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 “MBC 하차 후 ‘나꼼수’에서 연락 오더라”
2012년은 ‘정치의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의 최대 쟁점 역시 정치였다. 2011년의 관심이 결실로 나타나는 해가 2012년이라 하겠다.
201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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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정치의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의 최대 쟁점 역시 정치였다. 2011년의 관심이 결실로 나타나는 해가 2012년이라 하겠다. 정치는 ‘꼰대들의 전유물’이라며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들이 이제는 정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변화의 관건이 되는 것은 좌우가 아닌 ‘상식’이다. 2012년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보겠노라 다짐하는 5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미화, “책임감 있고 유익한 방송을 하겠습니다”
2011년은 김미화 씨에게 힘든 한해였다. 하지만 고난을 통해서 성장해나가는 발판을 만든 한해이기도 했다. MBC라디오 하차 이후 외압설 논란으로 마찰이 있었지만, CBS라디오 <여러분>과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로 재기했다.
“KBS하고 관계가 소원해지고 MBC에서 밀려나고 나니까, 갑자기 ‘나꼼수’라인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나는 꼽사리다> 진행을 맡아달라고 하셔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웃음).”
김미화 씨는 <나는 꼽사리다> 진행제의를 받을 당시 <독립신문>과의 소송 중이었다. <독립신문>이 김미화 씨를 ‘친노좌파’라고 표현한 데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 그리고 김미화 씨는 2011년 11월 3일 소송에서 승소했고 <나는 꼽사리다>의 진행도 결정했다.
“저는 ‘친노좌파’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게 아니라, 그 용어를 악의적으로 이용해서 개인을 반복적으로 매도하는 보도 행태를 바로잡아달라고 한 거예요. 인터넷기자협회에서 나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행사 사회를 맡아달라고 했고 제가 거기에 승낙한 게 매도의 대상이 되나요? 하나의 사건을 빌미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언론의 편협함에 이의를 제기한 겁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독립신문>에 대해 문제가 된 기사를 모두 삭제하고 8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김미화 씨에게 문제도 탈도 많았던 2011년이었지만 김미화 씨는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12년에도 책임감 있는 방송인이 되겠노라 다짐한다.
“제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제 후배들과 젊은 세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진행자가 되어 있을 것인가를 항상 생각해요. 저는 개그맨이잖아요. 부족한 면도 많겠지만, 여러분의 눈높이에서 시사와 경제를 쉽게 설명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임감을 가지고 더 재밌고 유익한 방송을 만들게요.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어준, “정권이 바뀌면 수염과 머리를 자르겠습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2011년 가장 뜨거운 인물 중의 하나였다. 김 총수가 쓴 『닥치고 정치』는 온?오프라인 서점가를 휩쓸었고, ‘나는 꼼수다’는 팟캐스트 정치부분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렇게 열기가 뜨겁다는 건 그만큼의 논란도 불러오기 마련이다.
“나는 꼼수다를 불편해하시는 분도 계세요. 정치적 시각이 다를 수 있거든요. 하지만 ‘나는 꼼수다’가 특정 주장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건 아니에요. 『닥치고 정치』도 마찬가지고요. 현 정권은 오랫동안 우리를 쫄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안 쪼는 사람도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부에서는 ‘나는 꼼수다’가 지나치게 선동적이거나 진행자들끼리 서로 우쭐해 하다가 진실을 왜곡하는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표명하기도 한다.
“그건 대단한 오해입니다. 저희는 굉장히 냉정합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긴박해요. 웃고 떠드는 것은 천성이 그런 것일 뿐이죠.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두세 번 체크하고 직접 당사자를 만나거나 녹취를 합니다. 그런 과정 없이 이 방송을 끝까지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김 총수지만, 2011년 그의 감성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다름 아닌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의 인정옥 작가와의 열애설이 화제가 된 것.
“만난 지 수년이 지났는데 왜 이제야 열애설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열애설 기사가 나가기 전에 언론사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평소 저한테 관심도 없던 연예전문 언론사였죠. 대뜸 ‘인정옥 씨하고 몇 년간 사귀셨나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당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하고 끊었어요. 그러자마자 인터넷에 ‘김어준, 열애설 인정!’하고 뜨더군요. 많은 분이 그 기사를 보고 의아해하시고, 가끔은 저보고 ‘외모지상렬주의’라고 하시는데 그 역시 대단한 오해입니다(웃음).”
