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이별 통보는 살아서 지옥을 맛보는 일일 것이다. 트루먼 카포티는 오죽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를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이별 통보 앞에 세상은 멈춰야 마땅하다. 개그맨 김원효도 외칠 것이다. “안 되에~”
그러나 그 이별 통보, 결정적인 허점이 있다. 이별 통보자, 연인도 아니다. 아는 사람도 아니다. 그 이름, 전혀 기억해낼 수가 없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이별을 선고를 받았다. 관계를 시작하지도 않은 여자에게 버림받았다. 자,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프랑스가 주목하는 젊은 작가, 마르탱 파주의 『아마도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생판 모르는 여자, 클라라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남자, 비르질이 클라라를 찾는 여정. 소설의 표피, 그렇다. 읽다 보면 달라진다. 비르질이 찾는 것은 클라라가 아니다. 바로 비르질 자신이다. 과연 우리 각자는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소울 메이트’를 찾는단다. 헌데, 우리는 내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가 가진 가치와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어떤 것에 감동하고 추악하다고 생각하는지, 과연 우리는 아는가.
지난 4일, 서울 미근동의 상상유니브. 프랑스문화원 ‘올해의 초청작가’ 마르탱 파주가 독자들과 만났다. 이름하여, 마르탱 파주와 청년 독자들이 함께 나누는 북 토크 ‘청춘’.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이 진행한 이날의 시간. 파주가 청춘들에게 고한 이날의 핵심은 이것이다. 사랑을 하려면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한다. 좋은 사랑을 위해선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한다.
빅토르 위고는 말했다. “우주를 단 하나의 사람으로 줄이고 그 사람을 신에 이르게까지 확대하는 것. 그것이 곧 연애이다.” 그러니까, 신을 신봉(?)하기 위해서는 나의 상태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
마르탱 파주, 젊음*글쓰기*예술*사랑을 말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만난 소감은 어떻고, 프랑스 젊은이들과 어떻게 다른 것 같나?
한국과 프랑스의 젊은이에 대한 문제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파리에서 오래 살았는데,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동생도 실업 상태로 오래 있었고, 아르바이트 정도의 급여를 받고 일하는 친구들도 많다. 지금 나는 30대인데,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세대이다. 이주민 등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층도 많다.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치를 처음 보면 실망하고 냉소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투표뿐 아니라, 시위도 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왜 이런 어려움에 처해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어려움은 신자유주의 체제 때문인데,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경제 체제가 신자유주의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가들은 아름답지 않지만, 정치는 아름다운 것이다.
소설 분위기가 비관론적이다. 이런 설정을 한 이유가 있나?
(소설의) 등장인물이 세상과 동떨어지고 고독한데, 그런 한편으로 비관적인 모습을 없앨 수 있는 것도 함께 추구하고자 했다. 세상이 인물이 우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부분이 있지만, 그 속에서도 유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고민한다. 소설 초기엔 자살시도 등이 있지만 유머코드를 넣고자 노력했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가인 질 들뢰즈 이야기를 인용하자면, 사회는 어떡해서든 사람들이 불행해지도록 만들기 때문에 의지적으로 즐겁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정치적인 면을 띨 수밖에 없기도 하다.
사물을 보면서 어떤 방식으로 소재를 찾고 주제를 찾아가나?
글을 쓴다는 건, 관찰하고 상상력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1930년대 독일의 한 작가는 상상을 한다는 것은 지식을 얻는 한 방법이라고 했다. 상상을 하면서 현실을 알고 예측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경향이 있다. 작가는 인류학자의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실주의 작가만이 현실을 그린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만 봐도, 그것 자체가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을 더 잘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초현실주의도 기괴해 보이지만, 현실을 지지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어릴 때 예술은 피난처였다고 했다. 지금 마르탱 파주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
어렸을 때 내게 피난처였던 문학?예술은, 우선 지금 냉장고에 음식을 채우고 집세를 내게끔 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뿐 아니라, 내 삶 전체를 관장하는 무엇이다. 나는 어릴 때 가진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책(문학)이나 예술이 삶과 다르지 않다.
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기쁨을 느낀다는 메일 등을 받으면 무척 좋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이 좀 더 살만한 곳이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나는 모든 사람이 삶을 통해 예술적인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빨간머리 피오』를 보면 21세기의 예술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나온다. 실제로 작가가 예술계를 어떻게 보고 있나?
내 주위에 화가, 만화가 등 친구들이 있다. 그들을 통해 보는 예술계는 위선적인 부분이 있다. 예술?문학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즉, 예술을 통해 돈이나 권력을 얻으려는. 예술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돼야 하고, 예술하는 사람도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떤 예술가들은 예술을 하면서 자신이 신(神)인 것처럼 행동하는데, 그건 잘못됐다. 물론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야망이 있어야 한다. 거장인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세상에 야망이 없다. 그러나 내 작품에 대해서는 야망이 있다.” 이기적이고 슬픈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예술가는 겸허함을 겸비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이 반지성주의로 돌아선다. 이성보다 욕망에 충실하도록 삶을 영위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삶의 진정성은 무엇인가?
