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수 있는, 누구로도 대체될 수 있는 아르바이트에서도 퇴출당하는 사람. 지급되는 급여만큼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부적격으로 판단되는 사람. 평생 아르바이트생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아르바이트도 못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지 못했다. 무엇이 되었든 나를 지지해주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나 큰 숙제를 내줄 수는 없었다. 그 일들을 소화해내는 데에 몇 계절이 필요했다.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것에서의 거절도 그렇게나 아팠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양다솔 작가님의 산문집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중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절망과 실망을 씩씩하게 다루는 글, 정직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글들에 대해 양다솔 작가님은 ‘나를 위해 쓴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은 기뻐야 힘이 나고, 글은 슬퍼야 깊이가 있다”고 큰소리치는 양다솔 작가님의 글에는 그만큼의 힘과 깊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출간한 양다솔 작가님을 모시고 나를 지키는 글쓰기의 힘과 열혈 우정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눌게요.
<인터뷰 – 양다솔 편>
오은 : 11월에 전국 순회 공연을 하시더라고요.(웃음) 지금 출판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님이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요즘 일과가 어떤가요?
양다솔 : 북토크에 많이 불러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부산이랑 대전이 없습니다. 듣고 계신 분들 꼭 불러주시기 바라요.(웃음) 사실 요즘 저의 마음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건 ‘격일간다솔’이라는 저의 연재예요.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연재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데요. 사실 글을 쓰는 것에 비하면 다른 건 다 쉽더라고요. 상대적으로 연재가 무거워서 북토크는 오히려 환기처럼 느껴져요. 게다가 이상한 게, 이상한 사람들 옆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이상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제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다 좋은 분들이에요.(웃음) 그래서 북토크에 가면 오히려 제가 힘을 더 많이 받아요.
오은 : 그런가 하면 ‘판매 지수’ 같은 것에는 크게 신경을 안 쓴다는 말도 들려요.
양다솔 : 어차피 그렇게 대단한 지수일 리가 없고요.(웃음) 제가 본다고 그 숫자가 1이라도 높아지면 보겠지만 전혀 상관이 없잖아요. 제가 관심 있는 건 도서관이거든요. 그게 실질적인 관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동네 도서관에 제 책이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대출을 했는지 찾아봤어요. 저도 좋아하는 책을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보니까요. 놀랍게도 예약이 몇 명씩 걸려 있는 거예요. 정말 감동했어요.
오은 :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작가. 스탠드업 코미디언. 해피 비건. 어릴 적에는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 동시에 비디오 가겟집의 딸로, 디즈니 만화영화의 공주들을 친구 삼아 성장했다. 학교에 가는 둥 마는 둥, 집에만 있는 딸을 절에 보낸 아빠 덕분에 열일곱 살에 경북 깊은 돌산에 있는 절에서 행자로 살았다. 4박 5일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갔던 것이 100일이 됐고, 그게 결국 2년까지 연장됐다. 사실 그 후에도 계속 머물 생각이었는데, 절에서 대학에 가라고 권유해 나오게 됐다. 절에서 나올 당시 그는 문과나 이과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종종 아주 멍청할 정도로 겁 없이 어떤 것을 위반했고, 삶의 중요한 것들은 으레 친구들의 등 떠밀기로 이루어져왔다. 글보다 말이 편한데 글쓰기를 하게 된 것도,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게 된 것도 친구의 권유 때문이었다. 양다솔은 그렇게 시작한 것을 또 열심히 했다. 내 삶의 코어를 이루는 것은 다도 세트와 돌침대, 고양이들과 벤자민 나무라고 말하는 사람. 비건이 된 이후로 '나 왜 살지'라는 질문이 줄었다. 최애 유튜브는 <서정아의 건강밥상>이고, 둘이서 식당에 가면 메뉴를 네 개 시키는, 같이 있는 사람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대식가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목욕탕. ‘꾸안꾸’는 겁쟁이라고 생각하는 '꾸꾸꾸' 인간. 자신을 향한 칭찬의 말을 안 믿는데 칭찬을 들으면 얼른 딴 얘기를 꺼내는 사람. 관찰력과 암기력이 좋다.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집중하거나 긴장할 때 팔짱을 끼는 습관이 있다. 종종 자조하고, 비관적인 것 치고는 다양한 시도들을 해온, 용기 있는 사람이다.” 열일곱 살에 돌산에 있는 절에서 행자로 사셨다고요? 처음에는 4박 5일 프로그램으로 들어간 건데 어떻게 2년이 된 건가요?
