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과 관계에 대한 소설 『최애, 타오르다』, 하나의 현상이 된 사람 이반지하의 이야기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여성으로서 엄마와 딸을 그려낸 소설집 『엄마에 대하여』를 준비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우사미 린 저/이소담 역 | 미디어창비
이 소설의 원제는 ‘推し,燃ゆ’입니다. 직관적으로 번역하면 ‘내가 밀고 있는 어떤 아이돌이나 연예인이 논란의 정점에 섰고 본진이 폭발됐으며 뭐가 터졌다’라는 뜻입니다. 첫 문장이 제목이랑 똑같습니다. “최애가 불타버렸다. 팬을 때렸다고 한다. 아직 자세한 사정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밝혀진 것이 없는데도 그 사건은 하룻밤 사이에 급속히 논란이 됐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카리’입니다. 아카리의 최애 이름은 ‘마사키’예요. 마사키란 친구는 ‘마자마좌’라는 혼성 아이돌 그룹의 일원입니다. 아카리는 누구보다 마사키를 잘 안다고 확신을 하고 있고, 마사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다 수집을 하고 그것에 대해서 해석을 만드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어요. 아카리가 마사키한테 처음으로 빠졌던 때는 네 살입니다. 네 살 무렵에 피터팬 연극을 봤는데 그 주인공이 당시 열두 살이었던 마사키였어요. 그 당시에는 그냥 봤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우연히 집에서 피터팬 DVD를 발견하고 덕통사고에 가까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었던 거죠. 그 감정을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제일 먼저 느낀 것은 통증이었다. 순간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예리한 통증, 그다음엔 밀쳐졌을 때 오는 충격과도 비슷한 통증. 창틀에 손을 올린 소년이 방 안으로 몰래 들어와 짧은 부츠를 신은 발끝을 달랑달랑 흔들었을 때, 그의 작고 뾰족한 부츠 끝이 내 심장을 파고들더니 무심하게 걷어찼다. (중략) 하나의 통점으로부터 쫙 퍼지듯이 육체가 감각을 되찾았고, 조악한 영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과 빛으로 세상이 선명해졌다.”
아카리라는 친구는 생활이 그렇게 평탄하지는 않아요. 남들이 너무나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아카리는 못해요. 아마 심리적인 문제 혹은 신체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살아가는 무게에서 도망칠 수 있게 하는 건 오직 최애밖에 없는 거죠. 나중에 아카리는 학교를 유급합니다. 아르바이트는 잘려요. 최애 마사키는 논란 이후로 마자마좌 안에서 인기가 최악이 돼요. 아카리와 마사키는 어떻게 될 것인지, 결말은 말씀드릴 수 없고요. 주요 줄거리 자체는 아사키가 마사키를 좋아하고, 최애가 불탔고, 최애는 인기가 떨어지고 주인공은 학교에서 유급되고 힘들어진다는 겁니다.
결국 『최애, 타오르다』는 인간관계에 관한 소설이에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기도 하지만 마사키의 대사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도 있어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얘기하고 있는 것들이 저 사람들한테 진심으로 가 닿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사실은 아이돌도 자기 팬에 대해서 잘 모르고, 팬도 그 사람의 현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그런 관계인 거죠. 그런 점에서 약간 씁쓸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일본의 생활상 같은 것들이 너무 잘 나와 있어서 ‘일본이 더욱 파편화되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톨콩(김하나)의 선택
이반지하 저 | 문학동네
띠지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감히 너희가 나를 기억하기보다는 너네는 그냥 나를 외워야 할 거야. 모든 역사적 사건처럼.” 이것이 이반지하의 에티튜드입니다. 이반지하는 일종의 닉네임이에요. 김소윤이라고 하는 미술 작가가 2004년에, 본인의 작업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거나 하지 않았고 미술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알바를 해야 됐고 경제적 안정 같은 것은 너무 멀게 느껴지던 2004년의 어느 날, 작업실 겸 생활공간이었던 반지하에서 갑자기 이반지하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본인의 퀴어적인 것을 드러내는 이반이라는 말과, 자신이 당시에 있던 반지하라고 하는 공간을 합쳐서 막 지은 이름이래요. 그게 2004년이었고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레전드라고 불리는 노래들을 짓고 그 노래들이 그 안에서 많이 불리고요. 그러다가 9년이나 지난 2013년에 이것이 앨범으로 나오게 되고, 2019년에야 처음이자 마지막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그 콘서트의 제목은 ‘이반지하 최초 마지막 단독 인권 콘서트’였습니다. 이 자리에 누가 있었느냐. 우리의 이웃 팟캐스트라고 할 수 있는 <영혼의 노숙자>의 셀럽맷 님이 소문을 듣고 이 콘서트 현장에 가셨던 거죠. 셀럽맷님이 큰 감동을 받고 사인을 받으면서 출연을 요청했고, 드디어 2020년 2월에 이반지하는 <영로자>를 통해서 퀴어 커뮤니티 안이 아니라 다른 세상의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저는 이때까지도 잘 몰랐는데, 이랑 작가님이 SNS에서 ‘정말 이반지하 님은 최고다, 너무 천재다, 이걸 꼭 들어야 한다’라고 여러 번 추천하신 게 눈에 들어온 거죠. 어느 날 산책을 할 때 첫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그 애티튜드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되게 얼떨떨한데 너무 재밌고, 중독성이 있고, 끊임없이 아슬아슬한 농담을 던지는데 너무 막나가지 않아요. 그게 너무 신기해서 ‘너무 희한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 같다’라고 감지했습니다. 이후 4월부터는 <월간 이반지하>라는 코너가 <영로자>에 편성이 됩니다. 제가 작년 8월쯤에 밀렸던 것들을 듣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사람은 슈퍼스타다, 2020년 현재 이 사람보다 더 웃긴 사람은 없다. 그 와중에 너무 똑똑하고 천재다’라고 SNS에 썼어요.
