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문학동네>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를 펴내며 처연한 아름다움이 깃든 시세계를 펼친 박신규 시인이 첫 번째 산문집 『당신의 모든 순간이 시였다』를 펴냈다. ‘시간 투자할 데 많은 이 시대’에 밀려 희미해져가는 ‘시의 시절’을 다시 밝히기 위해 시인이자 출판인으로서 고군분투했던 삶의 기억을 빼곡히 담았다. 시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써내려간 산문들은 “시의 비밀을 밝히는 등불”(정호승, 추천사)이 되어 어려울 것 같은 시의 세계에 한 발 더 가까이 내딛을 수 있게 한다.
매순간을 맑고 아름다운 시의 눈으로 살아온 저자의 삶을 통과해온 시들, 그 시들과 함께했던 한 인생을 따라 읽다 보면 독자들은 비로소 시와 삶이 하나가 되는 진경을 만나게 된다. “시적 순간이 올 때마다 한 편씩이라도 시를 읽으며 보낸 삶은 그렇지 않은 일상보다 훨씬 더 눈부시고 따뜻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안내를 받으며 빛나는 시편들을 새롭게 가슴에 담고,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외롭고 아플 때마다 시가 함께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치는 편지”이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 앞에서 지치고 힘든 하루를 견뎌낼 깊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시집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가 나온 후 첫 산문집 출간입니다. 산문집 출간하실 때 어떤 마음이 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과연 맞는가’라는 생각이 원고를 퇴고하면서 출간 작업을 진행하는 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인으로서 이름을 걸고는 겨우 두 번째 책을 내지만, 전에 정확한 숫자를 헤아리지 못할 만큼 수백 종의 책을 만들어본 경험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해마다 우리나라에는 수만 종의 책이 출간되지만(2021년 기준 약 6만 종) 독자에게 가닿지 못한 채 재고로 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일정 시간이 흐르면 또 어마한 양의 쓰레기로 폐기되기도 합니다. 출판사 편집장 시절에는 한 권 분량의 원고가 채워졌다고 다들 너무 쉽게 출간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갈수록 책을 대체하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독서율은 떨어진다는 분석과 통계 앞에서는 정말 참담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현실입니다.
책을 포함해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물건들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하고 온실가스의 원인이 되는 탄소발자국을 남깁니다. 기후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걸 우리는 나날이, 계절마다 더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습니다. 정말 너무 쉽게 생산하고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따져보는 것이야말로 시대정신이자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더 바짝 긴장하며 퇴고한 것 같습니다. 최소한 독자의 선택에 후회가 없을 만큼의 값어치 노릇은 해야겠다는 다짐에서 오는 긴장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시를 읽고 쓰고 만지며 살아오셨는데요, 유독 ‘시’에 끌리신 특별한 계기와 이유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랄 것은 없고 어릴 때는 그저 펜을 잡고 끄적거리는 것이 시간가는 줄 모를 만큼 좋았습니다. 백일장 참가와 독서, 쓰는 행위가 일종의 놀이였지요. 그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은 시대도 아니었고요. 좀 더 자라서는 ‘미적 충동과 쓴다는 것’ ‘예술로서 시’에 대한 자의식이 어설프게나마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국어 선생님들은 저를 무척 아껴주셨고 쓰는 습관이 계속 이어져서 별 고민 없이 문예창작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소설보다는 압축적인 시가 압도적으로 좋았기 때문에 전공하게 된 것이죠. 쓰는 자에게는 텍스트의 ‘압축’이 참으로 어려운 것이지만 거기에서 탄생하는 ‘여백의 깊이와 넓이’ ‘의미와 상상력의 확장’은 참으로 처연하면서도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예술로서 문학의 육체(책)’에 대해 고민하다 매력을 느껴서 출판을 업으로 삼았더랬습니다. 시와 소설을 책으로 만드는 일에 지치지 않고 20년 동안 몰입할 수 있었던 것도 다 한국 시와 소설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습니다.
제목처럼 모든 순간마다 시를 떠올리시지만, 특히 시가 생각나는 때는 언제이신가요?
일상에서는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순간들이 떠오를 때입니다. 상처와 고통, 후회와 자책으로 남은 기억이 되살아날 때도 시를 읽게 됩니다. 일종의 하소연 대상이 시라고나 할까요? 카운셀러의 역할을 시가 한다면 과장일까요? 천 권이 훌쩍 넘는 시집들은 읽었지만 다 기억할 수는 없지요. 심지어 (제 시를 포함해서) 온전하게 외우는 시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구절이 입가에 맴돌면 검색해서 찾아내게 되고 책장에서 시집을 뽑아 다시 펼쳐 읽게 됩니다.
쓰는 자로서 시(소재)는 시도 때도 없이 ‘불현듯’ 나타납니다. 이 책에도 썼지만 본질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현상이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삶을 표상하는 현상과 사물, 사건이 모두 다 시 쓰기, ‘시적 받아쓰기’의 대상입니다. 이 대상이 말을 걸어오듯 신호를 보내면 귀 기울여 포착해야지요. 모든 현상과 대상을 통해서 일종의 ‘존재와 신(神)의 기척’과도 같은 ‘시적 눈짓’이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지요. 심지어 아주 예민한 때에는 꿈속에서도 시를 씁니다. 깨고 나면 한낱 허상이지만요. 그러니 수도자처럼 긴장을 잃지 않는 시인일수록 이 받아쓰기를 좀 더 잘해서 좋은 시를 써낼 수 있다고 오래전부터 믿고 있습니다.