이 작품은 나의 첫 작품이다. (이 작품을 쓸) 당시 파리 외곽에 살고 있었는데, 문화적으로 뭔가를 누릴만한 곳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로 힘들 때였다. 방황했다. 두 친구와 어렵게 살면서 습작을 많이 했다.
이 작품은 그래서 자전적인 게 많다. 주인공처럼 공부를 많이 했으나 삶이 행복하지 않아서, 왜 살고,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알아보고자 했다. 우리가 대개 ‘지성’이라고 말하면 학문과 연관 지어 말하는데, 살아가는 데는 지성뿐 아니라 지혜도 필요하다. 지혜가 삶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작품에서 싣고자 했다.
이 작품을 꼭 읽어봐라. 참 좋다. 네 번째 작품에선 주인공이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이전과 조금 달라진 세계관을 보이는데, 계기가 있나?
글쎄, 네 번째 소설을 쓸 당시 파리에 살고 있었는데, 그 전보다 환경이 좋아졌다. 여자친구도 생겼고. 아, 지금은 헤어져서 친구로 지낸다. (웃음) 내가 생각하기에, 뭔가 많이 느끼고 있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내게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우정이다. 사랑은 신이 창조한 무엇이라고 본다. 그만큼 신성한 감정이고 행위라고 본다.
나는 여전히 사랑에 관심이 많다. 당시에도 그런 것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많이 사랑했던 존재를 관계가 끝났다고 못 보는 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코리아 스타일은 그렇지 않다. (웃음) ) 프랑스 사람들도 사귀다 헤어지면 나처럼 만나거나 그러진 않는다. 내가 봐도 내가 좀 특이한 경위긴 하다. 그렇다고 여자를 많이 사귄 건 아니고. (웃음) 지금 헤어지고 친구처럼 만나는 사람이 세 명이다. (비결이 뭔가?) 헤어질 때 좋게 헤어져서 친구가 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게 헤어지나? (웃음) 최근작 『아마도 사랑 이야기』도 재밌다. 알랭드 보통의 경우, 사랑을 분해하듯 썼는데, 당신은 질문을 던지면서 전진한다. 이 작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어떻게 좋게 헤어지는지에 대한 조언은 내가 잘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웃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작품의 시작이 재밌다.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주인공 비르질이 찾는 것은 클라라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다. 사랑을 잘 하려면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에 대한 돌아봄이 없으면 자기 파괴적, 상호 파괴적이 될 수 있다. 혹은 영원성에 매달리게 되거나. 좋은 사랑을 위해선 자신을 더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의 평소 행동을 흉내 내다 보니 비르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대충 알게 되었다. 그는 결코 만족을 모르고, 늘 같은 불만만 늘어놓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해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발견을 가능케 해준 클라라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p.91)” |
마르탱 파주에게 묻고, 마르탱 파주가 답하다
무명시절을 보내는 작가 지망생에게 희망을 준다면?
가끔 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가 있다. 열정이 있으면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나도 첫 소설이 나오기까지 5~6권의 책을 썼는데, 거절의 답변만 받았다. 훌륭한 작가나 예술가를 출판사가 금방 알아보는 건 아니다. (웃음)
사족이지만, 21세기의 훌륭한 작가로 칭송받는 작가가 1960년대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이런 시도도 했다. 이미 유명해진 뒤 다른 사람 이름으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무슨 의도였는지는 뻔하지. (웃음)
시작부터 공평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파리 외곽에서 기댈 곳이라곤 없는 곳에서 작품을 썼다. 일단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지 않았다. 쓰고 또 썼다. 열정을 갖고 개성 있는 것을 쓴다면 기회가 있을 것이다. (김태훈: 비틀스도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문화나 예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프랑스는 다른 문화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다. 한국의 문학이나 영화가 프랑스에서 출간하거나 개봉하고 있다. 나는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유럽의 다른 어느 나라도 프랑스보다 홍 감독의 영화를 많이 상영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갖고 있음에도 그렇다.
나는 작품을 볼 때 한국의 무엇, 미국의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을 볼 때도 국적이나 국민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었는데, 참 좋았고, 한국의 국민성이라기보다 인간의 보편적인 무엇을 그 작품을 통해 느꼈다. 감수성의 동질성이 내겐 중요하다.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에는 ‘자살은 사회에 대한 참여’라는 말이 있다. 나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생인데, 조언을 부탁한다.
그 소설을 쓴지 10년도 더 지나서, 그때의 의식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아이러니컬하고 시니컬하게 쓴 것 같다. 정치를 공부한다면, 조지 오웰의 에세이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나 『나는 왜 쓰는가』나 카뮈의 작품을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정치가 문제가 되는 현장에 직접 나가보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앙드레 말로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카페에서 노닥거리며 정치를 했다.” 문학과 예술을 계속 접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개 1부1처제인데, 문학과 예술만큼은 1부다처제인 것 같다. (웃음)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앙ㅋ
2012.03.10
hara777
2012.03.10
caroll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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