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첩기행 다섯 번째 이야기, 화가 김병종 라틴의 매혹에 빠지다
10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김병종 화백의 화첩기행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이 출간되었다. 이번 책에서 화가는 남미 여러 나라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200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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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져 처참한 모습을 드러낸 날, 김병종 화백을 만났다. 서울대 미대 건물 2층에 있는 교수 연구실. 방학 중이라 난방이 되지 않아 시린 냉기가 스멀스멀 몸을 덮쳤다. 연구실은 복층이라 천장이 높고 창은 넓지만 비쳐드는 빛은 겨울 해답게 인색했다. 대접받은 더운 녹차로 몸을 녹여볼까 했지만 금세 차갑게 식었다. 그의 책에 나오는 남미의 천진하리만큼 따뜻한 태양이 그립기만 한 날이었다.
널찍한 교수 연구실. 책상 위에는 자료와 책이 어지럽게 쌓여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에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글 쓰는 사람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니 손으로 글을 쓰지 않으면 글이 나오지 않는다고, 컴퓨터와의 불화의 세월이 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컴퓨터도 인터넷도 못해요. 제가 예전부터 기계랑 별로 친하지 않거든요. 예전에는 컴퓨터 못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았는데 슬금슬금 하나 둘씩 배우기 시작하더니 이젠 나만 남았습니다.”
“기계가 선생님을 싫어하는 건가요? 선생님이 기계를 싫어하시는 건가요?”
“쌍방 간에 불화하는 것 같아요. 컴퓨터를 켜면 그 푸르스름한 빛깔이 에이리언의 눈처럼 모든 상상력을 중지시키고 사람을 긴장시키는 것 같아요.”
“그럼 글 작업은 모두 직접 종이에 쓰시는 건가요?”
“원고지 위에 사각사각 연필이 달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 안 되면 구겨 던지고 그런 문화 속에서 자랐어요. 전환이 잘 안 되더라고요.”
“이젠 그림도 컴퓨터를 이용해서 그리는 분도 많죠.”
“많지요. 저는 아마 마지막까지 컴퓨터를 못 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신속함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어요. 제가 만년필로 꾹꾹 눌러서 편지를 자주 쓰고, 받는 것도 즐겨 하는데. 제 위의 형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자주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봉투를 뜯을 때의 긴장감, 설렘, 체온…… 자주 편지를 주고받으니까 필적만 봐도 건강 상태나 기분 상태 같은 것도 느껴져요. 똑같은 내용이라도 전자메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뭐라고 할까요, 손맛의 느낌이 없어요. 내용은 전달되지만 드라이하고 차가운 느낌이에요.”
“실체가 없으니까 아무래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죠.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셔서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원고를 어디에 두는지 못 찾을 때가 많아요. 원고가 학교 연구실이나 집의 서재나, 화실 서재에 분산되어 있는데…… 아내가 ‘당신은 인생의 1/3은 잠으로 보내고 1/3은 찾는 데 소비하는 거 같다’고 말할 정도죠.”
“유능한 비서가 있으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비서는 아니고 어느 조교가 ‘선생님, 그럼 제가 다 컴퓨터에 입력해드릴게요.’ 해서 몇날 며칠을 걸려서 다 입력을 했어요. 그런데 이 조교가 졸업을 하고 나서 못 열고 있어요.(웃음) 우주 공간을 떠도는 것처럼 컴퓨터 안에 내 원고가 떠돌고 있다는데, 하나도 못 찾고 있어요. 또 다른 원인도 하나 있어요.”
“뭔가요?”
“몇 년 전에 아내(김병종 화백의 아내는 소설가 정미경이다)가 십 년 동안 쓴 원고들을, 장편 하나, 중편 둘, 단편 열하나, 자료들을 컴퓨터에 저장시켜 뒀는데 모두 날려버렸어요.”
“작가 분들이면 한 번 이상씩 경험하는 일이죠.”
“이 경우는 유독 심하죠. 십 년 동안이나 암중모색하면서…… 아시겠지만 장편 한 권 분량은 정말 끔찍한 거거든요.”
“애 낳는 게 더 쉽다고 말씀하는 작가 분도 계시던데요.”
“그래서 수리를 맡겼는데 도저히 어렵다는 거예요. (아내가) 완전히 넋을 잃고 며칠간 밥을 못 먹고 있어서, ‘미 국방부 기밀문서부에 가면 다 복원이 된다고 하더라. 내가 펜타곤에 가서라도 당신 컴퓨터 복원시켜 주겠다’고 했는데 다음 날 펜타곤이 폭격을 당했어요.(웃음) 9.11 때 일인데.”
