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올리고 싶으면 이때를 노려라! - 사장이면 누구나 앓는 ‘오너 우울증’
- 사장의 달력에 동그라미 쳐진 그 수많은 날들은 오너 우울증이 경보음을 울리는 날이기도 하다. 특히 월급날을 열흘 정도 앞두고부터는 오너 우울증이 기지개를 켠다.
201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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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도 요즘 트위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서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차였다. 언제나 명랑하고 농담 잘하는 친구의 트위터가 최근 들어 상당히 공격적이고 날카로우며 극단적인 멘션mention으로 도배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예순이 넘으면 다 죽어야 한다”, “정부가 이들을 안락사시켜야 한다”는 등의 트위터 글을 보면서 이게 정말 내가 알고 있던 친구가 쓴 것이 맞나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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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들만 앓는다는 병,
오너 우울증
다음 날 무교동의 한 횟집에 둘이 앉아 소주를 마셨다. 녀석은 평소의 성격답게 질질 끌거나 돌리는 말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자기의 고민을 쏟아냈다. 삶의 의욕과 재미도 없고 일에 대한 열정도 없고 두통은 계속 오고 도대체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히 일과 관련해서 그는 지극히 냉소적이었다. 그 전에는 기획서를 쓰기 위해 밤을 새워도 피곤한 줄 몰랐는데 요즘에는 그걸 왜 하는지 모르겠고 돈 버는 팔자는 따로 있는 것 같다며 자기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직원들 월급 주느라 허덕이고 회사는 빚만 늘어간다는 것이다.
거의 한 시간을 혼자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나를 보며 한다는 말이 기가 막히다. “너 나를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 내가 혹시 자살이라도 할까 봐? 걱정 마, 안 죽어. 그리고 너 내 병을 내가 모를 것 같아? 이건 오너 우울증이야. 사장들만 앓는다는 그 우울증 말이다. 그거 다 알면서 그냥 누군가하고 주절주절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소주 한잔 하자고 한 거야.”
자기 병의 이름과 원인, 치료법까지 모두 알고 있는 환자(?)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맞장구치는 일뿐이었다. 물론 그 맞장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같은 사장으로서 그가 진단하는 오너 우울증에 전적으로 공감했고 나 역시 그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우울증은 계절이나 일조량 등과 관계가 있다는데 오너 우울증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장의 달력은 일반인의 달력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루는 24시간, 한 달은 31일, 일 년은 365일, 계절은 춘하추동春夏秋冬, 절기는 입춘立春ㆍ우수雨水ㆍ하지夏至ㆍ입추立秋ㆍ동지冬至 등 24절기로 딱딱 나눠지게 마련인데 사장의 하루와 한 달과 일 년과 계절과 절기는 사장의 방식으로만 돈다. 봄이 와서 꽃구경 가네, 여름이 와서 바다를 가네, 가을이 와서 단풍놀이 가네, 겨울이 와서 스키장 가네, 세상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외쳐도 사장의 달력은 세상의 달력에 꿈쩍하지 않는다.
일 년에 열두 번은 월급을 줘야 하는 날이고 열두 번 월급을 다 주고 나면 사장은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그래서 사장의 달력에 가장 큰 동그라미가 쳐 있는 날은 월급날이다. 월급날 주변으로는 군데군데 복병도 숨어 있다. 매달 며칠은 4대 보험료 빠져나가는 날, 법인카드요금 빠져나가는 날, 대출이자 빠져나가는 날, 임대료 빠져나가는 날 등 사장의 달력에는 공백이 없다. 빨간 날이 유난히 많은 달에는 직원들이 쉴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 명절이라도 끼어 있을라치면 떡값 챙겨야지, 긴 연휴가 이어지면 이번 달 매출은 줄어들겠다는 걱정이 먼저 드는 것도 사장의 달력이 전하는 말이다.
남들은 어느새 봄이요, 어느새 여름이라며 계절의 짧음을 팔자 좋게 탓하지만 사장의 달력에서 1월의 겨울과 4월의 봄과 7월의 여름과 11월의 초겨울은 부가세 납부의 달로만 존재할 뿐이다. 곗돈과 적금이야 몰아서 받으면 세상 다 얻은 듯 기분이 풍년이지만 매달의 세금을 3개월씩 몰아서 내면 그 달은 유난히 등골이 휜다.
그래서일까. 사장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는 것을 느끼기보다 또 다시 부가세 납부의 달이 왔음에 진저리 친다. 퇴직금정산의 달, 보너스 지급의 달 역시 사장의 달력에 묵직하게 표시된 부담의 달이다.
월급날 이후
일주일을 노려라
사장의 달력에 동그라미 쳐진 그 수많은 날들은 오너 우울증이 경보음을 울리는 날이기도 하다. 특히 월급날을 열흘 정도 앞두고부터는 오너 우울증이 기지개를 켠다. 그것은 치통환자의 고통만큼이나 지독하고, 유서를 쓰는 사람의 심정만큼이나 절망적이다. 월급날은 다가오는데 불어나지 않는 통장을 보며 이 짓을 왜 해야 하는가를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하고 그냥 다 접은 다음 지리산 골짜기 가서 맘 편하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한다. 만약 지금 그만둔다면 부채상황이 어떻게 될까 계산도 해보고 나날이 커가는 새끼와 함께 미래를 만들자고 다짐했던 직원들은 어찌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아무리 친한 친구가 만나자고 해도 귀찮고 술을 마셔도 혼자 마시고 싶다.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서 아내에게 신경질만 부리게 되고 회사에서도 자기 방에 들어가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어찌어찌해서 무사히 월급을 주게 되면 오너 우울증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바야흐로 일주일 정도의 ‘사장홀리데이’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사장이 정신적으로 가장 편안한 때는 월급날 이후 일주일인 것이다. 방학식을 하면서 개학은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은 행복감에 들뜨는 아이처럼 그 일주일간 사장은 다음 월급날이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 기분 좋게 허우적댄다. 등짝에 날개라도 달린 양 몸은 한없이 가볍고 발에 바퀴라도 달린 양 발걸음 역시 경쾌하다.
바로 이때가 찬스다. 만일 사장에게 휴가계를 내야 한다면, 사장에게 급여인상을 요구하고 싶다면, 사장에게 결재처리의 간소화를 기안하고자 한다면, 사장에게 회사복지의 개선을 요청하려고 한다면, 바로 월급 후 일주일을 노리라는 것이다.
오너 우울증은 조울증과 같다. 죽을 것 같이 우울한 월급날을 지나게 되면 나머지 일주일은 조증의 랄랄라 기간이다. 이때 사장은 갑자기 대인배가 되어 웬만한 직원들의 부탁은 다 들어주게 마련이다. 역설적으로 월급날을 앞두고 뭔가를 요구해야 한다면 조그만 참아주기 바란다. 그 뭔가가 설령“100원만 줍쇼”라 하더라도 세상만사 귀찮은 사장의 입에서 나올 말은 “꺼져!” 한 마디 외에 없음을 기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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