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작가 정진호 “책으로 건축을 하는 중이에요”
저는 책으로 건축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걸 좀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스스로 증명하고 싶기도 해요. 간혹 건축 공부하는 친구들이랑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너희들은 집을 실제로 짓겠지만 나는 책으로 짓고 있다고 얘기해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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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으로 집을 짓고 있다, 고 말하는 건축가. 그리고 볼로냐 라가치상을 두 차례 수상한 그림책 작가. 정진호 작가가 4년 만의 신작 『심장 소리』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은 ‘심장 소리를 모아둔 공간’에서 태동했다. 이야기를 세상에 내어놓으며 작가는 알게 됐다. 이것은 한 아이의 기억과 탄생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건축을 공부했고, 지금은 책 속에 이야기 집을 짓고 있는’ 정진호 작가는 첫 그림책 『위를 봐요!』로 ‘2015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했다. 이어서 2018년에 『벽』으로 두 번째 라가치상을 받았다. 또한 『부엉이』로 ‘한국안데르센상’ 미술 부문 우수상을 『벽』으로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 이들 작품과 함께 『별과 나』, 『나랑 놀자』, 『여우 씨의 새 집 만들기』를 쓰고 그렸다. 그린 책으로 『노란 장화』, 『루루 사냥꾼』, 『투명 나무』, 『작은 연못』 등이 있다.



기억과 탄생

『심장 소리』의 이야기는 언제 시작됐나요? 

일본의 테시마라는 섬에 심장 소리를 모아둔 공간이 있어요. ‘심장 소리 아카이브’라고, 외국 작가가 만든 공간이에요. 그 작가가 모은 수많은 심장 소리들이 보관돼 있고, 그곳에 가면 직접 녹음을 할 수도 있고 들어볼 수도 있어요. 저도 직접 가본 건 아니고 친한 교수님이 다녀오셔서 저한테 얘기해주신 거예요. 그 공간이 너무 좋았다면서 경험을 섬세하게 묘사해주셔서 제가 직접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에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고요.

‘심장 소리 아카이브’에 대해 들으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문득 ‘왜 심장 소리를 보관하고 싶어 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그 교수님이 그곳에서 만났던 관람객 얘기를 해주셨는데, 한 남자가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엄청 울고 있었대요. 무슨 일일까 해서 물어봤더니 자기 아버지의 심장 소리를 듣고 있었던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같이 와서 심장 소리를 녹음해 둔 상태였는데 해마다 기일이 되면 그 심장 소리를 들으러 온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심장 소리로 아버지를 추억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걸 그림책으로 그려보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책이 『심장 소리』예요.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죠? 

그 아카이브에 대해 들은 게 7~8년 전이에요. 그리고 1~2년 지난 후에 처음 더미북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뭔가 제 마음에 딱 와 닿지 않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부분이요. 그래서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다, 라는 생각에 계속 넣어뒀었어요. 그러다 6년 만에 다시 꺼내서 출간하게 된 거예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이 책이 의미하는 바를 제가 나중에 깨달았던 거죠. 처음에는 저도 (작품 속의) 아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방식으로 심장 소리를 가지고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6년 만에 책을 꺼내서 읽다 보니까 다른 의미를 더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왰어요. 저는 이 아이가 태어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썼던 거예요. 물론 심장 소리를 기억하기 위해서 뛰는 것이기도 한데, 결국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만의 심장 소리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인 거죠. 그렇게 생각하고 책을 다시 봤더니 ‘나한테 이야기가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정도 의미면 책을 내도 되겠다 싶었어요. 『심장 소리』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책으로 읽어도 되고 태어나는 한 아이의 이야기라고 읽으셔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심장 소리』의 ‘나’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다른 사람’을 기억해요. 

태아가 14주 정도부터 소리를 들을 수 있대요. 아마 우리 체내에 들어있는 가장 최초의 기억이 그 심장 박동음일 거라고 저는 생각했거든요. 이 아이 안에 남아 있는 태초의 기억도 몸 안에서 들었던 그 심장 소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죠.

작품을 쓰시면서 작가님도 누군가를 떠올리셨나요?

특정인을 떠올리거나 그러지는 않았는데, 아무래도 제 어린 시절을 많이 생각하면서 썼죠. 다른 작가님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저는 작가가 기본적으로 자기 안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특히 어렸을 때 경험한 것들을 가지고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위를 봐요!』도 그렇고 『3초 다이빙』도 그런데요. 『3초 다이빙』은 아주 어릴 때 이야기라면 『심장 소리』는 조금 더 크고 나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책을 쓰면서 열두 살, 열세 살 무렵을 많이 생각했어요. 그때 육상 선수로 활동했었거든요. 중거리 달리기 선수였는데, 그때 제 심장 소리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항상 간결한 색과 선을 사용하시는데요. 『심장 소리』에서는 하나의 색만 사용하셨어요. 