“그럼 원고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원본 원고 상태로 보내죠. 그래서 내 원고의 1/3도 못 가지고 있어요. 아주 정신 차려서 원고를 복사해 두거나 따로 챙기지 않으면 다 잃어버리는 거죠.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부탁해서 원고를 컴퓨터로 쳐서 보내기도 해요. 분명히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나처럼 치명적인 기계치들이, 기계치 DNA를 가진 사람들이 있을 텐데, 주변에 컴퓨터 못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 점이 정말 신기해요.”
“여행할 때는 손으로 쓰는 편이 더 편할 듯한데요.”
“얼마 전 아내와 네팔을 다녀왔는데, 아내가 현지에서 글을 쓰고 싶다고 해서 노트북을 가져갔어요. 그런데 그게 꽤 무겁더군요. 가지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왜 수첩에다 쓰지 못하느냐고 했더니, 너무 컴퓨터에 익숙해져서 화면을 보지 않으면 글이 떠오르지 않는데요.”
“수첩을 고르는 기준이랄까, 그런 게 있으신가요?”
“수첩에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또, 적어도 이십 년이고 삼십 년이고 보관해야 하니까 까다롭죠. 다양한 수첩을 써요. 문구점에서 산 것도 많고. 여행할 때 현지에서 꼭 수첩을 사서 쓰는 편이에요. 수제품으로 만든 것들. 종이를 다루고 종이를 좋아하니까 종이에 민감한 편이죠. 세계 각지의 종이의 맛이 다 달라요. 종이를 보면 그 나라 문화의 깊이를 알 수 있어요. 프랑스의 종이가 다르고, 페루의 종이가 다르고, 한지의 맛이 달라요. 그런 게 재미있죠. 나만이 느끼는 내밀한 감성이에요. 또 하나, 많이 모은 것이 가방. 현지에서 가방을 많이 사요. 너무 많아서 쌓아둘 데가 없을 만큼. 가방과 수첩은 내 아날로그적인 여행 방식을 표현하는 방식이죠.”
“나중에 보셔도 여행지의 추억이 금방 떠오르실 것 같아요.”
“가방 중에는 잘 쓰지 않고 그냥 보기만 하는 것도 많아요. 가방이 많다는 건 떠나고 싶고, 떠날 수 있다는 의미도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컴퓨터에 익숙해져 버리면 이렇게 손때 묻은 가방, 스케치북, 노트, 20년이 넘은 고물 사진기가 남아있지 않겠죠.”
십 년 동안 쓴 원고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아내를 지켜보면서 김병종 화백은 자신의 아날로그적 생활 방식에 더욱더 확신을 가졌다. 그는 몸으로 그림을 그리고 몸으로 글을 쓴다. 직접 종이에 꾹꾹 눌러 글을 쓰는 것, 그것은 단지 문자를 종이에 정착해 두는 것 이상의 의미다. 종이의 촉감, 색감, 그리고 필기도구. 그날의 기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필압과 필체, 글씨 크기. 손으로 쓴 기록들은 기록 이상의 것을 전달해 주는 셈이다.
김승옥은 「무진기행」에서 무진의 명산물을 ‘안개’라 말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그럼 라틴의 명산물은 무어라 해야 할까? 헤아릴 수 없다. 라틴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연과 예술로부터 헐벗은 현실을 가릴 따뜻한 천 한 장 정도는 얻는다. 태양이 비추고 바다가 오묘한 빛으로 변하는 한, 그들의 삶에 그늘은 없다. 그들은 보르헤스와 네루다의 시를 읊고,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을 읽고, 체 게바라를 사랑하며, 에바 페론의 묘에 꽃을 바치고,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를 보고, 탱고와 삼바 리듬에 몸을 흔든다.
“우리가 발전을 위해 서구 사회를 따라가는 동안 잃어버린 것이 참 많았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정서, 눈빛, 인정, 사람 사는 냄새. ‘아, 정말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습니다.”
“저는 이번 책에서 쿠바에 대한 부분이 특히 좋더군요. 어떻게 이렇게 신나게 행복하게 살까, 신기할 정도였어요.”
