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 오늘 주제는 "'책태기' 극복 프로젝트! 이 책이면 가능해요"입니다. 저희는 2주에 한 권 책을 소개하고, 게스트도 모셔야 하니까 대략 한 주에 한 권씩은 꼭 읽게 되는 셈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책 읽기 싫다, 하는 순간들이 있죠.
캘리 : 나한테 들어올 수 있는 콘텐츠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다른 걸 너무 많이 보면 독서가 자꾸 후순위로 밀리더라고요. 그런 책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넷플릭스를 잠시 끊었다는 TMI를 전합니다.(웃음)
프랑소와 엄 : 며칠 전에 좋아하는 편집자 분과 차를 마시다가 그분도 책태기가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늘은 그분께 부담 없이, 또 자신 있게 선물할 수 있을 만한 책을 골랐습니다.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강인식 저 | 원더박스
부제는 ‘난치병을 딛고 톨킨의 번역가가 된 박현묵 이야기’예요. 이 책은 어떤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겠다는 저자 분의 태도 덕분에 더 술술 읽히고요. 동시에 이 책의 주인공인 박현묵 님이 어떤 사람인지 굉장히 궁금해지는 책이었습니다. 저자 분은 기자예요. 우연히 박현묵 님의 사연을 듣고 원래는 기사로 소개하려고 했는데요. 박현묵 님을 만나고 나니까 기사로 끝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책이 탄생했습니다. 우리가 책태기 이야기를 하면서 나태함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요. 저자 분이 박현묵 님에게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힘들고 어려웠을 텐데 괜찮았냐고 묻자 박현묵 님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사춘기 시절, 질풍노도는 늘 침대 위에서 끝났어요. 그렇다고 해도 아프다는 것으로 나를 정의하거나 무엇을 못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삼고 싶지 않아요. 내가 무엇을 못했다면 그것은 나태함 때문이에요. 장애 때문이 아니죠. 나의 십대는 나태함에 아픔이 양념처럼 뿌려져 있는 상태였어요. 혈우병도 장애도 저의 주인은 아니었어요.
박현목 님은 중증 혈우병이고, 약이 거의 효용이 없었다고 해요. 신체 곳곳에 내출혈이 일어나면 그때마다 응급실에 가야 했고요. 때문에 초등학생 때까지는 도보가 가능했었는데 증상이 심해지기 시작하면서 중학생쯤에는 휠체어를 타게 됐고, 병원에 가는 횟수도 늘었죠. 학교도 가지 못했고요. 그런데 이렇게 밝고 희망적인 사람이 없더라고요. 게다가 박현묵 님은 SF 관련한 장르부터 시작해 역사나 언어의 어원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러다가 톨킨을 만나게 된 거죠. 그렇게 이 책의 다른 한 축은 박현묵이라는 사람이 톨키니스트가 되는 과정, 단순히 톨킨을 좋아하는 사람을 넘어서 톨킨의 책을 번역하는 이야기인 거예요.
이 책을 단순히 몇 개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인간 박현묵이 어떻게 병상에서 나와 대학교에 들어가는지 궁금하신 분들에게도 좋을 거고요. 책태기가 온 분들에게는 내가 정말 재밌게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 번 읽고, 책에 대한 애정을 되찾아보고 싶게 할 거예요. 무엇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좋아하는 것 이상이 되어 마법 같은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을 우리 모두가 만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 독서는 독서에서 끝나지 않고 원래의 나를 되찾는 느낌이었어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쩡찌 글·그림 | 아침달
작년 12월에 나온 책인데요. 출간 한 달 만에 무려 3쇄를 찍었다고 해요. 저도 이 책의 존재는 알고 있었어요. 올해 초에 이 책을 좋게 읽었다는 리뷰들도 몇 개 보게 됐고요.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오늘 주제에 이 만화가 생각이 나서 구입해 읽었습니다. 추천사를 황인찬 시인님이 써주셨어요. 저는 소설을 시인이 추천하고, 시집을 소설가가 추천하고, 만화를 영화 감독이 추천하는 식으로 장르를 넘나드는 책을 볼 때 반갑거든요. 그런데 작품을 보니까 황인찬 시인님이 나오더라고요. 주인공 ‘땅콩’이 좋아하는 시인으로 등장하는데요. 저는 황인찬 시인님의 추천사로 책이 잘 완성된 느낌이었어요. 추천사의 일부를 읽어볼게요.
