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스스로 사장인 변호사, 특히 개업 변호사라면 이제 영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확고한 자기 전문 분야가 있는 변호사가 아닌, 보통의 초보 개업 변호사의 경우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선배 변호사가 했던 인상적인 조언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네가 뿌린 100장의 명함 중에 한 장의 명함은 반드시 고객으로 연결된다.” 그 말인즉 열심히 사람을 만나며 명함을 뿌리고 다니면 그중에 한 고객은 변호사 사무실 살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명함 100장의 법칙’이다.
그렇다면 명함을 확실하게 많이 뿌려두는 게 좋다. 관건은 명함을 뿌리는 방식이다. 고전적인 영업 방법은 인맥을 통해, 사람을 만나면서 한 장 한 장 자기 명함을 건네는 일이다.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듯이 명함을 뿌릴 순 없지 않은가(요즘 젊은 변호사들이 포털 사이트에 하는 온라인 변호사 광고는 대중에게 명함을 대용량으로 살포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제 변호사들은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자기 명함을 건넬 것인지에 대해, 자기 스타일대로 각자의 방법을 선택해야만 한다.
가장 전통적인 영업은 술자리를 통한 것이다. 영업하는 변호사 본인이 ‘알코올 친화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비용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다. 사건을 의뢰할 만한 이들이란 기업체를 운영하거나 규모가 있는 장사를 하는, 40~50대 비즈니스맨이기 마련이고 이들과 짧은 시간에 가까워지기 위해선 아무래도 저녁 식사를 겸하여 술 한잔을 하는 것이 여전히 통용된다.
다만 모임에서 변호사가 소개되는 방식은 변호사 공급이 넘쳐나고 숫자가 많아짐에 따라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서울 이외의 지방에선 여전히 로터리 클럽이나 라이온스 클럽이 영업과 친목의 자조 조직으로 활발하게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과거엔 변호사 회원을 영입하기가 어려웠지만 요새는 너무 많은 변호사가 가입하려 해서 기수마다 제한을 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이 클럽들은 각 기수에 직업을 일정한 비율로 제한하는 내부 규정에 따라 회원 가입을 받는다). 말하자면 희소 자원으로 취급받던 변호사 자격증이 이제는 훨씬 가치가 낮아진 것이다. 어떤 모임에 간 변호사들은 자기 영업을 위해 한껏 자세를 낮추어 공손하게 명함을 드려야 하는 ‘을’의 위치를 자각하게 된다.
"‘명함 주기’는 명함을 주고받을 때에 한국인이 하는 동작의 표준형을 제시하고 있다. 한 손으로 상대의 명함을 받으면서 다른 손으로 공손히 제 명함을 내민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적당한 각도로 허리를 굽혀야 한다는 것. 서양에 없는 이 동작은 동서양 문화가 혼합되면서 나타난 애매모호한 동작이다. 한국 사람들은 서양식으로 악수를 하면서도 서로 허리를 굽히지 않는가. 특히 영업 사원들은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동작이다." *
명함을 뿌리기만 하면 되는가? 술 마시며 주고받은 명함이 얼마나 쉽게 버려지는지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명함을 주었으면 명함의 질서에 따라 관계의 유지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내게 조언해 주었던 다른 선배 변호사는 “하루에 10명, 1주일에 50명에게 어떤 명목으로라도 전화하기를 실천한다면 변호사 사무실은 운영된다.”라고 말했다. 이 조언 역시 명함 100장의 법칙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지만, 기한이 주어져 있고 전화하기의 난도가 높다는 점에서 더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었다(사실 나는 시도해 보지도 않았는데, 실은 저 조언을 했던 변호사 형으로부터 내가 회사원이던 시절, 오랜만에 걸려 온 전화를 받았을 때의 어떤 어색함과 당혹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명함을 받으면 일단 관심 있게 상대의 명함을 읽는 척한다. 하지만 그 사람과 다시 볼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를 집으로 초대할 의사가 있는 것은 더욱더 아니기에, 그렇게 공손하게 받은 명함은 대부분─대단히 죄송하게도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명함을 남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것은 이 사회의 공사 구별이 모호한 탓이거나,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관계 맺기가 남발되는 현상일 수도 있다." **
관계 맺기의 남발은, 사실 영업의 최전선에 서 있는 자들의 애처로운 몸부림임을 저자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회사원이던 시절엔 200장의 명함을 받고는 승진을 하기 전까지 다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나머지를 버렸지만, 변호사가 된 지금은 어느 곳에서든 명함을 뿌릴 준비가 되어 있다.
술자리에 친화적이지 않은 변호사는 운동 모임 등에 나가서 영업을 하기도 한다. 변호사들에게 운동의 왕은 누가 뭐래도 골프일 수밖에 없는데, 무엇보다 골프의 비즈니스 효과 때문이다. 골프는 동반자 세 명과 함께 네다섯 시간을 진행해야 하는 운동이다. 골프장 소재지가 대부분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라 이동하는 시간까지 합친다면 한나절 이상을 함께해야만 한다. 게다가 18홀의 라운드를 도는 동안 중간 휴식 시간에 식사나 간식을 함께 먹는 경우가 많고 게임이 끝나고도 술자리를 이어가기도 하니, 정말이지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운동이다. 요즘엔 골프 인구가 급증하여, 안 그래도 고가의 운동이던 골프 비용이 더욱 상승해 한 번에 수십만 원의 비용을 써야만 하는 것 역시 문제다.
골프의 사업적 효과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골프의 조건에 기반하고 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동반자와 함께해야 하는 운동,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나서야 어느 시골 잔디 위에서 조그만 공을 겨우 몇 번 칠 수 있는 운동이지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골프장을 몇 주 전에 예약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더해지면, 막대한 기회비용과 함께 이제 골프 동반자는 서로에게 너무 소중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최근에는 술자리보다 골프가 변호사 영업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도 있고, 다들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추세로 바뀌면서 골프가 더 영업에 ‘영양가 있다.’는 평들을 한다.
골프 영업으로 방향을 정했다면 이제 변호사는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아무래도 하루를 알차게 쓰기 위해 많은 사람이 오전의 1부 티업 시간(골프 라운드를 시작하는 시간으로 오전 1부, 오후 2부, 저녁 3부로 나뉘는데, 1부는 보통 이른 새벽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을 예약하고, 이 시간에 맞춰 나가려면 새벽 대여섯 시에 일어나 골프장 출근을 해야만 한다.
나는 얼마 전,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 골프장에 가기 위해 전날 마신 숙취가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난 적이 있다(당연하게도 원래 나의 기상 시간은 이보다 훨씬 늦다). 직접 운전을 하진 않아 그래도 다행인 골프장 가는 길이었는데, 속에선 ‘이게 사는 건가?’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도착한 클럽하우스에는 ‘한국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큼 (주로 중년)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북적이고 있었다. 물론 나는 이 열기를 감당할 만큼 성실한 부류는 아님을 다시 확인했던 순간이다. 이 많은 비즈니스(!), 이토록 치열한 계약 성사를 위한 질주(!)를 확인하곤 어떤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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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변호사)
『회사 그만두는 법』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