김 총수는 인정옥 작가가 자신과 세계관이 잘 맞아서 끌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처럼 한 여인에게 김 총수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김 총수는 자신을 공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스스로를 진보의 도구로 사용하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구의 역할은 한시적이며 더 많은 이들에 의해서 실현되어갈 것이라고 한다.
“정치를 한다기보다는 정치의 문법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할 거예요. 정치가 나와는 상관없고 굉장히 어렵고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세대들. 그리고 정치가 촌스럽고 우중충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하던 세대가 변하고 있어요. 지금의 20~30대는 학생운동을 강요받던 세대가 아니거든요. 스스로 판단해서 투표하고 생활의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정치를 바꾸려 노력하는 세대에요. 저는 이 세대가 정치의 문법을 바꿀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는 꼼수다’는 그 변화에 같이 발맞춰서 나아가려고 생각해요.”
김 총수는 정권이 바꾸면 ‘나는 꼼수다’도 끝이 나겠지만, 그때까지는 현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에도 변화를 주겠노라 한다.
“20년 가까이 긴 머리와 수염을 자르지 않았어요. 항상 이 스타일이었죠. 하지만 정권이 바뀐다면 깔끔하게 머리와 수염을 자르겠습니다.”
조국, “반드시 승리해서 빨간 망사스타킹을 입겠습니다”
꽃 중년’이자 대한민국의 살아 있는 지성으로 통하는 조국 교수. 만 16세에 서울법대에 최연소 입학하고 만 26세에는 최연소 울산대 교수로 임용되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수난도 겪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조국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사가 되었다. 그런 그의 영향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두드러졌다.
“저는 박원순 시장을 지지했었죠. 그 이유는 박원순 시장은 민주당 이외의 세력까지 힘을 합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2012년 총선과 대선 구도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조국 교수는 2012년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진보세력의 통합과 함께 범진보 세력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통합을 외치는 정치인도 막상 자신의 지역구는 통합을 꺼려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단일화가 어렵다는 것. 그러면서 강원도 인제군수 보궐선거의 예를 든다. 당시 한나라당 이순선 후보는 민주당 최상기 후보를 72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만약 민주노동당 박승흡 후보의 표가 더해졌다면 무조건 야권이 이기는 선거였습니다. 강원도 인제군수의 선거는 두 가지의 교훈을 줍니다. 첫째로 민주노동당은 단독으로 승리할 수는 없지만, 범야권의 승리를 도와줄 힘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민주당은 민주노동당 없이는 단독 승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는 점입니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이 서로 연대하고 통합하지 않는다면 강원도 인제 선거의 결과를 따르게 될 수 있습니다.”
범야권의 승리를 위해 연대와 통합을 강조하는 조국 교수. 하지만 범야권이 집권한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 국민들은 희망하고 실망하는데 지쳐 있다. 희망이 온전한 기쁨으로 주어지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 질문이 사실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생의 위기, 주거문제, 일자리 문제, 그리고 노후 문제 등은 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가속화되었습니다. 그리고 97년 이후로 삼성공화국 체제가 견고히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정권의 화두는 삼성공화국을 없앨 수 있는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단박에 없앨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삼성공화국 현상을 통제하고 줄일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노동법 개혁, 공정거래법 강화, 독점규제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조국 교수는 ‘삼성공화국’이 불러온 부의 쏠림 현상을 완화해주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기꺼이 빨간 망사스타킹을 신겠노라고 한다. 사실 ‘빨간 망사스타킹’ 선언은 조국교수가 처음으로 한 말은 아니다. ‘나는 꼼수다’팀이 방송 중에 선언해버린 것. 하지만 조국 교수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제가 망사 스타킹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는 걸로 봐서 유권자들이 현 정권에서 성(性)적으로 많이 억압되어 있었던 거 같습니다(웃음). 어떤 경우에도 4월 선거에 승리해서 망사스타킹을 입겠습니다.”
