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人터뷰] 김용택 선생님의 꽃 같은 아이들 이야기 -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김용택
일동 조용! 웅성거리는 새에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들어오시자마자 경례를 외치십니다. “차렷, 열중 쉬엇. 자, 결석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와글와글한 웃음소리가 객석에서 터집니다. 김용택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아홉 살 녀석들의 웃음소리는 아닌 듯합니다.
201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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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 조용! 웅성거리는 새에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들어오시자마자 경례를 외치십니다. “차렷, 열중 쉬엇. 자, 결석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와글와글한 웃음소리가 객석에서 터집니다. 김용택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아홉 살 녀석들의 웃음소리는 아닌 듯합니다. 아홉 살 나이쯤은 훌쩍 넘어, 그때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20대부터, 아홉 살 자녀와 함께 온 어머니까지, 여느 때보다 높낮이가 다양한 웃음소리가 극장 안을 메웠습니다. 지난 3월 24일은, 매달 독자들과 함께 하는 오붓한 시간 ‘아름다운 책 人터뷰’가 열린 날이었지요.
“내가 영화를 좋아해서 여러분을 영화관에서 만났나 봅니다”며 호탕하게 웃는 선생님. 영화관에 대한 추억담으로 이야기가 열렸지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봤던 국가 선전 영화가 첫 영화의 기억이랍니다. 가설극장에 설치된 영화를 보러, 30분의 밤길을 마다치 않고 학교로 걸어가는 아홉 살 어린이 김용택이 눈에 선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역시 시네 키드였고요. <청년 이승만> <시집가는 날> <노르망디 상륙작전>, 그 옛날 영화 제목들이 흘러나옵니다. “돈이 없으니까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극장 문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 30~40분쯤 후에 문을 열어 줬어요. 어제도 존 트라볼타가 나오는 영화를 봤죠. 지금까지도 영화를 쭉 보고 있어요.”
영화와 김용택. 낯설지 않다 싶더니 이전에도 선생님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 적이 있었지요.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 “한 사람이 한 가지 것을 오랫동안 좋아하다 보면, 그 어떤 일이든 할 말이 있는 거지요.” 촌놈 시리즈는 그렇게 만들어졌답니다. 그 책으로 그동안 보았던 영화 관람료를 다 뽑을 정도로(!) 책이 잘 팔렸으나, ‘전작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영화계 속설 말마따나 “촌놈 시리즈도 역시 2탄은 잘 안됐어요.(웃음) 인생이 영화와 같이 흘러온 것 같아요.”
선생님은 올해에도 영화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시>에 출현하셨다죠! 자고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읊조려 봤을 그 말,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그랬죠. 영화를 좋아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영화를 많이 보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 김용택 선생님은 이 세 가지를 다 해낸 셈이네요. “형님이 영화를 많이 봐 왔으니까, 은막에 데뷔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창동 감독이 대뜸 이렇게 말씀했답니다. 영화 속에서도 시인으로 등장하신다니, 은막의 데뷔 무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려 봅시다.
2학년, 신비하고 아름다운 영혼들
“임실에 뭐가 유명합니까? 김용택이 유명하고, 치즈가 유명합니다.(웃음)” 김용택 선생님은, 임실에서 작고 가난한 마을, 열두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의 덕지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작년에 퇴임했습니다. 그동안 2학년 학생들만 26년을 가르치셨답니다. “처음엔 학생 수가 7~8명이었는데, 점차 줄어서 2~3명이 됐어요. 두 놈을 앉혀 놓고, ‘야, (이쪽 보고) 알았어? (저쪽 보고) 알았어?’ 하고 나면 수업이 끝나는 거예요.(웃음)”
“공부를 잘 가르치지 않아도 학부형들이 이의가 없어요. 그래도 1등, 2등이니까.(웃음)” 한 학교에 오래 있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아버지도 내가 가르치고, 그 아들도 가르쳤어요. 가르쳐 보면 똑같아. 공부도 아빠만큼 안 하는 거야. 근데 깜박깜박 이름을 헷갈려. 자꾸 아빠 이름을 부르는 거야. ‘택수야, 임마!’ 하면, ‘우리 아버지 이름인디’ 하는 거죠.(웃음)” 2학년, 고개만 돌리면 잊어버리는 아홉 살 나이. “놀랍게도 정직하고 진실한 것이 통합니다. 그 세계가 그래요. 진실한 만큼 아이들은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그게 좋아서 선생님은, 2학년을 오래오래 가르치며 살았답니다.
