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황금을 온 몸에 두르고 바이올린을 켜는 남자
내가 보았던 사진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금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상조차 보기 어렵던 시절...
2011.08.26
![]() | |||||
| |||||
![]() |
내가 보았던 사진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금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상조차 보기 어렵던 시절, 그 사진은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서편 하늘 어딘가에 있을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리고 황금상 뒤의 하얀 아치와 주변에 조성된 오색 꽃들은 그야말로 슈트라우스 왈츠의 우아함과 화려함 그대로였다.
|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폴카가 좋았고, 그 선율들은 늘 나의 혼을 빼 놓곤 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책들은 ‘베토벤이나 브람스, 바흐 같은 대가의 곡들이 수준 있는 고전이며,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는 그리 가치가 크지 않다’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슈트라우스의 왈츠나 마음에 드는 나란 아이는 얄팍하고 표피적이며 수준 낮은 사람인가 보다’ 하며 마음껏 슈트라우스를 좋아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사진 속 슈트라우스는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아는 한 그 어떤 음악가의 상도 황금으로 전신을 두른 것은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실은 빈에 가면 슈트라우스가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는 ‘황금 슈트라우스’가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나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수십 년이 흘렀다. 황금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고, 슈트라우스의 왈츠에도 이전처럼 흥분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억지로가 아니라 내 심성이 저절로 왈츠보다는 브람스나 브루크너를 찾는 중년이 되었다. 그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빈에 도착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슴 설레며 보았던 슈트라우스의 황금상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황금상이 있는 곳은 ‘슈타트파르크’, 즉 ‘시립 공원’에 해당하는 곳이며, 빈에서 링 슈트라세를 건설할 때 함께 조성한 계획된 공원이다.
1862년 링 슈트라세의 동편을 따라 있는 도나우 운하의 지류를 가운데 두고 링을 따라서 길처럼 좁고 길게 공원이 조성되었다. 슈타트파르크, 이곳에는 봄과 여름에 왈츠를 추는 무도장도 있다. 슈타트파르크의 아름다운 남쪽 문과 가운데를 흐르는 개천 주변은 오토 바그너가 디자인한 것으로, 건축학적인 가치도 높다. 하지만 역시 슈타트파르크에서 최고는 정원도 무도장도 아니고 동상들이다. 물론 나는 맨 먼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찾는다. 어릴 때부터 흠모하던 슈트라우스, 아니 황금상은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눈부신 황금을 두르고 여전치 세련된 포즈로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그와의 첫 해후는 감격적이었다. 세계에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사진을 찍는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가장 중요한 삼거리에 자리 잡고 서 있는데, 지척의 무도회장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음악을 가슴 뿌듯이 듣는다. 그는 늘 밝은 곳에 있어 눈에 잘 띄지만, 다른 음악가들은 공원 안에 수줍게 숨어 있다.
공원을 돌다 보면 커다란 개암나무 밑에 슈베르트 선생님이 앉아 있다. 바로 우리가 오랫동안 보아왔던 슈베르트의 모습이다. 슈베르트는 특유의 동그란 안경을 낀 채 한 손에 악보를 들고 시선을 멀리 던지고 있다. 비만한 그의 몸은 앉아 있어서 더욱 그렇게 보인다. 바이올린을 들고 서 있는 슈트라우스의 날씬한 허리를 우리의 진중하고 비대한 작곡가는 흉내 낼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나는 슈베르트 선생이 더 좋다. 나도 나이가 든 게다.
숲 속에는 우리가 알 만하거나 또는 알 수도 없는 여러 위인들이 살고 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브루크너의 동상이다. 노력에 노력을 경주하며 완성된 형태의 교향곡을 위해 일생을 바친 진지한 예술가. 그의 동상은 일부러 찾아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진가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음악처럼.
슈타트파르크와 주변의 모든 동상들은 꼭 자신의 성격에 맞는 장소에 있는 것 같다. 깐깐한 베토벤은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있기 싫어서 따로 나와 앉아 있고, 게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자신을 올려다볼 길가에 앉아 있다. 다른 음악가들도 모두 기막히게 적당한 위치에서 자신만의 자세를 뽐낸다. 그들은 이곳에서 함께하지만, 예술가들답게 동상들조차 여전히 각자의 향기를 내고 있다.
슈타트파르크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늘 그리워하는 공원이 아닐 수 없다. 사계절이 다 좋다. 나는 여름은 제외하고 봄, 가을, 겨울에 이곳을 지나다녔다. 봄의 아름다운 꽃들과 가을의 낙엽들, 겨울의 흰눈과 찬 공기들까지 너무나 좋았다.
나는 빈에 가면 매일 아침 이곳을 걷고, 빈을 떠나면 매일 아침 서울을 걸으면서 슈타트파르크의 바람을 추억한다.
7개의 댓글
추천 기사
추천 상품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출판사 | 김영사
필자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햇살비
2011.09.19
gazahbs
2011.09.06
슈타트파르크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슈타트파르크의 베토벤 동상 아래에서 그의 얼굴을 한번 올려다 보고 싶어집니다.
달빛젤리
2011.09.05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