대호 원장은 정확한 검사를 위해선 장을 깨끗하게 비우는 게 중요하다며 검사 전에 먹지 않아야 할 음식들을 줄줄이 읊기도 했다.
“임 관장님은 삼십 대이시니 불편한 게 없다면 대장내시경은 안 받으셔도 됩니다. 혈액 검사도 정기적으로 하고 계시니 특별히 더 필요한 건 없어요.”
임명진 관장은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음을 한 뒤 종종 생기던 통풍은 이수현 씨가 처방한 약을 꾸준히 먹으며 근래엔 가라앉은 상태였다. 한바탕 무용담으로 왁자지껄했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이대호 씨가 포크로 맥주잔을 두드리며 말했다.
“자, 그래서 오늘 술값은 한 원장님이 내시는 거지요?”
“까짓거, 술 한 잔도 못 마셨지만 제가 내겠습니다. 대신 다들 앞으로 건강 검진은 꼭 받으시는 겁니다.”
바야흐로 전 국민이 건강 검진을 받는 시대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나이에 따라 일반 검진, 암 검진, 영유아 검진 등을 제공한다. 최근엔 일반 검진 대상 연령을 20대 이상으로 확대했다. 초중고에서 자체적으로 주관하는 학생 검진까지 포함하면 생애 주기의 거의 모든 연령에서 검진을 받을 수 있다. 일반 검진만 해도 매년 천만 명 이상, 이렇게 많은 국민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검진을 받고 있지만 불만도 꾸준히 제기된다. 국가 검진은 검사 항목이 적어 부실하다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국가 검진 외에 민간 의료 기관에서 따로 종합 검진을 받고 있고, 이러한 종합 검진에 포함된 검사는 대개 수십, 수백 가지에 이른다. 검사 항목이 많은 건강 검진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일까? 어떤 검사든 완벽하게 정확하지는 않으며, 위음성(false negative)과 위양성(false positive)이 생길 수 있다. 위음성이란 질병이 있는데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이며, 위양성은 반대로 실제 질병이 없는데도 거짓 의심 소견이 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검사 항목이 많아질 수록 위양성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위양성의 경우 확진을 위해 불필요한 추가 검사를 받아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질병이 의심되는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해서 원인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검사를 받는 경우엔 이러한 문제도 감수할 수 있지만, 건강 검진은 증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 받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의료 행위와는 달리, 건강 검진으로 인한 특수한 해(harm)는 주로 여기서 발생한다. 일찍이 미국에서 전립선암, 폐암, 대장암, 난소암 검진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대규모로 진행된 PLCO(Prostate, Lung, Colorectal and Ovarian) cancer screening trial 관련 연구 결과*는 이런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흉부 X선 촬영, 난소암 표지자 검사와 부인과 초음파 검사(여성), 전립선암 표지자 검사(남성), 직장내시경 등을 정기적으로 시행했을 때, 3년에 걸쳐 14개의 검사를 받는 동안 1개 이상의 위양성 결과가 나올 확률은 남성의 경우 60%, 여성의 경우 49%에 달했다. 절반이 넘는 이들이 위양성 결과를 받은 것이다. 게다가 네 명 중 한 명은 침습적인 추가 검사까지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불필요한 추가 검사는 그 자체로도 부담이지만, 검사로 인해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 더 큰 문제가 된다. 조직 검사로 인한 출혈이나 감염 등이 그런 합병증의 예이다. 이러한 문제를 줄이려면 무조건 많은 검사 항목이 포함된 검진을 하는 것보다는 의료진과 상의해 내 나이와 건강 상태에 맞게 꼭 필요한 검사들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또한 검사 결과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듣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검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 건강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도 필수이다. 서울대병원 조비룡 교수는 건강 검진의 역할은 테스트(test)가 아니라 패스웨이(pathway)이므로, 일회적인 검사로 끝나선 안되며 검진 결과 발견된 건강 위험에 대해 사후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JM Croswell et al. Cumulative incidence of false-positive results in repeated, multimodal cancer screening. Ann Fam Med 2009;7(3):2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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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