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로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 언제일까? 고통에 빠져 있던 환자가 깨끗하게 나아 병원문을 나서는 순간이 아닐까? 반면, 의사가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아마 그 반대일 테다. 올해로 마흔다섯, 15년차 가정 의학과 의사인 저자는 "병이 낫지 않아 진료실을 계속 찾아오는 환자를 볼 때마다 제가 뭔가 중요한 걸 놓친 게 아닌가 계속 자괴감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병을 회복하지 못하는 환자 대부분이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 여성 환자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각해 보면 저 역시 40대를 지날 때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꼈거든요. 환자에게 단순히 '노화로 인한 현상이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가 아니라, 더 구체적으로 문제를 설명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이 바로 서정아 의사가 『어쩌다 마흔, 이제부턴 체력 싸움이다!』을 쓰게 된 이유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한편으로는 '마흔이 그렇게 특별한 나이인가?' 싶기도 한데요. 의사로서 여성의 마흔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마흔은 어떤 나이일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게요. 가정 의학과에는 어린아이들도 많이 찾아오는데요, 아이들은 감기나 두통처럼 어떤 문제 증상이 생겼을 때 간단히 약만 처방해도 금방 좋아져요. 그런데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까지 생애 전환기를 지나고 있는 여성들은 달라요. 약 먹을 때는 괜찮아진 거 같다가 금방 다시 증상이 돌아오거든요. 그래서 좀 더 상담해보면 문제의 원인이 생각지도 못한 데서 나와요. 생활 습관에 문제가 있다든가, 최근 계속 잠을 못 잤다든가, 어떤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다든가 말이죠.
특히, 마흔 즈음의 여성분들을 보면 그래요. 일단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 나이다 보니 만성 피로를 기본적으로 깔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집에서도, 또 직장에서도 뭔가 인생의 중추적인 허리 역할을 하는 나이니까요. 그리고 몸도 바뀌죠. 건강을 지탱해주던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 호르몬이 44세를 전후로 급감합니다.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유쾌하지 않은 신체 증상이 동반돼요. 우선 외모부터 보세요. 기미나 잡티, 검버섯 같은 것이 심해집니다. 얼굴 탄력이 무너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살이 잘 빠지지 않아요. 그전에 없었던 감염 질환, 척추 질환, 혈관 질환을 비롯해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병을 진단받을 확률도 올라가고요.
더욱 심각한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 여성들의 해결되지 않는 병의 증상을 파고들어 가다 보면 불면증, 우울, 불안감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문제는 이런 상태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예요. 40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보내느냐에 따라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지 결정된다는 말이지요.
마흔은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요? 선생님의 마흔은 어떠셨는지 개인적인 경험도 궁금해요.
저는 마흔에 첫 출산을 했어요. 그전까지는 나름 좋은 체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종종 트래킹을 다니고 "동안이네요" 같은 말도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출산 후에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제가 자신했던 그 많던 체력이 어느 순간 바닥을 치는 거예요. 외모도 갑자기 늙어 보이고요. 이전에는 늘 뭔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바탕으로 생활에 활력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꾸역꾸역 하루하루 버티듯 집과 병원을 오가며 살아가는 저를 발견했어요.
어느 날은 한 평 정도 되는 진료실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면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시적인 거겠지'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시차를 두고 몇 번 반복되니 생활을 바꾸지 않으면 큰 병이 찾아올 거라는 걸 직감했어요. 그때부터 변화하는 제 몸과 마음에 대해 돌아보기 시작했죠.
책의 장을 총 다섯 개로 구분하셨어요. 커다란 키워드만 살펴보자면 '마음 건강', '신진대사', '독소, '호르몬', '근육'에 대한 문제들인데요. 각 키워드를 꼽은 이유가 있을까요? 마음 건강이 가장 첫 번째로 나온 이유도 궁금합니다.
일단, 차로 비유해보죠. 새 차일 때는 굳이 수리할 필요가 없지요? 엔진 오일만 주기적으로 갈아주면 안전하게 잘 달립니다. 그런데 연식이 좀 된 차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부속품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수리하고, 평소에도 늘 긴장하고 관리해 주지 않으면 안 되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체력이 좋습니다. 며칠 밤새도 끄떡없잖아요. 하지만 40대부터는 신체의 각 부분이 노후되기 시작합니다. 연료 효율성을 결정하는 신진대사, 신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호르몬, 체격의 바탕인 근골격계를 받쳐주는 근육, 혈관과 세포에 쌓이는 독소 등등. 이런 부분들을 신경 쓰고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죠. 특히 이 모든 것들의 뿌리에 마음건강이 있어요.