어제는 성민이 할머니가 미숫가루하고 풋고추하고 자두를 보내셨다. 오늘 아침에 대길이가 ‘맛동산’ 한 봉지를 가지고 와서 내 앞에서 봉투를 쭉 찢더니, 할머니가 선생님은 6개 주라고 했다면서 나에게 맛동산을 준다. 어제 오늘은 행복했다.(p.87)
2학년 아이들의 매력, 또 있습니다. “세상이 늘 새로워요. 새로운 눈을 가지고 있어요. 신기한 게 아니라, 신비한 거예요. 남편이 만날 술을 먹고 들어온 건 신비한 게 아니라, 신기한 거죠.(웃음) 세상을 늘 새것으로 바라보는 신기한 눈이 있으면, 늘 감동하고 늘 놀라게 됩니다. 진지하기도 하죠. 새로우니까 진지하게 바라봅니다.”
벌레 한 마리 지나가는 걸 몇 명의 아이들이 고개를 파묻고 지켜보고, 그네를 서로 타겠다고 싸우고, 그걸 서너 명의 아이들은 이르러 달려옵니다. “점심 먹고 낮잠을 잘라치면, 열두 명 아이들이 나란히 서서 진지하게 이르는 거예요. 내용은 안 들어요. 조잘거리는 걸 봐요. 저 별것도 아닌 걸 어쩌면 이렇게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이를 수 있을까!” 아이들을 따라나선 곳에 통유리가 깨져 있었답니다. 왜 그랬냐고 묻는 선생님께 한 아이 왈, “깨지는가 안 깨지는가 보려고 머리로 들이받았답니다.(웃음) 2학년하고 살면, 날마다 놀래야 돼요. 진지하기 때문에 진정성이 있죠.”
나는 유쾌하고 통쾌했다. 채환이에게 앞으로 무엇을 들이받을 때는 네 머리가 깨질지 안 깨질지도 생각하면서 받으라고 했다.
2학년과 하루를 산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2학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다. 2학년 아이들이 달리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한편 외로워 보이고 한쪽으로 진지하다. 아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찌나 진지하게 달리는지,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p.166)
선생님은 이런 아이들이 “사는 법을 안다”고 말씀합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도, 살맛 나게 살 줄 압니다. “사람들은 돈만 벌 줄 알지. 그게 사는 법이라고 생각하죠. 아이들은 뛰어놀 땅만 있으면 기뻐하고 감동해요. 사람들은 놀라질 않아요. 김태희나 나와서 왔다 갔다 해야 쳐다보지, 감동할 줄을 몰라요.”
우선, 자세히 보는 게 중요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에게 ‘보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뭘 가르친다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다 보면 배우는 게 더 많죠. 그래서 중요한 것을 보게 하고, 관심을 갖게끔 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걸 보게 하고, 딱따구리가 날아와서 우는 소리, 나무를 찍어 대는 소리를 듣게 하는 거예요. 숲이 조용한 것 같아도 조금만 낮춰서 들어가 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리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살아있어요.”
땅에 쑥 돋아납니다. 해 뜨면 쑥잎 끝에 보석 같은 이슬방울들이 반짝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자연은 무궁무진무구입니다. (…) 아침에 본 쑥이 해 질 때 보면 더 자라나 있습니다. 쑥은 봄기운을 가장 빨리 알아차린 풀입니다. 봄기운이 돌면 땅에서 돋아나는 것이 어디 쑥뿐이겠습니까?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갖 풀들이 돋아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작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p.130)
창 밖에 눈이 펑펑 내리는데도, 고개 숙여 책만 보라는 교사는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교육할 자격이 없답니다. 그만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보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시작입니다. “물론 그냥 보기만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게 뭔지 알게 됩니다. 무엇인지 알아야 이해되고, 그래야 내 것이 되고, 그때야 비로소 인격이 됩니다. 그게 교육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교육을 받은 걸까요? 창밖에 내리는 비와 눈을 충분히 보고 커 왔나요? 숲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낮은 곳에서 꿈틀거리는지 배운 적이 있었나요? 문득 내가 받아 온 교육을 돌이켜 보게 합니다. “우리들의 교육은 인격과 전혀 상관없는 교육이죠.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하는데,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해도 인간적으로 빵점인 사람이 있잖아요. 아는 것이 돈이 되고 점수가 될망정, 지금 교육은 인간이 되는 것과는 먼 것 같아요.”