홍세화, “정체성을 지키는 성숙한 진보정치를 선보이겠습니다”
한겨레 전 기획의원이자 현 진보신당 대표인 홍세화 대표는 범야권 통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홍 대표는 사회의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확한 신념과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MB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통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현 유권자 상당 부분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진보를 외치기보다는 MB체제의 정서적인 반감으로 진보진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러한 우려가 정치의 산을 내려오던 홍 대표에게 다시 힘든 등산의 여정을 결심하게 했다.
“많은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진보를 반전과 전복으로 생각합니다. 극적인 반전을 통해서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진보는 사회의 문제를 대면하고 조율하면서 조금씩 성숙되어가는 것입니다. 진보는 정치적인 전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의 여러 문제를 둘러보려는 진지한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진보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막상 양성평등, 성소수자, 장애인 문제 등에 부딪히면 전혀 진보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홍 대표는 진보적인 식견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 진보의 모습이 70년대 학생운동 시절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소위, ‘선배 잘못 만나서, 책 소개 잘못 받아서, 동아리에 잘못 들어서 피해를 봤다’는 원망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확한 신념 없이 통합을 통한 결과만을 끌어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진보는 중장기적인 목표 하에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제 막 올챙이 시절을 가까스로 벗어난 정도입니다. 대표라는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척박한 역사의 토양에서 노력한 분들의 어려움을 기억하며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나가겠습니다.”
신영복, “변방의 창조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 손꼽히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그러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전주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1988년 8?15 특별가석방으로 20년 만에 출소한다.
“동생이 교도소로 접견을 와서 8*15에 출소한다는 말을 전했을 때도 반신반의했어요. 출소한다는 말을 듣고 감방 동료들에게 이불이나 신발 같은 용품을 나눠주었다가 출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나가는 날까지 나간다는 말을 못하고 지냈죠.”
신 교수는 현재 경향신문에 <변방을 찾아서>라는 기획을 연재하고 있고, 소외지역을 찾아가 꾸준한 강연을 열고 있다. 신 교수는 변방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변방은 변화의 가능성이 가장 큰 공간입니다. 변방은 개척정신의 상징이죠. 중추적인 위치에 있더라도 변방의 의식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변방이 창조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을 자신의 밑에 깔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즉 진보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콤플렉스가 있는 진보세력은 또 다른 부패한 권력구조를 낳을 우려가 크다. 신 교수는 관계와 공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사회를 바꾸는 첫걸음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길이란 단순히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사람도 만나고 좋은 날도 나쁜 날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길에 자신의 발걸음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의미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이해하고 공감하려 할 때 참된 인생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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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 “책임감 있고 유익한 방송을 하겠습니다”
2011년은 김미화 씨에게 힘든 한해였다. 하지만 고난을 통해서 성장해나가는 발판을 만든 한해이기도 했다. MBC라디오 하차 이후 외압설 논란으로 마찰이 있었지만, CBS라디오 <여러분>과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로 재기했다.
“KBS하고 관계가 소원해지고 MBC에서 밀려나고 나니까, 갑자기 ‘나꼼수’라인에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나는 꼽사리다> 진행을 맡아달라고 하셔서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웃음).”
