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견디는 법, 고통을 견디는 법, 인간으로 살아남는 법 -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글 : 채널예스
200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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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서문의 치욕과 고통을 성찰하는 일은,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세상에서 그러나 죽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이란 없는 모양이다.
- 김훈, 『자전거 여행2』 중에서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유하 감독의 인터뷰 기사였다. 그는 영화 <쌍화점>을 통해 “극한으로 치닫는, 인간의 감정이 막장까지 가는” 멜로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인간의 욕망과 증오가 얼마나 강렬하고 처절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그것은 비장미(悲壯美)를 동반함으로써 금기를 넘어선 사랑으로 승화된다. 맥락은 다르지만 나는 이 표현이 『눈먼 자들의 도시』와도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저 밑바닥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어두운 심연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욕망의 실체를 보고 나면, 인간에게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눈이 안 보여.”

교통 체증으로 혼잡한 사거리. 비극은 사거리 한복판에서, 한 남자의 느닷없는 외침으로 시작된다. 마치 수술대 위의 등이 켜지는 것 같은, 갑작스런 백색 실명. 처음 눈이 먼 남자를 시작으로, 곧 그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실명한다. 언제나 그렇듯 정부가 내놓는 긴급 대책이란 것은 근시안적이면서도 강압적이다. 고위 정치인들은 눈먼 사람들을 오랫동안 방치된 낡은 정신병원에 격리 수용하기로 결정한다. 조치는 신속하게 취해졌다. 마치 양떼처럼 실명자들을 꾸역꾸역 몰아넣고, 군대를 투입해 출구를 봉쇄해 버린 것이다. 조금이라도 탈출을 시도하는 것으로 오해받은 사람들은 모두 사살됐다. 그 속에서 두려움과 절망감에 휩싸인 재소자들은 서서히 미쳐간다…….

“내가 봐야만 하는 걸 당신도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차라리 눈이 머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예요.”

정신병동에 격리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처음 눈이 먼 남자를 진찰한 안과 의사의 아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있기 위해 자신도 눈이 멀었다고 거짓말하고 같이 수감된다. 그러나 이후 그녀가 지켜보아야 했던 현실의 참상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위생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인간들이 끊임없이 배설해내는 온갖 오물들이 비좁은 공간을 뒤덮었고, 그렇지 않아도 불규칙적으로 턱없이 부족하게 배급되는 식량을 몰래 빼돌리는 이기적인 인간들이 나타났으며, 급기야 총을 가진 우두머리가 이끄는 깡패 집단이 식량을 독점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심지어 그들은 식량을 대가로 여자들을 요구한 다음, 집단 강간을 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그 깡패 집단 역시 눈먼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추악하고 역겨운 면면들을 보고 있자면,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가 저절로 솟구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한 인간들의 욕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점심이 배달된다는 소식이 모든 사람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 낡은 정신병원 전체에 이백육십 개의 입이 음식을 씹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렸다는 점도 인정해야겠다.

눈먼 사람들은 침대에 누워, 잠이 그들의 비참한 상태에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무엇에든 익숙해진다는 것, 특히 사람이기를 포기했을 경우에는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그녀 역시 눈이 멀어야 했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인간의 원초적 행위는 이 작품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노골적이고 동물적으로 묘사된다. 이런 장면들은 역겹고 비참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생존’이라는 절체절명의 목표 아래 인간과 짐승은 동급의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그것은 ‘존엄성’이나 ‘수치심’같은 가치들을 포기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이쯤해서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브뤼겔의 「맹인의 우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구렁에 빠진다.’는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림 속에 는 모두 6명의 맹인이 등장한다. 맨 앞에서 길잡이를 하던 남자는 이미 구렁 속으로 고꾸라졌고, 두 번째 남자도 엎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나머지 맹인들의 얼굴에는 짙은 불안과 두려움이 서려있다. 그들도 곧 차례로 같은 처지가 될 운명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들을 구원해 줄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깊은 수렁, 그리고 그만큼의 절망.

브뤼겔, 「맹인의 우화」

우린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 같군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그런 상황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계속 견뎌낼 겁니다. 선생님은 낙관주의자시로군요. 아니, 나는 낙관주의자가 아닙니다, 단지 현재의 우리 모습보다 더 나쁜 건 상상할 수 없을 뿐이죠. 글쎄요, 나는 불행이나 악에 한계라는 게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설에 비하면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는 과감한 압축과 생략을 통해 한결 누그러진 형태로 현실을 제시한다. 나는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들이 개봉할 때마다 반드시 챙겨보는 편인데, 그것은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이미지들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되는지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내용에 충실한가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다. 유감스럽게도 상상을 뛰어넘는 비주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만.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의 한 장면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원작 소설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튼튼하고 강한 것 같지만 하나가 넘어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거죠. 작은 것 하나만 무너져도 인류는 동물이 돼 버리는 겁니다.” 그는 눈먼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온통 우윳빛이라는 설정에 맞추어, 영화 전반에 걸쳐 화이트 톤을 유지한다. 그것은 눈부신 빛의 이미지로, 더러운 정신병동 세트와 대비되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역시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소설을 보며 느꼈던 참담함, 마치 잘 벼린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처럼 혐오스럽고, 때론 감동으로 가슴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그런 섬세한 감정들을 떠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원작의 깊이를 제대로 구현하기에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너무 짧았던 걸까.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책 속에서 묘사된 캐릭터들에 비해 단조롭고 평면적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연출력의 한계인지도 모르겠지만.