아는 것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앎이 관계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조화를 의미하고, 이것이야말로 예술적인 것입니다. “‘캬~ 예술적이야’ 하는 건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죠.” 관계가 맺어지면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통령의 생각이 우리 사회를 바꾸고, 교육감의 생각이 교육을 바꿉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생각입니다. 내 생각이 대통령을 뽑고, 국회를 뽑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나라를 바꿀 수 있습니다. 생각이 없는 놈더러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웃음)”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한 것이 철학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을 정리하고, 삶을 정리하면서 한 발짝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삶과 일치된 교육이고, 교육과 함께 나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철학적인 사유를 갖는 사람은 신념을 갖게 되고, 신념을 가진 사람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갑니다. 그것이 감동을 줍니다. 왜 감동을 줍니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감동을 줍니다. 새로운 것을 새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지요. 살아있는 것, 생명은 어디서 옵니까? 자연에서 오고, 인간은 그렇게 자연을 뜯어먹으며 공생해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선생님은 자연 깊숙한 곳, 전북 임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나 봅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네 가지 것들
아이들에게 사는 법을 배운다는 김용택 선생님. 그 비법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제가 공부해 보니까, 사는 데 꼭 네 가지가 필요하더라고요. 일단, 공부.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는데도, 대학 때 교양, TV 교양, 여성지 교양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요. 공부도 끝도 없이 변화해 갑니다. 그걸 따라가는 게 공부입니다.
둘째, 예술적인 감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모든 것이 디자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됩니다. 예술은 딱 드러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숨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으면, 세상이 예술적으로 다가옵니다.
셋째는 환경. 결국 환경이 세계를 지배합니다. 지금은 자연의 세계고, 자연의 순환 논리를 거스르고는 살 수 없습니다. 인류가 끝없이 발전해도 자연에 기대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를 세워 놓고, 우리 아파트는 전망이 좋다고 하고, 정원이 좋다고 합니다. 풀, 햇볕, 바람, 나무, 흙, 이런 것은 영원불변한 우리들의 가치입니다. 자연에 대한 오해 하나. 사람들은 자연이 마치 강원도, 섬진강에만 있는 것처럼 ‘자연을 보러’ 갑니다. 자기 앞에 앉아 있는 남편과 아내는 자연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자연이죠. 한 그루 꽃과 나무는 잘 가꿀 줄 알면서, 사람들은 자기 앞에 있는 남편과 아내는 가꿀 줄을 모릅니다. 나의 희망이고 자연이라는 걸 몰라서 그렇죠. 앞으로는 자기 앞의 자연도 잘 가꿔야 합니다.
그러므로 네 번째로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람, 사람입니다. 2학년 아이들은 이 네 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짧은 질의응답으로 행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높이에 어떻게 맞추고, 어떻게 교감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고, 아이들을 봅니다. 어른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이 아이가 독립된 인간이라는 거죠. 아무리 어린애라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애가 아닌 거죠. 선생님은 늘 가르치겠다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제 크기만큼 알고 있는 세상. 그것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가꿔 줘야 합니다. 그렇게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요즘 산골 유학 많이 보내잖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제가 산골 유학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산골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아는 겁니다. 아무리 산골에 가도 어른들이 자연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아, 봄이구나.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구나. 여름 가면 가을이 오는구나’ 이렇게 사계절을 뚜렷하게 보여 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있으면 참 좋은데.(웃음) 자연을 자세히 보여 주고, 이해하게 돼서 자연이 인격이 되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느 때보다 많은 독자들이 자리를 채워 준 행사를 마치며, 김용택 선생님은 거듭(!) 당부했습니다. “영화 <시>가 개봉하면, 오늘처럼 이렇게 많이 보러 와 주세요!” 선생님은 2008년 8월 29일 자신의 모교인 덕지초등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하고 교단을 내려오셨습니다. “대길아, 소희야, 승진아, 두환아, 강산아, 성민아, 성민아, 현아야, 채완아, 민성아, 연희야, 희진아, 재영아, 너희들은 내 고단한 인생의 길을 환하게 밝혀준 스승들이었단다. 보고 싶구나.”(p.276) 보고 싶은 아이들에게 쓴 선생님의 편지 글 뒤에 한 학생의 손 편지가 실려 있습니다. “김용택 선생님. 저 희진이예요. 항상 같이 지냈는대 가실 걸 생각하니 보고 싶어집니다.”(p.277) 200여 페이지에 실린 김용택 선생님의 사랑 못지않게 따뜻하고, 애틋한 그 마음에, 마지막 장을 넘기지 못하고 오래오래 보고 있었습니다.