김미화 씨는 <나는 꼽사리다> 진행제의를 받을 당시 <독립신문>과의 소송 중이었다. <독립신문>이 김미화 씨를 ‘친노좌파’라고 표현한 데 대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 그리고 김미화 씨는 2011년 11월 3일 소송에서 승소했고 <나는 꼽사리다>의 진행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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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친노좌파’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게 아니라, 그 용어를 악의적으로 이용해서 개인을 반복적으로 매도하는 보도 행태를 바로잡아달라고 한 거예요. 인터넷기자협회에서 나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행사 사회를 맡아달라고 했고 제가 거기에 승낙한 게 매도의 대상이 되나요? 하나의 사건을 빌미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언론의 편협함에 이의를 제기한 겁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독립신문>에 대해 문제가 된 기사를 모두 삭제하고 8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김미화 씨에게 문제도 탈도 많았던 2011년이었지만 김미화 씨는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12년에도 책임감 있는 방송인이 되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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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제 후배들과 젊은 세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진행자가 되어 있을 것인가를 항상 생각해요. 저는 개그맨이잖아요. 부족한 면도 많겠지만, 여러분의 눈높이에서 시사와 경제를 쉽게 설명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책임감을 가지고 더 재밌고 유익한 방송을 만들게요.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어준, “정권이 바뀌면 수염과 머리를 자르겠습니다”
“나는 꼼수다를 불편해하시는 분도 계세요. 정치적 시각이 다를 수 있거든요. 하지만 ‘나는 꼼수다’가 특정 주장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건 아니에요. 『닥치고 정치』도 마찬가지고요. 현 정권은 오랫동안 우리를 쫄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안 쪼는 사람도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일부에서는 ‘나는 꼼수다’가 지나치게 선동적이거나 진행자들끼리 서로 우쭐해 하다가 진실을 왜곡하는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표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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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대단한 오해입니다. 저희는 굉장히 냉정합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긴박해요. 웃고 떠드는 것은 천성이 그런 것일 뿐이죠.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두세 번 체크하고 직접 당사자를 만나거나 녹취를 합니다. 그런 과정 없이 이 방송을 끝까지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김 총수지만, 2011년 그의 감성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다름 아닌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의 인정옥 작가와의 열애설이 화제가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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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수년이 지났는데 왜 이제야 열애설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열애설 기사가 나가기 전에 언론사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평소 저한테 관심도 없던 연예전문 언론사였죠. 대뜸 ‘인정옥 씨하고 몇 년간 사귀셨나요?’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당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잖아!’하고 끊었어요. 그러자마자 인터넷에 ‘김어준, 열애설 인정!’하고 뜨더군요. 많은 분이 그 기사를 보고 의아해하시고, 가끔은 저보고 ‘외모지상렬주의’라고 하시는데 그 역시 대단한 오해입니다(웃음).”
김 총수는 인정옥 작가가 자신과 세계관이 잘 맞아서 끌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처럼 한 여인에게 김 총수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김 총수는 자신을 공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스스로를 진보의 도구로 사용하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도구의 역할은 한시적이며 더 많은 이들에 의해서 실현되어갈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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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한다기보다는 정치의 문법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할 거예요. 정치가 나와는 상관없고 굉장히 어렵고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세대들. 그리고 정치가 촌스럽고 우중충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하던 세대가 변하고 있어요. 지금의 20~30대는 학생운동을 강요받던 세대가 아니거든요. 스스로 판단해서 투표하고 생활의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해 정치를 바꾸려 노력하는 세대에요. 저는 이 세대가 정치의 문법을 바꿀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는 꼼수다’는 그 변화에 같이 발맞춰서 나아가려고 생각해요.”
김 총수는 정권이 바꾸면 ‘나는 꼼수다’도 끝이 나겠지만, 그때까지는 현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에도 변화를 주겠노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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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긴 머리와 수염을 자르지 않았어요. 항상 이 스타일이었죠. 하지만 정권이 바뀐다면 깔끔하게 머리와 수염을 자르겠습니다.”
조국, “반드시 승리해서 빨간 망사스타킹을 입겠습니다”
“저는 박원순 시장을 지지했었죠. 그 이유는 박원순 시장은 민주당 이외의 세력까지 힘을 합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2012년 총선과 대선 구도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조국 교수는 2012년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진보세력의 통합과 함께 범진보 세력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통합을 외치는 정치인도 막상 자신의 지역구는 통합을 꺼려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단일화가 어렵다는 것. 그러면서 강원도 인제군수 보궐선거의 예를 든다. 당시 한나라당 이순선 후보는 민주당 최상기 후보를 72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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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민주노동당 박승흡 후보의 표가 더해졌다면 무조건 야권이 이기는 선거였습니다. 강원도 인제군수의 선거는 두 가지의 교훈을 줍니다. 첫째로 민주노동당은 단독으로 승리할 수는 없지만, 범야권의 승리를 도와줄 힘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민주당은 민주노동당 없이는 단독 승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는 점입니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이 서로 연대하고 통합하지 않는다면 강원도 인제 선거의 결과를 따르게 될 수 있습니다.”