어떤 색을 썼다면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된다고 믿는 편이에요. 예쁘게 보이려고 색을 쓴다는 건 스스로 좀 용납할 수 없어 하고, 분명한 의미와 콘셉트가 담겨 있는 색을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래서 좀 색깔을 가려 쓰는 편이긴 해요. 지금까지는 주로 노란색과 파란색을 많이 썼는데, 이 책에서는 빨간색을 썼어요. 심장을 상징하는 색깔이기도 하고, 뭔가 따뜻함을 주는 색깔이기도 하잖아요. 사실 작업을 하면서 고민을 했어요. 색깔을 다양하게 쓰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 베리에이션을 줬었죠. 그런데 저는 『심장 소리』가 한 아이가 태어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이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태어나는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 전체가 다 빨간색이 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에게는 심장 소리가 세상의 전부니까, 다 심장의 색깔로 가는 게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책으로 집 짓는 건축가

건축을 전공하셨습니다. 『위를 봐요!』『별과 나』『벽』으로 ‘건축3부작’을 완성하셨고요. 

제가 처음에 만든 책 세 권인데, 사실 그 세 권은 어떻게 만들지 정해져 있었어요. 『위를 봐요!』는 평면도를 가지고 그림책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요. 단면과 투시도로 한 권씩 더 만들어봐야겠다는 계획이 잡혀 있었어요.

처음 작가님이 등장하셨을 때 ‘건축을 공부한 작가로서 색다른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요. 작가님은 점점 더 넓고 다양한 영역의 작품을 보여주셨어요. 

사실 건축이라는 분야도 엄청 다양해요. 우리가 보통 건축이라고 하면 집 짓는 것만 생각하는데, 아티스트로서의 건축가들도 있거든요. 페이퍼 아키텍처(Paper Architecture)라고 하는데, 도면이 주는 아름다움이나 알맞게 맞춰져 있는 선들의 느낌을 가지고 아트를 하는 분야도 있어요. 정말 다양한 여러 가지 영역이 있고, 저는 ‘책으로 건축을 해나가야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임했던 거였어요. 초창기에는 가장 기본적인 평면, 단면, 투시도를 책으로 표현해보자고 생각했던 거고, 이후에는 ‘내가 건축에서 얻었던 영감이나 생각 같은 걸 반영해서 책에 한 부분은 들어가 있게 하자’라는 생각으로 작업한 거예요. 

『심장 소리』도 ‘심장 소리 아카이브’라는 건물에서 영감을 받아서 시작하게 된 거잖아요. 그것도 내 책에서 건축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림책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내 책에서 어떤 게 건축의 한 부분으로 녹아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없으면 채워 넣으려 하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건축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들을 가지고 작업했다면, 이후부터는 ‘난 이것도 건축이라고 생각해’ 하는 것들이 자꾸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영역이) 넓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가 프로필에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은 책 속에 이야기 집을 지어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있다’고 쓰여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저는 책으로 건축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양한 방식으로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걸 좀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스스로 증명하고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건축하고 있다고 말하고, 간혹 건축 공부하는 친구들이랑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너희들은 집을 실제로 짓겠지만 나는 책으로 짓고 있다고 얘기를 하죠.

볼로냐 라가치상을 두 차례 수상하셨습니다. 늘 수식어로 따라붙는 이력이기도 한데요.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부담스러웠죠. 그런데 두 번째 상이 저한테 좀 더 특별했던 게, 첫 번째 상은 ‘오페라 프리마’라고 신인상 부문이었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부문은 건축/예술 디자인 분야(아트, 아키텍처 앤드 디자인)였어요. 건축상을 받았다는 게, 나름 되게 뿌듯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 교수님들이 제 건축을 되게 싫어했거든요. (웃음) 항상 ‘건축스럽지 않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른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건축을 하는데 저는 맨날 엉뚱한 거 한다고 생각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상을 받으니까 내가 건축을 하고 있다는 걸 누군가한테 인정받은 기분이었어요. 내가 꾸준히 건축 작업을 해가고 있다는 걸 이 사람들은 인정을 해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죠.

작가님의 작품을 볼 때마다 ‘시선’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작업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인가요? 