영화와 김용택. 낯설지 않다 싶더니 이전에도 선생님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 적이 있었지요.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 “한 사람이 한 가지 것을 오랫동안 좋아하다 보면, 그 어떤 일이든 할 말이 있는 거지요.” 촌놈 시리즈는 그렇게 만들어졌답니다. 그 책으로 그동안 보았던 영화 관람료를 다 뽑을 정도로(!) 책이 잘 팔렸으나, ‘전작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영화계 속설 말마따나 “촌놈 시리즈도 역시 2탄은 잘 안됐어요.(웃음) 인생이 영화와 같이 흘러온 것 같아요.”
선생님은 올해에도 영화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시>에 출현하셨다죠! 자고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읊조려 봤을 그 말,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그랬죠. 영화를 좋아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영화를 많이 보고,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 김용택 선생님은 이 세 가지를 다 해낸 셈이네요. “형님이 영화를 많이 봐 왔으니까, 은막에 데뷔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창동 감독이 대뜸 이렇게 말씀했답니다. 영화 속에서도 시인으로 등장하신다니, 은막의 데뷔 무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려 봅시다.
2학년, 신비하고 아름다운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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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에 뭐가 유명합니까? 김용택이 유명하고, 치즈가 유명합니다.(웃음)” 김용택 선생님은, 임실에서 작고 가난한 마을, 열두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의 덕지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작년에 퇴임했습니다. 그동안 2학년 학생들만 26년을 가르치셨답니다. “처음엔 학생 수가 7~8명이었는데, 점차 줄어서 2~3명이 됐어요. 두 놈을 앉혀 놓고, ‘야, (이쪽 보고) 알았어? (저쪽 보고) 알았어?’ 하고 나면 수업이 끝나는 거예요.(웃음)”
“공부를 잘 가르치지 않아도 학부형들이 이의가 없어요. 그래도 1등, 2등이니까.(웃음)” 한 학교에 오래 있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아버지도 내가 가르치고, 그 아들도 가르쳤어요. 가르쳐 보면 똑같아. 공부도 아빠만큼 안 하는 거야. 근데 깜박깜박 이름을 헷갈려. 자꾸 아빠 이름을 부르는 거야. ‘택수야, 임마!’ 하면, ‘우리 아버지 이름인디’ 하는 거죠.(웃음)” 2학년, 고개만 돌리면 잊어버리는 아홉 살 나이. “놀랍게도 정직하고 진실한 것이 통합니다. 그 세계가 그래요. 진실한 만큼 아이들은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그게 좋아서 선생님은, 2학년을 오래오래 가르치며 살았답니다.
어제는 성민이 할머니가 미숫가루하고 풋고추하고 자두를 보내셨다. 오늘 아침에 대길이가 ‘맛동산’ 한 봉지를 가지고 와서 내 앞에서 봉투를 쭉 찢더니, 할머니가 선생님은 6개 주라고 했다면서 나에게 맛동산을 준다. 어제 오늘은 행복했다.(p.87)
2학년 아이들의 매력, 또 있습니다. “세상이 늘 새로워요. 새로운 눈을 가지고 있어요. 신기한 게 아니라, 신비한 거예요. 남편이 만날 술을 먹고 들어온 건 신비한 게 아니라, 신기한 거죠.(웃음) 세상을 늘 새것으로 바라보는 신기한 눈이 있으면, 늘 감동하고 늘 놀라게 됩니다. 진지하기도 하죠. 새로우니까 진지하게 바라봅니다.”
