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꼭 칼퇴근하게나!” 말하는 사장의 진짜 속마음은?
자네 요즘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회사생활은 마라톤이야. 단기전이 아니라고.그렇게 하다가 지치면 회사도 손해고 자네도 손해에요.
201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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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꼭 칼퇴근하게나”
(본심 : “도대체 일은 언제 할 거야?”)
‘요즘 젊은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낙서가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새겨져 있다는 것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대물림으로 이 말을 너무 잘 써먹고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세대는 아버지 세대에게, 아버지 세대는 우리들에게, 우리는 우리 자식들에게 두어 번의 혀 끌끌거림과 함께 저 말을 애용했다. 인간의 기억력은 새나 물고기의 그것과 닮아서 우리는 올챙이 적 기억 못 하는 개구리 흉내는 기본이요,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것들은 선별적으로 머릿속에서 삭제하고 왜곡하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자기도 중학교 때 담배를 뻐금거리고 선생님을 꼰대라고 불렀던 것이 불과 몇십 년도 안 된 일이거늘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어린 애들을 보거나 선생에게 반항하는 학생들 기사를 보면 내일이라도 세상에 말세가 올 것처럼“요즘 애들 버릇없어서 큰일이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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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를 풀어놓자니
꼰대 될까 두려운 사장
회사 윗사람들도 이와 같아서 가끔 회식이라도 같이 하면 과거 자신이 신입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대궐집 마나님 열두 폭 치맛자락처럼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오뉴월 땡볕보다 더 더운 월남에서 스키를 탔다는 김 상사의 회상 어린 눈빛으로, 보릿고개 때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로 죽을 끓여먹었다는 할아버지의 애절함으로 전설의 고향 내레이션을 시작한다. 당시 월급은 30만 원이었는데 그것도 무척 큰돈이었으며 주5일근무제는커녕 일요일에도 당연히 회사에 나와 일을 해야 했단다. 아내가 첫 아이를 낳는 순간에조차 거래처 접대를 했음은 물론 상사가 한마디를 하면 그날은 모두 밤샘을 하면서도“찍”소리조차 내지 못했다는 말을 쉬지 않고 풀어낸다.
물론 윗사람의 그 말이 모두 과장이거나 지어낸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회식 때만 되면 고장 난 녹음기처럼 똑같은 대사를 틀어대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어제 입사한 신입사원 한 명뿐 대리는 남몰래 하품을 하고 과장은 옆자리 아가씨의 각선미를 흘끗거리며 차장은 테이블 밑 휴대전화에 쌓인 스팸문자를 정리한다. 옛날이야기로 치자면 회사에서 사장만큼 많은 천일야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다. 연륜과 경험에서 가장 독보적이니 부장들이 근대사를 정리할 때 사장은 고대사를 읊조리며 부장이 논산훈련소 이야기를 할 때 사장은 만주에서 말 타고 개장수 하던 시절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꼰대’소리를 듣는다는 걸 잘 알기에 남의 평판에 예민한 사장이 이사나 상무를 따라할 수도 없다. 젊은 직원들을 보면서 느끼는 세대별 충격을 가슴에 담은 채 광속으로 변하는 기업문화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 사장은 오늘도 차차차 스텝을 지우고 비보이 스텝에 맞추려 굳은 고관절을 꺾는 것이다.
칼퇴근하란다고
진짜 하는 너는 누구냐?
차차차(자신의 과거)와 비보이(지금의 환경)의 이질적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중 하나가 퇴근시간이다. 누구보다 치열했던 산업현장에서 젊음을 보내며 회사가 곧 집과 다름없었던 그들은, 출근은 있으나 퇴근은 없던 시절을 건너왔다. 또한 본질적으로 사장은 직원들이 오래오래 회사에 남아 있는 것을 미덥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자신보다 직원들이 늦게 퇴근해야 본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그걸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가는 영락없이 늙다리 사장으로 찍혀버리고 만다. 과거는 과거, 지금은 지금이라는 이성적 사고도 분명히 한다. 그래서 사장은 야근을 자주 하는 직원을 보며 퇴근길에 이렇게 한마디를 던진다.
“자네 요즘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회사생활은 마라톤이야. 단기전이 아니라고. 그렇게 하다가 지치면 회사도 손해고 자네도 손해에요. 앞으로는 정시에 퇴근하게나.”
월례회의 때도 폼 나게 한 말씀 하신다.
“무조건 회사에 오래 남아 있어야 ? 잘하는 것으로 대접받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가정을 잘 챙기고 자기계발을 열심히 하는 것도 회사생활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차라리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을 마무리하고 정확한 시간에 퇴근하십시오.”
‘누가 그걸 모르나?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 웬수고, 꼭 퇴근시간만 되면 일거리를 던져주는 윗사람들이 문제지’라고 속으로는 시큰둥해하면서도 일단 직원들은 사장의 정시퇴근 지지발언에 박수를 보낸다. 사장이라도 제정신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어느 날 먼저 퇴근한 사장이 밖에서 약속을 끝내고 사무실에 두고 온 무언가가 생각나 회사에 들어왔을 때, 밤 8시도 안 됐는데 회사에 불이 홀랑 꺼져 있으면 사장의 마음속에는 서운함의 불이찰칵 켜진다. ‘자기들이 무슨 공무원이라고. 요즘에는 공무원도 이러지 않는다’며 이런 방만한 직원을 믿고 어떻게 회사를 끌고 나갈 것인지 한숨을 쉰다. 그 불편한 심기는 다음날 임원회의에서 고스란히 표출된다. 사장은 임원들을 째려보면서 무슨 꼬투리라도 잡을 것이 없나 눈을 삼각형으로 뜬다.
야근하는 직원을 향한
사장들의 양가감정
회사가 사통팔달의 대로변에 있어서 간판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한 사장이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으면 거래처 사람들에게 전화나 문자가 와. 아직 우리 회사 불이 꺼지지 않았다며 직원들이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를 해주지.‘ 녀석들, 일찍 퇴근하래도’라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그들의 고자질(?)을 밤 아홉 시에 듣는 것보다 밤 열 시에 듣는 것이 더 좋고 열 시보다는 열한 시에 듣는 것이 더 좋아. 그 말을 들으면 술맛도 더 좋아지고 마음도 편해져. 그때는 조용히 회사로 전화를 걸어 남아 있는 직원에게 흐뭇하게 한마디하지. ‘자네 뭐라도 먹고 하나? 그렇게 야근하지 말고 어서 퇴근하게’라고 말야.”
야근하는 직원을 보며 정시에 퇴근하라고 말하는 사장들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두 가지의 양가감정이 공존한다. 일만큼 개인의 시간도 중요하다는 합리적 정신과 쉴 때 다 쉬고 일은 언제 할 것이냐 싶은 새마을정신이 왔다갔다한다.
그러니 직원들이여, 지금이 어느 때인데 18세기 노동자 마인드를 갖는 것이냐며 사규로 정한 퇴근시간이 다가오자마자 자리를 털고 일어나 구두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지는 말지어다. 법적으로 논리적으로 그것은 하등 문제될 것 없는 행동이지만 퇴근시간에 사장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은 다음 세기에도 이어질 월급 받는 이들의 숙명이다. 최소한 조금은 미안해하는 표정과 “죄송합니다.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정도의 대사는 직장인이 늘 시연해야 할 기초필수 연기력이다. 사장이 등을 떠밀어도 정말 조금이라도 일을 더하고 싶어 미쳐버릴 것 같은 간절한 눈빛연기까지 할 수 있다면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퇴근연기의 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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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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