네, 저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말은 ‘시선’인 것 같아요. 뭔가를 바라보는 눈. 처음에 만든 책 세 권(『위를 봐요!』, 『별과 나』, 『벽』)이 평면 단면 투시도로,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였잖아요. 다음의 책들도 그걸 염두에 둔 것 같아요. 이제는 위치만 달라진 게 아니었죠. 『별과 나』는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작고 미약한 것들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한 책이고 『3초 다이빙』은 내가 뭘 못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였다면 『심장 소리』는 앞을 보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책은 (작품 속의) 아이가 태어나러 가는 이야기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래서 이 아이는 꾸준히 앞만 보고 달려가요. 주변을 보기도 하지만. 그래서 계속 건녀편으로 건녀편으로 이어지고 있고, 아이는 한 발짝씩 나아가는 이야기예요. 『3초 다이빙』이 자신의 약점을 고백하면서 시원하게 털어내는 이야기라면 『심장 소리』에서는 끈질기게 한 발짝씩 나아가는 아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두 번 읽어주세요

곧 다른 작품들도 출간되죠?

올해는 책이 좀 많이 나올 예정이에요. 창작책도 한 권 나오고, 그래픽노블도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래픽노블은 스케치는 거의 다 됐고 그림만 들어가면 되는 상태예요. 그리고 6월에는 에세이집이 나올 예정이거든요. 고정순 작가님과 편지 형식으로 글을 썼던 프로젝트가 있는데, 매주 한 편씩 1년 동안 메일링을 했어요. 그 글들이 책으로 묶여서 한 권씩 나올 예정이에요.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라기보다는, 하나의 주제로 고정순 작가님과 제가 에세이를 한 편씩 써서 독자 분들한테 보내드리는 형식이었어요. 서간문보다 더 에세이 같은 느낌일 거예요. 그 책이 6월에 나오고, 그래픽노블은 9월이나 10월 말쯤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픽노블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SF예요. 달토끼 이야기인데, 지구인 줄 알고 달에 잘못 착륙한 토끼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그림책 콘티로 짰는데 출판사에서 보시고 이 주제에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가면 재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지금까지 주제 위주의 책을 써왔잖아요. 『벽』도 그렇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거나 주제를 보여주는 거에 집중하다 보니까 이야기가 풍부해서 기승전결이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야기성이 강한 책도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이전보다 분량이 훨씬 많아졌겠어요. 

양이 거의 대여섯 배 늘었어요.(웃음) 그리고 그림책과 만화책 연출이 전혀 다르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있긴 했어요. 그래서 자료 조사를 핑계로 만화책을 되게 많이 읽고 있어요. (웃음)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니까 저도 재밌더라고요.

제목은 정하셨어요?

‘나의 달을 지켜줘’예요. 아마 그 제목으로 나올 거예요. 저는 모든 책을 제목부터 정해놓고 시작하거든요. 『나의 지구를 지켜줘』라는 순정만화가 있는데, 제가 어렸을 때 되게 좋아했던 만화예요. 그 만화에서 모티프를 받아서 만든 이야기라 제목을 ‘나의 달을 지켜줘’로 지었어요.

『심장 소리』의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제가 예전에 육상 선수였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 주로 800m 달리기를 했었어요. 400m 트랙을 두 번 도는 달리기인데, 단거리는 결승점이 보이고 그걸 향해서 달려가면 되잖아요. 중거리는 좀 달라요. 400m를 두 번 돌아야 하니까, 자기가 원래 서 있던 자리에 꼭 한 번은 돌아와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다음 바퀴부터는 이전 바퀴의 나와 같이 뛰는 거예요. 『심장 소리』를 쓰면서 그때의 기억을 많이 떠올렸어요. 이 책도 끝의 두 부분이 앞의 두 부분이랑 겹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아이가 처음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서 태어나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 삶을 살아가는 거예요. 책을 다시 읽으시면 두 번째 바퀴를 읽어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은 최소 두 번은 보셨으면 좋겠어요.




*정진호 (글·그림)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한양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지금은 책 속에 이야기 집을 지어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첫 그림책 『위를 봐요!』와 『벽』으로 2015년, 2018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또한 『부엉이』로 한국 안데르센상 미술 부문 우수상을, 『벽』으로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쓰고 그린 책으로 『위를 봐요!』, 『벽』, 『별과 나』, 『나랑 놀자』, 『여우 씨의 새 집 만들기』가 있고, 그린 책으로 『노란 장화』, 『루루 사냥꾼』, 『투명 나무』, 『작은 연못』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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