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편지로 시작된 낭만적인 사랑
“그녀와 사랑에 빠져, 천국보다 여기가 행복”. 나는 미칠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거의 미쳐 있어요. 두 개의 생각을 하게 되면 당신이 반드시 그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두 생각을 함께 할 수 가 없답니다.
글ㆍ사진 서진
201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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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벨리나 한스카에게

1836년 6월 19일 일요일
파리

내 사랑하는 천사,
나는 미칠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거의 미쳐 있어요. 두 개의 생각을 하게 되면 당신이 반드시 그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두 생각을 함께 할 수 가 없답니다.

당신을 제외하고는 더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나대신 내 상상이 나를 당신에게 옮기고 있어요. 내가 가진 가장 사랑스러운 천 개의 손길로 당신을 꼭 붙잡고, 당신에게 키스를 하고, 당신을 부드럽게 만집니다.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을 거에요 -반드시 그럴 거에요. 나는 당신이 내 마음 속에 있다는 달콤한 느낌을 가지고 있답니다. 하지만 하느님 맙소사 당신이 나의 이성을 빼앗아가버리면 나는 어떻게 된단 말입니까? 이것이 오늘 아침 나를 무섭게 만든 편집증입니다.

매 순간 일어나서 나에게 말합니다. “자 이제 그곳으로 갈 거야.” 그리고 나서 나는 의무감에 다시 앉습니다. 무서운 충돌입니다. 이건 삶이 아니에요. 나는 예전에 이런 경험을 절대로 해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겁니다.

당신을 생각하자마자 나는 바보같은 기분과 즐거운 기분이 들어요. 나는 한 순간에 천 년을 사는 즐거운 꿈속에서 빙글 빙글 돕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상황인지!

사랑으로 가득 차서, 온 몸 구석 구석에 사랑을 느끼고, 오직 사랑을 위해 살고, 내가 슬픔에 의해 바짝 여위게 된 걸 보게되고, 수많은 거미줄에 잡혀버렸습니다.

오, 내 사랑 에바. 당신은 모를 거에요.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의 엽서를 들고, 마치 당신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 내가 어제 보았던 것처럼, 아름답고,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당신을 말입니다.

어제, 저녁 내도록 나는 혼잣말로 “그녀는 내것이야” 라고 말했습니다. 아, 천사들은 내가 어제 행복했던 것만큼 천국에서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는 프랑스의 극작가, 소설가이고 그의 방대한 리얼리즘 대작인 ‘인간 희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이후 세대의 작가들과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조각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발자크는 평생동안 과도한 집필 일정으로 인한 건강 문제로 고통을 받았다. 가족과의 관계는 경제적으로, 개인적인 드라마로 자주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1832년 발자크는 수신 주소가 없는 ‘외국인으로부터’ 라고 서명된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 편지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이 적혀 있었다. 그는 가제트 드 프랑스 지에 광고를 실어 답장을 했고, 이것이 평생 “그의 가장 달콤한 꿈의 대상”과의 서신왕래의 시작이었다. 이벨리나 르제우스카 한스카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재력가와의 정략 결혼으로 갇혀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1841년 사망했을 때, 비로서 그는 그녀의 연인이 되었고 그가 죽기 직전에서야 그들은 결혼했다.


서진의 번역 후기

발자크의 정력적인 집필 습관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후 다섯 시나 여섯 시에 가벼운 식사를 하고 잠을 잔 뒤에 자정 무렵 일어납니다. 그 때부터 블랙커피를 마시며 열네 시간, 열다섯 시간 동안 집중해서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20여 년이 안되는 집필 기간동안 1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겠지요. 연애소설이 팽배했을 때, 그는 사실적인 19세기 모습을 담기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에 평단의 지지를 받지 못?지만 후대의 작가들-프로스트,디킨스, 포, 포크너와 캐루악까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소설가들은 발자크 처럼, 수백 명의 인물군상이 여러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거대한 대작을 쓰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적이었지만 익명의 편지 한 통으로부터 시작해서 죽음으로 맺는 그의 사랑은 왜 이리 낭만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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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러브레터 #발자크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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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2.01

