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묵돌, 요즘 시대 '잘 읽히는' 글을 쓴다는 장점
소위 말하는 ‘이지리딩’이 가능하다는 것. 그게 곧 ‘글을 잘 쓴다’거나 ‘훌륭한 문장을 쓸 줄 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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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유머로 ‘인간의 단면’을 그려온 이묵돌 작가의 첫 SF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우리가 서있는 현실의 부조리함을 그만의 언어로 거침없이 직조하던 이묵돌이 이번 작품에서는 현실에서 한 발자국 멀어져 초현실에서 현재를 향해 일침을 날린다. 독자들은 작가가 목소리를 키워보고자 창조한 세계관 속에서 거칠 것 없이 돌진하며 회한, 그리움, 두려움, 사랑 등 다채로운 감정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지겨우리만큼 지속되는 발전을 위한 발전 속에서 ‘인간’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현상’만을 유지한 8개의 세계관. 작가는 그에 속한 인간의 단면을 통해 벅찬 현실을 딛고 있는 ‘우리’를 조명한다. 한발 더 나아가 인간으로부터 무한히 멀어지고 있는 과학문명 속에서 우리가 미처 외면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인간성’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카누를 타고 파라다이스에 갈 때』의 제목이 눈길을 많이 끄는데요. 이번 작품의 제목은 어느 순간, 어떤 장면을 떠올리며 정하셨나요? 혹은 ‘딱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어떤 장면을 떠올리고 제목을 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집 앞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에 ‘카누를 타고 파라다이스에 갈 때’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문득 단편소설 제목으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출판사도 별 이견 없이 오케이 사인을 줘서, ‘얼떨결에 그렇게 됐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네요.


 노래 내용이나 가사와는 전혀 관계도 없는 단편집에, 단순히 어감이 소설 제목 같다는 이유로 결정해버렸지만… 그래도 제목을 떠올리면서 나름대로 묘사에 힘을 준 장면이 있기는 합니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카누에 태우고 낙원섬으로 돌아가는 대목입니다. 


제목만큼 작가님의 ‘이묵돌’이라는 이름도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이묵돌’이라는 이름이 본명일까요? 만일 필명이라면,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분명 작가들 중에는 ‘이게 진짜 본명인가?’ 싶을 만큼 특이한 이름을 가진 분들이 많지만, 저는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로 활동하기에는 다소 평범하고, 어감도 좋지 않은 이름 같아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쓰고 있는데요.


 역사 속 실제 인물인 ‘묵돌’은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로 유명한 초한지 이후에 등장합니다. 갖은 고생 끝에 숙적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자신이 천하를 통일했다는 생각으로 아주 기고만장해져 있었는데요. 오랑캐라고 무시해 왔던 흉노족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역으로 탈탈 털리는 굴욕을 겪게 됩니다. 그때 흉노족을 이끌었던 우두머리의 이름이 묵돌이었죠. 중국을 ‘천하’라고 부르며 떵떵거리던 유방이 전혀 생각지 못한 적, 묵돌에게 큰코다치는 장면이 얼마나 유쾌하던지.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문예지나 공모전을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 작가가 아닙니다. 인터넷에 쓰던 글이 출판사의 눈에 띄어 바로 출간작가로 데뷔한, 굳이 말하자면 사파邪派라고 해야 할까요. 정해진 루트를 통해 작가가 된 분들이나 문단의 관점에서 보자면 저는 일종의 오랑캐인 셈입니다. 하지만 오랑캐에게는 오랑캐만의 방식이 있는 법이고, 살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주인공이 나타나기도 하잖아요.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특히 좋아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묵돌이라는 흉노족 우두머리의 이름을 필명으로 쓰는 게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어머니 쪽의 성을 갖다 썼고요. 실은 어감이 좋아서 쓴 게 첫 번째고, 나머지 의미는 나중에 갖다 붙인 쪽에 가깝지만. 


『카누를 타고 파라다이스에 갈 때』에 8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는데요. 그 8편의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애정하는 단편소설 파트는 무엇인가요?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이미 다 써서 책으로 내놓은 글들에 대해서는 별 애정이 없는 타입입니다. 어쩐지 남의 자식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써놓은 글보다는 다음에 쓸 글에 집중하자는 주의입니다. 어떤 글이든 다 쓰고 나면 부족한 점이 더 크게 보여서, ‘역시 이것보다는 더 잘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을 하나 꼽자면 ‘6시그마의 복음’입니다. 이 단편 제목을 책 제목으로 할까도 싶었는데, 편집자님이 칠색 팔색 하셔서 원안대로 가게 됐죠. 6시그마 같은 건 경영학과 학생이나 되어야 알법한 단어 아니냐면서.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카누를 타고 파라다이스에 갈 때’는 꽤 괜찮은 책 제목이고, 실은 저도 경영학과 출신이거든요. 