혹시 자가 면역 질환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원래 면역 시스템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군인과 같아요. 그런데 내외부로 오는 공격이 너무 심할 경우, 이 군인들이 극심한 피로로 내외부를 구분하지 못하고 급기야 자기 자신의 세포를 공격해 파괴해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적당한 스트레스는 체력을 향상시키기도 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진정한 의미의 체력을 기르고 싶다면 마음의 면역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우선이에요. 물론, 현대를 살아가며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이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40여 년 인생을 살아내는 동안 마음에 쌓인 트라우마, 후회, 자책, 미움 같은 독소를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었어요.
그 '관리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이 책의 매력적인 부분은 습관 처방인 것 같아요. 특별히 어떤 약을 처방하시는 게 아니고 정말 일상에서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습관이 삶을 바꾼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습관 만들기도 정말 어려운 일인 데요.(웃음) 약은 그냥 입에 털어넣으면 그만이지만, 습관은 아니니까요.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습관을 만들 때 가장 큰 적은 뭘까요?
오래 타고 다닌 차를 고장 없이 잘 몰고 다니시는 분이 주변에 있으세요? 그분들이 차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잘 살펴보세요.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건 물론이고 절대 차에 무리를 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요. 예열을 충분히 한다든지, 나쁜 오일은 쓰지 않는다든지. 저희도 그래요. 병 없이 건강하고 활력 넘치게 살고 싶다면, 우선 변화한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잘 숙지하고 있어야겠죠. 그리고 변화에 맞춰 체력을 향상할 식사법, 근육단련, 독소 비우기 등 근원적인 습관 변화가 중요합니다.
물론 습관 만들기가 쉽지 않죠. 저도 아주 잘 알아요.(웃음) 그래서 좋은 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해선 작더라도 의미 있는 한 가지의 습관을 리추얼, 즉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 필요가 있어요. 책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습관은 애초에 제시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 있어요. 어려우면 시작 자체를 못 하거든요. 신기한 건 경험상 습관 한 개를 자신의 리추얼로 만들면, 요구하지 않아도 다른 습관이 감자 엮이듯 딸려온다는 거예요. 운동하지 않던 사람이 의식적으로 '하루 2킬로 걷기'를 자신의 리추얼로 만들면, 자기도 모르게 5킬로까지도 늘려 걷기 시작해요. 걷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명상을 하고, 운동 전후로 근육 운동을 하고, 채소도 한 번씩 챙겨 먹는 식이죠.
습관을 만들려면 절대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어차피 하루 이틀 만에 끝낼 싸움이 아니니까요. 제 책의 습관들은 실천하기 부담스럽진 않지만, 단 한 가지라도 실천할 경우 어떤 방법보다 강력하게 체력을 견인할 수 있는 것들로 제안해봤습니다.
습관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려주셨네요. 그래도 선생님, 환자 중에 선생님이 그렇게 세심하게 접근했는데도 끝까지 실패한 분은 없으셨을까요? 사실 실패할 경우에 제가 점점 감정 이입이 되고 있어요.
아니에요, 많은 분이 어려워하세요.(웃음) 환자는 약을 타러 왔을 텐데 의사가 "채소 드세요", 스쿼트 하세요", "산책하세요" 같은 이야기를 하면 당황해해요. '병원에서 뭐 그런 걸 치료 방법이라 이야기하느냐, 나도 다 아는 방법이다' 하시는데, 그걸 제가 자꾸 강조하고 강조하면 조금씩 실천하시거든요. 제가 의사니까, 우리가 계속 봐야 하는데 안 하겠다 하면 서로 좀 그러니까요.(웃음) 잔소리하다 보면 채소라도 한 번 더 먹어주시거든요. 앞서 강조했듯 습관은 한 달 혹은 1년 만에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시기에 정착해 죽을 때까지 같이 가야 할 친구 같은 거예요. 부담을 가지면 안 돼요. "절대 설탕 드시지 마세요!", "운동도 매일 하세요!"라고 말하진 않아요. 저도 그렇게 못하거든요. 제가 강조하는 건 실패하더라도 '알고 실천하는 것'과 '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거예요.