범야권의 승리를 위해 연대와 통합을 강조하는 조국 교수. 하지만 범야권이 집권한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 국민들은 희망하고 실망하는데 지쳐 있다. 희망이 온전한 기쁨으로 주어지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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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이 사실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생의 위기, 주거문제, 일자리 문제, 그리고 노후 문제 등은 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가속화되었습니다. 그리고 97년 이후로 삼성공화국 체제가 견고히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정권의 화두는 삼성공화국을 없앨 수 있는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단박에 없앨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삼성공화국 현상을 통제하고 줄일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노동법 개혁, 공정거래법 강화, 독점규제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조국 교수는 ‘삼성공화국’이 불러온 부의 쏠림 현상을 완화해주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기꺼이 빨간 망사스타킹을 신겠노라고 한다. 사실 ‘빨간 망사스타킹’ 선언은 조국교수가 처음으로 한 말은 아니다. ‘나는 꼼수다’팀이 방송 중에 선언해버린 것. 하지만 조국 교수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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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망사 스타킹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는 걸로 봐서 유권자들이 현 정권에서 성(性)적으로 많이 억압되어 있었던 거 같습니다(웃음). 어떤 경우에도 4월 선거에 승리해서 망사스타킹을 입겠습니다.”
홍세화, “정체성을 지키는 성숙한 진보정치를 선보이겠습니다”
한겨레 전 기획의원이자 현 진보신당 대표인 홍세화 대표는 범야권 통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홍 대표는 사회의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확한 신념과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MB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통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현 유권자 상당 부분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진보를 외치기보다는 MB체제의 정서적인 반감으로 진보진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러한 우려가 정치의 산을 내려오던 홍 대표에게 다시 힘든 등산의 여정을 결심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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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진보를 반전과 전복으로 생각합니다. 극적인 반전을 통해서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진보는 사회의 문제를 대면하고 조율하면서 조금씩 성숙되어가는 것입니다. 진보는 정치적인 전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의 여러 문제를 둘러보려는 진지한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진보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막상 양성평등, 성소수자, 장애인 문제 등에 부딪히면 전혀 진보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홍 대표는 진보적인 식견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 진보의 모습이 70년대 학생운동 시절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소위, ‘선배 잘못 만나서, 책 소개 잘못 받아서, 동아리에 잘못 들어서 피해를 봤다’는 원망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명확한 신념 없이 통합을 통한 결과만을 끌어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진보는 중장기적인 목표 하에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제 막 올챙이 시절을 가까스로 벗어난 정도입니다. 대표라는 자리에 서게 되었지만, 척박한 역사의 토양에서 노력한 분들의 어려움을 기억하며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나가겠습니다.”
신영복, “변방의 창조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동생이 교도소로 접견을 와서 8*15에 출소한다는 말을 전했을 때도 반신반의했어요. 출소한다는 말을 듣고 감방 동료들에게 이불이나 신발 같은 용품을 나눠주었다가 출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나가는 날까지 나간다는 말을 못하고 지냈죠.”
신 교수는 현재 경향신문에 <변방을 찾아서>라는 기획을 연재하고 있고, 소외지역을 찾아가 꾸준한 강연을 열고 있다. 신 교수는 변방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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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은 변화의 가능성이 가장 큰 공간입니다. 변방은 개척정신의 상징이죠. 중추적인 위치에 있더라도 변방의 의식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변방이 창조적인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을 자신의 밑에 깔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즉 진보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콤플렉스가 있는 진보세력은 또 다른 부패한 권력구조를 낳을 우려가 크다. 신 교수는 관계와 공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사회를 바꾸는 첫걸음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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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길이란 단순히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사람도 만나고 좋은 날도 나쁜 날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길에 자신의 발걸음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의미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이해하고 공감하려 할 때 참된 인생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1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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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수석
http://blog.yes24.com/musician79
채널예스에서 작가와 독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etjmcp25
2012.01.26
좋은예감
2012.01.21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힘! 이 분들께서 나옵니다.
날도래
2012.01.21
아마 2012년은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커다란 틀을 통해 보시는 그 안목과 말씀이 한 자 한 자 소중해서 마지막 구절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김미화씨는 이제는 개그맨이 아니라 멀티방송인 같아요. 2012년에도 멋진 대한민국을 위해서 노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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