벌레 한 마리 지나가는 걸 몇 명의 아이들이 고개를 파묻고 지켜보고, 그네를 서로 타겠다고 싸우고, 그걸 서너 명의 아이들은 이르러 달려옵니다. “점심 먹고 낮잠을 잘라치면, 열두 명 아이들이 나란히 서서 진지하게 이르는 거예요. 내용은 안 들어요. 조잘거리는 걸 봐요. 저 별것도 아닌 걸 어쩌면 이렇게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이를 수 있을까!” 아이들을 따라나선 곳에 통유리가 깨져 있었답니다. 왜 그랬냐고 묻는 선생님께 한 아이 왈, “깨지는가 안 깨지는가 보려고 머리로 들이받았답니다.(웃음) 2학년하고 살면, 날마다 놀래야 돼요. 진지하기 때문에 진정성이 있죠.”
나는 유쾌하고 통쾌했다. 채환이에게 앞으로 무엇을 들이받을 때는 네 머리가 깨질지 안 깨질지도 생각하면서 받으라고 했다.
2학년과 하루를 산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2학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다. 2학년 아이들이 달리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한편 외로워 보이고 한쪽으로 진지하다. 아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찌나 진지하게 달리는지,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p.166)
선생님은 이런 아이들이 “사는 법을 안다”고 말씀합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도, 살맛 나게 살 줄 압니다. “사람들은 돈만 벌 줄 알지. 그게 사는 법이라고 생각하죠. 아이들은 뛰어놀 땅만 있으면 기뻐하고 감동해요. 사람들은 놀라질 않아요. 김태희나 나와서 왔다 갔다 해야 쳐다보지, 감동할 줄을 몰라요.”
우선, 자세히 보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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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에게 ‘보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뭘 가르친다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다 보면 배우는 게 더 많죠. 그래서 중요한 것을 보게 하고, 관심을 갖게끔 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걸 보게 하고, 딱따구리가 날아와서 우는 소리, 나무를 찍어 대는 소리를 듣게 하는 거예요. 숲이 조용한 것 같아도 조금만 낮춰서 들어가 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리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움직이고 살아있어요.”
땅에 쑥 돋아납니다. 해 뜨면 쑥잎 끝에 보석 같은 이슬방울들이 반짝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자연은 무궁무진무구입니다. (…) 아침에 본 쑥이 해 질 때 보면 더 자라나 있습니다. 쑥은 봄기운을 가장 빨리 알아차린 풀입니다. 봄기운이 돌면 땅에서 돋아나는 것이 어디 쑥뿐이겠습니까?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갖 풀들이 돋아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작은 풀꽃들이 피어납니다.(p.130)
창 밖에 눈이 펑펑 내리는데도, 고개 숙여 책만 보라는 교사는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교육할 자격이 없답니다. 그만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보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시작입니다. “물론 그냥 보기만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게 뭔지 알게 됩니다. 무엇인지 알아야 이해되고, 그래야 내 것이 되고, 그때야 비로소 인격이 됩니다. 그게 교육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교육을 받은 걸까요? 창밖에 내리는 비와 눈을 충분히 보고 커 왔나요? 숲 속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낮은 곳에서 꿈틀거리는지 배운 적이 있었나요? 문득 내가 받아 온 교육을 돌이켜 보게 합니다. “우리들의 교육은 인격과 전혀 상관없는 교육이죠.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하는데,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해도 인간적으로 빵점인 사람이 있잖아요. 아는 것이 돈이 되고 점수가 될망정, 지금 교육은 인간이 되는 것과는 먼 것 같아요.”