채소, 먹기 힘들죠. 처음부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 같아요. 그런데 몇 번씩 실천하다 보면 채소를 맛보는 혀의 감각이 살아나요. 조미료가 많이 든 음식, 너무 맵고 짠 음식, 이런 게 덜 맛있게 느껴져요. 또, 일정 수준 죄책감이 자리 잡아서, 먹고 나면 후회하면서 반성도 하고요. 조금 더 건강한 음식, 그래서 결국 좋은 습관을 조금씩 체득해서 나가자는 거죠.
그저께도 어제도 실패하셨다고요? 매일 실패해도 괜찮아요. 오늘 실패하면 좀 다른 걸 시도해보면 되요. 그렇게 하다 보면 물 반, 고기 반, 좋은 습관 반, 나쁜 습관 반 되는 거죠. 오늘 실패해도 내일 하루는 모범적인 하루, 그렇게 반반 정도씩 삶을 구성해도 내 체력을 만드는 데 충분히 일조할 수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좋은 방향으로 가는 원동력을 조금씩 얻는 거예요.
갑자기 도전 욕구를 샘솟는 거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었어요. 책을 보면 환자와 길게 상담하는 과정이 여러 번 나오는데요. 어떻게 환자분들이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잘 털어놓죠? 혹시 대화의 비법 같은 것도 있나요?
이 시기를 지나는 여성들은 본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대화 상대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진료실에서 꽤 깊은 대화들이 오갈 때가 있어요. "최근 수면에 방해될 만한 일이 있으셨어요?"라고 물어보고,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저를 의사라기보단 친구나 언니같이 생각하세요. 동병상련이랄까요. 제가 비슷한 연령대의 여자 의사라 좀 더 쉽게 친밀감을 형성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이 시기에는 특히 할 일이 많죠. 집에서는 아이를 돌보고, 직장에선 승진해야 하는 시기이고, 주변에 챙겨야 할 사람은 많고, 그런데 본인의 문제를 하소연할 데는 많지 않아요. 암처럼 어떤 큰 병에 걸렸다면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도와줄 텐데, 그런 게 아니고 막연하게 "요즘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거 같아"라고 말하면 "좀 더 힘내" 또는 "남들 다하는 일인데 넌 좀 별나다" 같은 대답이 돌아오니까요. 저희 책이 여성들의 좋은 상담 창구가 돼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오늘 인터뷰가 책만큼이나 유익하네요. 선생님,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려요.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생애 전환기를 지나는 여성들은 어떤 의미에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전세계 행복 지수를 조사한 빅데이터에서도 경제 상태, 결혼 여부, 사회적인 위치와 관계없이 이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은 이유 없는 불안과 우울감을 크게 느낀다고 조사됐거든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정말 특별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축구로 치면 인생과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치르기 위해 작전 타임이랄까요. 전반전에선 잘 모르는 적과 싸우며 어쩌면 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작전 타임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물을 마시고, 근육을 풀어주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면 후반전에는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멋진 경기를 펼칠 수 있어요. 인생 반전의 기회가 있다는 말이죠.
이 반전을 위해 몸과 마음의 체력을 꼭 키우시라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체력은 오늘 당장 실천하는 단 한 가지의 의미 있는 습관의 변화가 단초가 된다는 것도요.
매일 시작하고 매일 무너져도 괜찮아요. 그런 노력으로 후반전을 위한 체력이 쌓이거든요. 제 책이 자신의 변화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이해하고 원더풀한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동반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서정아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슈바이처 전기를 읽으며 키운 의사의 꿈을 버리지 못해 의대에 도전했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의 꿈까지 이루었다. 이런 그녀에게도 영영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체력이었다. 30대 중반 전공의를 거치며 좋지 않았던 몸이 눈 깜짝할 새 무너졌다. 이어진 출산과 육아는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넘어진 채로 그대로 있을 순 없었다. 운동화 끈을 단단히 고쳐 매고 밖으로 나가 하루 2킬로미터 걷기를 시작했다. 불안과 걱정은 뒤로한 채 감사 일기를 쓰고, 건강한 채소를 요리하며, 여성의 몸에 대해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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