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를 인간 삶을 관찰하는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다면, 그는 반드시 ‘사랑’에 대해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이야말로 인간 본질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맨얼굴의 사랑』, 『모던 하트』 등의 소설에서 사랑을 테마로 동시대 한국인의 내면을 낱낱이 들여다본 작가 정아은이 ‘사랑’을 탐구한 에세이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을 내놓았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늘 새롭기만 한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우리는 흔들리고 나약해지고 때론 무너진다. 나를 지키는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가.
소설가로서 여러 작품에서 사랑을 테마로 작품을 쓰셨는데요, 이번에는 사랑을 주제로 에세이까지 쓰셨습니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고 계시다는 표현을 써도 될까요?
몇년 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독서 모임을 했을 때였습니다. 등장인물인 스완과 오데트에 대해 토론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오데트라는 인물을 너무 전형적으로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남자를 주위에 두고 이리저리 재보는 여성. 그런 여성에게 빠져든 돈 많은 부르주아 남자. 그 전형적인 커플상에 내리는 윤리적인 판단에 딴지를 걸고 싶어졌던 거죠. 오데트가 스완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하는 것이 오데트가 원래부터 ‘나쁜 사람’이기 때문일까? 오데트를 그렇게 만든 사회·경제적 조건을 짚어보고 싶었고, 우리가 사랑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현상에 내포된 사회·문화적 요소를 파헤쳐보고 싶었습니다.
그럼 작품 구상은 언제부터 하신 건가요?
사랑에 관해 쓰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있는 여러 다른 주제들과 섞여 떠오르기도 하다가 가라앉기도 했는데, 작년에 두 권짜리 소설 작업을 마친 다음에 그 주제가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그래서 허겁지겁 사랑 관련 책들을 읽고(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목적을 가지고 다시 재독했죠),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제가 그동안, 너무 심각하고 딱딱한 글쓰기를 해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렇게 말랑하고 재밌는 분야의 글쓰기가 있었구나. 재미있는데? 싶어졌지요.
책에서 작가님 개인의 이야기를 아주 진솔하게 쓰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이 자존감이 높지 않은 인물이라고 읽혔는데요, 독자 입장에서 참 의외였습니다. 문학상까지 탄 소설가시니까요.
저는 누군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저를 쳐다보기만 해도 열등감에 몸을 떨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저 사람은 왜 나를 보고 웃지 않았을까? 혹시 내가 싫은 걸까? 그렇다면 왜 나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문학상을 타고 ‘작가’라고 불리게 된 다음에는(세상에, 나도 잘하는 게 있었구나!) 그런 열등감을 유체이탈해서 바라보며 관조하는 여유가 생긴 듯합니다. 열등감은 그대로인데, 그 열등감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그 시뻘건 감정 덩어리를 다듬어 글로 빚어 보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열등감의 존재감을 감소시키는 기예가 생겨난 듯요.
육영수와 이희호, 서태지와 신해철 같은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해서 흥미로웠습니다. 아무래도 실존 인물이다보니 묘사할 때 ‘자기검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여러 번 고쳐 쓰면서 고민했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원칙을 세우게 됐는데요. 철저히 공개된 사실, 사실이라고 검증된 요소들만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제 추론과 의견을 덧붙이되, 사적인 감정이나 윤리적 판단은 가급적 들어가지 않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인물의 팬인 분들의 조언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 인물에 대한 애정에 바탕한 시선의 힘을 빌려, 제 감정과 편견이 들어갔던(하지만 저는 그렇다는 사실을 몰랐던) 부분을 다시 한 번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팬 분들께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작품에 여러 인물들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작가님이 보시기에 ‘내가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겠다’는 모델이 있다면?
제가 제 자유의지대로 살지 못한 편이기 때문인지, 마크롱 대통령의 사랑이 매우 근사해 보였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최대치로 실현한 경우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건 저의 이상일 뿐이고, 현실에서 저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아델에 가까운 모습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 심정을 너무 알 것 같아서요. 사랑을 잃는 순간의 기억은,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와 같지요.
책을 읽어보니 제가 이해하는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이란, 사랑에 밍기적거리지 말고 과감히 뛰어들되, 그 사람을, 그 사랑을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이 맞을까요?
정확하십니다. 제가 책 한 권에 걸쳐서 길게 늘어놓은 걸 이리 멋지게 요약해주시다니요!
작가님이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선물하시겠습니까?
예전에는 연애를 ‘잘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겁나게 잘 생겼거나, 2)고소득 전문직에 있거나, 3)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말발을 갖고 있거나, 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많이 받는 거라고요. 그런데 어느 날, 주위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연애를 매우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보니, 그 비결은 ‘적극성’에 있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죠. 연애에서 중요한 건 그 사람에게 있는 ‘우월해 보이는 특성’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 즉 ‘나 너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 적극성이구나! 친구 관계든, 일로 맺는 관계든, 인간과 인간이 맺는 모든 종류의 관계에서 중요한 건 무엇보다 손길이었던 겁니다. 먼저 내미는 손길. 한정해 선물해야 한다면 예전의 저와 닮은 꼴인 분, 즉 사랑은 이미 많은 걸 갖춘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정아은 2013년 제18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 『잠실동 사람들』, 『모던하트』, 『맨얼굴의 사랑』,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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