주제 사라마구
Jose Saramago, 1922~
사실 나에겐 영화 본편보다 오히려 인터넷에 공개된 메이킹 필름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 중에는 원작자인 주제 사라마구를 위해 포르투갈에서 열린 특별 시사회 장면도 있었는데, 그는 책 표지에 실린 사진보다 훨씬 더 늙은 모습이었다. 올해 우리 나이로 87세. 대머리에 몸집이 아주 작고 왜소해 보이는 이 노인은,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카리스마가 있었다. 게다가 뿔테 안경을 끼고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이 굉장히 지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진 뒤에도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길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눈 근처를 가볍게 문지르기도 했는데, 눈물을 흘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옆에 앉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말을 건네며 사라마구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하는 장면이 왠지 좋았다.

어제는 우리도 볼 수 있었으나, 오늘은 볼 수 없다, 내일은 다시 볼 수 있겠지. 마지막 말은 약간 물어보는 듯한 느낌으로 해야 한다. 막 말을 뱉으려는 순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신중한 태도 때문에, 희망 섞인 결론에 약간의 의심을 덧붙이는 것처럼.

누가 봐도 『눈먼 자들의 도시』는 따뜻하고 훈훈한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까발리고 풍자하며 조롱한다. 원초적 욕망에 대해서도 극한까지 밀고 나간다. 뿐인가, 때때로 작가의 시선은 섬뜩할 정도로 냉혹하고 시니컬하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이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단지 생존만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극히 담담한 말투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존재한다. 비록 의심하고 또 의심할지언정,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의사의 아내, 즉 유일하게 눈멀지 않은 한 사람의 존재야말로 작가가 던져주는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겪으면서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렇게 매일 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시간을 견디며 기다려봐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삶이 어렵고 힘겹다 해도 살다보면 살아진다. 살다보면 힘겨움에도 적응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겪다보면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알래스카의 혹한도, 열대지방의 무더위도 살다보면 적응해 살아갈 수 있다.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중에서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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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17

사마구라의 책은 끝까지 읽기 힘들어요. 묵시록적인 이야기 속에 파고의 본성이 이토록 잔혹한지 작가가 일깨워주고 싶어나봐요.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상과 비극이 이 소설과 별반 다르지 않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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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lim1025

2009.03.18

잘읽었어요. 세삼스럽게 잊어버리고 있는 수치심 이라는 단어를 되돌아보게해주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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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2009.01.16

영화가 한결 누그러진 형태로 현실을 제시한 것이라면 저는 소설을 읽고싶지 않네요.
영화를 보는 내내 인간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공포와 인간이 얼마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를 간접경험하였는데... 소설이 영화보다 더 고통스럽고 소름끼치고 혐오스럽다면 제대로 책을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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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저/<정영목> 역

출판사 | 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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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

포르투칼 작가로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22년 포르투칼 중부 지역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3세 때 수도 리스본으로 이주했다. 고등학교만 마치고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69년에 공산당에 입당해 반정부 공산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 1975년에 국외로 추방되었으며 그 후로는 생계를 위해 번역가 언론인 등으로 활동했다. 신사실주의 문예지 [세아라 노바]에서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79년부터 전업작가가 되어 소설 시 일기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다.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1979년 희곡 『밤』으로 포르투칼 비평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희곡상을 받았다. 1982년에 포르투칼을 배경으로 한 환상적인 역사소설 『발타자르와 블리문다』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고 이후 같은 해에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포르투칼 펜클럽상과 리스본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포르투칼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화 되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은 흔히 우화적이라고 표현되는데 그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사실주의와 정치적 회의주의를 실험적 문장과 살아있는 등장인물을 이용해 독창적으로 드러낸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작품은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한데 소설 속에 쓰이는 문장 부호는 마침표와 쉼표뿐, 직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다.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왔다.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정신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불리던 그는 2010년 6월 18일,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란사로테섬에 있는 자택에서 지병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으로는 『죄악의 땅(Terra de pecado)』(1947), 『서도와 회화 안내서(Manual de pintura e caligrafia)』(1977), 『바닥에서 일어서서(Levantado do Chao)』(1981), 『수도원의 비망록(Memorial do convento)』(1982),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O Ano da Morte de Ricardo Reis)』(1984), 『돌뗏목(A Jangada de pedra)』(1986), 『예수복음(O Evangelho segundo Jesus Cristo)』(1991),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1995),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Todos os nomes)』(1997), 『동굴(A Caverna)』(2000), 『도플갱어(O Homem duplicado)』(2002), 『눈뜬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lucidez)』(2004), 『죽음의 중지(As intermitencias da morte)』(2005), 『코끼리의 여행(El viaje del elefante)』(2008), 『카인(Caim)』(2009) 등 다수의 작품이 있으며 계속해서 번역출간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