책을 집필하며 유독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실까요? 어떤 이유에서 그 문장이 마음에 드는지도 궁금합니다. 


 ‘걸음을 멈추지 마. 그냥 바람이 부는 것만 생각해’입니다. 이유는 제가 쓴 게 아니라서요. 


트루먼 카포티가 1947년에 쓴 ‘마지막 문을 닫아라’라는 단편의 마지막 문장을 조금 고쳐 쓴 건데, 원문은 ‘아무것도 생각하지마, 바람만 생각해(Think of nothing, think of wind).’입니다. 제 글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단편이니까 시간이 되면 한번 읽어보세요. 물론 카포티의 글에는 K팝 스타를 복제한 안드로이드가 등장하지 않지만요.


 온전히 제가 쓴 걸로 치자면 ‘인간은 어떤 공간의 완전한 일부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부재는 한 공간의 깨어짐을 의미한다.’ 도 꽤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쓸 땐 별생각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어설프게 쿤데라 같은 문투가 돼있더라고요. 그런 어설픔이 마음에 듭니다.


작가님의 이전 소설들을 비롯해서 수학을 이용한 표현들이 자주 보이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 걸까요? 특히, 이번 ‘문 리버’에서의 표현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좋더라고요.


질문을 보자마자 ‘수학을 이용한 표현이 뭐가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급하게 책을 살펴봤습니다. 이제 보니 기하학적인 어쩌고 하고 써놓은 게 있기는 하네요. 이전 소설이라고 하면 아마도 『어떤 사랑의 확률』이겠고요. 이쪽은 아예 주인공이 수학과 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저는 수학을 좋아하지도 않고 그다지 잘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수학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좋아해요. 0.333…에 3을 곱하면 0.999…이지만, 그냥 1이라고 쓰는 이유는 한없이 1에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그런 것들. 수학이나 자연과학처럼 차갑고 엄정한 학문에 지극히 인문학적인 표현을 써서 이과 출신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즐겁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작품들을 집필하고 계신데요. 작가님께선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본인만의 가진 강력한 장점(무기)이 있을까요?


 ‘계속해서 좋은 작품’이라니 낯이 뜨거우면서도 고맙고 기쁜 마음입니다.


 제 글의 가장 강력한 장점이라고 하면, 두말할 것 없이 ‘잘 읽힌다’는 것이겠죠. 사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요. 책을 읽은 분들도 그렇게들 말씀하시고, 출판사 관계자분들이나 편집자님들도 전부 그렇게들 말씀하셔서 이제는 그런 줄 알게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이지리딩’이 가능하다는 것. 그게 곧 ‘글을 잘 쓴다’거나 ‘훌륭한 문장을 쓸 줄 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미문을 아무렇지 않게 구사하고, 화려한 묘사를 능수능란하게 쓰는 재능이 없다는 건 저도 알고 있거든요. 다만 제가 문장을 쓸 때는 저 나름대로 중요시하는 호흡이 있습니다. 아무리 멋들어진 단어나 표현이라고 해도 그 호흡에 맞지 않으면 주저 없이 지워버려요. 그런 저 나름의 강박이라고 해야 할까, 노력 같은 것들이 모여서 썩 잘 읽히는 글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잘 읽힌다’는 건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이 의미가 있는 장점 같아요. 가장 잘 쓴 글조차 읽히지 않을 때가 많은 시대니까요. 


추후 작가님께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장르나 혹은 차기작 계획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따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요. 더 깊게 생각하고 싶고,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목표에 따라 장르를 선택할 수는 있겠지만, 특정 장르를 콕 집어서 도전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차기작이라고 하면 장편소설입니다. 저로서는 두 번째 장편소설인데, 첫 번째를 마감에 쫓겨 정신없이 써버리는 바람에 이번에는 진득하게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계획상으로는 내년(2025년)에 나올 예정인데요. 지금부터 기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기대한다고 해놓고 다들 까먹을 테니까요. 저는 작가로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익숙해진 참입니다. 하여튼.


 서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쓰는 장편인 만큼, 후회 없이 쓰고 싶습니다. 비록 후회 없는 글쓰기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어제 알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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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