“쿠바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운데도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 낯선 이방인을 향해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친밀함을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참 감동적이었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행복이라는 게 뭐냐는……. 그곳에는 시장은 있어도 빈부는 없어 보이고, 학교는 있는데 석차에 대한 개념이 없어 보이고. 모든 농촌은 도시를 꿈꾸는데, 아바나는 농촌을 꿈꾸는 도시로 보이고……. 게오르그 루카치라는 평론가가 ‘진보적 타락’이라는 말을 했는데, 과도하게 문명화되고, 과도하게 부를 축적하려는 것이 결국에는 어떤 종류의 타락과 어두움에 봉착한다는 것을 제 나름대로 생각했어요. 어쩌면 여행자의 감상적인 시선으로 본 피상적인 풍경일지도 모르겠지만, 쿠바는 스승의 나라와도 같다고 느꼈어요. 물론 쿠바인의 낙천적인 것은 기질 탓도 있다고 봅니다만.”
“쿠바 사람들을 보니 가난에 대한 개념이 바뀌더군요.”
“그렇죠. 정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낮은 GNP인데도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다지 남루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정말 불가해한 부분이에요. 그늘이 없는 도시예요. 카리브 해 자체가 정말 놀랍도록 신비롭고 아름다워요. 카리브 해는 하루에도 열두 번이 변한다고 하는데, 칙칙한 태평양만 보다가 카리브 해를 보니 ‘이건 정말 신의 색깔이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번에 ‘카리브 해’ 연작을 많이 그렸어요. 천 호 정도 되는 대작을. 이번 개인전에서 공개할 예정인데요, 다양한 카리브를, 내가 본 카리브의 색깔을 그려봐야지 했는데 그려도 그려도 그 신비한 색깔을 표현 못 하겠더군요.”
“사람을 홀리는 바다네요.”
“홀리는 바다고, 그렇게 투명하게 깨끗한 밝은 햇살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참 구김이 없고 밝죠. 지금도 생각이 많이 나요.”
“남미 여행하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지금 생각나는 건 안데스 산맥의 백색. 흰색이라는 건 소극적이고 수줍은 색으로 봤는데, ‘저토록 공격적일 수 있을까, 모든 색을 눌러버리는구나.’ 하고 비행기에서 안데스 설산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이번 여행에서 어떤 영향을 받으셨는지요.”
“화가인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그림 공부가 되었어요. 예컨대, 멕시코에 가서 내가 처음 받았던 것은 ‘색채의 덩어리들이 내게 말을 거는구나.’ 하는 거였어요. 야만적인 원색들이 칠한 집들, 옷들, 거리들. 미술관에서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게 아니라 그들의 삶 속에서 저질러지는 거침없는 색들, 도시 전체가 캔버스가 된 듯한. 특히, 코요칸 같은 동네는 동네가 온통 색채의 덩어리로 사람을 압도하죠. 페루에 가면 돌멩이 하나도 낙조의 애잔함, 사라진 문명의 뒤안길을 걷고 있는 듯한 고즈넉함을 담고 있죠.”
“부에노스아이레스는요?”
“문화의 저력. 프랑스 파리가 울고 갈 만한 곳이죠. 정신문화, 예술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몇 백 년이나 된 서점들이 여전히 거리에 있을 만큼. 그런 것을 보면서 GNP가 얼마냐는 것으로 삶의 질을 따지는 건 정말 유치한 짓이라는 걸 느꼈어요. 남미는 휴머니티가 살아 있는 곳입니다.”
“남미는 문화적인 저력이 대단한 곳이죠.”
“금세기를 통틀어 저는 최고의 시인을 네루다라고 생각해요. 낯선 생각과 낯선 이미지를 조합해서 그렇게 훌륭한 시를 창작해낸 시인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요. 남미 땅을 밟아보니까 그 시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이번 책에서도 여러 작가들과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셨는데요.”
“뭐라고 할까요. 사실 가서 눈으로 확인할 때 만져지는 건 별로 없죠. 그런데 이런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앉았던 이 자리에 내가 앉아서 술을 마신다. 그 사람의 예술에 내 삶의 포개지는 느낌. 그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헤밍웨이가 술을 마시던 카페 프로리디타에서 다이키리를 마시고 있는데, 공간과 시간이 겹쳐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헤밍웨이가 들어와 ‘거기 내 자린데 비키쇼.’ 하고 말할 것 같은……. 삶의 덧없음, 명성 뒷자리의 쓸쓸함까지 체험하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사람의 미묘한 호흡이 남아있을 것 같은 ―물론 착각이겠지만― 그런 장소를 순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예전에 거기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색깔로 다가오는 듯해요. 그 사람의 존재감을 그 장소에서 느껴보고 싶은 거죠.”