아는 것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앎이 관계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조화를 의미하고, 이것이야말로 예술적인 것입니다. “‘캬~ 예술적이야’ 하는 건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죠.” 관계가 맺어지면 생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통령의 생각이 우리 사회를 바꾸고, 교육감의 생각이 교육을 바꿉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생각입니다. 내 생각이 대통령을 뽑고, 국회를 뽑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나라를 바꿀 수 있습니다. 생각이 없는 놈더러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웃음)”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한 것이 철학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을 정리하고, 삶을 정리하면서 한 발짝 나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삶과 일치된 교육이고, 교육과 함께 나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철학적인 사유를 갖는 사람은 신념을 갖게 되고, 신념을 가진 사람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갑니다. 그것이 감동을 줍니다. 왜 감동을 줍니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감동을 줍니다. 새로운 것을 새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지요. 살아있는 것, 생명은 어디서 옵니까? 자연에서 오고, 인간은 그렇게 자연을 뜯어먹으며 공생해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선생님은 자연 깊숙한 곳, 전북 임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나 봅니다.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네 가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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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사는 법을 배운다는 김용택 선생님. 그 비법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제가 공부해 보니까, 사는 데 꼭 네 가지가 필요하더라고요. 일단, 공부. 세상이 끊임없이 변화하는데도, 대학 때 교양, TV 교양, 여성지 교양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요. 공부도 끝도 없이 변화해 갑니다. 그걸 따라가는 게 공부입니다.
둘째, 예술적인 감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모든 것이 디자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됩니다. 예술은 딱 드러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 숨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으면, 세상이 예술적으로 다가옵니다.
셋째는 환경. 결국 환경이 세계를 지배합니다. 지금은 자연의 세계고, 자연의 순환 논리를 거스르고는 살 수 없습니다. 인류가 끝없이 발전해도 자연에 기대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를 세워 놓고, 우리 아파트는 전망이 좋다고 하고, 정원이 좋다고 합니다. 풀, 햇볕, 바람, 나무, 흙, 이런 것은 영원불변한 우리들의 가치입니다. 자연에 대한 오해 하나. 사람들은 자연이 마치 강원도, 섬진강에만 있는 것처럼 ‘자연을 보러’ 갑니다. 자기 앞에 앉아 있는 남편과 아내는 자연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자연이죠. 한 그루 꽃과 나무는 잘 가꿀 줄 알면서, 사람들은 자기 앞에 있는 남편과 아내는 가꿀 줄을 모릅니다. 나의 희망이고 자연이라는 걸 몰라서 그렇죠. 앞으로는 자기 앞의 자연도 잘 가꿔야 합니다.
그러므로 네 번째로 필요한 것은 결국 사람, 사람입니다. 2학년 아이들은 이 네 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짧은 질의응답으로 행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높이에 어떻게 맞추고, 어떻게 교감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고, 아이들을 봅니다. 어른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이 아이가 독립된 인간이라는 거죠. 아무리 어린애라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애가 아닌 거죠. 선생님은 늘 가르치겠다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제 크기만큼 알고 있는 세상. 그것을 존중하고 소중하게 가꿔 줘야 합니다. 그렇게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요즘 산골 유학 많이 보내잖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제가 산골 유학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산골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아는 겁니다. 아무리 산골에 가도 어른들이 자연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아, 봄이구나. 봄이 가면 여름이 오는구나. 여름 가면 가을이 오는구나’ 이렇게 사계절을 뚜렷하게 보여 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있으면 참 좋은데.(웃음) 자연을 자세히 보여 주고, 이해하게 돼서 자연이 인격이 되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느 때보다 많은 독자들이 자리를 채워 준 행사를 마치며, 김용택 선생님은 거듭(!) 당부했습니다. “영화 <시>가 개봉하면, 오늘처럼 이렇게 많이 보러 와 주세요!” 선생님은 2008년 8월 29일 자신의 모교인 덕지초등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하고 교단을 내려오셨습니다. “대길아, 소희야, 승진아, 두환아, 강산아, 성민아, 성민아, 현아야, 채완아, 민성아, 연희야, 희진아, 재영아, 너희들은 내 고단한 인생의 길을 환하게 밝혀준 스승들이었단다. 보고 싶구나.”(p.276) 보고 싶은 아이들에게 쓴 선생님의 편지 글 뒤에 한 학생의 손 편지가 실려 있습니다. “김용택 선생님. 저 희진이예요. 항상 같이 지냈는대 가실 걸 생각하니 보고 싶어집니다.”(p.277) 200여 페이지에 실린 김용택 선생님의 사랑 못지않게 따뜻하고, 애틋한 그 마음에, 마지막 장을 넘기지 못하고 오래오래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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