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방송 인터뷰 - 홍은전 작가 편>
오은 : 안녕하세요! <책읽아웃-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황정은 : 안녕하세요!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책> 황정은입니다.
오은 : 갑자기 황정은 작가님과 함께 인사를 드려서 깜짝 놀란 청취자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사전에 예고된 대로 오늘 방송은 '2023 서울국제도서전' 현장에서 공개 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황정은 : 그렇습니다. 방송을 듣는 분들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는 자리라 제작진 모두 기대하고 또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요. 개막 당일에 도서전 홍보 대사 중에 한 명인 오정희 소설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할 당시, 정부 지원 사업에서 특정한 예술가들을 배제하는 일에 간여한 사실을 몇몇 작가들이 도서관 현장에서 알렸습니다. 저도 그날 알게 되었고요. 그래서 하루 고민을 하다가 오은 작가님께 전화를 했어요. 작가님은 이 외에도 다른 행사가 있어서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오은 : 저는 도서전 전체를 보이콧 한 것은 아니고요. 이미 약속드린 행사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행사들에서 제 입장을 밝히면서 이어나간 상황이에요. 어떤 자리에서든 자기의 신념이 있다면 그리고 의견이 있다면 그걸 개진하는 게 필요한데요. 그게 보이콧의 형태일 수도 있고요. 그 현장에서의 발화 형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황정은 : 네, 이번에 오은 작가님이 같이 고민해주고 함께 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그런 사정으로 저희가 <책읽아웃>의 공개 방송을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특별 방송으로 변경을 하게 되었어요.
오은 : 황정은 작가님이 연락을 주셔서 사실 저도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된 부분도 있어요. 또 오늘 저희가 모신 분의 책에 의해서도 몰랐던 일들을 알게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 현장에서든 책 속에서든 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하고요. 소중한 자리에서 청취자 여러분들 직접 뵙고 이야기 나누기를 무척 기원했기 때문에 아쉽고 속상한 마음입니다. 다만 홍은전 작가님과의 대화는 꼭 들려드리고 싶어서요. 황정은 작가님과 제가 공동 진행으로 특별 방송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대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합니다. 1부에서는 커다란 사랑을 받은 책이죠. 홍은전 작가님의 『그냥, 사람』을 중심으로 '사랑의 이야기로 물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에요. 이 말은 은유 작가님의 <한겨레> 인터뷰에서 따왔습니다. 2부에서는 홍은전 작가님의 따끈따끈한 신간 『전사들의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홍은전 작가님이 귀 기울이는 존재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게요. 이제 저희와 함께 대화 나눠주실 작가님을 모셔야겠죠. <책읽아웃>이, 그리고 <책읽아웃>에 출연한 작가님들이 사랑한 작가, 정말 만나뵙고 싶었던 작가님입니다. "싸우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고 말씀하시는 홍은전 작가님입니다. 안녕하세요.
홍은전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책읽아웃> 애청자입니다.
황정은 : <책읽아웃>을 듣는 분들이라면 '홍은전'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텐데요. 『그냥, 사람』을 비롯해 공저로 참여하신 책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절멸』뿐 아니라 작가님께서 추천서를 쓴 여러 책들까지 <책읽아웃>에 많이 소개가 되었어요. 그래도 홍은전 작가님이 직접 이야기하는 자기 소개가 듣고 싶습니다.
홍은전 : <책읽아웃>의 애청자인데 방송에서 너무 제 이름이 많이 나와서 이 방송은 못 들을 것 같습니다.(웃음) 저는 인권 기록 활동하는 사람이고요. 장애인 분들, 세월호 유가족분들, 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 같은 과거에 있었던 수용소의 피해 생존자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들의 생애를 기록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그리고 현재에는 동물권에 꽂혀 있기도 하고요.
오은 : 출연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 말씀 드려요. 공개 방송에서 스튜디오 녹음 방송으로 갑작스레 변경이 되었는데 흔쾌히 받아들여 주신 것 역시 감사 말씀드립니다.
홍은전 : 함께하게 돼서 너무 영광이고요.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그런 결정에 함께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지지합니다.