김병종 화백은 남쪽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서 십 분만 걸어 나가면 끝이 보이는 곳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먼 곳에 대한 그리움, 산 너머에는 누가 살고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선생님에게 여행의 시작은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학생일 때 지리부도를 좋아했어요. 색깔이 빈약한 시대여서 고운 색깔이 입혀진 책이어서 좋아했죠. 늘 머리맡에 두고 보다가 지명이 외워졌어요. 알제리, 마다가스카르, 페루……. 늘 뻔한 환경, 늘 뻔한 사람, 늘 뻔한 거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시골 아이가 외로움을 표출하는 방법이었죠. 어디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화가가 되니까 여행은 권장사항이 되더군요. 옛 어른들도 그림을 잘 그리려면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하라고 했으니까. 낯선 풍경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업이 되면서 여행이 삶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여행을 하시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힘들진 않으신가요?”
“여행을 하면 나도 잘 모르는 제3의 에너지가 발동되는 것 같아요. 신명이랄까. 그리고 독특한 성벽인데, 나는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것을 글로 적고 그림으로 그렸을 때 비로소 여행의 완성, 즉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여행을 떠나면 글을 끼적거리고, 평소엔 잘 그리지도 않으면서 여행을 할 땐 호들갑을 떨면서 그림을 그리죠. 숙제처럼 밤에 아무리 피곤해도 꼭 글을 쓰고 그림은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스케치만이라도 해 두죠.”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느끼시나요?”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그런 지각적인 체험, 망막 속에 남아 있는 사람과 사물의 풍경, 그런 것들을 체험하는 것으로 여행이 종료되는 게 아니라, 낮 동안 내 감성의 포충망 속에 잡혔던 것들을 밤이 되어 다시 끄집어내 글로 정리하고, 그림으로 그려야 해요. 내 나름대로의 문장과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영 찜찜한 기분입니다. 표현하지 않은 채 구경만 하고 돌아오면 어쩐지 변죽만 울린 것 같죠. 표현을 한 후에야 여행이 육화(肉化)되는 것 같아요. 제 여행의 방식은 그런 면에서 좀 독특한 것 같아요.”
“같이 여행하시는 분들이 뭐라고 하진 않으시나요?”
“아내에게 ‘당신은 왜 여행을 편하게 음미하지 못 하고 일을 하느냐?’는 말 많이 듣습니다. 종군기자처럼 목에다가 카메라를 걸고, 스케치북을 끼고, 메모지를 한손에 들고, 또 다른 가방에 넣은 간식을 먹어가면서 정말 남들이 볼 땐 힘들게 여행을 하죠.(웃음) 근데 글과 그림으로 남기지 않으면 허전해요. 싱겁기도 하고. 지금은 아내가 ‘여행하는 건 너무 힘들고 그냥 당신이 찍어온 사진과 그림, 글을 읽는 게 더 좋다’고 말해 줘요.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도 내가 낮에 어디어디를 봤다고 말하면 ‘거기 그런 게 있었나?’라고 말할 때가 많다는 거예요.”
“꼭 여행지에서 글쓰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간단히 중요한 내용만 메모해서 돌아와서 글을 써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금방 잊어버려요. 현지에서 쓰지 않으면 그 생생한 느낌을 글에 남길 수 없죠.”
“선생님에게 여행은 일종의 연금술이 아닐까 하는 느낌인데요.”
“그렇죠. 여행은 불수의근을 쓸 수 있는 기회, 얼음 밑바닥에서 흐르는 물 같은 내 감성, 내 에너지를 표면으로 올라오게 하는 촉진제가 되는 듯해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우문을 던졌다. “길은 사람을 그토록 홀리는 걸까요?” 여행하는 화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길은 어딘가로 가고, 우리는 그곳으로 가고 싶은 거겠죠.” 그리고 길이 있어 뿌리박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에 사람들은 길에 홀려 여행을 떠나는 것이리라.
화백은 갤러리 현대, 두가헌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느낀 것들을 그려낸 그림들을 비롯해 120여 점의 작품들을 ‘길 위에서’라는 제목으로 전시한다.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에 수록된 그림들도 물론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책이나 그림을 보는 것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곳, 우리들의 잃어버린 과거, 혹은 오래된 미래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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