시를 쓰는 시인이자, 시집을 많이 만들어본 출판인, 그리고 시를 읽는 독자로 살아오셨는데 각각 시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시인으로서 쓸 때와 출판인으로서 시집을 만들었을 때는 공히 작품들을 끝까지 미완성작으로 대했습니다. 끊임없이 수정해서 완성했다고는 하지만 실은 완성에 가까운 작품은 있어도 완성작은 없지요. 그런 냉정한 마음으로 시를 대합니다. 그런 자세로 쓸 때와 책을 만들 때 모두 애정과 에너지를 쏟게 되었습니다. 물론 마감에 쫓겨 미흡하게 작업한 작품에는 늘 아쉬움과 미안함이 남아 있습니다.
독자로서는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 시 작품을 대합니다. 그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느껴도 완결된 것으로 존중합니다. 그 작품의 운명으로 인정하는 것이지요. 시인은 죽어도 작품은 그 상태 그대로 남게 되는 운명이지요. 독자는 그 숱한 운명들 중에 취사선택해 동질감을 느끼거나 내면화하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시(집)는 넘쳐나고 태작이 많은 만큼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작품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시인들은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시를 쓸 것입니다. 좋은 작품만 골라 읽기에도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시를 낯설고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또 시에 쉽게 다가가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
‘시는 과연 소화하기 어려운 예술인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깊이 고민한 주제였습니다. 왜 어렵게 느끼면서 독자들은 점점 더 시를 멀리하게 되는 것일까…… 숱한 시집들을 만들면서 품었던 생각도 같이 떠올랐습니다. 시집을 보면 마지막 부분에 ‘해설’이 덧붙여 있지요. ‘해설’은 말 그대로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집 해설은 종종 독자가 시를 더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아는 체하는 현학취(衒學臭)에 빠져서 자기가 공부한 어려운 단어와 비유, 상징어들을 잔뜩 늘어놓는 평론가도 있습니다. 문학과 철학 전공자나 알아듣는 말들이 과연 독자에게 ‘알기 쉽게’ 가닿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시인들은 시대문제에 깊이 천착할 소명도 갖고 있습니다. 시인은 폐쇄된 자의식에만 머물지 말고 독자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환경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예민한 정신의 촉수를 깨워내 시를 써야 하지요. 요즘의 시인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러니까 독자가 시를 어렵게 느끼게 된 책임의 상당부분은 시인과 평론가에게도 있다고 생각해요.
시를 어렵게 느끼는 독자들께는 일단 시집을 가볍게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한 작품이 어렵다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지 못하면 자연스레 시집을 멀리하고 다시 찾지 않게 됩니다. 어려운 작품은 지나치면서 속독이라도 좋으니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 보면 가슴에 걸리면서 내면으로 스며들어오는 작품이나 시 구절이 한두 개는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반복하는 운동처럼 독서하다 보면 시에 대한 ‘독서 근육’도 생기면서 점차 더 많은 시집을 손쉽게 읽게 될 겁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작품 위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노래하듯 낭송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작가의 말’에서 “‘시적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다 많은 ‘시적 순간’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적 순간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지는 목련꽃을 보고 울컥하거나 한낮의 그믐달이 시리게 다가온다면 그게 시적 순간입니다. 이런 순간은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현상으로 다가옵니다. 새벽과 저녁 어스름의 푸른빛, 은하수와 유성우, 반딧불이와 무당벌레, 낙화와 낙엽, 숲속 솔바람과 태풍, 계단처럼 깊어지는 바다 빛깔, 봄비와 가을비와 장마와 비에 젖는 장미, 나무 아래 누워 바라보는 잎사귀와 그 틈새의 하늘빛과 구름, 아침의 성악곡과 한밤의 현악곡, 재즈와 블루스, 산조와 판소리 눈대목, 내내 지워지지 않는 영화의 한 장면, 사랑하는 사람의 반짝이는 눈동자, 한참을 울고 난 친구의 어깨, 첫아이의 첫걸음… 나열하기 힘들 만큼 일상에서 시적 순간은 많습니다. 그런 순간을 앞에 두고 무심하고 무감하게 넘기는 이도 있지만 뭉클해하면서 그리운 순간과 기억들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내면에서 이러한 순간이 지속하는 것을 ‘감상’으로 취급하고 깊게 빠져들지 않으려 애쓰면서 서둘러 지우곤 합니다. 저는 밥도 돈도 안 되는 이 순간들이 감상이 아니라 감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시적 순간이라고 표현하지요.
마지막으로 『당신의 모든 순간이 시였다』를 읽을 독자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읽게 되신다면 앞으로 하루에 오 분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시를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시집은 물론 앱과 SNS를 통해서도 시를 읽고 공유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시는 지나간 시간보다 지금 이 순간을, 그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을 왜 더 사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비밀열쇠 같은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시를 가지고 부모님, 친구, 연인에게 사랑과 우정을 고백해보는 것도 추천해드립니다. ‘작가의 말’을 다시 얘기하자면 ‘시적 순간’을 만날 때마다 한 편씩이라도 시를 읽으며 보낸 삶은 그렇지 않은 일상보다 훨씬 더 눈부시고 따뜻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바짝 마른 가뭄같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지, 윤기와 물기가 있는 삶을 살지 선택하라면 대부분 후자 쪽을 고르지 않을까요. 인생에 윤기와 물기를 더하고, 자신만의 상상력과 감성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예술이 시입니다.
*박신규 1972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2010년 『문학동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시집으로 『그늘진 말들에 꽃이 핀다』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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