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만화가 박순찬 "누구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
그림은 세상을 관찰하고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사물의 실체를 파악하고 현실을 명확하게 이해하며 살아가기 위해 재능과 상관없이 누구나 끊임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는 분야입니다.
글ㆍ사진 김윤주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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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찬 작가

'그림은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취미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여전히 그림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특별한 재능과 스킬이 있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시사만화 <장도리>의 박순찬 만화가는 "누구나 방법만 알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도 그림과 친해질 수 있을까? 그 고민과 27년간 풍자만화를 그리면서 쌓은 경험이 만나, 『냥도리의 그림수업』이 탄생했다.

『냥도리의 그림수업』은 세세한 스킬을 전하기보다는, 고양이 '냥도리'와 함께 그림과 친해지면서 '그림 그리기'의 본질을 재미있게 알아가는 책이다. 냥도리와 함께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옮기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림 그리기가 결국 '나만의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 관찰력을 기를 수 있는 최고의 방법

'냥도리' 캐릭터가 주인공인 책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그간 냥도리는 시사만화 <장도리>에 나오다가, 이제 철학과 그림까지 배우는 고양이가 됐어요. 이번 책 기획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드로잉 책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아라크네 대표님의 권유가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3년도 더 지난 일인데 당시 아라크네 대표님과 지인분이 취미로 미술 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저는 지인분의 소개로 그 학원이 주최한 캐리커처 강습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드로잉 책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드로잉 책이나 인체 소묘 같은 서적들을 사서 본 적이 있었고 지금도 서점엔 수많은 그림 배우기 책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특정 분야에 대한 기법에 국한되어 있어서 단기간에 만족도를 높일 수 있을진 몰라도 그림 실력을 근본적으로 향상시키고 그림을 그리는 습관으로 이어지게 하는지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의 문외한이 봐도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책을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림을 그리는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냥도리'는 길고양이를 모델로 한 캐릭터라고요.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냥도리는 제가 신문에 만화 <장도리>를 연재하던 시절 휴가 중에 여행하다가 만난 고양이로부터 얻은 느낌으로 만든 캐릭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일인데 당시 이집트에서 본 길고양이들은 한국의 길고양이들과는 다르게 인간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고 그것이 저에겐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길고양이가 식당으로 들어와 제가 식사 중이던 테이블에 당당하게 앉아 먹을 것을 요구할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매우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양이들과 어우러져 사는 생활에 익숙해졌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집트에서 밥을 나눠 먹은 길고양이가 잊히지 않아 장도리에 출연시키게 된 것입니다.

그림을 보는 건 좋아해도 선뜻 그림 그리기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유독 그림은 재능의 영역처럼 생각되고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그림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어떤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선 소위 재능을 요구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재능이라는 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아니라 어렸을 때 경험한 특수한 기회와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특수한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그림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아예 접근하지 않는 것은 국가 대표 축구 선수가 될 수 없는 사람은 아예 축구공도 만질 수 없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운동이 체력 향상과 질병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처럼 그림 역시 세상을 관찰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물의 실체를 파악하고 현실을 명확하게 이해하며 살아가기 위해 재능과 상관없이 누구나 끊임없이 노력할 필요가 있는 분야입니다.

그림 그리기의 본질을 '관찰'이라고 보시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능동적인 관찰' 같아요. 수많은 관찰 방법 중 그림이 도움이 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관찰은 사물의 생김새를 파악하는 행위입니다. 눈이 있으면 당연히 주변 사물들을 관찰하며 생활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자기 눈을 많이 활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다지 면밀하게 관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관찰엔 에너지가 필요하고 관찰을 담당하는 두뇌 영역은 경제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에 형성돼 있는 관념대로 생활하는 것이 편합니다. 광고에 나온 브랜드가 붙어 있으면 좋은 아파트라고 판단하고 검은빛의 얼굴을 가진 외국인은 못 사는 나라에서 돈 벌러 온 노동자이며 백인 외국인은 서구에서 온 영어 잘하는 분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근거해 사람을 차별합니다. 모두 남이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에 기반한 행동이고 자신의 관찰에 의한 판단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주변 환경이 변하는 시대에 고정관념만으로 생활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항상 현실을 관찰하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찰의 힘을 기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그림 그리기입니다. 그림이라는 것은 사물을 관찰해 종이에 옮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이라는 것을 종이 위에 옮기는 행위에 중점을 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림을 그리는 프로세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물을 관찰하는 행위입니다. 건물을 짓는다고 할 때 콘크리트를 채우는 행위가 눈에 보인다고 해서 전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건물을 짓는 일에서는 설계 과정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린다고 할 때 종이에 옮기는 작업이 눈에 보인다고 해서 전부라고 생각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관찰을 방해하는 것 중 하나가 '개념'임을 알았어요. 익숙해진 개념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은데, 이를 위해 작가님은 일상에서 어떤 습관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림을 오래 그려 왔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익숙한 사물도 다른 시각으로 보려 하고 새로운 느낌을 받는 것을 즐기곤 합니다. 시각적으로 새로운 느낌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면서 한편으로는 더 새로운 자극을 요구하기 때문에 여행이나 인터넷을 통해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찾게 됩니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권의 종교적 상징물이라든가 과거의 유물 등이 그런 시각적 즐거움을 줍니다. 따라서 문화적 편견이나 선입관이 있다면 전 세계에 널려 있는 다양한 이미지로부터 시각적 즐거움을 얻기 힘듭니다. 폭넓은 관찰을 통해 다양한 시각적 훈련을 하기 위해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좋은 방법은 다양한 사물들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즉 두 행동이 서로 맞물려 발전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특히 실제보다 관념을 중시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학벌이라는 관념, 보수와 진보라는 관념, 이주민에 대한 관념을 기반으로 한 차별 등등 정체 모를 관념에 따라 판단해 버리고 배척합니다. 그리고 속습니다. 어떤 존재의 실체를 관찰해 보면 그 존재에 부여된 관념과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진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보수라고 단정한 인물이 사실은 진보적 요소를 가진 경우가 있고 진보적 인사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사실은 매우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인물로 드러난 경우는 허다합니다. 어떤 실체가 파악되면 관찰한 대로 그 사물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기존의 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그야말로 허상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 스스로의 눈으로 실체를 파악하고 거짓과 참을 분간하는 훈련이 쌓이면 정치적 선택도 현명하게 이루어지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장도리'에서 '냥도리'까지

