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9월 우수상 - 쿵짝, 쿵짝 인생의 네 박자
시간은 막 밤 열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창문에 걸린 얇은 커튼 사이로 들어온 전광판 불빛이 내가 누워있는 가족 분만실의 분위기를 농염하게 만들었다.
글ㆍ사진 김수현(나도, 에세이스트)
20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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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막 밤 열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창문에 걸린 얇은 커튼 사이로 들어온 전광판 불빛이 내가 누워있는 가족 분만실의 분위기를 농염하게 만들었다. 초록이었다가, 빨강이었다가 또 금세 파랑으로 바뀌는 불빛을 바라보며 열두 시부턴 물도 마시지 말라는 간호사의 말을 떠올렸다. 배고파서 애 낳을 때 어떻게 힘을 준담. 아이가 뱃속에서 꿀렁- 움직였다. 유도분만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입원해 딱딱한 침대에 종일 누워있었더니 허리가 아팠다. 나는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제 곧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심란해져 갔다. 한 아이의 인생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부터 아이 낳을 땐 얼마나 아플까 하는 해답 없는 고민과 걱정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그러다 이따금 밖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예민한 고양이처럼 귀를 기울였다. 산부인과가 있는 곳은 진료를 보던 한낮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노래방이나 술집, 24시간 해장국집이 있는 산부인과 골목은 낮보다 밤이 더 시끄러웠다. 욕이 반쯤 섞인 두 남자의 다툼과 통화를 하는 여자의 울음 섞인 목소리, 뚜벅뚜벅 걷다가 칵~퉤! 하고 침을 뱉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은 보호자 침대에 누워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손등에 꽂힌 바늘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번엔 옆 건물 노래방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 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있!네!”

남자가 부르는 네 박자는 노래라기보단 괴성에 가까웠다. 노래를 모르는 이가 들었더라면 당장 119를 부를 듯한 음정과 목소리로 가사에 힘을 주며 노래하고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해 부르는 남자의 노래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다음 가사를 떠올리며 속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한 구절 한고비~ 꺽!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은~~”

어쩐지 네 박자 노래가 지금 내 상황과 묘하게 어울린다고 느껴졌다. 내일이면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나는 앞으로 어떤 박자에 맞춰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묘한 설렘과 안개 낀 두려움이 전광판 불빛처럼 차례로 몰려오는 밤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가 다 되어서야 나는 첫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내 삶의 박자는 왈츠에 가까웠다. 기품 있고 우아한 왈츠처럼 여유와 느긋함 같은 단어가 잘 어울리는 생활이었다. 조금 귀찮은 일은 쓱 밀어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엔 콩콩콩- 뛰며 신나게 일하기도 했다. 평생 남은 인생을 왈츠 박자에 맞춰 살아갈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내 삶의 박자는 휘모리장단으로 변해버렸다. 정말 말 그대로 정신이 쏙 빠지는 생활이 이어졌다. 송대관 아저씨가 말했던 네 박자 속 사랑과 이별, 눈물 이외에 환희와 기쁨, 분노와 절규, 자책이 내 생활에 빠르게 휘몰아쳤다. 아이 하나로 인생의 박자가 바뀔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은 어설펐고 마음은 쉽게 무너졌다. 

휘모리장단에 정신을 놓고 생활하던 새벽, 수유 후 아이의 등을 토닥여 주고 있었다. 쉽사리 잠들지 않고 계속 용을 쓰는 아이를 안고 베란다 너머 맞은편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달리 볼 게 없는 푸른 새벽녘, 몇몇 집들이 켜 놓은 불빛만 한참 바라보았다. 낭만적이게 보일 수 있는 새벽 장면이 괜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소리를 내어야만 이 쓸쓸함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노래가 불쑥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우리가 한 몸을 하고 들었던 마지막 노래였다.

“네가 안 잘 때~ 내가 빡칠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젖을 주는 사람도~ 재워주는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네...”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안에 흘렀던 쓸쓸함은 작은 코웃음에 저 멀리 날아갔다. 나는 노래를 마저 다 부르지 않고 그 박자에 맞춰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네가 이 노래의 가사를 이해하는 날이 오긴 올까. 쿵짝 쿵짝 네 박자 속에 있다던 사랑, 이별, 눈물을 경험하는 날들이 언제쯤 오게 될까. 까마득하지만 돌아보면 이미 지나가 버리는 인생을 생각하며 나는 아주 오랜만에 네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네가 너의 박자에 맞춰 인생을 사는 날이 올 때까지 나는 그저 지금처럼 네 등을 토닥여 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리의 박자가 그렇게 새벽을 지나가고 있었다. 


김수현 더 나은 글을 위해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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