『땅콩일기』는 우리 삶에 갑자기 찾아오는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작은 기쁨의 순간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섬세하게 풀어낸 책이다.
타인의 일기를 펼쳐보는 것은 그 자체로도 짜릿하고 즐거운 일일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이 책이 내가 어릴 적 유행하던 교환일기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전하는 그 내밀한 이야기들은, 또 아주 다정하고 넉넉한 말과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얼마든지 우리가 그 마음과 생각 안으로 들어오도록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너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어?’ ‘너는 왜 슬프다고 생각했어?’
읽고 났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되는 책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질문이 생겨날 때 책을 읽은 보람이 느껴지는데요. 이 책도 그런 느낌을 갖게 해줬어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이 책은 잔잔하고, 긴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말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냥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 하게 되는 느낌이거든요. 황인찬 시인님이 ‘비밀 일기’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저는 이 만화를 읽으면서 정말 작가와 단둘이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주 독특한 기분이었어요. 사람들은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잘 들릴 것 같지만 사실은 목소리가 작으면 그 사람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되고 더 집중되잖아요. 이 책이 그랬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소개에 이렇게 쓰셨어요. ‘일러스트레이터. 돈과 명예가 갖고 싶습니다.’ 저는 진짜 돈과 명예가 너무 갖고 싶다면 이런 문장을 못 썼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거짓말을 썼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제가 느끼기에는 돈과 명예보다 더 중요한 걸 품고 사는 사람이라서, 그걸 너무 못 쫓는 사람이라서, 좀 챙겨야 할 것 같아서 그나마 이런 문장으로 스스로를 좀 다독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살짝 우울하거나 다운되어 있는 친구한테 선물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김은성 글·그림 | 문학동네
총 4권짜리예요. 무겁기도 하고 가격도 만만치가 않은데요. 책태기를 극복하려면 완독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책은 네 권이지만 한 번 펼치면 끝까지 읽게 되어서 성취감이 크고요. 더구나 만화니까 너무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죠. 또 잘 읽히면서도 의미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골라 왔습니다.
이 책은 개정판이에요. 아마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예전에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님이 이 책을 소개하고, “이런 책은 사라지면 안 된다”고 말씀을 하셔서 엄청 화제가 됐었어요. 2019년이었는데요. 당시 책이 절판된 상태였거든요. 김영하 작가님이 이 책을 구할 수 없는 것을 안타깝다고 하셨던 건데 방송이 나가고 재출간 문의가 쏟아진 거죠. 덕분에 빠르게 개정판 작업이 이루어져서 애니북스 출판사에서 출간이 됐습니다. 그 기회로 만화가님과 인터뷰를 했었는데요. 당시 인터뷰 제목을 “엄마가 춤이라도 추고 싶다고 하셨어요”로 뽑았어요. 그만큼 개정판이 나온 것이 만화가님과 이 책의 주인공인 어머니에게 큰 기쁨이기도 했다는 것이고요. 그 점이 정말 좋았어요.
이 책은 만화가님의 어머니 ‘이복동녀’님의 이야기예요. 어렸을 때는 가족들이 복동녀 님을 ‘놋새’라고 불렀어요. 주인공 놋새는 1900년대 초에 태어났습니다.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는 어머니의 삶을 4권의 만화로 담은 거죠.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이야기가 엄청 슬프기만 하지도, 기쁘기만 하지도 않다는 점이에요. 기쁘고 슬픈 감정들이 다 녹아 있으면서도 담담하게 지나오는 느낌이 있거든요. 그게 이 책의 큰 힘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 우리도 개인의 삶을 사는 동시에 역사를 살지만 개인의 삶 안에서 그 역사라는 큰 줄기를 전부 다 만나진 않잖아요. 조금씩 만나기도 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기도 하죠. 실제로는 그런데 픽션에서 어떤 인물이 역사의 줄기를 다 만나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정말 진솔하게 담고 싶었던 만화가님의 마음이 많이 느껴지는 거죠.
이 책을 읽으면 어떤 삶을 나도 같이 조금 살아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책을 읽는다기보다 사는 같은 기분을 약간 전해주는 책이라서 금방 빠져들어서 읽을 수 있고요. 일단 읽으시면 바로 책태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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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