책을 읽다 보니, 1995년부터 시사만화가 활동을 시작하신 작가님은 어떤 계기로 그림의 즐거움을 느끼시게 되셨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저의 경우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책을 많이 접하면서 그림 그리는 것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고, 다른 놀이보다 그림 그리기에서 즐거움을 찾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26년 동안 사랑 받았던 <장도리> 연재가 끝난 후, 출판 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계세요. 매일 마감을 하다가, 이제 다른 호흡으로 작업을 하실 것 같은데요. 어떤 변화를 느끼시나요?

신문사에 소속되어 있을 땐 '정규직'이라는 안정된 조건을 누리는 대신, 작가로서의 자유도를 희생해야 하는 점이 있었습니다. 신문사 역시 수익을 올려야 하는 기업인데, 특히 대기업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저 또한 만화가이기 이전에 신문사에 소속된 직원으로서 만화의 내용이 대기업 광고에 방해된다는 경영진의 푸념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퇴사 이후 틈틈이 풍자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는 그러한 제약이 전혀 없이 자유로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제 수익을 내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지요. 퇴사 이후 '독립운동가 100인 웹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환쟁>이라는 웹툰을 연재했고 공동 작업을 포함해 냥도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권의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출판 작업이나 웹툰 작업 등 가능한 한 여러 작업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장도리>의 백미 중 하나는 인물들의 캐리커처였어요. 비결이 궁금해서 이 책을 펼칠 독자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특징을 잘 잡아 그리는 법을 전수해주신다면요? 

무슨 일이든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는 데 있어서 쉽고 빠른 '비법'이 있다고 한다면 사기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 공짜는 없고 지름길도 없습니다. 쉽고 빠르게 얻었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나중에 돌이켜 보면 착각이었던 것으로 드러납니다.

캐리커처 역시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비법은 없습니다. 다만 혼자서는 겪기 쉬운 시행착오를 줄이고 갈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해서 제시한 책이 『냥도리의 그림수업』입니다. 이 책에서 알려 주는 생활 방식을 따르다 보면 언젠가 실력이 향상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물론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도리>에 냥도리가 등장할 때도 인기가 많았지만, '냥도리'가 주인공이 될 때 독자와의 소통 방식은 또 새로울 것 같아요. 특히, SNS상에 냥도리 캐릭터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은데요.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냥도리는 실제 고양이를 모델로 했고 사연이 있는 만큼 애정이 있는 캐릭터입니다. 제가 애정하는 캐릭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과는 당연히 동지애가 생길 수밖에 없죠. 냥도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들과는 동지적 유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음 '냥도리' 만화를 기다리는 독자분들이 많은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지만 가능하다면 냥도리를 주인공으로 한 다른 출판물이나 웹툰을 제작해 보고자 합니다. 냥도리를 사랑해 주시는 독자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냥도리가 많이 활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순찬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며, 대학에서 천문학과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만화 동아리 '만화사랑'에서 걸개그림과 각종 유인물 작업을 하면서 사회 현실을 다루는 만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95년부터 <경향신문>에 시사만화 <장도리>를 26년간 연재했다. 한국의 시대상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파노라마 시대화 작업을 이어 오며 개인전과 단체전에 다수의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현재 <나는 99%다>와 <5·16공화국>이 광주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고양이 맙소사, 소크라테스!』(공저), <장도리의 대한민국 현재사> 시리즈,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 『만화 박정희』(공저) 등이 있으며 2013년 『나는 99%다』로 '부천만화대상 우수 만화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독립운동가 100인 웹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한국 최초의 만화가 이도영의 삶을 조명한 웹툰 <환쟁>을 연재했다. 냥도리는 여행하다가 만난 길고양이에게 영감을 받아 탄생한 캐릭터다. SNS에서 활동하던 냥도리가 이제는 어엿한 주인공으로 책에 등장하고 있다.



냥도리의 그림수업
냥도리의 그림수업
박순찬 저
아라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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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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