황정은 :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올 초에 사실은 홍은전 작가님을 뵈러 간 적이 있어요. 혜화역 근처에서 하신 강연이었는데 그때 작가님을 너무 뵙고 싶어서 갔죠. 그리고 강연 시작 전에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조금 말씀을 드렸어요. <책읽아웃> 제작진이 너무 만나고 싶어 하는 작가님이라고, 혹시나 섭외 연락이 오면 꼭 응해달라는 부탁을 그때 했습니다.(웃음)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혹시 출연을 기다리거나 하지는 않으셨나요?
홍은전 : 제가 간이 콩알 만한 사람이어서요.(웃음) 물론 기다리는 마음도 있었고요. 안 불렀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지금도 심장에 굉장히 무리가 가고 있습니다.
오은 : 요즘 '좋은 동물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동물권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이 혁명적인 관점의 변화가 생긴 순간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건가요?
홍은전 : 고양이랑 같이 살고 있는데요. 이름이 '카라'예요. 3개월 때부터 같이 살게 됐는데 너무 사나운 고양이였어요. 물고 할퀴고 그래서 무섭기도 했고요. 괘씸하기도 했어요. 밥도 주고 똥도 치워주는데 나를 할퀴다니 말이에요.(웃음) 같이 사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힘들고, 잠도 못 자고 그랬는데요. 그렇게 3주 정도 카라와 씨름하면서 보내고 있을 때 저한테 카라를 맡겼던 친구에게 카라가 어떻게 저희 집에 오게 됐는지를 듣게 됐어요.
카라는 상자에 버려진 채로 터널 앞에 버려져 있었는데 그 친구를 데려다 키운 분들이 스무 살 남짓한 탈가정 청소년 분들이셨어요. 아주 좁은 방에 서너 명이 살고 있었고 이미 그 좁은 방의 절반을 짐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해요. 열악한 주거 환경에 카라가 묶인 채로 살고 있었던 거죠. 그 말을 듣는데 처음에는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이해가 됐어요. 이 청소년 분들은 빚도 많고, 잠을 자야 다음 날 일도 할 수 있는데 그 좁은 방에서 고양이가 할퀴고 물면 괴롭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너무 빠르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그 좁은 방에 고단한 청소년들이 자고 있고 그리고 그들을 카라가 묶인 채로 보고 있을 그 장면이 계속 재생이 됐어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픈 거죠. 저는 한 번도 인간 아닌 존재에 대해서 마음이 아파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 이 기분이 뭘까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카라도 인간이 와서 반가웠을 텐데, 놀고 싶었을 텐데, 공격한 게 아니라 그냥 같이 놀고 싶었던 것인데 그걸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상황이 있었을 텐데, 하면서 계속 생각하고 있는 제가 참 이상하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그 전까지는 고양이의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이 되게 괘씸했는데요. 그 밤 장면을 계속 생각하니까 고양이한테 발톱과 이빨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카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오직 인간의 자리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면 카라를 만나고 나서부터 동물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인간 세계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고요. 자꾸 저의 생각과 시선이 계속 미끄러졌어요. 자꾸 고양이 쪽으로 미끄러지는 시선의 이동이 저한테는 아주 혁명적인 어떤 세계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앞서 좋은 동물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소개를 드렸는데요. 좋은 동물이 된다는 건 그럼 어떤 것일까요?
홍은전 : 제가 그 작은 고양이, 심지어 아주 사나운 고양이와 사랑에 빠질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을 못했는데요. 너무 사랑에 빠졌고요. 사랑에 빠지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잖아요. 그에게 좋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잖아요. 근데 저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요. 이 관계라는 것이 언어를 비롯해 많은 것이 불일치하는 경험들을 하게 하는 것이었어요. 동물의 언어, 습성, 동물이 살아갈 서식지들을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요.
그런 것을 조금만 공부하다 보니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 관계에서 인간이 얼마나 가해자이고 학살자인지를 알게 된 거예요. 축산업 문제로 되게 빠르게 고민이 확장이 되었죠. 그래서 차마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말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제가 사람과 사랑에 빠졌으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텐데 동물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나는 좋은 동물이 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요.
그렇지만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좋은 동물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일지 계속 공부하는 중이고요. 다만 동물과 함께 살면서 이전에 인간과 살 때는 쓰지 않던 근육, 감각, 이런 것들을 많이 쓰게 됐어요. 사람이 이전에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면 내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홍은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했고, 차별에 저항해 온 장애인들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노란 들판의 꿈』을 썼다.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와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도 했다. 문제 그 자체보다는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차별받는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인권의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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