너무 재밌는 건, 이 책의 편집자가 이연실 작가님이세요. <측면돌파> 이연실 편집자님 편을 녹음했을 때가 7월 초였는데, 그때 저는 이반지하님 책을 이연실 편집자님이 만들고 계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인연을 얘기를 들어봤더니, 이연실 편집자님은 제가 SNS에 ‘이 사람은 천재다’라고 쓰기 전까지는 이반지하님을 몰랐다는 거예요. 그런 여러 인연으로 인해서 입소문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제가 느끼기에는 이반지하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꽤나 두꺼운 에세이집이 최근에 문학동네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들을 때는 ‘정말 희한하게 웃기는 사람이 나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 사람이 너무 똑똑한 거예요. 영리하게 잘 빠져나가는 식의 똑똑함이 아니라, 이것에 대해서 사유를 아주 탄탄히 오랫동안 해왔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뭔가를 계속해서 쌓아 온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농담을 실시간으로 던질 수 있는 거죠. 저는 그런 식의 탄탄하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고 비틀린 유머를 실시간으로 계속 던지는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싶어서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의문이 다 풀리진 않죠, 왜냐하면 이반지하는 미스터리이기 때문입니다. (웃음) 하지만 많은 부분이 짐작이 되기도 해요. 유머가 빵빵 터지기도 하는데, 너무 놀랍도록 무겁고 차갑고 베이고 아픈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이 두꺼운 책 안에는 유머와 아픔과 작가로서의 분투와, 그리고 아주 거들먹거리는 이반지하로서의 어록 같은 것들이 다 합쳐져 있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많이 웃기도 했고 정말 신기하기도 했어요. 일단 이반지하님이 출연하신 <영노자>의 에피소드들을 한 번 정도 들어보시고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즐거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독서뿐만이 아니라 ‘이런 희한한 사람이 세상에 나타났구나’ 하는 반가움을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냥의 선택
한정현, 조우리, 김이설, 최정나, 한유주, 차현지 | 다산책방
테마 소설집이에요. 엄마와 관련된 소설 여섯 편을 6명의 여성작가가 써서 묶은 책입니다. 이 소설집이 어떤 기획으로 시작이 됐는지는 조우리 작가님께서 작가 노트에서 밝히고 있어요.
“친구들과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노래들을 함께 부른 적이 있다. 어째서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는 일이 우리에게 익숙한 감각일 수가 있는지 신기해하면서. 혹시 그게 엄마의 애창곡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노래들은 가수의 목소리가 아닌 내 엄마의 흥얼거림으로 무의식의 어느 곳에 각인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이야기들을 했었다. 그 순간에 떠올린 생각들을 동료 작가들과 나누고 싶어서 테마 소설집을 기획했다.”
각 작품마다 모티프가 된 노래가 한 편씩 있어요. 예를 들면, 책에 실린 조우리 작가님의 단편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은 심수봉의 노래 <그때 그 사람> 중 한 구절 ‘안녕이란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에서 생각해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책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을 하나의 결로 얘기할 순 없어요. 이 작품들 안에 다 무엇이 있다거나 다 닮았다고 얘기할 수는 없고요. 몇몇 작품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이것도’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텐데요. 엄마라는 겉옷을 벗기고 ‘그 사람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지난 시절에 너와 비슷한 것을 고민했고 비슷한 상황에 몰렸고, 어쩌면 지금도 너와 비슷한 것을 원하고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살아’라는 걸 등치시켜서 보여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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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steal0321
2021.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