양다솔 : 저는 10대 때 인생에 가장 거침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삶이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에 ‘내 삶은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드니까 뭘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애였던 것 같은데요. 제가 간 곳이 매일 아침과 저녁에 달력 사진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었어요. 이런 데 살면 기분이 어떨까, 공기도 너무 좋은데 여기 살아볼까, 하는 아주 가벼운 마음 하나로 머무는 기간이 점점 늘어난 거죠. 사실 절이라는 곳은 본격적인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이거든요. 사람들과 부대껴 살아야 해요. 그렇게 지내면서 제가 얼마나 사람들과 지내는 데 서투른 사람인지, 나아가서 나와 관계하는 것에 얼마나 서투른 사람인지 알겠더라고요. 절에 남아서 해야 할 게 많은 사람이어서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오은 :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을 읽고 느낀 것 중 하나가 슬픔과 웃음이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었거든요. 작가님은 슬픔을 다시 접근하게 만드는 방식의 글쓰기를 지향하고 계신 게 아닌가 생각도 함께 했어요.
양다솔 : 예를 들면 어머니가 저한테 상처받을 만한 얘기들을 했을 때, 보통은 그 말에 상처받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이거 친구들한테 말하면 얼마나 웃을까’ 싶으면서 기분이 좋은 거예요.(웃음) 만약 그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이야기할 힘이 없으면 웃을 힘도 잃어버리는 거잖아요. 더구나 웃음이라는 건 상대방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의 사건에서 떨어져 이 사건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시야를 제공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옛날부터 농담은 저한테 제1의 무기 같은 거였어요. 어렵고 힘든 상황마다 농담으로 저를 방어하는 그런 시기들도 있었고요. 사실 글이나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한데요. 두 가지 다 나의 사건을 나에게서 떨어지게 만들더라고요.
오은 :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작가님께서 직접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에 대해서 소개해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할게요. 어떤 책이죠?
양다솔 : 『간지럼 태우기』라는 책을 3년 전에 먼저 독립출판 했었는데요. 당시 그 책을 제 두꺼운 명함 같다고 생각했어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설명해주는 두꺼운 명함 같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은 10년 동안 인디 신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10년 만에 컴필레이션 앨범을 낸 것과 같은 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글에서 화자는 화가 나 있다가 어떨 때는 엄청 차분하고 어떨 때는 엄청 신이 나는 등 감정의 낙차가 있어요. 그 이유가 10년이라는 시간 차 때문이에요. 또 같은 이야기도 어떤 때는 이렇게 얘기하고, 어떤 때는 저렇게 얘기하죠. 그 모든 것이 10년의 세월동안 저의 마음이나 말하는 방식이 달라진 과정들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게 재미 요소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책을 생각하고 썼다기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너무나 쓰고 싶을 때에 하나씩 길어 올렸던 이야기들을 엮은 것이기 때문 저한테는 굉장히 기다려왔던 첫 걸음인 것 같습니다.
오은 : 모든 글들이 결국 나를 지켜내기 위한 글쓰기처럼 와 닿았어요. 『간지럼 태우기』에 실린 작가의 말에도 “언제나 저를 위한 저의 삶을 위한 글이었다는 생각입니다”라고 하시기도 했는데요. 어떤 순간이 글이 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양다솔 : 저는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순간에 대해서 쓰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요. 예를 들어 재미가 한 98% 있었는데 2% 정도는 완벽히 슬펐어요. 그건 말로 하기가 되게 어렵거든요. 또 뭔가 엄청나게 추하고 끔찍한 상황이었는데 2%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러면 저는 그 2% 때문에 그 상황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겪은 나 외에는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글로 써보고 싶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오은 :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양다솔 : 좋아하는 책을 물어볼 때마다 지겹도록 답하는 책이 있습니다.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라는 책을 정말 좋아해요. 그 사람의 짧고 길기도 한, 기쁘기도 슬프기도 한 글들, 마치 누구도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동시에 누구나 다 읽어줬으면 하는 글들이 저로 하여금 뭘 어떻게 쓰고 싶은지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양다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통 갈피를 못 잡는 사람. 마치 눈떠보니 11시인 기분이다. 뭘 하기엔 늦었고 안 하기에도 아쉽다. 갑자기 절에 행자로 출가하고 유럽으로 무전여행을 떠나며 모험가처럼 살다가 어느 날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어쨌든 큰소리치는 이야기는 말은 기뻐야 힘이 나고 글은 슬퍼야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우울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곁에 두기 힘들고, 쓰는 글마다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밥맛이 없다. 10년간 쓴 수필을 모아 『간지럼 태우기』라는 독립출판물을 발행했고, 동북구연이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책 없이 백수가 되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격일간 다솔’이라는 메일링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다음 달부터 뭘 해서 먹고살지 전혀 계획이 없는데 당장 밥을 엄청 잘 차려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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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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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logirl
2021.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