발자크의 작품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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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1.13

14시간 이상 커피만 마시고 글 썼다니 대단하네요. 그만큼 글쓰기를 좋아했나보지요? 익명의 편지에 답장을 신문에다 냈다니 로맨틱합니다. 요즘 세상에는 누구나 인터넷에 글 올리고 누구나 볼 수 있게 됐지만 올린다면 역시 신문이 더 멋진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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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09.27

발자크의 심장을 뺏어간 그녀가 누구일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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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2010년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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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1799년 프랑스 투르 지방에서 태어난 오노레 드 발자크 Honore de Balzac 는 프랑스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정통적인 고전 소설 양식을 확립하는데 이바지한 근대 사실주의의 대가로 손꼽힌다. 1815년부터 아버지의 바램 대로 법학공부를 시작하였고, 이후 공증인 사무실에서 서기를 했으나 1819년 공증인의 길을 포기, 아버지의 뜻에 등을 돌리고 비극『크롬웰』과 소설 『팔튀른』, 『스테니』를 쓰며, 그가 원했던 대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렇다 한 성공은 올리지 못하고 연인 베르니의 도움으로 시작한 출판업 역시, 실패로 막대한 빚을 지게 된다. 그는 이 빚을 갚기 위해 불철주야 작품을 써냈으며 이 시기 사교계와 문학계에 출입하면서 신문 · 잡지에 많은 콩트와 소설을 발표한다. 왕성한 창조력과 정열로 끊임없이 작품에 전력투구한 결과 20년간 90편의 장편과 중편, 30편의 단편, 5편의 희곡 등 실로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기게 되었는데, 이 방대한 작품들은 전체성과 유기성을 부여하려는 의도 하에 다시 『인간 희극 Le Comedie humaine』이라는 총괄적인 칭호로 태어난다. 따라서 발자크의 작품 세계는 『인간 희극』이라는 대작으로 대변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소설들이 당시 프랑스 사회전체를 이해하는 수단이 되게 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으며, 한 소설의 등장 인물을 다른 소설에서 재등장시키는 기법을 통해 통일된 하나의 소우주를 형성하였고, 이로서 작품 속의 세계는 그 깊이와 폭에서 더욱 현실감을 얻게 되었다. 발자크는 '호적부 보다 더 완전히 당대인의 생활을 기록할 것'이라는 작품 철학으로 연애와 풍류로 점철 되어 있던 당대 프랑스 소설에 충격을 주었으며, 낭만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도 있으나 전체적인 작품의 기조는 정밀한 관찰, 완전한 기록에 초점을 둔 사실적이며 자연적인 것이었다. 염세주의자, 회의주의자, 비도덕성, 거친 문체 등으로 그 당시의 대중들에게 환영을 받았으며, 전문가들에게는 냉대와 멸시를 받았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 와일드, 딜타이, 빅토르 위고와 같은 문인들에게는 찬사를 받았다. 낭만주의와 리얼리즘, 거기에 신비주의적 사상을 담은 작품을 써내기도 하는 등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펼친 발자크는 1832년부터 사귀어온 한스카 부인과 1850년 3월에 결혼식을 올렸으나 그 해 8월 18일 병세 악화로 사망한다. 당초에 의도한 130여 편이 아닌 100여 편의 장·단편소설로 마감된 『인간희극』은 미완의 전집으로 그쳤으나, 세계문학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거대한 업적으로 남았다. 저서로는 『루이 랑베르』, 『시골 의사』, 『외제니 그랑데』, 『철학적 연구』, 『고리오 영감』, 『사라진느』, 『사촌 베트』, 『세자르 비로토』, 『골짜기의 백합』, 『인간 희극』, 『잃어버린 환상』, 『사촌 베트』, 『사촌 퐁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